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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 (눅 19: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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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 (눅 19:28~40)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기록이 복음서 네 권에 모두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가셨을까요? 그 까닭은 예수님의 신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메시아, 즉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왕 중의 왕이시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렇다면 왕이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계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힘으로 지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왕들과 달리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백성들을 기꺼이 섬기십니다. 마침내 죄인들의 죄의 짐까지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비록 왕이시지만 예수님의 모습은 약간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위엄을 과시하려면 크고 멋진 준마를 타셨어야 하는데 오히려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그 나귀 새끼도 남의 것을 빌려서... 개선장군처럼 좀 멋있게 입성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왕의 모습으로는 적절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성경적으로 매우 적절했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성경에 오래 전부터 예고되지 않았습니까? 스가랴 9장 9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태어나실 때도 미가가 예언한 대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또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하반절)
뿐만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처럼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이 아무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시다가 오히려 심한 모욕과 질고를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을 그대로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약간 초라한 모습으로 입성하셨지만 제자들과 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성을 크게 환영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그렇게 환영했을까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환영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요한복음 기자는 무리가 예수님을 그렇게 맞은 까닭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미 행하신 기적도 대단하지만 이제 앞으로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아로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분이라고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광적으로 환영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뭐라고 소리쳤습니까?
본문 38절 말씀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도 수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 말씀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결코 어떤 개인의 사사로운 행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놀라운 구원의 사건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것이라고 한 것은 다시 말해서 주, 곧 하나님께서 친히 오신다는 말입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름은 그 대상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의 이름,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다는 것은 놀랍게도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때문에 제자들과 또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서 길에 펴고 예수님을 뜨겁게 환영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겉옷은 중요한 재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서 겉옷은 덮고 자는 이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겉옷이 없으면 밤에 얼어 죽기 쉬웠습니다. 돈을 빌려 줄 때도 겉옷을 담보로 잡으면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서 길에 폈다는 것은 대단한 헌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비록 타산적인 생각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찬양했다는 사실입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고 없다가도 또 생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돈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왕께 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찬양입니다.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찬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도무지 시끄러워서 못 견디겠다고... 좋으면 그냥 좋아하고 말지 어째서 그렇게 시끄럽게 떠드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40)
그렇습니다! 주님을 소리 높여 찬양해야 합니다. 주님을 또한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을 찬양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침묵할 것 같으면 돌들이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하며 돌들이 주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널리 전파할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남들은 다 열심히 찬양하고 있는데 혼자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우물우물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 않게 찬송하는 분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반드시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신학적으로 보면 이미 받은 바 은혜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는데 또 무엇을 더 구한다는 말입니까? 때문에 예배의 핵심은 구원의 주님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높여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설교도 중요하고 성례전도 중요하지만 찬양으로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일찍이 선지자 하박국도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하박국 2장 11절 말씀입니다.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것 같으면 주님은 흐르는 시냇물 소리로도 얼마든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높이지 않을 것 같으면 주님은 지저귀는 새 소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신 주님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오셨기 때문에 육신적으로도 분명히 우리의 왕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오셔서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영원한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초라한 모습은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한 말씀의 완전한 성취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다른 왕들과 달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그 주님 때문에 오늘 우리도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주님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고 해서 실망했습니까? 애써 그 주님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그 놀라운 은혜 때문에라도 그 주님을 뜨겁게 영접해야 합니다. 그 주님의 이름을 소리를 높여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구원의 주님을 기뻐하며 온 정성을 다해서 그 주님의 복음을 널리 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평화를 지금 여기서부터 마음껏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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