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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진리 (행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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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진리 (행 4:1~12)


성경과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는 거의 모든 시대에서 핍박을 받았고 수난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알 듯이 세상의 모든 단체나 조직은 옳은 일을 하거나 선한 일을 하면 칭찬을 받고 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만은 옳은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해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경 사도행전 3장을 보세요. 
사도들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 장애인을 고쳐 주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칭찬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핍박이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고 진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義(의)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義(의)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의와 기독교가 원하는 의가 같다면 굳이 서로 싸울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세상과 기독교는 서로 다른 것일까요? 
세상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애국하고 남을 많이 도와주면 의인이라 합니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의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애국운동을 하였습니다.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살인입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기에 의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존재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의롭다함을 받을 길이 없었기에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의 십자가를 지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길은 우리가 열어 놓은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열어 놓으신 길입니다. 인간은 그분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죄 중에 가장 큰 죄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아시지요? 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약속을 믿습니까? 
또 한 구절, 요한복음1:12절을 읽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렐루야! 조건이 뭡니까?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아멘? 
  
이러기에 세상과 기독교는 늘 충돌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 목사는 말하기를 “우리가 진짜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분노하든지 회개하든지 둘 중에 하나다. 만약 분노도 없고 회개도 없다면 두루뭉실한 가짜복음을 전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저도 고교시절 동창이나 옛 친구들을 만날 때 복음을 말하지 않으면 잘 지냅니다. 그러다가 복음을 꺼내면 그들의 얼굴빛이 변하는 것을 봅니다. 
왜죠? 복음으로 보면 자기들이 죄인인 것이 들어나기에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친척들에게 같은 경우를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당당하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 이외에는 다른 의는 없다는 이것이 복음입니다. 충돌이 일어나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보세요. 누가복음12:51절 이하를 보세요.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집안이 난리가 납니다. 평화가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진리를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전하지 않음으로 누리는 평화는 가짜 평화입니다. 조용히 살다가 다 함께 망하자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전함은 전쟁이 벌어지지만 결국은 그 복음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에게 피부연고나 발라주고 진통제나 먹이면서 “좋은 게 좋은 거야” 하고 암이라고 말을 안 해 주면 그냥 죽으라는 것입니다.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너 암이야, 지금이라도 수술을 안 하면 죽는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살리는 것입니다. 
  
저는 사도행전을 읽을 때마다 신기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변했는가?” 
“왜 복음서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은 그렇게 달라진 것일까?”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정적인 요인 몇 가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3장에서 시작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3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 걸인 한 사람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왜 그를 믿어야 하는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종교지도자들이 듣고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예수를 자기들이 죽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자들을 잡아다가 재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제자들이 옛날의 그 제자들이 아닌 변화된 제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화된 것일까요? 그들에게 어떤 사건이 있었나요? 
어떤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변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1.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승천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은 죽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예수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도 살렸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렸습니다.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살렸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남들을 살린 것이기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을 두눈으로 보았습니다. 분명 피를 흘리고 옆구리에 창이 찔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흘 되던 날에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눈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의심 많던 도마에게도 손을 만져 보라 하십니다. 함께 음식도 잡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을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변화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사람이 죽는 것이 끝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땅이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처소가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렇게 두려워했던 제사장, 서기관, 로마군병, 그들이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못되었습니다.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렵지 않고 채찍에 맞는 것도 겁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활과 승천을 담대하게 전합니다. 아무리 종교 지도자들이 싫어해도 전합니다. 

본문 1~4절을 보세요.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할렐루야! 

그러니 못할 말이 뭡니까? 죽은 자의 부활, 사실인 것을 그들이 믿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복음을 확실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원래 그들은 겁이 많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잡혀갔을 때 다 버리고 도망을 쳤던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 경우, 주님이 사전에 경고를 했는데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돌변했습니다. 재판을 받을 때도 당당히 받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 신앙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부활이 사실이 아니고 신화다.”또는“부활은 육체적 부활이 아니고 정신적인 부활이다”라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주님은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다시 부활을 합니다. 그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11:25~26절을 보세요.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을 확신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부활을 믿으면 생각이 넓어집니다. 
인생관도 바뀝니다. 가치관이 변화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4장32절이 가능한 것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2.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승천을 보고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너나 할 것 없이 모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어머님도, 동생들도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 속에 임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1장8절을 보세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대로 정말 성령이 그들 위에 임했습니다. 할렐루야! 

사도행전 2장1절 이하를 보세요.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이 그들 위에 불같이 바람같이 임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생각은 변했습니다. 그들의 삶도 완전히 변했습니다. 한마디로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불쌍하여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철이나 노방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저런다고 복음이 전해지나?” 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놈들 미쳤지, 저것은 전도가 아니고 방해야 방해”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그것을 모를까요? 그들은 왜 편하게 있지 않고 그렇게 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 속에 있는 성령이 그들을 가만히 두질 못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불쌍하여 견딜 수 없어 나선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그냥 지나지 마시고 엄지손 치켜세워 격려 해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사명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1)사명은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힘들게 사는 모습을 견딜 수 없어 그들에게 찾아가 위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여러분은 남들이 예수를 모르고 멸망으로 가는 것에 아픔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아픔을 어찌해야 합니까? 그냥 아파하지만 말고 가서 나누어야 합니다. 그게 사명입니다. 
  
2)사명은 부담감입니다. 
어떤 일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면 그게 사명입니다. 저는 일본인에 대해 전혀 부담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그들에게 많은 부담감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은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저는 대신 J국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워도 가서 가르치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담을 갖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사명입니다. 
  
3)남에게는 없는데 내게는 주신 것이 사명입니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습니까? 그것은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습니까? 그러면 가르쳐야 합니다. 내게 많은 재산이 있습니까? 그러면 가난한 자를 돌봐야 합니다. 그게 사명입니다. 
남들에게는 없는 것을 내가 가졌다면 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능력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켜 줍니다. 아멘? 
세상 것에 매여 있던 우리를 하늘나라 백성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장애로 힘들어하는 약한 자를 강하게 합니다. 깨닫지 못하여 우매하게 살던 네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게 자유를 주십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전합니다. 

본문 8절 이하를 보세요.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르되…….” 할렐루야! 
여러분에게도 이런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여 담대하게 전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내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성령의 충만은 내 언어생활도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누구도 복음전도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91장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계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영이 함께 함이라♬ 

세상 모든 욕망과 나의 모든 정욕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었네 
어둔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 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계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영이 함께 함이라 
주의 영이 함께 하시니 좁은 길을 걸어도 밤낮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들은 예수의 구주되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분명히 믿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그가 우리의 구주되심에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확실하게 고백합니다.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다른 이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왜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의 유일한 길일까요? 

1)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장 6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길입니다. 그분만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그분 외에는 아버지께로 갈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예수 믿기 전에 이 구절을 길거리에서 보았을 때는 저도 엄청난 거부반응이 있었습니다. “자기만이 길이라고? 어떻게 자기만이 진리고 생명이라 할 수 있냐? 저것은 독선이다”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보니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죄 없으신 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락한 인간의 생육 법으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닌 여인의 후손으로 온 분만이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만약 다른 길이 있었다면 주님도 그렇게 말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로서는 안 됩니다. 왜냐면 그들 자신이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십자가의 대속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를 범한 자는 정녕 죽어야 했습니다. 그것에 에덴동산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아신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양을 대신 잡아 속죄하던 대속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의 어린양이었고 흠 없는 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700년전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을 보세요. 

이사야53장 5~6절입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할렐루야! 세례요한도 증거 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값을 치루고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기에 그길 만이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산 정상로 올라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듯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 길도 여러 종교가 각자의 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등산길은 A코스 B코스 C코스, 여러 길이 있어도 천국 길은 등산이 아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길은 오직 한길 예수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하여 사망권세를 이기신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만이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자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 다시 살아난 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만이 사단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 아멘? 
  
제자들은 이런 믿음의 확신이 있었으므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을 믿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함을 힘입고 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할 구주이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양보할 수 없는 진리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르시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10절을 보세요. 8복중 마지막 복이 뭡니까?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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