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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찾아야 할 잃어버린 한 영혼 (눅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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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야 할 잃어버린 한 영혼 (눅 15:1~10)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성도 여러분! 잃어버린 자를 찾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 3주 전에 부산 여중생 이유리(13)양 살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만 처음에는 납치만 당한 줄 알고 부모와 경찰이 얼마나 많이 찾았습니까? 그런데 살아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2010년 03월 10일 여중생 성폭행 살해자 김길태(33ㆍ구속)가 공개수배 12일 만에 붙잡히자  범행 전모가 드러나고 시신이 발견된 물탱크가 이양 집에서 불과 50m밖에 안 된 곳에서 발견된 아이를 찾았을 때 찾은 기쁨보다는 절망과 탄식으로 말할 수 없는 통곡을 하는 부모의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연유로 찾아야 할 사람을 직장을 포기하고 실오라기 같은 희망으로 찾아다니고 있고 동물농장 프로그램을 보니 버려진 개도 주인이 찾아 오리기를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들이 종종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인터넷에도 보면 사람 찾는 내용들이 자주 올라오기도 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식을 잃어버리면 부모의 마음은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진짜 찾아야 할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찾는 데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데 인색한 면이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체 내용은 잃어버린 영혼 찾기에 대한 비유를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첫째 내용은 잃은 양의 비유로 재산이 되는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한 말씀이요. 
둘째 내용은 잃은 드라크마 비유로 이것은 재물에 대한 잃음을 말하고 있고
셋째 내용은 못된 둘째 아들의 잃음에 대한 안타까움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의 경우를 보면 부모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데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해서 객지에 나가 허랑방탕하게 탕진하고 완전히 거지로 전락한 상태인데도 아버지는 날마다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뿐만 아니라 염치불구하고 돌아왔을 때 책망보다는 ‘죽었던 내 아들이 살아온 것을 기뻐하고 반갑게 기쁨으로 영접하고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에서 보면 무엇이든지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통상적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모두 다 제쳐두고 우선적으로 반드시 찾았습니다. 
양의 경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다닌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잃은 드라크마, 즉 돈의 경우는 ‘등물을 켜들고 집안을 샅샅이 뒤지면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드라크마는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래서 찾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잃은 아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것은 짐승도 아니요, 돈도 아닌 사람이요. 자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찾았습니까? 

가는 곳도 알려주지 않고 타지인지 외국인지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마음대로 떠나가 버렸는데 말입니다. 혼자 즐기는 삶을 살려고 배은망덕하게 불효자식으로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가져가고 소식도 없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버지는 날마다 동구 밖에 나가 아들이 혹시라도 돌아올까 염려하며 기다렸습니다. 배은망덕한 자식을 왜 기다렸겠습니까?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요. 동시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과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타난 세 가지 잃은 것에 대한 비유는 하나님께서 잃은 영혼을 얼마나 찾기를 원하시는가를 강조하기 위해 하신 비유입니다. 잃어버린 짐승도 그렇게 아흔 아홉 마리를 두도 찾아다니고, 잃은 돈도 찾기 위해 불을 켜도 구석구석 쓸기도 하고 뒤지면서 찾는데,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요, 자기가 자식인데 왜 찾지 않겠습니까? 왜 간절히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를 사랑하셔서 찾아다니시는 분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은 ‘찾아다니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합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고 죄를 범하여 나무 동산에 숨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죄악을 다 아시면서도 아담과 하와가 숨은 곳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찾아주셨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는 동생을 죽인 형 가인을 찾아가셔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도 찾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우상숭배의 이방종교가 가득한 지방에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가셔서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스스로 누가복음 19:10절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 디모데전서 1:15절에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죄인을 찾아 구원시키려고 오셨습니다. 구약시대 짐승의 피를 통한 속죄 제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용서를 위해 여자의 후손인 메시아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사역을 감당하시면서 제일 먼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사도될 사람들을 직접 일하는 현장으로 찾아가셔서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갈릴리 바닷가에서 불렀습니다. 마태는 세관에서 불러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으로 사도 바울을 다메섹까지 따라가셔서 그를 찾아 사도로 삼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사울을 어떻게 찾아갔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먼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음성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때 사울이 대답하기를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반문하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셨고, 죄인 된 바울을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 시대마다 사람을 찾아 자신의 도구로 삼아주셨습니다. 족장들을 찾아 부르셨고, 사사들을 찾아 부르셨습니다. 선지자를 찾아 불러 세웠습니다. 왕들도 불러 세웠습니다. 
예레미야 5장에 보면 심판받을 예루살렘성읍을 보시고 안타가워 하시며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찾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찾기를 원하셨습니다.’ ‘의인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성읍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사명을 지금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마태복음10:6절 말씀에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16:15절 말씀,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주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심의 목적이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신 후에 그 사명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대해 가장 핵심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인 누가복음 15장입니다. 세 가지 비유가 찾음의 대상이 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목적을 갖고 하신 비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잃은 양의 비유를 하면서 잃은 양을 찾으면 이웃을 불러서 즐거운 잔치를 배풀 것이라고 하면서,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도 더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양의 비유를 통해서 잃은 영혼을 구원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 이하에 보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아도 이웃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돈을 얘기하면서 역시 잃어버린 영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 이하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는 돈을 가지고 방탕한 삶을 살았던 방탕자 아들인도 돌아왔을 때 동네잔치를 벌였습니다. 소를 잡아 이웃을 초청하고 큰 잔치를 벌이며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탕자의 형이 나중에 일하고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에게 불평할 때 아버지는 3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는 인간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높이 평가합니다.’

우리 지역이 뉴타운으로 확정되어 좋아하던 주민들이 반대를 합니다. 그 이유는 보상가가 너무나 낮게 평가를 하여 그 보상을 받은 돈을 가지고 다른 곳에 가서 현재와 같은 건물을 살 수가 없고, 이곳에 살자니 정착하기 어려운 금전적 부담감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집이나 논이나 대지 등의 물건을 담보로 저당 잡아야 합니다. 저장을 잡을 때 평가를 잘해야 합니다. 평가의 가치에 따라서 대출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기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26절 말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렇게 귀한 생명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다시 우리에게 그런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게서는 내 생명 다 바쳐서 한 생명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생명을 가볍게 혹은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살리면 그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얻게 되고 위대한 사람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영국 어느 대학의 예배시간에 생긴 일입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열정적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대학의 예배시간에는 의무적으로 가서 앉아 있어야 하니까 앉아 있는 것이지 진지하게 설교를 듣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영국의 이 대학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절반은 떠들고 잡담하고 절반은 졸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강사 목사님은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시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몇 명 학생들이 깊이 잠들어 있던 친구를 장난으로 흔들어 깨웠습니다. ‘야! 너 나오랜다’ 이 학생은 자다가 깨어서 영문도 모른 채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분을 위해 간절히 축복하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시작한 사람이 ‘스탠리 존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은 그 후에 선교사로 헌신하여 인도에 전설적인 선교사로 사역을 감당하였고,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너무도 이상한 방법의 회심은 인도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일본 동경에 19세 된 소녀가 홀아버지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처녀는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 아버지는 강도질을 하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처녀는 시간 있는 대로 아버지에게 전도하며 예수 믿으면 죄를 다 용서 받을 수 있다고 권면하나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후 수단으로 결심하고 유서를 써서 호주머니에 넣고 기다리다가 아버지가 칼을 가슴에 품고 나가는 것을 알고 뒤를 따라갔습니다. 시부야 공원으로 가서 숲 속에 숨은 것을 보고 변장하고 가방에 유서를 집어넣고 보자기를 쓰고 아버지가 숨어 있는 앞을 구두소리를 내면서 지나갔습니다. 숨어있던 강도는 그 여자를 찌르고 가방을 낚아채 가지고 도망쳤습니다. 집에 와서 가방을 뒤져보니 딸의 유서장이었습니다.

“아버지 이 불효한 여식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오늘 밤 아버지가 죽인 것은 바로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여 천당으로 모시는 길은 이길 밖에 없는 줄 알고 남에 자식을 죽이면 그 부모의 가슴 아픈 것을 얼마나 고통인가를 아버지는 모르고 있었지요. 나는 지금 죽어도 천당에 갈 준비가 되어 있기에 최후로 이 길을 택하였사오니 저를 자식으로 아시거든 불쌍하다 마시고 회개하시고 예수 믿으시고 천당에서 기쁜 낯으로 만납시다. 안녕히” 

이 유서를 읽은 아버지 강도는 입술을 깨물고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움켜쥐고 경찰서로 뛰어가 ‘그 동안 강력 범행을 한자가 바로 나입니다’ 하고 딸의 사연과 같이 자수를 하게 되어 회개하고 무기징역을 받아서 20년간 복역하고 모범수로 나와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친 귀한 믿음의 딸의 모습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생명 걸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신의 생명 걸고 찾아야 할 잃어버린 영혼은 누구입니까?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부시의 경우는 56세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40세까지 탕자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20세 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하여 극심한 알코올 중독자, 바람둥이에다 마약까지 복용했다’고 합니다. 

부시가 40세 되던 해,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는데 한 친구가 전도를 했습니다. 부시는 그 자리에서 교회에 한번 나가 보겠다고 술에 취해 약속했습니다. 부시는 그 약속대로 다음 주에 교회에 나갔는데, 그 후 ‘술을 마시면 온몸이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부시는 한 번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술을 끊게 되었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부시는 

“내가 끊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마시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끊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내 힘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부시는 교회에 나와 새사람이 되었고, 탕자에서 대통령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전도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사시키는 방법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제대로 찾았을 때 내가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내가 전도한 그 사람을 통해 세계역사를 변화시킬만한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에 최선을 다해 전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읍시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6절에 보면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고 했습니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도 보면.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22-23절). 

우리 교회가 이런 잔치를 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이런 엄청난 기쁨의 파티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한 영혼을 찾으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정말 좋아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사랑으로 위로하여 생명을 살리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전도하고 사역자로 세워서 보내는 교회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자”라는 교회 존재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살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활절을 전후해서 한 영혼이라도 강권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전도하고 그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구원해 냄으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귀한 절기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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