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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 (엡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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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 (엡 2:1~8)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살리신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대사건, 최고의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옛날얘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문제와 직결되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만 다시 살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하고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6절에서는 더 나아가 우리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 곁에 앉으신 것은 곧 우리도 그와 함께 그렇게 된 일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리라고 미래형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몸들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을 새 생명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보장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우리의 자리가 이미 마련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놀라운 복과 큰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믿기만 한 것뿐입니다. 그 믿음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믿음 위에 그런 엄청난 선물을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본문 마지막 절을 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보다 더 놀랍고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두 손 번쩍 들고 “할렐루야!” 외칠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우리가 원래 어떤 자들이었는지를 알려주는 말들이 여럿 나옵니다. 1절에서는 “죽었던 자들”이라고 합니다. 2절에서는 “불순종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3절에서는 “진노의 자녀”라고 합니다. 다 무시무시한 말들입니다. 우리는 다 그런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더러 죽었다니 무슨 말인가?” 반문하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합니다. 

허물과 죄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것을 다른 말로 반복함으로써 강조하는 어법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5절에서는 그냥 “허물로 죽은 우리”라고 줄여서 말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본래 뜻은 표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삶을 죽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공중”은 하늘과 땅 사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공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하늘나라와 이 세상 사이에서 두 세상을 갈라놓는 중간영역을 지칭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마귀는 그의 졸개들과 함께 불순종의 아들들 즉 하나님을 거역하며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마귀를 따르는 자들을 하늘나라로부터 격리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주시고 우리 대신 그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시고는 그를 다시 일으켜 살리심으로써 마귀의 권세를 꺾으시고 그에 대해 승리하시고 그의 지배를 끝내셨습니다. 우리를 억누르며 하늘나라로의 길을 막고 있던 던 공중의 권세를 다 물리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중권세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거나 그를 믿기를 거부하고 그밖에 머무르는 자들은 모두 불순종의 아들이고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 

본문 3절에서는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삶을 사는 사람은 마귀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것도 마귀의 장난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한 마귀의 거짓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것이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좋으며 참으로 탐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마귀는 이렇게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도록 유혹합니다. 마귀에게 놀아나는 인간은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게 됩니다. 탐욕, 이기심, 시기, 질투, 분노, 갈등, 미움 속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에서 진노의 자녀 즉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은 다 진노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떨어졌고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에게 굴복하고 마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불순종의 아들들이고 진노의 자녀로서 살아있으나 실상은 모두가 죽은 자였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우리 옛 사람을 죽이시고 우리를 새 사람으로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우리의 옛 사람의 죽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새 사람으로서의 우리의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자비와 은혜밖에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본문 4-8절이 그것을 말합니다. 

다시 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본문 끝 절에 이어지는 말씀을 계속해서 보면 9절에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한 후에 10절에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것이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일차적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도 옮겨질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일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로부터 지금까지 행하신 모든 일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때부터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려는 마귀의 끊임없는 궤계와 암약을 치명적으로 분쇄하시고 하나님나라 회복을 위한 결정적 승리를 거두셨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공중 권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걸작품들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뜻으로 쓰기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한 것입니다. 

아주 최근에 미국 로스 엔젤리스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여 교회건축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건축물이 천주교의 로스 엔젤리스 대성당이었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참고할 좋은 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본당 단상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조각상은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기는 걸작품으로 여겨졌습니다. 일반적인 손발에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 외에는 깨끗한 예수님의 몸 조각과는 달리 그 조각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지는 다 헤어지고 뒤틀릴 대로 뒤틀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수그려진 그의 머리를 밑에서부터 올려다봤을 때 발견한 그의 얼굴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살며시 닫힌 그의 입술에는 보일 듯 말 듯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 예수님 조각상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표현한 모든 미술품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미소는 그야말로 다 이루었다는 완전한 만족의 미소 같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을 잔잔히 즐기시는 표정 같았습니다. 안내하며 설명하던 사람에 따르면 그 미소는 사탄을 향한 미소라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졌고 내가 이겼노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미소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승리, 하나님의 완벽한 승리라는 걸작품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이루어진 우리의 부활이기에 우리 또한 하나님의 걸작품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외면하면 마귀의 비천한 작품들로 남고 맙니다. 부활하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잡고 하나님의 걸작품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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