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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나귀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막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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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막 11:1~11)


집단 생활하는 곤충들을 보면 왕이 있다. 여왕벌, 여왕 개미등, 사람도 집단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동서고금 역사 이래 왕이 있어 왔다. 선한 왕을 만나면 백성이 평화롭지만 악한 왕을 만나면 곤핍해진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왕은 있으되 섭정왕에 불과했고, 헤롯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다. 주권이 없었기에 백성들은 과중한 세금에 시달렸고 불이익을 당했다. 
BC 587년, 유다 왕조의 멸망 후 유대인들은 망명 생활을 했다. 600년 동안 나라의 독립과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기다려왔다. 그들에게 진정한 평안과 풍요를 줄 수 있는 강력한 왕을 기대했다. 그 왕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셨다. 유대인들이 기대한 왕의 모습이 아니었다. 원래 왕은 나귀를 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어린 나귀를 타셨는가? 예언의 성취로 오셨기 때문이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는 능히 말을 타실 능력이 있으셨다. 그러나 타지 않으셨다. 나귀를 타는 것보다는 말을 타는 것이 더 보기에 좋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군왕과 같이 말탄 위엄 있는 모습을 보기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좋게 하려 하지 않으셨다. 단지 말씀대로 이뤄지기 위해 나귀를 타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금 필요하신 것은 어린 나귀새끼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제자들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신 것이다.

막 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1.주가 쓰시겠다

제자들도 훌륭하고 나귀새끼를 선뜻 내주는 주인도 훌륭하다. ‘주가 쓰시겠다’는 말 한 마디에 군소리 없이 내주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순종과 헌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은 모든 소유의 주인이 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주님께서 쓰실 때 복이 된다. 그 어린 나귀는 예수님의 입성에 쓰인 바 되었다. 

다른 번역본에는 ‘주가 필요하시답니다’로 되어 번역되어 있다. 주가 쓰시겠다고 요청하실 때, 주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하실 때, 나귀 주인은 조건 없이 순수하게 내놓았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에게 쓰시겠다고 하면 조건 없이 허락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주님이 어떤 분인 줄 알면 기꺼이 내놓게 된다. 그러나 모르면 자기 것이라고 고집할 것이다.‘주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었네~’

믿음의 역사는 순종과 헌신을 통해 이뤄진다. 현실적으로 보면 손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복이 된다. 

2.제자들을 보내심

예수님께서는 두 명의 제자들을 보내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마을에 가셔서 그 나귀 새끼를 풀어 그곳에서 직접 타고 가셔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을 보내셨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자들로 하여금 은혜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제자들이 순종하여 갔을 때 말씀대로 그곳에 나귀 새끼가 묶여 있는 것을 보았고, 풀러 가져오려 할 때 주인이 허락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을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뤄지는 과정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건너 마을까지 가는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성도들이 은혜 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불러내셔서 말씀 듣게 하시고, 봉사도 하게 하신다. 

왜? 은혜 받게 하시려고.. 귀찮게 한다고 생각지 말자. 집에서 새벽기도해도 되는데 굳이 불러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와서 보고, 듣고, 은혜 받으라고, 그래서 귀찮게 한다 생각하고 순종하면 된다.

막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3.예수께서 나귀를 타심

제자들이 겉옷을 벗어 나귀 새끼 등에 얹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타셨다. 예수님의 체중을 겨우 감당할 정도였으리라 생각된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성에서 몰려 나왔다(요 12장 유월절 순례객).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깔아 드렸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환호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 광경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환영하러 나온 무리들도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언의 성취다. 유대인들은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은 예언자의 성취였다. 

그분은 시온의 왕이요, 공의의 왕이요, 구원의 왕이요, 겸손의 왕이시다. 시온의 왕이란 영적인 나라의 왕이란 뜻이요, 공의의 왕이란 공평하시고 정의로우신 왕이란 뜻이고, 구원의 왕이란 예수님 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뜻하는 것이요, 겸손의 왕이란 어린 나귀를 타신 왕이란 뜻이다. 말이나 마차를 타실 수 없고 반드시 나귀를 타셔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귀를 타면 교만해질 수가 없다. 사람들이 무엇을 탓느냐에 따라 태도가 다르다. 예수님께서 왕으로서 나귀를 타신 것처럼 성도들도 나귀 탄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말을 탄 자는 군림하려 하지만 나귀를 탄 자는 군림할 수가 없다. 교회 나올 때 어린 나귀를 탄 심정으로 나와야 한다. 말탄 심정으로 나온 사람들은 대접 받으려하고 섭섭하면 시험에 든다. 그러나 나귀탄 심정으로 나온 사람들은 섬기고 일하려 한다. 시온성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도 어린 나귀새끼를 타셨다.

4.백성들의 환영, 호산나 

백성들이 나와서 외쳤다. ‘호산나’ 이 말은 ‘구원하소서!’란 뜻이다.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고 자신들의 겉옷을 땅바닥에 깔았다. 자신들을 낮추고 주님을 높이며 찬송하였다. 
우리의 찬양의 대상은 오직 예수 밖에 없다. 왜그런가? 예수님 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예수님 만이 우리의 의가 되시며, 예수님 만이 우리의 왕이시며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겸손히 나귀를 타신 분이시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높이면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예수님을 빙자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도 우상숭배다. 탐욕은 우상숭배다. 탐욕이 우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항상 예수님만을 높이고 예수님 만을 찬양하는 삶이 되길 바란다. 

이스라엘의 실패, 유대인들의 실패는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호산나 외치던 무리들이 며칠이 못되여 예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는가?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윗왕을 생각했고, 다윗왕 시대의 강성한 나라를 기대했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군림하는 육적인 강성한 나라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증거하신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마 20: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보호 받고, 승진하고, 성공하길 바란다. 교회 나와서 대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모습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진정한 주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구원 받은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1)내가 너를 쓰기 원한다. 
너의 시간이 필요하다. 너의 물질이 필요하다. 너의 재능이 필요하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 ‘주여 가져가세요.’ 순종하고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2)주님께서는 우리가 은혜 많이 받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모임, 섬김, 봉사가 부담이 되고 귀찮은 생각이 들어도 순종하고 인내하면 은혜 받는다. 모이기를 힘쓰고, 봉사의 팔을 걷어 부치라. 

3)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기억하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겸손히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 그분이 바로 우리의 표상이다. 겸손으로 옷 입자. 나귀 새끼 탄 자세로 살기 바란다. 

4)우리 주님만 높이고 찬양하기 바란다. 
우리 입술에 찬양이 그치지 않도록 오직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찬양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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