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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엎드려 경배하면 (마 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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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경배하면 (마 4:8~11)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8)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9)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0)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11)
<마태복음 4장 8~11절>

할렐루야! 
날씨가 변덕스럽고 가끔 황사도 심합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몸이 아파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매주 설교를 할 수 없어서 설교만 전담하는 목사를 두고 목회하는 
미국의 윌로우크릭(Willow Creek) 교회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목사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목사 자신이 건강한 것’이다.”
저는 이 말을 들은 이후에 교회와 성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하고, 가정도 건강해야 합니다. 

요즘은 바람직하고 평안한 가정을‘건강한 가정’이라고 합니다.
교회도 건강해야 합니다. 
모든 기관과 부서가 평안하고 든든하게 서가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여러분 모두 범사에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건강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옆의 분과 “건강하게 사십시오. 건강하게 살겠습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 시험, 이생의 자랑

오늘은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시험 중에 
「세 번째 시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세 번째 시험은 
요한일서 2장 16절의 표현대로 말하면 [이생의 자랑]에 대한 것입니다. 
‘자랑’이란 말은‘자기가 가진 것이나 이룬 것에 대해 뽐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은 
현실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나 
잠시 땀 흘림으로 이루어 놓은 것을 가지고 으스대며 
남에게 과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탄은 이런 허영심으로 사람들이 죄에 빠지도록 유혹합니다. 
사탄은 모든 사람이 가진 본능적 욕구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립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사탄은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을 가지고 유혹했습니다.(창 3:6)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것을 
사탄은 ‘먹으라,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질’것이라고 하며 유혹했습니다.(창 3:5)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은 두 번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 
자기 앞에 엎드리고 자기에게 예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마 4:8), “모든 것”(마 4:9)을 주겠노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탄은 욕심나게 하는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같은 것으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내게 엎드려라, 내게 예배해, 그러면 내가 다 줄께.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잖아!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내가 다 줄게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창 3:6), 
천하의 영광,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마 4:8), 
그것은 하나님을 시시하게 생각하게 하고, 
신앙을 시시하게 만드는 유혹이었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방법 그대로,
예수님을 유혹했던 방법 그대로 …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한 번으로, 두 번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방법과 장소도 매번 다르게 해서
- 광야에서 돌이 떡 되게 해보라고 했고
-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했고
- 이번에는 지극히 높은 산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본문 8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높은 곳에서는 
“천하 모든 나라들과 그 모든 나라들을 소유한 사람이 얻는 영광” 
화려함, 웅장함, 멋지고, 최고이고, 광채 나는 것들을 다 볼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사탄은 모든 나라들과 영광(splendor, 영예, 화려함) 을 
함께 볼 수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잘 들으세요.
성전 꼭대기처럼(마 4:5) 높은 자리,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산 같은 자리는 
쉽게 마귀를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유혹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시험에 빠지기 쉬운 자리입니다.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세 번째 시험은 영적 시험입니다. 
예배의 대상을 바꾸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반대로 사탄에게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계명의 두 번째는 
“ … 우상을 만들지 말고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 ”(출 20:4-5)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그런 것들 앞에 무릎 꿇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섬기지 말라’는 말은 예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 앞에 예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니엘 3장에 나오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져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느브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사람들이 그 신상에게 절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만 섬기며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느브갓네살이 “… 절하지 아니하면 …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이제라도 절하면 살려 주겠다”고 하며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때 세 사람(사득락, 메삭, 아벳느고)은 
그래도 왕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할 수 없다고 하며
“…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시지 않고 
죽게 내 버려두신다 할지라도 … 우상 앞에 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왜 사자굴 속에 들어갔습니까?(단 6장) 
다니엘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다니엘이 기도할 수 없게 막았습니다.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어 죽이겠다는 벌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하다 붙들리면 
사자밥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수많은 순교자들, 
목이 잘려 죽고, 몸이 찢겨져 죽고, 불에 타죽고
짐승의 밥이 되었던 사람들 … 그들이 왜 죽어갔습니까? 
미련하고 모자라서 바보라서 그렇게 죽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예배하기 하는 것이
세상의 권세/세상의 화려함/멋지고 재미있는 것/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죽어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으며 
지하 굴속에서 살다가 죽어갔습니까? 
왜, 붙잡혀 목이 잘려 죽어갔습니까? 
왜, 짐승의 밥이 되었습니까? 
하나님께만 예배하기 위해서 … 그들은 예배가 그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 했던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명하신 기본 의무

우리는 생명 걸고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인은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못한 예배로, 
아벨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예배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두 사람의 운명 뿐 아니라 그 후손들의 운명도 달라졌습니다. 
“ …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 4:3-5) 

잘 들으세요.
돈 많이 벌어서 자식에게 많이 남겨 주고 싶습니까?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교회에서만 보아도 많지도 않은 재산을 자식에게 남겨주었다고 해서 
그 자식이 잘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성경을 보세요.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될 것입니다.
가인의 예배, 아벨의 예배가 그 후손들의 운명까지 달라지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는 자세가 후손들의 운명을 바꾼다면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요 4:23-24) 
- 예배를 위해 모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 (행 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는 그 때는 예배하는 자를 박해하던 때입니다. 
그런데도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요즘 어떤 사람은 
“너무 자주 모입니다. 좀 줄입시다. 인생이 편안해야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고 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넬료 가정처럼 
온 식구가 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가족을 대표해서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가족이 구원 받기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만 구원 받은 하늘백성으로 살면 되겠습니까.

어떤 분은 “목사님, 저 예수 믿습니다. 그런데 꼭 교회에 가야 합니까? 
기둥교회는 인터넷으로 예배를 생중계 하는데 주일에 교회 가지 않고 
예배실황을 보면서 헌금은 인터넷뱅킹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것은 
모니터 보면서 예배드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에는 한번 바다에 나가면 
몇 달씩 바다 위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일하시는 집사님도 있고 … 
전 세계로 흩어져 있는 기둥교회 성도들이 많기에 예배 실황을 중계하는 것입니다.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세 나라의 국경지대에
몇 분의 한국 사람들이 있지만 교회도 없고, 목사님도 안계셔서
우리 교회 예배실황을 DVD로 녹화해서 보냅니다.

그분들은 받은 DVD 예배 실황을 따라 예배드립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DVD를 만들고 인터넷으로 생중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이해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예를 갖춰 절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는 것입니다.
올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모두 예배의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 드려야 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작년 명절에 시골에 가서 부모님께 세배한 것을 
옆에서 조카가 비디오로 녹화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올 명절에, 그 먼 길을 또 가자니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아버지, 작년에 녹화해놓은 테이프를 보세요. 
거기 절하는 모습이 나오니 올해는 그것으로 인사를 대신하지요.’라고 한다면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뭐라고 하시겠어요? 해 보세요.

예배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예배답게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께 영원히 …

누가복음 4장 16절에 보면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는 회당에 예수님도 참석하셨습니다. 
“…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 ”(눅 4:16 )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고 막는 것이 누구입니까? 
예배드릴 수 없게 하는 것이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가 예배드릴 수 없게 방해합니다.
하나님께 꿇을 무릎을 세상/권세/명예/돈/즐거움 … 에 꿇게 합니다. 
사탄은 세상 권세, 경제적인 부유함, 건강, 명성, 호화로움, 
화려함, 세상적인 재미, 세상적인 영광 …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세상에 무릎 꿇게 하고 세상을 예배하게 합니다.

사탄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 자기 것인 것처럼
자기가 주겠다고 했습니다(마 4: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다 자기의 것인 것처럼 자기가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 끝 부분에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 6:13)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멘 <쉬운성경>

권세와 기쁨과 영광은 사탄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아멘.
사탄은 자기에게 절하고 예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얻는 방법은 예수님이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고 했습니다. 

우리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원하심대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 

물러가라 사탄아 !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결심하면 결심할수록 
더 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와서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 관심을 갖도록 유혹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호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고 했습니다.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Away from me, Satan!” 
즉, “물러가라, 사탄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아 내게 엄습하지 말아라, 
내게 이런 생각이 들지 말게 해라’고 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은 전철에서, 시장에서 
‘물러가라 사탄아’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기 마음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싶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면 마음으로라도 외쳐야 합니다.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라고 명령하며
내 속에 꿈틀거리는 사탄의 생각을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했습니다.
‘내가 엎드려 경배하고 예배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니 너는 나를 시험하지 말아라. “물러가라”고 하니까 
마태복음 4장 11절에 
“…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했습니다. 
수종들었다는 말은 도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니 마귀가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도왔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유혹하고 괴롭히는 마귀들을 물리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 번 물리쳤다고 해서 / 한번 이겼다고 해서 
마귀를 영원히 쫓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와서 예배드렸다고 한 주간 마귀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 누가복음 4장 13절에 보면 
마귀가 아주 떠난 것이 아니고 “얼마동안”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려고 결심하고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나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까? 
또 악한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또 죄 지을 일이 생깁니다. 
사탄은 완전히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시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하나 극복하면 또 하나의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사탄의 유혹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탄의 자녀를 시험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마귀의 자녀를 시험하지 않습니다. 
예기치 않은 시험, 두려움, 시련, 갖가지 고통 중에 처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버티시기 바랍니다. 이기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시고 피할 길을 내신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 혼자 시험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듣지 않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악인의 꾀를 좇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고 죄인의 길에 발걸음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앉지 말아야 할 오만한 자리에 앉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듯이 
하루하루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하는 참회의 기도를 해야 하고, 
- 현재를 살피며,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하는 기도를 해야 하며 
- 미래를 꿈꾸며,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두려워마세요.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한번 만나본 적도 없고, 
밥 한번 함께 먹어본 적도 없고, 악수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을 
남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남의 얘기만 듣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남의 이야기만 듣고 안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쥐가 예쁩니까? 징그럽습니까? 
왜 싫습니까? 쥐한테 맞은 적 있어요? 쥐가 괴롭혔습니까?
요즘 아이들은 쥐를 애완동물처럼 기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렸을 때 쥐 잡던 생각이 들어 
징그럽다는 이유로 그냥 싫어합니다.
이렇듯 자기가 직접적인 일을 당하지도 않고 
그냥 싫어하고 미워하고, 포기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크레이그 그로쉘(Craig Groeschel) 목사님이 
지은 책(Confessions of a Pastor)에 나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몇몇 과학자들이 모여 아주 의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방 한복판에 있는 기둥의 중간쯤 높이에 
신선한 바나나 한 덩이를 걸어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원숭이 네 마리를 방에 풀어 놓았습니다. 
배고픈 원숭이들은 즉시 샛노란 바나나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원숭이들이 기둥에 오를 때마다 
과학자 하나가 그들에게 찬물을 쏟아 부었습니다.
원숭이들은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모여서 재차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우에 오르기 시작하면 다시금 차디찬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몇 번 시도해도 성과가 없자 
원숭이들은 실패할 게 뻔하다고 믿었는지 결국 시도를 중단했습니다.
이튿날 연구진은 네 마리 원숭이 가운데 하나를 
새 원숭이로 교체했습니다. 이 신참은 어떻게 했을까요?
곧장 바나나 있는 데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둥에 이르기도 전에 세 마리 고참들이 그를 말렸습니다. 
새 원숭이는 아랑곳없이 다시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도 인정 많은 룸메이트들이 끼어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포기한 채 그들의 운명적인 태도를 이어 받았습니다.
날마다 과학자들은 원숭이들을 한 마리씩 새것으로 교체했습니다.
닷새째에는 방 안의 네 마리 원숭이 가운데 
그들이 찬물을 끼얹었던 원숭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새 원숭이가 교체되어 들어올 때마다 
다른 원숭이들은 영문도 모르면서 바나나 쪽으로 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실패를 경험한 것은 네 마리뿐인데 그들이 다른 신참들을 조건화시켜서 
아예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목사로 산다는 것」 서울: 두란노, 2008. pp. 196~198.>

원숭이만 이렇습니까?
여러분도 삶 속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얘기만 듣고 포기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손 한번 잡아본 적도, 
커피 한 잔도 함께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을 미워했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 미운 짓을 했습니까?

우리는 살면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포기한 일들 가운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도 
자기가 예수 믿어 본 적도 없으면서 다만 다른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교회에 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할 때
우리를 잡아두고 안된다고 못가게 했던 일들 중에
마귀가 사용하는 방법에 속아 넘어갔던 일이 많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우리에게 다가와
- 우리의 가정과 일터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교회와 목회자 성도와 성도가 가까이 하려고 하면
방해를 하고 우리의 삶을 흩어놓으려 합니다.
- 부부사이를 갈라놓으려 하고 믿음의 형제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합니다.
여러분,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선언했던 것처럼
“물러가라 사탄아”라고 소리치며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들을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않을 소리를 들으면 죄의 길로 갑니다.
갈 길을 바로 가야 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는 앉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손길에 붙잡혀 갈 길을 가지 않고,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는다면 …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험을 물리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여러분도 시험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연약한 우리들,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많습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우리들의 삶을, 신앙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들의 천성을 향해 가는 발걸음을 가로 막고 우리의 귀를 잡아당깁니다.
어떤 경우에도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는 
하늘 가는 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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