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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십자가와 복음 (고전 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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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복음 (고전 1:18~22)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온 세계의 많은 단체들이 십자가의 기호로 그들의 성향을 표시하지만 그 바탕에는 하나처럼 기독교의 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십자가의 삶이었고 사도들이 증거한 복음의 내용도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6:24). 사도 바울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갈 6:14). 이와 같은 십자가의 복음은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의 성격과 사명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

본래의 십자가는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사형도구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인 이 십자가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었습니다. 

1)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이 고난이요, 또한 세상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고난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중에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고난의 절정에 이른 것입니다. 통나무로 된 십자가 위에 올려놓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아 살이 찢기고 뼈가 끊어지며 온 몸의 피와 물이 흘러나오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저주를 뜻하기 때문에 더욱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신명기 21:23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징벌로 인하여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살아나게 되고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사 53:5).

2) 부활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전제(前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논증하면서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5:3-4). 죽음이 없는 곳에는 부활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을 살려내시는 일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에게 예수님의 나심을 예고하면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21). 우리를 죄에서 사유함을 받게 하시려고 자기가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셨고 죽음에서 풀어주시려고 그가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주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3) 자랑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자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2:2). 갈라디아서 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십자가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되는 것은 거기에 사죄와 부활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최대의 희망인 평화가 십자가로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6-17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십자가

그리스도인에게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찬송가 작가 토마스 세퍼드(T. Shepherd)는 339장 찬송시를 쓰면서 ‘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1) 숙명적인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숙명적으로 십자가와 분리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0:38).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누구나 자기의 십자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 된 사람의 증거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 받은 유산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를 소홀히 여길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의 삶이 자기를 부인하는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심벌(Symbol)입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감옥에 있는 동안 “이 다음 주님께서 내가 준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신다면 나 무엇으로 대답할꼬” 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2) 은혜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자기의 삶을 온전히 십자가에 고정시키고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갈 6:14). 그것이 어찌 보면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거기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체온을 느끼며 남이 모르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찬송가 415장의 가사 중에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 때/ 날 위해 고난당하신 주 예수 보인다/ 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라고 하였습니다. 이 찬송가를 쓴 클레페인(E. C Clephane) 여사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진 최대의 러브 스토리’라고 하였습니다.

3)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인 에게 있어서 십자가와 사명은 동의어로 쓰여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다 주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임의대로 벗을 수 없는 숙명적인 것처럼 주님께 받은 사명 역시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갈 6:14).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고정시켜 놓았다는 것은 그가 받은 사명을 뜻합니다. 사도행전 20:23에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3. 십자가의 신비

본문말씀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멸망 받는 자와 구원 받는 자가 구별되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1) 미련하게 여기는 사람

본문 말씀 22-23절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인은 매사를 지혜라는 척도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찾는 지혜(Idea)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상적 지혜입니다. 헬라의 수도 아테네는 고대로부터 유명한 석학들과 많은 철학자를 배출한 지성의 도시로서 그 곳 사람들은 매사를 합리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논리를 전개하였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도 에피쿠로스파 철학자들과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행 17:18). 복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리를 미련하게 여기고 맙니다.

2) 거리끼게 생각하는 사람

사도들이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유대인들은 거리끼는 것으로 생각 하였습니다. 헬라인들은 모세의 율법이나 전통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니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유대인들은 율법과 선지서를 통하여 메시야적 복음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누린 사람들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조상들이 체험했던 하늘의 표적을 사모하였습니다(마 16:1).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의 현장에 구름떼처럼 모여들기도 하였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요 6:41-42). 급기야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미련하고 저주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3) 지혜와 능력이 되는 사람

24절에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의 도리는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에 구별이 없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됩니다(엡 1:4-6). 헬라인들처럼 주관적 가치 판단이나 유대인들처럼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서 오직 성령의 작용에 따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기준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십자가의 진리를 성령의 감동으로 믿고 거기에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그 십자가가 미련하고 거리끼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영광이요, 축복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이를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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