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종려주일] 보혈의 능력 (마 26:26~28)

  • 잡초 잡초
  • 261
  • 0

첨부 1


보혈의 능력 (마 26:26~28)


1.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사람의 피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전 세계를 다스리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펜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닥치는 고통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수시로 닥치는 염려, 걱정근심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 주시면 이 모든 아픔과 슬픔, 고통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중에 그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가지시고 감사 기도하신 후 나눠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예수님은 만찬석상에서 떡을 당신의 몸이라고, 포도주를 당신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의식을 유월절 만찬 때 행하셨습니다. 유월절의 의미를 이해할 때, 이 의식의 뜻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이란, 우리나라의 광복절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는 전 날 밤에 이집트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에 어린 양을 잡게 하였습니다. 그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였고, 그 고기는 온 가족이 먹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이집트 사람들의 가정마다 장남을 다 죽였습니다. 그런데,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가 묻어 있는 집은 넘어 갔습니다. 피가 있는 가정은 살아났습니다. 피가 없으면 다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떡을 나눠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다”고 했을 때, 제자들은 금방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곧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와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이것은 내 피다”고 하셨을 때, 그 피는 곧 자기들의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해방될 때 문설주에 바른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만찬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그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음으로 우리는 영생하게 되었고, 그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심으로 우리는 영원히 죄 용서함을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3. 죄를 헬라어로 ‘하마르티아’ 라고 합니다. 하마르티아는 ‘과녁에서 벗어났다’ 라는 뜻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목적(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독일의 아우스부르그 신앙고백에서는 “죄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고 욕망이 가득찬 인간의 상태” 라고 합니다. 불신앙과 욕망이 죄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는 죄를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첫째는, 불신앙을 죄라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이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자기가 중심이요 자기가 주인이요 자기가 신(神)입니다. 자기 맘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죄의 두 번째 유형을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교만하게 사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인데, 교만한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것인양,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무제한적인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밑도 끝도 없는 탐욕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틸리히가 말한 죄의 세 번째 유형인 탐욕입니다. 

죄의 결과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 고통입니다. 시기, 질투, 미움, 폭력, 살인, 외로움, 불안, 초조함, 걱정 근심 등 모든 고통은 죄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고통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인간에게 찾아오는 고통은 ‘나에게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라는 외침입니다. 통증은 ‘몸을 조심하라’는 신호입니다. 기침이나 열이 나면 ‘쉬라’는 신호입니다. 암(癌)이 무서운 것은 통증을 느끼지 못한채 죽음으로 몰고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통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입니다. 마찬가지로, 고통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이어령 박사께서 자신이 예수 믿게 된 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70세 때 일본 교토에서 혼자 연구활동을 하던 중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혼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중 감기에 걸렸는데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앓고 나면 큰다지만 나도 이번 감기가 나으면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웃어봅니다. 기침을 하면서 아직 살아 숨 쉬는 허파를 느끼며 즐겁게 웃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감기가 나아 병으로부터 벗어나면 새 구두라고 사 신고 예배당을 찾아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상온보다 높은 바이러스의 신열이 나와 아내를 그리고 나와 예수님을 가깝게 해준 것 같습니다. 이 나이에 누구에겐가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게지요.”

(이어령, 지성에서 영성으로, p.73-74)
이어령 박사는 결국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사랑하는 딸의 고통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지름길이 되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딸의 갑상선 암 수술, 그리고 두 차례의 재발, 외손자의 자폐증, 그리고 25세된 큰 외손자의 죽음 등이 이 박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약한 것이 은혜입니다. 약할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약할 때,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연약한 분들,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신 분들 가운데 연약하신 분들, 여러분의 아픔과 고통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지름길이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함을 감사하십시오. 

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잔을 나눠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 보혈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언약의 피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막혀버렸습니다. 은혜의 통로, 축복의 통로가 막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흐르는 은혜와 축복을 가로막는 죄를 없애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래서,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 15:5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처럼 함께 붙어 있는 관계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에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5. 성만찬은 예수님과 우리가 함께 붙어 있음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내가 혼연일체가 됨을 확신하게 될 때, 우리는 참 행복, 참 만족을 누립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은혜로 고통이 사라지고, 외로움과 불안이 도망가고, 걱정이 달아납니다. 때로는 여전히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고통을 능히 이겨내고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 이런 행복, 이런 감격을 맛본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그들을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겠다는 열정이 생깁니다. 예수믿고 은혜받은 여러분, 예수 믿고 행복을 누리신 여러분, 이번 5월16일 해피 데이에 불신자를 예비신자로 가슴에 품고 기도합시다. 그들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합시다. 

오늘 성만찬 예식을 행할 때,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일치의 경험을 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기쁨, 참 행복을 다시 한 번 더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재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