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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과 자유 그리고 자유케 함 (갈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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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자유 그리고 자유케 함 (갈 5:1~15)


복된 부활 주일에 그 동안 네 교회로 흩어져서 예배하고 생활하던 높은 뜻 가족들이 함께 모여 연합예배를 드리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높은 뜻 모든 교회와 가족들 위에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속에,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시는 사건 속에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역사 속에 일치 되는 단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루를 쉬셔야만 하시리만큼 (저는 최근 그것을 불경스러운 표현으로 하나님이 탈진하셔서 뻗으셨다로 표현했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까닭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위하여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 주시고 싶으셔서 그러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 것 저 것을 만드시고 좋다. 좋다. 참 좋으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물론 만드신 것들이 아름답고 보시기에 좋으셔서 그러시기도 하셨지만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을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주실 생각을 하시니 그 마음이 너무 좋으셔서 좋다. 좋다. 참 좋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와 함께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망이 온 땅을 뒤 덮게 되었습니다.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과 애통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우리가 그렇게 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사망에서 건져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이시라고 하여도 당신의 자리와 능력을 남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당신의 최선을 다하심이라는 대가를 지불하였고,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우리들을 구원하실 때에도 힘으로, 권력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값이 모자랍니다라고 송사하지 못할 만큼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과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죄는, 사망은 더 이상 궁극적인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역사가 이 땅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역사는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는 역사입니다. 죄와 사망의 종이 되어 매여 있던 우리들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행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행위와 행함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우리가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뭐 어떤 좋은 일을 좀 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뭐 어떤 선하고 착한 일들을 좀 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 시대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 바울이 펄쩍 뛰면서 그것을 본문을 통하여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례 같은 것을 받는 것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넌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는 사건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과 행위입니다. 그 사건과 행위로 말미암아 발생하게 되는 파워는 세상의 모든 죄와 사망을 단숨에 쓸어버리는 쓰나미와 같은 것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입니다. 그 강력한 힘이 죄와 사망의 사슬을 끊고 우리에게 자유와 소망과 생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부활과 자유와 생명을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그 값을 우리로부터 돌려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신 그 자유와 소망과 생명을 만끽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고 자유하는 사람으로 깨끗하고 아름답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그 축복과 은혜를 자신만 누리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부활과 자유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 함에서 그치지 않고 자유케 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3월 24일 명동 청어람 카페를 다시 공사하여 ‘블리스 앤 블레스’라는 커피 전문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운 열매나눔재단이 네 번째로 세운 사회적기업입니다. 참 기뻤습니다. 24일 날 예배를 드릴 때 한 설교 전문을 올려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설교가 시 처럼 쓰여졌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완벽했습니다. 훌륭했습니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창조의 중심도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창조의 이유와 목적과 중심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주려고,
사람을 살게 하려고,
아담과 하와가 행복하게 잘 살게 하려고
하나님은 죽을힘을 다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레째 되는 날 하루를 쉬셨습니다.
하나님께 무례하고 불경스러운 표현이 되겠습니다만 실감나게 표현한다면,
뻗으셨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아담과 하와가 행복해 할 것을 생각하니 좋으셨습니다.
저들이 잘 살 것을 생각하니 심히 좋으셨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가 자기 예배당 지을 돈을 헐어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새터민과 사회적취약계층민들의 자활을 위하여 공장을 세우며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이라 생각하였습니다. 

1호 기업 메자닌 아이팩 박스공장.
2호 기업 메자닌 에코원 블라인드 커튼 공장.
3호 기업 고마운 손 가죽 가방과 벨트 공장.

오늘 드디어 제 4호 기업 블리스 앤 블레스 카페가 문을 엽니다.
새터민 젊은이에게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기회를 열어 주려고
또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준비를 하였습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였습니다. 
우리의 창업은 하나님의 창조를 닮았습니다. 

사람을 위하여,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을 위하여. 
저들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저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저들이 이 땅에서 성공하게 하기 위하여,

오로지 그 목적 하나만을 위하여 많은 높은 뜻 사람들이 내일은 뻗을 작정으로 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이제 드디어 그 문을 여는데
평생 보아오던 성경 말씀
창세기 말씀
1장 말씀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그렇듯 실감나게 가슴에 와 닿을 수 없습니다.

아, 이 기분이구나.....!!!!!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땅을 향하여 하신
하나님의 첫 말씀. 
<빛이 있으라!!!>
블리스 엔 블레스가 첫 문을 여는 이 시간
<블리스 엔 블레스에 빛이 있으라!!!>
이곳에서 일하게 될 우리 새터민 청년들에게 빛이 있으라 !!! 

사회적 취약계층이 되어 무겁고 무서운 세상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절망하는 새터민과 가난한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우리 높은 뜻 교회는 작지만 우리를 희생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흉내내어....

이번에도 카페를 만드는데도 정말 열심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에는 열심과 최선의 목적과 중심이 우리 자신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최선과 열심의 목적과 중심이 우리 자신이 아닌 새터민과 가난하고 약한 우리의 이웃이었습니다.

설교 끝에 제가 새터민 청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너희들만 잘 살면 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재단과 공장은 잘 됩니다. 그래도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도 지뢰밭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에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도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터지면 수습하지요 뭐. 하나님께 매달리지요 뭐. 하나님께 우리 새터민들에게 희망 주시라고, 자유를 주시라고 울며 기도하지요 뭐.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15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을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로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쉽게 정리하자면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자유를 다시 말해 축복을 자신의 육체만을 위하여 사용하지 말고 그 소중한 자유와 축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소중한 자유를 사용하여 많은 사람을 자유케 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축복을 우리 자신의 육체만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종 삼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새터민과 소자들을 품고 섬김으로 저들을 자유케하는 일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시작은 저들의 육체의 자유로 시작하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저들의 영적인 자유 함까지 우리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것을 저는 믿고 기대합니다.

저들의 구원과 자유케 함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살므로 세상에 부활의 능력과 소망을 전파하며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우리 높은 뜻 가족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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