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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십자가 주변의 기적들 (마 27: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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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주변의 기적들 (마 27:45~54) 
  

오늘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인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지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래서 종려주일(Palm Sunday)이라 부릅니다. 혹은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하여 고난주일/수난주일(Passion Sunday)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일곱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 부르죠. 그런데 십자가 주변에서 발생한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상 칠언 외에 그 기적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이 아주 다양하죠.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음성 언어로 말씀하시면, 그들이 문자 언어로 기록합니다. 이게 곧 성경이죠.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성 언어나 문자 언어 외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특이한 언어가 있습니다. 이게 소위 ‘상징 언어’입니다. 초자연적인 현상(기적)이나 환상 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주시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죠.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현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동행해 주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창세기 28장을 보면, 에서를 속이다 밧단아람으로 도망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들판에서 나타나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가 한참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해 주심을 나타내신 겁니다. 동시에 음성 언어로도 말씀해 주셨죠. 그래서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기쁜 마음으로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 집)로 지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주변에 일어난 기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이것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기적들이 바로 ‘상징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에 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누구인지, 예수님이 하신 일 특히 십자가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쩌면 예수님을 사기꾼 내지는 정신 이상자로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랬나요? 한 마디로 말하면, ‘메시야’관(觀)의 차이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야 즉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새 나라를 건국할 왕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메시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네, 심지어 하나님과 하나이네,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구세주로 오셨네, ...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오해하고 실망한 백성들이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린 겁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환호했던 백성들이 며칠 만에 돌변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여러 가지 기적을 보여주심으로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심을 명명백백하게 증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봐라! 이래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봐라! 이래도 십자가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는 대속의 십자가가 아니냐?” 

실제로 현장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백부장(사형 집행한 로마 장교)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54절.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전승에 의하면, 이 백부장이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십자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십자가 주변에서 어떤 기적들이 일어났습니까? 본문에 보면 세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한낮의 어둠 : 죄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슬픔

환한 대낮에 갑자기 어둠이 덮였습니다. 45절. “제육시(=정오)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오후3시)까지 계속되더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제3시 즉 오전 9시였습니다. 3시간에 흐른 제6시 정오부터 운명하신 제9시 오후 3시까지 사방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겁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보겠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일식(Eclipse)이었다! 하지만 아니죠. 유월절인데 시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유월절은 거의 만월(보름달) 때입니다. 그러니까 일식일 수 없고, 설사 그렇더라도 일식은 길어야 몇 분 만에 끝납니다.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로 불어오는 검은 열풍(Black Sirocco)이었다! 마치 요즘 중국의 황사처럼 열풍에 모래가 섞여 불어오기 때문에 어두워졌다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침침한 정도지 칠흑 같이 어둡지는 않죠. 

의사로서 냉철한 이성을 갖고 있었던 누가는 이 어둠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눅23:44 “ ... 해가 빛을 잃고 ... ” 해가 빛을 잃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등불을 끄듯이 잠시 햇빛을 멈추셨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기적(Miracle)이란 겁니다. 하나님이 이런 현상을 통해 말씀하신 겁니다. 죄가 이렇게 심각하다, 심판을 받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다, 지옥에 들어가 어둠 가운데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 이런 메시지를 주신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 죽음을 뭐라고 말씀드렸나요? 지옥의 예고편! 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예수님이 마지막 순간 뭐라고 외치셨습니까? 

46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육체적인, 정신적인 고통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버림받는 영적 고통의 극한 상황 속에서 부르짖은 절규입니다. 예수님은 그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진 죄 덩어리로 보였고, 하나님이 이를 외면하셨습니다. 그 고통이 예수님에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입장에서 그렇게 해야만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할 수 있기에 독생자를 십자가 못 박을 수밖에 없는 슬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둠은 죄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 영원한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지옥을 묘사할 때 어둠이 가득한 곳으로 말합니다. 

마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혼인 잔치 비유」中에서) 혼인 잔치 집은 천국을 가리키고, 바깥 어두운 곳은 지옥을 가리킵니다. 천국에서 쫓겨난 자들이 영원히 어두운 데서 고통을 당한다는 겁니다. 

지옥은 어둠입니다. 내세 지옥도 그렇지만, 이 세상 살 동안에도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멀리 떠나면 그 심령에 지옥의 어둠이 임합니다. ‘현재적 지옥’이죠. 육신의 것이 많든 적든 불만불평 불안 초조 근심 걱정으로 가득한 겁니다. 

반면에 천국은 빛이 가득한 곳입니다. 계21:11,23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천국이 빛으로 가득한 이유는 하나님이나 예수님 자신이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광채로 인해 세상에서 빛으로 여기던 해나 달, 등불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소용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둠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그를 믿는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빛은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기쁨과 평안입니다. 세상에 줄 수 없는 참 기쁨과 참 평안입니다. 이 빛을 보면, 장차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이 세상에서 이미 우리 심령 가운데 천국의 빛이 임합니다. ‘현재적 천국’이죠. 

이철환 씨의 「연탄길 1권」가운데 <먼 불빛>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량 청소년 현태의 실화입니다. 그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말썽을 부리다 퇴학을 당했습니다. 비관한 아버지는 날마다 술을 마시고, 어머니는 슬픔 가운데 잠겨 있습니다. 참담한 가정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현태는 가출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금품을 훔치며 방탕하게 생활합니다. 경찰서를 드나들더니 마침내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주고 구속을 겨우 모면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그의 친구들은 이미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현태를 보면서 부모님의 속이 타들어갑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친척에게 사기 당해서 가게가 넘어 가고, 지방에 내려가서 남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옵니다. 아버지가 귀금속 가게에 들어가 절도하다 미수죄로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겁니다. 급히 면회를 갔더니 아버지기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교도소 생활 중에 현태는 자주 면회를 갑니다. 

어느 덧 출소하는 날이 왔습니다. 축 처진 모습으로 앞장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현태에게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불량한 아들에게 교도소 가는 게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알려 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다는 겁니다. 현태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제서 정신을 차리고 공부합니다. 다행히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어느 지방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빛을 거부했던 아들의 어둠 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그의 인생 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주었다. 어둔 밤바다와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두고 바라볼 먼 불빛, 아버지, 아버지….” 

이 이야기의 아버지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구원해 내시려고 어둠 속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아무쪼록 이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이 주시는 참 빛을 심령 가운데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생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장차 들어갈 천국의 빛을 소망하며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 :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천국·영생의 길)이 열림

성소 휘장이 찢어진 기적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던 죄인들에게 하나님께, 천국과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을 상징합니다. 

51절 보시죠.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 ” 

상상해 보십시오.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숨을 거둡니다.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 밖에 위치합니다. 그런데 멀리 예루살렘 성 안의 성전에서 성소 휘장이 찢어졌다는 겁니다. 

이게 왜 기적인가, 그리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려면 ‘성전의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성전(Temple)은 구약 출애굽 광야 시대에 있던 성막(Tabernacle)과 그 구조가 같습니다. 성전의 전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전은 큰 건물입니다. 하지만 규모가 클 뿐 ‘기본 구조’는 성막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구조 대신 단순한 성막의 구조를 알아보면 이해가 빠를 줄 압니다.(성막의 구조는 출애굽기 25장~31장, 35장~40장 등에 기록되어 있음)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소(聖所 The Holy Place)와 지성소(至聖所 The Most Holy Place)입니다. 성막은 사방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안에 마당이 있고, 마당 안쪽에는 장막(tent)이 있습니다. 장막은 두 칸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칸을 성소, 두 번째 칸을 지성소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휘장(Curtain)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언약궤(The Ark of the Covenant)가 있는데 그 뚜껑 부분을 가리켜 속죄소(Atonement Cover)라 부릅니다. 성소에는 일반 제사장들이 수시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지성소는 1년에 오직 한 번 대속죄일(大贖罪日 The Day of Atonement)에, 그것도 대제사장이 양의 피를 갖고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을 예표합니다. 그 피를 속죄소에 뿌릴 때 속죄가 이뤄지고 하나님이 백성을 대표해서 대제사장을 만나주십니다. 이 절차가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것인지 모릅니다. 

출28:34~35 보면, 대제사장의 옷 가장자리에 그 방울을 달고 들어갑니다. 속죄제사가 실패하면 방울 소리가 멈춥니다. 즉사하는 것이죠.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불상사가 생기면, 밧줄로 묶어 놓았던 것을 잡아 당겨 끌어냅니다. 

지성소가 이렇게 대단한 곳인데, 예수님이 운명하시던 바로 그 순간 지성소 앞에 드리워져 있던 휘장이 찢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마침 그날은 유월절이라 제사장들이 그 시각에 성소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 안쪽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좍 찢어졌으니 얼마나 기겁을 했을까요? 두께는 어른 손바닥 두께, 길이는 12.5m, 너비는 1.8m였는데,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찢어졌으니 말입니다. 또 밖에서 참관하던 백성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지성소를 훤히 들여다보았는데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기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히10:19~20에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the Most Holy Place)에 들어갈 담력(confidence)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a new and living)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여기서 성소는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 흘리심으로 휘장 사이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십자가 대속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 동안에도 영생을 얻어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마음껏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지만, 신약 시대인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 된 겁니다.(벧전2:9) 누구나 예수 믿으면 제사장입니다. 오래 믿어야 되는 게 아닙니다. 직분 받아야 되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래서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무지몽매합니다. 육신적으로는 잘 난 것 같아도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잘 사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망할 길로 간 겁니다.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특히 내세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누구나 한번 죽는데,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지옥이냐? 영원한 사망이냐? 영원한 생명이냐? 

모든 인간은 각자 자기 인생길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지막 죽음의 대합실에 다 모이게 됩니다. 마치 공항 대합실과 같죠. 게이트(gate)가 있어서, 해당 번호를 찾아가면 행선지로 갑니다. 죽음의 대합실에는 게이트가 딱 두 개입니다. H1(Heaven)과 H2(Hell)! 하나는 천국으로 가는 게이트, 다른 하나는 지옥으로 가는 게이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성소의 휘장을 찢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이요, 천국의 게이트입니다. 부디 이런 진리를 확신하면서 십자가 의지함으로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지진으로 무덤이 열림 : 사망 권세 종식, 부활의 예고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린 기적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망 권세가 종식된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성도의 부활을 예고한 겁니다. 

51절(하)~53절 보세요. “51 ...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당시 유대인들의 무덤인 동굴입니다. 자연 동굴이거나 아니면 파서 만든 인조 동굴입니다. 그 동굴 안에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합니다. 동굴 입구는 큰 바위로 막아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운명하시던 그 순간 갑자기 지진이 일어납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사방이 어두운데 말입니다. 지진이 나면서 바위돌이 열리고 시신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일어난 자들이 그냥 머물러 대기하고 있다가 사흘 후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

그들이 무덤 속에서 대기한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이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나타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고전15:20~22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나무에 첫 열매가 열리면, 그 후에 똑같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됩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예수님이 부활의 샘플이 된 겁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누구든지 장치 예수님 재림 할 때 부활합니다. 새 몸으로! 영원히 썩지 않고 빛나는 몸입니다. 그 모습으로 천국에서 영생하게 될 겁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죽음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물론 죽음이란 첫 경험이고 걱정이 되죠. 그러나 예수님 부활을 보심으로 확신 가운데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죽음 앞에 담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참 믿음을 가진 성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죽어도 천국!” “죽어도 부활!”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금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또 한 주간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로서 영생과 천국을 확신하고,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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