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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 (레 6:14~18, 마 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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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 (레 6:14~18, 마 9:20~21)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에게 매일 손쓰는 일을 하라고 지시합니다. 손을 쓰는 것은 머리가 움직이고 있고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손의 숙련은 두뇌에 달려 있습니다. 솜씨와 손재주가 비롯되는 곳도 바로 두뇌입니다. 그래서 손은 두뇌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고, 그림을 그리고, 퍼즐을 맞추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또 손으로 이런 것들을 잘 하는 아이들이 두뇌가 발달하고 머리가 좋아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많이 만지게 해야 건강합니다. 
  
유대인은 정결법과 부정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면 부정해지므로 만지지 말라는 것이 부정법입니다. 민수기 19:22에는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고 합니다. 주검이나, 사체나,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성경은 엄격하게 명령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그 내용을 보시면 그냥 더럽다는 것이 아니라 만지지 말라는 것은 사람에게 해롭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시체도 만지셨고, 시각장애인의 눈도 만지시면서 뜨게 하셨고, 성경에는 엄격하게 만지지 말라고 한 한센병자도 만지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부정과 관계없다는 뜻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예수님은 부정 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 먼 자의 눈을 만지십니다. 손 마른 사람의 손을 만지십니다. 어린이를 만져주심을 바라고 데리고 왔을 때에 만져주십니다. 변화산에서는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대지 말라는 것에도 손을 대십니다. 손을 대지 않아도 될 것에도 손을 대십니다. 
  
시편 115:7에서 우상은 어떤 것이라고 합니까?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고 합니다. 우상은 만지지도 못하는 신이며 걷지도 못하며 소리도 못내는 신입니다. 하나님은 손이 있어 만지고, 발이 있어 가시고, 소리를 내십니다. 세상의 것은 만지면 부정하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지면 거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2에는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고 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게서 정결법을 어겼다고 하였습니다. 단순히 무엇을 만지는 것을 가지고 정결법, 부정법을 따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속이 깨끗한지 부정한지를 보십니다. 
  
한국인도 부정법이 있습니다. 만지지 말고 만지기를 조심하라고 합니다. 여자를 잘 못 만지면 성희롱됩니다. 엘리베이터에 보면 ‘기대지마시오’, ‘만지지마시오’라는 경고문이 있습니다. 어떤 젊은 아이가 그 글귀 앞에다 몇 자를 더 보탰습니다. ‘남자에게 기대지마시오’, ‘여자를 만지지마시오’. 말이 되지요? 흔히 남녀의 감정을 느끼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여성은 말만으로도 이성에 대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남성은 스킨십이 있어야 느낍니다. 그래서 여성보다 남성이 성희롱이 많게 됩니다. 
  
신생아는 만져 주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하고 때로는 죽기도 한다고 합니다. 요즘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교대로 신생아를 안아준다고 합니다. 안아주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고 합니다. 거룩한 것을 만지는 것은 사는 일입니다. 지성물을 만지고 취급하며 먹는 자는 오직 아론의 자손들인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자들로 여겨집니다. 제사장이 아닌 일반인이 지성물을 만질 경우에는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만지면 만질수록 거룩해 집니다. 오늘날의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거룩한 것을 만지고 거룩하게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거룩하게 됩니다. 

16절에는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의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룩하게 만들어 거룩한 곳에 먹어야 거룩합니다. ‘그 나머지’란 소제물 중에 제단 위에서 화제로 드려지고 남은 지극히 거룩한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거룩한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이 먹으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사람이 가장 거룩한 것을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을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거룩한 것을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내용은 누룩을 넣지 않은 깨끗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더럽고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게 하지 않으십니다. 유대인의 부정법을 보세요. 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 그렇게 많습니까? 

레위기 11장에는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관한 법이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지 못할 가증한 짐승을 구별하십니다. 먹을 수 있는 물고기와 먹지 못하는 물고기를 가르치십니다. 먹을 수 있는 날개 가진 곤충과 새와 먹을 수 없는 날 짐승과 곤충을 구별하십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을 먹지 말라고 하셨나요? 현대과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먹지 말라고 하신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들은 성인병을 유발하는 것들입니다. 있어야 하지만 과하면 좋지 않은 것들을 말씀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먹거리는 과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처음 주신 먹거리는 과일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의 먹거리도 열매 즉 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계약 시에 땅의 식물들을 인간의 양식으로 허락하셨습니다. 동물들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29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이후에 새로운 계약을 주십니다. 동물과 고기를 먹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9:3에는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먹거리가 어떤 것들입니까? 깨끗하고 좋은 것, 거룩한 것,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음식은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먹는 것이 아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관광을 갈 때에 흔히 말하는 혐오식품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웅담이나 뱀이나 녹혈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골라서 먹으러 가는 보신관광도 있답니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녹용이나 녹각의 대부분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정력에 좋다 하면 안 먹는 게 없고, 여자들이 미용에 좋다 하면 안 바르는 게 없다”. 그 정력 다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그런 것들 절대로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누룩을 넣지 말고”라는 말의 ‘누룩’은 ‘하메츠’란 히브리어입니다. 이 말은 ‘날카롭게 쏘다’, ‘흥분시키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이란 죄, 거짓교훈, 부패 등을 상징합니다. 무엇이든지 날카롭게 쏘고, 흥분시키는 것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날카롭게 쏘고, 흥분시키는 것들이 어떤 건지 알겠지요? 이런 것들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런 것들이 절대로 인간의 건강이 유익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거룩한 회막 뜰에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먹을 때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미치는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음식을 먹어도 아무데서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합니다. 
  
일본의 독설가로 유명한 만담가 다케가와 다시가 제자들과 함께 유명한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비싸기는 한데 맛이 형편없었습니다. 불쾌감을 억지로 감추고 있는데 가게 주인은 눈치를 못 채고 사인 한 장을 부탁했습니다. 그는 그 종이에 “참고 먹어”라고 썼다고 합니다. 비싸고 유명한 곳이 아닌 깨끗한 음식, 좋은 자리, 거룩한 자리에서 먹어야 거룩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먹는 것이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거룩한 것을 만지면 거룩하게 됩니다. 

18절에는 “아론 자손의 남자는 모두 이를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대대로 그들의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고 합니다. 지성물을 만지는 모든 자가 거룩하여진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되려면 거룩한 것들을 만져야 합니다. 거룩한 사람들은 거룩하지 않은 것을 만지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거룩한 제사장의 옷이 평민에게 닿으면 그들이 거룩하게 된다고 합니다. 에스겔 44장에는 제사장이 성전을 수종 든 후에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옷이 평민에게 닿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에 닿으면 거룩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평민이 거룩하게 되면 안 되는가 하면 당시에는 성전을 섬기는 일 외에는 거룩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된 사람이 거룩하지 않은 일을 하면 오히려 화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19:20에는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정결법이란 물로 씻어야 합니다. 부정법이란 부정한 것을 만지면 부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정결법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약의 정결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는 법입니다. 부정을 타시지 않는 예수님은 온전한 정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정결해지고, 만지면 정결해지고, 믿으면 정결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시다가 만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을 보세요. 마태복음 9:20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고 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혈루증은 한센병이라 불리는 나병처럼 부정한 병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부정하기 때문에 가족들과 격리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지 말아야 합니다. 부정한 병은 병 그 자체보다 가족이나 사회와의 격리가 가장 큰 아픔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는 것은 유일한 치유 방법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았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도 의사에게 가느라 다 탕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그 분을 만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 외에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만지는 행위가 아니라 만지면 낫는다는 믿음으로 치유 받았습니다. 거룩한 주님을 만지면 거룩한 몸이 되어 병이 낫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여인의 이름은 베로이카라고 합니다. 외경 니고데모서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는 이 여인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마지막까지 변호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로 가실 때 땀과 피가 범벅이 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천으로 예수님을 장사지냈다고 합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변호했다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겠습니까? 제자들도 다 무서워 떨고 있었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진 경험 때문에 이런 힘이 나왔다고 봅니다. 
  
레너드 수윗은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는 교회’라는 그의 책에서 “만질 수 없는 예수님은 구원을 주실 수 없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우리 구세주가 되려면 무엇보다 우리를 만지는 분이 되셔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만질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만져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만질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만지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며 예수님의 치유입니다. 
  
오래 전 ‘ET’ 영화에 보면 ET가 손가락을 대면 상처가 낫고, 모든 병이 낫습니다. ET가 만지는 자는 다 낫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는 외계인의 영적 힘을 표현한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외계인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만지시는 것은 낫게 하고 새롭게 하는 힘입니다. 
  
요한일서 1:1에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만지면 생명이 생깁니다. 진리를 만지면 진리가 생깁니다. 의를 만지면 의가 생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것을, 거룩한 것을 많이 만져야 합니다. 그래야 온갖 예수님의 거룩한 것들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믿음을 가지세요. 거룩해집니다. 거룩한 것을 만지세요. 거룩해집니다.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 가사를 보세요. “거친 세상에서 실패 하거든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고된 일 하다가 힘을 얻으리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주가 널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 못 자국 만져라”. 만지면 평안을 얻습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위로를 얻습니다. 소망을 얻습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거룩한 성도가 아무 거나 만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는 자마다 부정하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언제나 거룩하고 정결한 것을 만져서 우리가 그 거룩한 것으로 더욱 거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인간의 손은 신비하기 짝이 없습니다. 손은 창조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으며 어루만질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습니다. 환영할 수도 있고 비난할 수도 있고, 축복할 수도 있고 저주할 수도 있습니다. 치유할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나누어 줄 수도 있고 구걸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손은 안전과 보호의 상징이기도 하며, 협박하는 주먹이 되기도 합니다. 거룩한 것을 만져 거룩하게 된 손이 창조하고, 환영하고, 축복하고, 치유하고, 보호하는 손이 될 줄로 믿습니다. 
  
신종 플루의 가장 좋은 예방법은 손을 자주 씻는 것이라고 합니다. 손은 가장 많은 것을 감염시킵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고 자주 씻어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왕 같은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거룩한 것을 만지고, 온 세상에 가득 찬 죄에 오염되지 말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 거룩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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