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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칼날보다 강한 두 손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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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보다 강한 두 손 (출 17:8~16)


여러분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에서 강의와 집회를 마치고 잘 돌아왔습니다. 특히 조승현 장로님이 살고 계시는 애틀랜타에서 수업을 받게 되어 장로님 집에도 가서 식사 대접도 받고 잘 계시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두 주간 수업을 마치고 LA로 와서 권영국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대흥교회와 김충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넘치는 교회의 예배를 인도하고 그리고 지난 월요일 화요일 이틀 동안은 LA에 유명한 박물관과 교회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속담에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생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살이가 그렇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하나 해결되면 좀 평안하고 잠잠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닥칩니다. 자식문제가 해결되니 남편이 속 썩이고 남편 문제 해결되니 시부모가 속 썩이고……. 
그러다 보니 하루도 편히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주관하고 우리가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성도라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인생을 “산 넘어 산”이 아니고 “은혜 위에 은혜”라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죠? 우리의 인생의 주관자는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인생을 실패로 만들어 가실 분이 아니고 위대한 승리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산 넘어 산의 대표적인 인생이 모세입니다. 
모세의 생애를 살펴보면 하루도 편히 살아본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백하기를 출14:14절에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합니다. 
우리 앞길의 주관자는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전쟁입니다. 그러기에 결국은 우리는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이겨놓고 전쟁을 치루는 성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승리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살펴보면서 우리의 승리의 요인이 뭔가를 살펴보며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 산을 가까이 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을 탈출하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기만 하면 다 된 줄 알았는데 그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이 계속해서 다가왔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 불평합니다. 어느 정도 지나면 이젠 감사할 법도 한데, 계속 원망불평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내산 부근에 이르렀습니다. 거기도 물이 없었고 또 죽겠다고 모세에게 따집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지 않으시고 바위에서 물을 내 주셨습니다. 이른바 므라바 반석 사건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산 넘어 산입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터졌습니다. 아말렉이 공격해 온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 본문 아멜렉과 전쟁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1. 사단은 성도가 약하고 힘들 때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8절을 다같이 봅시다.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그때”가 어느 때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지치고 힘들어 할 때입니다. 
홍해를 건너고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어 왔던 그때, 이제는 시내산 밑에서 편이 쉬려고 할 그때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이때까지만 해도 무방비 상태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은 누굴까요? 
창세기 36:16에 “아말렉 족장”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입니다.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이 족장이 되었고, 그의 후손이 이룬 족속이 아멜렉입니다. 이들은 가나안의 남쪽에서 유목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보면 이스라엘 야곱의 후손과는 형제지간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찾아와서 전쟁을 걸어온 것입니다. 정말 산 넘어 산입니다.   
  
이 아말렉 족속에 대해서 신명기 25장 17-18절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말렉은 어떤 존재인가요?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쳐 있을 때, 약한 자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러한 아말렉의 수법은 사단의 전형적인 공격 수법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모르는 족속이 아닙니다. 아주 가까운 친척이요. 형제입니다. 그런데 인정사정없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치러야 할 전쟁입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과 싸우라면 치열하게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은 가까운 혈육이고 집안사람입니다. 그런 그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하도록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쟁은 오늘날 우리가 사단 세력과의 영적 전쟁입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전쟁은 어떤 전쟁입니까? 
어떤 종류이든지 명심할 것은 그것은 영적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사단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전쟁은 피할 수가 없는 전쟁입니다. 적당히 넘기거나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싸워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싸워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약할 때, 내가 힘들어 할 때, 그때가 문제입니다. 사단은 내가 피곤해 하고 내가 약할 때 공격하는데 그때가 어느 때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살펴보세요. 그들은 왜 지금 지쳐 있나요? 왜 그들은 이렇게 허약한 존재로 들어나 있나요? 
1)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함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이고 
2)그들은 하나님께 받았음에도 감사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지쳐 있고 힘들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과 싸운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엄청난 홍해를 건너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마실 물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먹을 음식을 주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너무 빨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해결 한 것 같이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보세요. 
지나온 과거를 보면 누가 그 일들을 하셨나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해 오셨습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는 그 은혜에 대해 어떤 감사를 드렸나요? 
여러분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사단은 그 약점을 그냥두지 않습니다. 
  
그 약점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관자이심을 철저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분만이 나의 왕이고 나의 전능자이십니다. 아멘? 
  

2. 우리의 승리의 요인이 다른데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말렉과 어떻게 싸웠습니까?   
9절을 보세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는 위기가 닥치자 두 가지 조치를 합니다. 
첫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택하여 나가서 싸우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수아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하러 나갑니다. 협상하려고 하거나 도망갈 생각을 안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와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시실 이 명령은 어찌 보면 무모한 짓입니다. 왜냐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까지 전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400년 동안 노예 생활만 하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누굽니까?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아말렉 군대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승산이 없는 싸움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을 따라 전쟁에 나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이 있고 조건을 갖추었다고 다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선수들을 보세요. 언제 승리합니까? 
조건이 좋다고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배고프고 힘들 때 기록이 좋습니다. 마라톤에서 아프리카 케냐 선수들은 장비는 시원치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도자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군대의 숫자나 무기를 바라보았다면 절대로 나가서 싸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도자 모세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 순종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승리의 요인은 아닙니다. 만약 여호수아군대의 승리가 여호수아 한 사람의 능력이었다면 그것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우리는 여호수아와 같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승리의 요인은 뭘까요? 
한마디로 칼날에 있지 않고 두 손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10절을 다같이 봅시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이 지팡이는 애굽에서 바로 왕에게 10가지 이적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갈랐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냈습니다. 대단한 지팡이입니다 
그러나 지팡이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지팡이를 주신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갑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모세가 피곤해서 팔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맥을 못 춥니다. 

11절을 보세요.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성도 여러분!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모세가 팔이 올라가느냐 내려오느냐가 전쟁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승리할 때 우리의 승리는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승리가 아니고 다른 요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전쟁하고 있었나요? 전쟁터의 군인은 여호수아입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또 다른 전쟁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쟁터는 칼날로 싸우는 전쟁터가 아닌 두 손으로 싸우는 전쟁터입니다. 
여호수아가 전방입니까? 모세가 전방입니까? 누가 전방에 서 있는 것인지 분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전쟁의 승리는 여호수아 같은 좋은 군사도 필요하지만 모세 같은 기도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의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승리하는 것은 내가 능력이 아니라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누군가가 기도하는 중보기도가 능력이 있고, 그 기도의 전선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이 얻은 승리는 여러분의 노력도 있었겠으나 잊지 마셔야 할 것은 누군가가 뒤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했기 때문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무릎 꿇었던 백부장이 있었기에 그 하인이 치료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부스러기 은혜를 구한 모친이 있었기에 그 딸이 귀신에게서 해방된 것입니다. 이들이 두 손 든 중보 기도자들입니다. 
그래서 배후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기도하고, 부모가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중보 기도자들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중보기도팀이 네 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팀에 가입하여 중보기도를 하자고 제가 그렇게 강조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왜 새벽기도가 그렇게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피곤하지요, 힘들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그 기도가 내 영적 승리의 결정적 동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해야 합니다. 누가요? 
  
오늘 우리의 승리가 우리의 힘이 아닌 누군가의 두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오늘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두 손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내가 두 손을 들므로 내 자식이 승리하고 내가 두 손을 들므로 내 남편이 승리합니다. 내가 두 손을 들므로 우리나라가 승리하고 내가 두 손을 들므로 선교사들이 승리한단 말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전쟁터에서가 아닌 기도의 동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3. 기도 사역에는 동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10절 하반부를 보세요.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것은 혼자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여호수아같이 유능한 부하도 있었으나 그에게는 아론과 훌 같은 동역자도 있었습니다. 
모세 혼자 산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올라 갔습니다. 
그곳에서 기도하는데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도 사람인지라 팔이 피곤하여 내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아론과 훌이 그것을 깨닫고 그의 팔을 쳐듭니다.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앉게 하고 양쪽에서 한사람이 한 팔을 붙들어 올립니다. 그러자 해가지도록 손이 내려오지 않음으로 여호수아가 그 아말렉을 이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승리의 요인이 여호수아에게 있지 않고 모세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승리의 요인이 칼에 있지 않고 두 손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손이 내려오지 않게 하기위해 두 사람의 협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혼자 하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기도의 동지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몇 명의 기도동지가 있나요? 
모세의 기도 동지 아론과 훌은 누굽니까? 
아론은 모세의 형입니다. 친형입니다. 모세를 너무나도 잘 아는 형입니다. 너무나 잘 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론은 형이지만 동생을 돕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훌은 누굽니까?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훌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미리암이 모세의 누이기에 아마도 훌도 모세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니 혈육으로 보면 모세는 손아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모세를 보좌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더 힘든 것은 아론은 말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모세를 수종드는 것 힘들었을 것입니다. 훌은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했다가 문둥병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 남편 훌이 모세를 섬긴다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론과 훌은 그런 것 개의치 않고 모세를 섬깁니다. 아주 가까운 친척 둘이 동지가 되어주었습니다. 
  
결국 인간의 생각과 혈육의 정을 초월하여 지도자를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저보다 연배가 높은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잘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영적 동지는 나이와 혈육을 초월합니다. 영적 동지는 사회적 신분을 초월합니다. 
  
특히 모세와 아론과 훌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젊은이들은 나가서 싸웁니다. 그런데 나이 많은 사람은 나가서 싸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싸울 힘이 없다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게 뭡니까? 중보기도입니다. 그 기도가 할 일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치룬 전쟁보다 기도가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는 것은 모세가 두 손 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여호수아일 수 있고 아론과 훌일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모두 힘을 합하여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지 못하면 사단의 세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칼날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 칼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두 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팡이를 든 모세가 두 손을 들 때 동역자로 도우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칼날로 승리했다고 하지 않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두 손 든 사람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 거룩한 사역에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 한 번의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16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우리의 영적 전쟁은 우리가 싸워 이긴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대대로 싸우리라 
우리의 승리는 칼날이 아닌 두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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