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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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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눅 19:1~10) 


서론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그의 어두운 과거는 청산되고 하나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고치지 못하시고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는 예수님이 여리고에 들어가셨을 때 일어났던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평생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모든 욕심에서 해방되어 참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의 만남을 새롭게 하고 이웃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해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I.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나? (19:2,3,7) 

오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서 삭개오라는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라면 삭개오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 삭개오에 대해 오늘 말씀에 보면 4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키가 적은 사람 (3절): 신체적 complex를 만회하기 위해 깡다구 하나로 살아온 사람 

먼저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3절) 저는 키가 작은 사람들이 ‘깡다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키가 작기 때문에 사람들한테 치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절대로 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모든 일에 빈틈이 없고 철저한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키가 작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사람들 앞에서는 강하고 빈틈이 없지만 혼자 있을 때는 실패와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2. 세리 장 (2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너무 많이 해 버린 사람. 

또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리라는 직업은 ‘창기’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장 악한 사람을 꼽으라면 세리였습니다. 바로 삭개오는 돈을 위해서 동족을 팔았고, 양심도 팔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눈물을 가져다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그런 생활을 오래 하고 전문가 된 ‘장’이었습니다. 

3. 부자: 많은 좋은 것을 소유한 사람 (2절) 

그래서, 삭개오는 부자가 되었습니다.(2b절) 아마 집도 상당히 좋았을 것 같고, 차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잘 먹고 고상한 여가생활도 즐기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4.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멸시했던 사람 (7절):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7절) 삭개오에게도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삭개오는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돈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 배신감도 느끼고 꼭 이용당하는 것 같아서 심란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체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돈도 있고 다 가졌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평가받을 때 삭개오는 얼마나 외롭고 실망하였겠습니까? 

II. 삭개오와 예수님의 만남 (19:3-7절) 

1. 예수님을 찾아간 삭개오 (3-4절) 

이런 삭개오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놀라운 사건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분이었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들까지도 살리셨고, 귀신들에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천명의 사람을 먹이셨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분이시라는 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놀라운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던 권세있는 가르침(예:산상수훈)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던 분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 매료되었습니다. 

삭개오에게 더 충격적인 소식은 그 예수님께서 자기와 같은 세리,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능력이 있고 놀라운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시라면 자기와 같은 세리를 향해 책망과 비난을 하셔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과 친구가 되어주신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자기가 살고 있는 여리고에 오셨고 지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의 마음 속에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기를 원했습니다.(3a절) 예수님을 만나면 자기가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나아갔지만,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3b절)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야 하지만, 삭개오는 “앞으로 달려가서”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4절)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40대 후반~50대초반의 나이였고 여리고에서 유명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세상을 악하게 살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어떤 것도 누를 수 없고 포기하게 만들 수 없는 예수님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열망이 인간적인 자존심과 사람들의 시선을 극복하게 하였습니다. 

2.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 (5,7절)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는 예수님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삭개오는 ‘내가 이렇게 올라와 있는데 예수님이 나를 알아봐 주실까?’ 아니면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였듯이 예수님까지도 그냥 지나가실 것인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있는 곳까지 오셔서 지나치지 않으시고 삭개오를 쳐다보시고, 생전 처음 보는 삭개오에게 이름을 부르시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5절) 그냥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꼭 머물러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님들, 이 예수님의 행동에는 많은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삭개오를 사람들은 조롱하였지만 예수님은 삭개오를 외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그 간절한 마음을 예수님은 알아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삭개오를 힘들게 했던 양심의 가책과 공허감, 평생을 따라다녔던 콤플렉스와 주위 사람의 멸시, 그리고 소외감을 예수님은 받아주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삭개오를 사랑하시고 믿어주시고 귀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 타지에 머무르게 될 때 호텔 같은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면 보통 가장 귀하게 생각하고 가장 보고 싶고 만나기만 하면 기쁜, 소중한 사람에게 가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여리고에 살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5절) 이 말씀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믿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삭개오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은 성도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성도님을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아픔은 받아주시고 한 분 한 분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믿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님들, 그 당시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루 삭개오의 집에 머무르시다가 그 사람이 엉뚱한 마음을 품고 고발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머물렀다는 것은 악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그를 믿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가장 큰 기쁨이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피흘려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저를 바꾸실 것이기 때문에, 저를 새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부족하고 잘못한 것이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님 한 분 한 분에게 주시는 가장 놀라운 선물이 여러분을 믿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속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성령의 보증을 보시고 여러분을 믿어주십니다. 

III. 만남의 결과: 내려놓음과 새로운 삶 (19:8-10) 

1. 넘치는 기쁨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 영접. 그의 사랑 깨달을 때 참된 기쁨 소유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받아주실 때,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6절) 저에게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가장 큰 변화가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성경에 나오듯이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습니다. 온전한 사랑만이 우리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두려움을 벗겨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의 기쁨을 주십니다. 

2. 내려놓음 (8절) 

삭개오는 기뻐한 다음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가시려고 할 때,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8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남에게 고통을 주며 가졌던 재산, 내 삶의 모든 것이었던 물질을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예수님의 사랑을 받자마자 생명과 같이 소중히 여겼던 물질을 내려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질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만났고, 물질보다 더 소중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물질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돈을 사랑하고 주인으로 삼았던 삭개오의 삶은  이제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그 사랑 위에 굳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월요일부터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제 속에 주셨던 찬송이 있습니다. 그 찬송은 ‘내가 주인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삭개오가 이 찬송을 알았다면 그는 이 찬송을 불렀을 것 같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사랑 내 영혼의 반석 주 사랑위에 서리 

저는 이 찬양의 고백이 성도님들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3. 새로운 정체성 부여 받음 (9-10절)  

삭개오가 물질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9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삭개오가 이 때까지는 세리장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통과 눈물을 주며 부끄러운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믿게 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절) 

성도님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처럼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고아로 살아가는 것이 이 모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삭개오에게 “너는 과거에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였지만,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 되었다. 오늘을 시작으로 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너와 네 가정 속에 펼쳐질 것이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론 

1. 우리들의 삶이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사랑 위에 굳게 서게 되었으면 합니다. 

1)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들의 삶을 참된 구원으로 인도해줄 수 없습니다. 

오늘 이제 이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2가지 간단한 적용을 드리려고 하는데, 하나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도 그렇고 성도님의 삶이 다시 예수님의 사랑 위에 굳게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성도님들 예수님의 사랑만이 우리 영혼의 참된 반석이 될 수 있습니다. 반석 위에 우리들의 삶이 세워져야만 어떤 거친 풍랑을 만나더라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돈을 선택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약점도, 두려움도 극복할 줄 알았습니다. 돈만 얻을 수 있다면 양심도 동족도 다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었지만, 그 마음은 끝없는 공허감, 두려움, 외로움에 시달렸습니다. 돈은 결단코 우리를 참된 구원과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명예도 권력도 외모도 학벌도 우리를 참된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2) 예수님과 그 분의 사랑만이 우리를 참된 구원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우리들 삶에 참된 구원을 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영혼의 반석으로 삼을 때 우리들의 마음에 기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헛된 것을 내려놓을 수가 있고, 남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기쁨의 사람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3) 중요한 것은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그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제 이 예배를 통해 성도님들이 모든 자존심과 체면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한번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내가 주인삼은 것 모두 내려놓겠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것도 놓겠습니다. 주님 사랑의 품에 안기기를 원합니다. 주님 사랑을 내 영혼의 반석으로 삼기를 원합니다. 저를 받아주시옵소서.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2. 나아가 예수님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성도님들 꼭 기억해야 되는 것은 예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왜 세상이 이렇게 어렵겠습니까? 사람들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누가 눈물을 우리에게 안겨줍니까? 우리들의 삶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은 가난도 궁핍도 질병도 아닙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이 세상 속에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누가 그들을 바꿀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만이 그들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과거 운동권은 불의한 자들을 제거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을 통해 새 세상을 만들려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악한 삭개오까지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삭개오를 감동시켰고, 그 돈을 내려놓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하기만 하면 고통을 주는 사람이 기쁨과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이 병든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 내일 행복 축제 헌신 주일입니다.  주위를 돌아보시고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한 분도 빠짐없이 두 명의 영혼들을 작정하고 예수님을 전해주는 영광된 일에 동참합시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말씀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교제를 통해서 우리만 살아있는 교회가 되지 않고, 우리 교회가 살아있고 동시에 살리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잃어버린 자들로 살아가는 자들을 살리는 교회가 되며, 나아가서 이 병든 땅, 대구 땅을 살릴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우리 성도님들 오늘 이 말씀, 먼저 예수님을 내 삶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기쁨으로 성도님의 영혼이 가득 채워지고 어떤 거친 풍랑 속에도 주님의 사랑이 성도님들의 삶을 잠잠케 하고 지켜주시는 역사가 이 예배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가 살아나서 이 시대를 살리는 주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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