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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셨나? (눅 23: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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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셨나? (눅 23:26~43)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신 가장 큰 원인은 엄청난 고난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시고 죽으셨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사람들에 의해 죽으셨는가? 예수님의 죽음이 나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는 이해하고 믿어야 한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의 성취를 위해 죽으셨다(고전 15:3,4) 

고전 15:3-4=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J의 탄생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냥 한 사람이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사람 가운데 그 어떤 사람도 예언으로 탄생되었거나 마지막 죽음에 대하여 예언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탄생과 삶과 죽음까지 정확하게 예언되었다.
창 3:15에 여자의 후손이 이 땅에 와서 뱀의 후손과 원수가 되며 뱀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다가 그들이 불평 불만하여 모두들 광야에서 죽어야만 했을 때 불 뱀에 물려서 온 몸이 퉁퉁 부어 죽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나무 위에 달게 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나무에 달린 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 수 있다고 했다(민 21:8) 나무에 달린 뱀 자체에 어떤 특수한 성질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을 뿐이다. 그 놋 뱀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시 22편과 사 53장에도 우리 주님의 고난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주님의 오심과 죽으심을 예언하고 있다. 성경의 모든 사실이 진실하며, 성경의 모든 예언의 내용이 역사적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실 때 울며 따라 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눅 23:28-29=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예수님의 이 예언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이후 4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신 말씀을 따라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예언되어진 말씀대로 오셨고 또 예언된 대로 사셨고, 예언된 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2.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죽으셨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에 대하여 Octavius Winslow는 이런 말을 했다. “돈 때문에 유다가 넘겨준 것이 아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빌라도가 넘겨준 것이 아니다. 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욕해서 유대인이 넘겨준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 때문에 성부께서 넘겨주신 것이다.” 인간 차원에서 보면 인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 차원에서 보면 성부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내어 주셨고 ,예수님도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것이다. 주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십자가 양편에는 강도들이 함께 달렸다. 한 강도는 소리소리 지르며 이 세상을 저주하며 옆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지른다. 죽음에 직면한 자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겠는가?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직감으로 자기의 죽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저주한다고 한다. 

사형당일 사형장으로 나아가게 될 때 집행관들이 4-5명이 사형수를 끌고 가더라도 한 사람의 힘을 당해내기가 어려울 정도의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고 한다. 그때 사형의 방법이 지금처럼 총살형이나 교수형이 아니었다. 물론 일반적인 범죄자에게는 감옥에 투옥시키거나, 유배, 태장이나 몇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흉악범이나  반란을 일으킨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는 처형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먼저 나무 위에 묶여야 했다. 그리고는 먼저 양손에 못질을 한다. 

이 고통을 가장 실감나게 겪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시며, 모욕을 당할 때부터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는 순간에도 누구를 저주하거나 욕하지 않으셨다. 

3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 옆에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그런 예수님을 바라보고 금방 깨달았다. 그리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42)라고 호소한다.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그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우리 주님이시다. 강도가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맡기셨던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는 왜 죽으셨는가?’에 대한 정답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강도와는 달리, 십자가에는 또 다른 무리들인, 바로 로마 군병들이 있었다.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사형에 내어 준 이후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희롱하며, 침을 뱉고 골고다까지 끌고 가면서 채찍질을 한 자들이었다(마27:27-31) 

그 뿐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신 그 시간에 십자가 밑에 있었던 군병들은 예수의 옷을 나눠 가지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하고 있었다(34)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의 머리부터 발까지 붉은 피로 물들었고 찢어진 손 가락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머리에 쓴 가시관으로 눈조차 뜰 수 없는 최악의 고통의 순간에, 지금 그 십자가 밑에서는 예수님이 쓰시던 물건을 제비 뽑는 짓들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오직 눈앞에 보이는 예수님의 옷에만 관심이 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몸을 찢고 흘러내리는 그 보배로운 피 아래 있으면서도 관심은 너무도 세상적이었다. 그것도 지극히 작은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영적인 일, 믿음의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3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자들을 향하여도 주님은 용서받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왜 죽으셨는가?’에 대한 정답이다. 

십자가 앞에서 주님의 유산을 서로 가지기 위해 제비를 뽑고 있던 그 군인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들의 관심 역시 거룩한 일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감격하며 감사해야 할 우리들이 세상의 것에 관심을 가질 때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동일한 기도를 하실 것이다.
 
3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결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심지어 의도적으로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 가셨다. 많은 고난도 받으셨고, 무시와 모욕을 받으셨고, 십자가까지 지시고 돌아가셨다. 내 죄를 씻어버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고통의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우리의 죄를 씻어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죽으셔야 했던 주님의 그 큰사랑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실 줄 확신한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값있게 드러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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