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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에 대한 방해 (스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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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방해 (스 4:1~6)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사촌이 잘되면 질투가 생긴다는 뜻이다. 사촌은 제일 가까운 친척이다. 그런데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가? 사촌이 잘되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야지, 왜 질투가 생기는가? 우리의 심령에, 질투심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 잘되면,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기보다, 약 오르고, 질투하고, 마음이 속상한 이유는, 자신을 그와 비교하여 생기는, 질투심 때문이다. 나하고 상관없고,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은 잘되어도, 비교하지 않기에 질투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이 잘되면, 비교되기에 속상하고 화가 난다. 이렇게 성도가 잘되고, 교회가 잘되면, 아주 배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귀다. 인간은 천사들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하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받으니, 마귀가 배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잘되는 꼴을 못 본다. 교회가 잘되고 부흥하는 꼴도 못 본다. 무슨 수를 쓰든지, 성도와 교회가 잘 못되도록, 훼방을 놓는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방해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이 잘되는 모습에, 원수들은 배가 너무 아파서 훼방놓는다. 1장의 내용은, 하나님이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조서를 내리게 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금은 그릇도 모두 돌려주게 하고, 성전재건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2장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1차 귀환 자들의 명단이 나온다. 이때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총42,360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다. 

3장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격에 젖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곳에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후, 성전재건을 위해 공사를 시작한다.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 너무 감사하여 여호와를 찬양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기뻐서, 크게 소리 질렀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통곡하며 울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면, 영락없이 태클이 들어온다. 우리의 영원한 원수 마귀는,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을, 그냥 지켜볼 리 없기 때문이다. 신앙이 좀 크려고 하면, 근심 걱정이 생기게 만든다. 

또한 자꾸 복잡한 일을 만들어서, 신앙이 크지 못하게 방해한다. 교회가 부흥하려고 하면, 교회에 분란과 문제를 일으킨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성도들의 신앙이 크지 못하게 방해하고, 교회가 잘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1. 성전건축을 방해한 대적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데, 근본적으로 마귀가 방해했다. 그런데 마귀는, 자신이 직접 방해하기도 하지만, 주로 대리인을 내세워 방해한다. 이것이 마귀의 전략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마귀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들이 있다.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여기서 사로잡혔던 자들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자'로, 이교도와 혼합된 사마리아인이다. 

주전 721년, 앗수르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에, 자기들이 멸망시킨 다른 나라 백성들을 이주시켜 살게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혈통을 혼합시켰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이, 바로 사마리아인들이다. 
그런데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해,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자,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했다. 그들은 혼혈아라고 유대인에게, 많은 설움을 받았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지도층들이 모두 포로로 끌려갔다. 

그래서 그들이 없는 땅에서, 큰소리치고, 권력을 누리며 살았다. 나중에 느헤미야가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에 성벽을 재건할 때, 끝까지 방해한 산발랏도 사마리아인이다. 결국 사마리아인들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이루어진, 남왕국 유다의 원수가 되어, 끝까지 성전재건을 방해했다. 
나중에는 예루살렘 성벽재건까지 방해한, 원수가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불신자들뿐 아니라, 영적 혼혈아는 교회의 적이요, 원수가 될 수 있다. '영적 혼혈아'라는 말은, 순수한 하나님의 자녀의 혈통이 아니라, 영적으로 세상과 마귀의 혈통이 섞인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들을 '실족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잃은 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분들이 늘 하는 말은 "나도 옛날에 교회 다녀봤어"라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의 맛은 봤는데, 은혜는 체험하지 못하고, 살짝 발만 담가 본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분은 영적 혼혈아로, 나중에 교회의 큰 적이 되기도 한다. 역사학자들이 20세기 최악의 인물, 3명을 뽑았다. 바로 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폴 포트다. 세 사람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독재자들이다. 

또 독재정치를 하면서, 수백만에서 수천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주범들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교회를 다녀본 사람들이다. 히틀러는 어려서 수도원학교에 다니며, 수도원원장을 꿈꾼 사람이었다. 합창단 단원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등, 너무도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또 감수성이 예민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그러던 그가 나중에 독재자가 되어, 6백 만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흉악한 범죄자가 되었다. 능력이 많을수록 악한자가 된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히틀러보다 더 무서운 독재자요 학살자가 되었다. 

스탈린도 시인이요, 젊은 시절에는 성직자를 꿈꾸던, 성실하고 똑똑한 신학생이었다. 그러던 그가 마르크스주의에 물들어 공산주의자가 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학살해 '도살자'라는 별명까지 얻은, 20세기 최악의 학살자가 되었다. 

만일 이들이 예수님을 잘 믿었으면, 독재자나 학살자라는 부끄러운 이름이 아니라, 좋은 성직자, 좋은 크리스천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신앙의 혈통을 갖지 못하고, 영적으로 섞인 영적 혼혈아가 더 무섭다. 마귀도 찬양하던 천사였음을 기억하라. 

어려서 교회를 잠시 다녔거나, 미션 스쿨에 다니면서, 학교예배에 참석했거나, 군대에서 초코파이 먹으려고, 교회 갔다가 세례까지 받았거나, 성인이 되어 남들 따라 몇 번 교회를 갔지만, 그런 분이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이런 분들은 '교회 맛'은 봤는데, 은혜는 체험하지 못하고, 살짝 발만 담가 본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런 분들 가운데, 나중에 교회의 큰 적이 되기도 한다. 나도 교회를 다녔고 경험도 있다고 하면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교회를 경멸하고 비난한다. 우리 가운데 이런 분이 없기를 바란다. 

물론 한 번 교회에 나왔던 분들이, 교회를 떠나서, 영적 혼혈아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잘 돌보고 신앙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더 나아가 교회 밖에서, 교회를 비난하거나 경멸하는 분들도 잘 설득해서, 교회 안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조심해야 하다. 그리고 나와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영적 혼혈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신앙생활 제대로 해야 한다. 순수한 영적 혈통을 가지도록, 애써야 한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은혜를 체험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을 저버리고,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거나 목회자나 성도에게 상처를 받더라도, 예수님은 떠나지 않게 된다. 정말 순수한 예수님의 피를 가진, 순수혈통의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성전 재건을 어떻게 방해했나?(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우리도 당신들처럼, 하나님을 알고 섬기니, 우리도 너희와 함께 성전을 재건하겠다고 한다. 같이 성전재건을 하겠다는 말은, 좋은 말인가? 아닌가? 말은 좋다. 그런데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한다.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그러면 이들은 왜 거절했나? 

사마리아인의 종교는 겉으로 볼 때,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극히 혼합된 종교다. 혼합주의는 악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을, 어찌 한 입으로 부를 수 있는가? 혼합주의는 각 종교의 독특하고 유일하며, 절대적인 진리를 양보하여, 하나의 종교로 통합하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보통,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목적과 의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보통 악할 수밖에 없다. (요4장)에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대화가 나온다. 여기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차별하자,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사마리아 인근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단을 쌓고, 

그들 나름대로 예배드렸다. 성경도 구약 전체가 아니라, 모세 오경만 인정하였다. 그것도 그들만의 성경 '사마리아 오경',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가감한 성경을 만들었다. 따라서 유대교와 전혀 다른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니 순수한 여호와의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이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왜곡하고, 다른 종교와 섞인 혼합신앙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과 사이비가 모두 이런 혼합종교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찾고, 성경을 보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교주를 신격화하고, 다른 엉뚱한 이단 교리들을 뒤섞어놓은 혼합주의다. 그래서 이들이 오히려, 타종교보다 더 위험하다. 천주교회가 왜 타종교보다 위험한가? 천주교가 다른 종교보다 왜 기독교를 핍박하는가? 

바벨론 종교와 기독교가 섞였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여신이 되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되었다. 그래서 묵주 기도(Rosary)를 드릴 때, 성모 마리아를 주기도문에서처럼 9번이나 반복한다. 또 성인들에게 기도를 드린다. 또한 천주교의 제도도 바벨론 종교의 혼합이다. 

우리는 이런 자들과, 절대로 섞일 수 없다.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갈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러므로 이단과 사이비는, 하나님 믿는 것처럼 보여도, 복음의 순수성을 가장 위협하는 최대의 원수들이다. 또 이단 사이비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가치관을 복음과 뒤섞는 행위 등, 복음과 심리학, 사회학, 성공학, 어떤 혼합주의도 교회는 용납하면 안 된다. 

이렇게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적 사마리아인들은 본격적으로, 방해공작에 나선다.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손을 약하게 했다는 말은 낙심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뇌물을 주어, 공사를 힘들게 만들었다.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거짓 상소를 올려 방해했다. 

7절 이하에 사마리아인들이, 왕에게 올린 글의 내용이 나오는데, 한 마디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면, 반역을 일으켜, 왕의 영토를 잃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니 절대로, 성을 재건하지도 못하게 하고, 성전 재건도 허락하지 말라는, 거짓과 중상모략이 가득한 내용이다. 

대적들의 방해는 아주 끈질기다. 분사형으로 계속되었음을 말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 방해만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하고, 중상모략도 하고, 뇌물도 쓰면서 방해한다. 이것이 원수들의 특징이다. 

나중에 느헤미야서에 보면, 예루살렘 성벽재건을 방해하려고, 똑같이 거짓말과, 무고와 중상모략을 하고, 나아가 느헤미야를 암살하려고 든다. 악한 무리들은 이처럼 수단 방법을 안 가린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지 다 한다. 그래서 무섭다. 

거짓말을 가르치는 이단, 신천지를 보라. 거짓말을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모략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천지 교인들은, 거의가 거짓말을 자유자재로 한다. 이런 이단들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가게 하여, 사망에 이르도록 만든다. 

3. 이들의 방해 전략은 성공했는가?(23-24)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중단했으니 성공했다. 그러나 꿑내 완공했으니, 결과적으로 성공이 아니라 실패했다. 사마리아인들이 수단방법 안 가리고 방해한 결과, 아닥사스다 왕이 조서를 내려, 결국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 중단되고 만다. 
원수들의 방해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성전 공사가 다리오 왕 2년까지, 16년 동안이나 중단된다. 그러나 에스라 5장에 이르러 다시 재개된다. 이런 대적들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끝내 성전공사를 재개하고 완공하게 된다. 

아무리 원수들이 방해해도, 아무리 대적들이, 끈질기게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훼방해도, 결국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지고 만다. 겉으로 볼 때는, 원수들이 이긴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잠시뿐, 마지막에는 반드시, 우리가 승리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될 때에는, 반드시 방해가 있다.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될 때, 마귀의 방해가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만약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무 방해도 없고, 걸림돌도 없다면, '정말 내가 주의 일을 하는가?'라고 점검해 보아야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무너진 가정과 사회를 회복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하여 헌신하는데, 마귀가 가만히 있겠는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말씀을 듣기 위해 예배하러 오는데, 마귀가 가만히 있겠는가? 나라와 민족을 복음으로 새롭게 하기 위해 나가는데, 마귀가 구경만 하겠는가? 
반드시 방해가 있고, 공격이 있고, 영적인 전쟁이 있다. 그러면 마귀가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목적은 무엇인가? 마귀는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여, 결국 포기하도록 만든다. 마귀는 우리 입에서, "역시 나는 안 돼, 우리 교회도 안 돼"라는 고백이 나오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한다. 마귀가 우리를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를 낙망하게 함으로,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험이 있고,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험을 통과하고, 고난을 이겨내서, 전쟁에 승리하면, 우리는 축복을 나누는 위대한 존재들이 될 수 있다. 성도들에게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교회가 부흥하는데, 크게 2가지 걸림돌이 있다. 하나는 외부적인 걸림돌이다. 교회 밖에서 사탄이 방해한다. 자신도 모르게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별 방법을 다 써서, 어렵게 만든다. 또 하나는 내부적인 걸림돌이다. 우리 안의 불안요소를 만들어간다. 

그게 가능하냐는 부정적 사고방식이다. 뭐 하러 그런 일을 하냐는 비웃음, 냉소주의다. 또 경제도 어려운데, 우리도 힘든데 우리가 할 수 있겠냐는 불안감이다. 저들이 제대로 하겠냐는 불신감이다. 물론 외부적인 걸림돌도 문제지만, 사실은 내부적인 걸림돌이 더 큰 문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인들이 그토록 끈질기게 방해했지만, 다 이겨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걸림돌이다. 불신, 냉소주의, 불안 이런 걸림돌들을, 우리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교회 부흥은 절대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걸림돌들을 이기는 힘은, 돈도 아니고, 환경도 아니고, 믿음밖에 없다. 그러면 어떤 믿음인가? 지금은 원수들의 공격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장은 환경과 상황이 어려워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믿음이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신다. 

이는 성경과 인류역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한다. 결과를 보라. 과정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결과를 믿는 사람들이다. 

2500년 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 그러했듯이, 오늘 우리가 꿈꾸고 기도하며 추진하는 교회 부흥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 믿는다. 하나님이 승리 주실 줄 믿는다. 모든 걸림돌, 모든 방해와 훼방을 물리치고, 끝내 이기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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