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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헛된 영광을 십자가에 (갈 5: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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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영광을 십자가에 (갈 5:22~26)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아가 40일을 금식하시고 성령이 충만하여 본격적인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시려고 할 때 사탄은 예수님에게 세 가지 시험을 하였습니다. 그 세 가지 시험에 대해서는 올 연초 신년특별새벽기도회 때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에 그 세 가지 시험 중 두 번 째 시험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천사가 와서 발을 붙들 것이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천사가 와서 발을 붙든다는 것이 왜 사탄의 유혹이 될까요?

천사가 와서 발을 붙든다는 것은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온 천하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일을 통하여 엄청난 영광을 얻게 될 것이고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영광을 얻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요? 그것은 보통 우리들이 다 은근히 바라고 욕심내는 것들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것이 왜 사탄의 시험이 되고 유혹이 되는 것일까요?

사탄이 그 유혹과 시험을 통하여 노린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싫었지만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헛된 영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정말로 무서워한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 천사가 발을 붙든다고 하여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헛된 영광에 눈 어두워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 없다는 것을 사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님에게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와서 붙들 것이라고 예수님을 유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시험에 빠지지 아니하시고, 헛된 영광의 길을 스스로 부인하시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크리스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 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앞의 본문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한 정욕과 탐심이 바로 그 욕심인 것입니다.

욕심에는 떡 곧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정욕에 대한 욕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우리를 끝까지 따라 다니는 욕심은 명예욕입니다. 천사가 발을 붙드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람이 보고 알게 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명예욕의 끝은 권력을 가지고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세도가가 되어 세도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죄 된 본능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천사가 발을 붙드는 그 영광스러운 길과 삶을 스스로 부인하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함에는 생명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헛된 영광과 그것에 대한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생명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벌써 제가 평광교회 설교목사로 온지가 석 달이 되었습니다. 평광교회에 오면서 석 달 쯤 되면 그 동안 제가 평광교회에 대하여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정리하여 당회원들에게 드리겠다고 약속했었고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지난 석 달 동안 설교를 하면서 나름대로 평광교회를 분석해 보고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어 보았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보였으나 제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평광교회는 특별한 문제가 있는 교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교회였다면 지금의 교회도 유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평광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어느 교회나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특별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이대로 계속 간다고해도 이런 저런 사소한 문제들은 계속 일어나겠지만 큰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저런 제 법 큰 문제들이 그 동안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막아낸 것을 보면 지금 이대로 현상을 유지하는 교회 정도는 큰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별 큰 탈 없는 교회 말고 정말 좋은 교회에 대한 욕심이 있으시다면, 오늘 설교 말씀을 귀 담아 들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있는 그 보편적인 문제에 도전해야만 합니다. 보편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우리 교회 안에 그 보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 평광교회는 특별한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특별한 교회는 특별한 것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보편적인 문제가 없는 교회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 평광교회가 참으로 좋고 건강한 교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아야할 그 보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헛된 영광에 속한 쓸데없는 정욕과 탐심입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고 세례를 베풀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왔습니다. 그와 같은 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혹시 세례요한이 저들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찾아가 직접 묻습니다.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그 물음 속에는 ‘우리는 당신이 메시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각이 맞지요?’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냥 자신이 그렇다라고만 말하면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닙니다.’ ‘나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훌륭함입니다. 우리 평광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하여서 필요한 영성은 세례요한의 영성입니다. ‘나는 아닙니다.’라고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영성입니다. 자신이 평광교회의 작던 크던 메시아의 역할을 하는 것을 부인하고 그 욕심과 탐심 즉 헛된 영광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주일 장년 출석이 2,000명 쯤 되는 교회는 세상적으로 볼 때 좋은 교회입니다. 괜찮은 교회입니다. 그만한 사이즈의 교회가 되면 그 안에 명예도 있고, 작던 크던 권력도 있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존재감을 인정받고 과시하기 좋은 사이즈입니다. 그런 유혹이 충분히 있는 교회고 여러분들이 인정하실는지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그 어느 교회 못지않게 그 유혹에 빠져 있는 교회고 거기에 맛 들여져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옛날 한국에는 士農工商이라고 하는 일종의 카스트 제도가 있었었습니다. 이 제도의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역할이 지위를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그와 같은 카스트 제도가 무너졌습니다. 아직도 조금 그런 인식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요즘은 오히려 당시 최 말단이었던 商이 士를 넘어섰습니다.

저는 우리 한국교회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 제가 보기에는 사농공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철저히 직분의 역할이 지위를 결정하는 문화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철저히 계급이 되었고, 계급이 높아질 수록 당연히 권력이 높아져 그 직분이 주는 권력을 보수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이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는 그런 교회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점점 민주화가 되면서 집중되었던 권력이 민주적으로 분화하고 분립되었지만, 교회는 오히려 점점 더 권력이 중앙으로 몰리고 편중되면서 비민주적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교회가 세상의 조직을 앞서는 선진적인 조직이었으나 이제는 세상이 교회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조직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국회의원도 임기가 있고 임기가 되면 새로 투표를 통해서 선출하기 때문에 국회의원개인의 권력이 한번 국회의원이 되기만 하면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자리와 권력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당회원은 한번만 당선이 되면 70세까지 그 이름과 자리와 권력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깊어지고 강해집니다. 그것은 목회자도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위임목사가 되면 70세까지 그 자리와 권한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지나친 안정이 부패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꼭 그리고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번 설교인 ‘성전 안의 딴 재미’라는 설교에서도 지적을 하였지만 교회 안에 예수 믿는 재미 외에 세상적인 딴 재미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장로와 목사가 다 그 딴 재미를 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지 않은 목회자와 당회원들과 교회의 중직자들이 그 재미에 맛들여져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가 목회하였던 높은 뜻 숭의교회는 목회자와 직분자의 정년을 65세로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헌법에 담임목사가 위임목사가 되지 않으면 부목사를 정식으로 청빙할 수 없어 법적으로 위임목사 절차를 밟기는 하였으나 6년 마다 재신임을 묻게 함으로 원칙적으로 한번 위임 받으면 무조건 70세 정년까지 보장을 받는 위임제도를 없이 하였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는 당회원이 제직회 부장이 될 수 없습니다. 제직회 부장은 안수집사와 권사만이 될 수 있습니다. 당회는 교회의 원칙과 정책을 다룹니다. 제직회는 그 원칙과 정책의 범위 안에서 재정을 집행하고 사업을 진행합니다. 그 일에 당회원들은 직접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당회원은 안수집사와 권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집행된 사업과 예산을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당회와 제직회의 권한과 역할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는 당회원의 임기가 6년 단임입니다. 이제 처음으로 선출되었던 장로님들이 그 임기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장로님들은 6년 단임으로 시무를 끝낸다는 것이 교회적으로 손해입니다. 아깝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저는 개인적으로 6년 단임제의 장점이 단점보다 높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는 원로목사 제도가 없습니다. 저는 인간적으로 보면 높은 뜻 숭의교회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부흥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공이 있다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6년 후면 법적으로 아무런 보장도 없는 그냥 은퇴목사가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있고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저는 그것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의 제도가 다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높은 뜻 숭의교회의 제도에 숨어있는 철학과 신학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 자생하기 쉬운 인간적인 탐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자는 것입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는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발전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해체되고 분립된 교회 안에 아직도 제 간접적인 영향력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짐작하는 것보다는 그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다. 제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도 지난 일년 여 동안 제 영향력이 많이 감소했습니다. 후배 목사님들의 영향력이 제가 기대하고 예상한 것 보다 많이 커졌습니다. 그 일을 통하여 교회가 얼마나 건강해 졌는지 모릅니다.

평광교회 여러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상과 생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광교회에는 영향력이 편중되어 있습니다. 편중된 영향력은 그것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선하고 바르다고 하여도 편중되었다는 것만으로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저는 그런 나쁜 영향이 우리 평광교회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평광교회에 주시는 살아계신 말씀입니다. 마음에 새겨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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