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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그치지 않는 고통 (롬 9:1~5) - 전도,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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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그치지 않는 고통 (롬 9:1~5)


1956년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짐 앨리언, 네이트세인트등 5명의 젊은 청년 선교사들이 남비 에콰도르 동쪽에 있는 쿨라이 강변에서 시체로 발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지역에 아우카부족 지금의 와오디나라고 하는데 와우카부족에게 전도하려고 정착했는데 얼마안되서 그들에게 무참히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선교지에서 순교한 것입니다. 

라이프지와 미국의 유명한 뉴욕타임즈는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선교사의 대 학살이라는 제목하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것이 무슨 낭비인가 휘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리고 장래가 총망되는 젊은이들이 대체 무엇 때문에 먼 남미까지가서 아무일도 못한채 의미없는 죽음을 당해야 하는가 이것이 무슨 낭비인가 이렇게 신문기사에 기록했습니다. 

그 순교한 순교사들의 아내들은 선교사들이 순교당한 후에 어린 자녀들을 끌고 안고 그들의 남편들이 죽임을 당했던 그 남미의 에콰도르를 찾아 갔습니다. 와우카부족 지금은 와오디나라고 하는데 와오디나부족을 위해 혼신을 다해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간호사 교육을 받았고 간호사로써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와우카부족을 섬겼을 때 5년이 지났을 때 추장이 여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당신들은 누구이길래 우리들을 위해 이렇게 희생하고 봉사하십니까. 그때 그 가운데 있던 한 선교사의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바로 당신들이 5년전에 쿨라이 강변에서 죽인 선교사들의 아내들입니다. 가족들입니다. 그때서야 그 추장의 마음이 열립니다. 사람들의 마음문이 열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그 마을을 복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원래 아우카라는 말의 뜻은 야만인이란 뜻입니다.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고 식인종 같은 그런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아우카부족에 복음이 들어간지 50년만에 그 지역이 완전히 복음화 되었습니다. 그 지역민 천명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선교사들을 무참히 살해한 5명중에 4명이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순교,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부족을 위해 뿌린 피가 헛된 낭비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오랜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 순교한 한 선교사의 일기에서 이런글이 발견되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생명이요, 복음이요, 천국인 것입니다. 사명인것입니다. 그럼 영원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이요 건강이요 세상이요 명예인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위해 살아가십니까. 영원한것을 위해 살아가느냐 영원한 가치 생명과 복음과 천국을 위해 살아가느냐 아니면 영원하지 않은 물질에 목숨을 걸고 소유에 목숨을 걸고 세상 명예와 권력에 목숨을 거는 쾌락에 목숨을 거는 그런 삶을 살아가느냐하는 것입니다.

장렬하게 순교한 선교사들은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제자의 삶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아우카부족 이 와우다니부족과 같이 살아온 한 사람의 증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로 5명의 순교한 선교사들 네이트세인트선교사의 아들인 스티브세인트 선교사입니다. 

스티브세인트선교사는 자신이 5살 때 아버지가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서 그 부족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들을 섬기면서 그는 원주민들과 함께 성장을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자기 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이 그 원주민이 자기에게 창쏘는 법, 창쓰는 법, 활 쏘는 법, 고기잡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목사가 된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주민에 의해 13살 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에 의해서 자신이 세례를 받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생생한 이야기를 창끝이라는 책에 기록을 해서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베스트셀러로 수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영화와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끝이라는 2권의 책으로 된 아름다운 서적입니다. 

이 모든 사건이 어찌보면 동화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때문이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선교의 사명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피흘리신 것처럼 영혼사랑의 마음 때문에 복음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명령의 순종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갔고 순교당한 자들이 있었고 바로 그들의 가족들이 그들의 자식들이 또 그 부족을 위해 평생을 섬기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영혼사랑의 끊임없는 고통과 번민과 그 마음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간 한 사람을 성경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가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곳에 가든지 먼저 자신이 전할 사명은 이방인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그리스도앞에 무릎을 꿇고 복음을 영접하는 아름다운 사건을 보면서 그의 마음 한켠에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내 동족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란말인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 저 유대 백성들은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은채 복음에 대해 마음을 닫고 살아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아픔이었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들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을 이방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예수께로 돌아올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갔습니다. 내 가족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내 동족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오늘 성경 1절과 2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직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기 동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동족 이스라엘이 점점 하나님에서 멀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 근심이 되었고 그치지 않는 큰 고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 젊은이가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부흥회 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했습니다. 그는 아름답게 성장했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가 되어서 선교지에 나갔습니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고 선교했기에 그 선교지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하루하루가 반갑고 감격스럽고 놀라운 축복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마음에 또 한켠에 어두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정말 내 부모님은 어떻게 예수를 믿을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형제, 자매들은 어떻게 그들이 예수믿고 돌아올 수 있을까. 선교사는 이렇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전하는 것은 수월한데 자기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자기 부모의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형제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형제 부모이야기만 하면 그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것이 사도바울의 마음인 것입니다. 

혹 북에서 넘어온 탈북자들이 계십니다. 온가족이 넘어온다고 하지만 때로는 북에 남겨논 가족 자식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탈북하기로 해놓고 먼저 넘어왔는데 그 자식은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기 남한에 탈북한 가족들은 명절이 되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기도를 드리지만 북에 남겨놓은 자식을 생각하면 소 국그릇이 맛있는 국이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북에 둔 아들을 생각할 때 목이 메여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사도바울의 심정이 아니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내 골육, 동족이 구원받을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 나는 그것을 간절히 소원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내 형제, 곧 골육의 친척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올수만있다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사도바울은 얼마전에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세상 어떤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그는 그렇게 노래했던 사도바울은 이제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내 동족이 내 가족이 내 형제가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 동족을 향한 사도바울의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가족중에 아직도 믿지않는 영혼들이 있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야하겠습니까.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그냥 지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절박한 마음으로 지금 그 영혼을 구원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중보기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특별히 자기 동족이 받은 놀라운 축복을 생각할 때 더욱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4절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자기 동족 이스라엘 민족은 참 특별한 민족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자녀삼으신 장자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적어도 8가지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양자됨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첫 번째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장자라고 부릅니다. 애굽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불러 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한 백성들입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영광을 목도한 이들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들은 언약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다윗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그들과의 약속입니다. 놀라운 축복의 언약입니다. 그런 언약을 받은 민족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겐 언약의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또 그들에겐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세상많은 민족이 있지만 특별히 유대민족에게만 생활의 삶의 양식인 율법을 주었습니다. 율법대로만 살면 너희가 복을 받고 율법을 어기면 너희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배드리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희생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수많은 약속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또한 조상들이 그러합니다. 

5절에 보면 그들의 조상들이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다윗 사울 다 누구의 조심입니까? 유대민족의 조상입니다. 그들은 아주 훌륭한 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민족이 탁월한 것은 누구나 잘 압니다. 그들은 특별한 민족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300명정도가 되는데 그 300명중에 3분의 1은 유대인입니다. 지금 800만 밖에 되지 않는 인구가운데에서 노벨상수상자가 세계적으로 3분의 1이 나왔습니다. 유명한 사람은 유대인이 많습니다. 음악가, 경제인, 문학가, 의사, 심리학자 말할것 없습니다. 어느분야를 봐도 제일 정상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면 유태인들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훌륭한 조상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고 있다는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아픔인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그들을 생각할 때 마다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마지막에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입니까? 이방인입니까? 예수님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중에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오신 메시아. 그 유대인이신 그분까지도 그들은 거부하고 배척하고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도바울의 마음이 요즘 회복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한국에 많이 상영되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순절기간에 꼭 영화를 보고싶다면 회복이라는 영화를 보십시오. 그 영화는 바로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데 그일로 인해 그들이 많은 유태인들에게 학대를 당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오늘 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핍박인 것입니다. 순교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유대인들 가운데 배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만명 이상의 유대인 기독교인들 그들을 메시아닉 크리스챤.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안에 살려고 몸부림 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땅에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민족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헌금합니다. 저 유대인에게 복음이 증거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내 동족의 구원을 위한 가족의 구원을 위한 마음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우리가 해외에 나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도 당연히 해야하지만 동시에 예수사랑 큰잔치는 동족, 내 이웃, 내 가족을 그리스도에게 전도하는 그런 사명일 것입니다.  내 이웃들 바로 그것이 내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구세군 창설자 윌리암부스는 그런말을 했습니다. 영국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지 않는 것은 정말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의미를 사명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영국의 성도들에게 그들의 눈을 열어 지옥을 볼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그들이 지옥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은 그냥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단 한번만이라도 지옥을 볼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아마 그들은 거리로 뛰쳐나가서 우리가 사랑해야될 이웃들을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며 그리스도를 전하게 될 것이라고 윌리암부스는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지옥을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예수를 믿지않고 불신의 마음으로 살다가 저 지옥의 불꽃가운데 고통당하는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냥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이웃들을 위해서 우리 가족들을 향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뛰쳐나가지 않겠습니까. 

사도바울의 소원이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베스터총독 앞에서 복음전할 때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사람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유대인이었지만 다메섹도상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가 된 것처럼 여러분도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제가 무엇입니까?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그리스도 이 기독교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종교를 갖는것은 다 좋지. 기독교를 나가든, 불교를 나가든, 유교를 믿든 무슨 상관이야. 정신수양에 다 좋은거지 종교란 좋은거잖아.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켤코 전도할 수 없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그리스도 내가 믿는 기독교가 아니면 구원이 없어, 그에겐 소망이 없어, 그런 마음의 확신 전도에 관한 확신이없으면 우린 결코 전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나오겠지 이런마음을 가지고 우린 마냥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지 않습니까. 이런 사도바울의 심정을 우린 모세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앞에 우상을 숭배하고 금신상을 만들고 절을 합니다. 모세는 너무나 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백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범죄한 백성을 이 광야에서 다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모세는 차마 하나님앞에 하나님 참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 빼고는 다 죽여야하는 종자들입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눈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합의하시면 이제 이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나님 이 백성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이 비록 범죄했지만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만약 그들을 용서하실수만 있다면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구원의 책에서 지워버려도 좋습니다. 저하도 멸망당해도 내 백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전 무슨 일이든 감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마음이고 모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흔히하는 말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그가 어느곳에 가든지 이방인 선교사로 갔지만 그는 먼저가면 그 지역의 회당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그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핍박하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아니였습니다. 대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이 나서서 바울을 고소하고 바울을 향해 돌을 던지고 죽이려 했습니다. 같은 동족들이 이것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같은 동족 유대인들이 바울을 핍박했지 이방인들은 바울을 별로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자기 동족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몰매를 당하면서도 바울의 마음은 내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아야 된다고 늘 생각하면서 그것을 위해 늘 기도했습니다. 그 마음은 바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큰 근심이 있다는 겁니다. 그치지 않는 큰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뭔가요. 내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가족이 구원받아야 된다는 그런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2부 3부때는 박효진 장로님 청송교도소 교도관으로서 사형수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을 회개시킨 놀라운 간증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실수만 있으면 2부 3부에 꼭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때론 그 몸을 난도질한 그 사형수에게 사형수를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고 호소할 때 그 사형수가 회개해서 돌아와 그들의 장기를 다른사람을위해 바치고 마지막 찬송을 부르고 사형자의 이슬로 살아간 그 아름다운 간증들을 박효진 장로님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전도해야하는가 내 이웃들에게 내가 어떻게 다가가야하는가를 가슴깊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토요일마다 전도할 때 어제도 황사가 많고 비도오고 우산을 쓰고 전도했습니다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나와 함께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교인들 전도하다가 만나면 꼭 그냥 가지않고 음료수를 사다가 주시는데 받으면서도 미안하고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우리 장로님 한 분이 꼭 전도하면서 그러십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목사님 내가 왜 전도하러 나오느냐 내가 생전 전도해 본 사람이 아닌데 내가 하나님앞에 가서 하나님이 내게 야 원장로 너 뭐하다가 왔냐. 라고 물으면 자신이 할 말이 없더랍니다. 아무말도 할 말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전도하다가 가면 제가 부족하지만 토요일마다 노방전도하다가 왔습니다. 그 할말이 한가지 있을것 같아서 그래서 열심히 전도에 나오신다합니다. 

여러분 돌아보십시오. 너 아무개 권사, 집사, 뭐하다가 왔냐.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물론 주방에서 설거지하는것도 아름다운 봉사입니다. 그것도 대답할 거리가 있습니다. 내가 주차안내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안내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대답은 무엇일까요.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릴 수 있는 대답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전하다가 왔습니다. 내가 한영혼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고 왔습니다라고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대답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다음주는 온교인이 다 작정하는 작정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고 동시에 작정주일입니다. 뜻을 정해서 꼭 전도대상자를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한주간 동안 기도하시면서 꼭 한분이상 세분까지 정하십시오. 그리고 기록을 하십시오. 그리고 다음주 예배시간에 다 같이 제출할 것입니다. 

뜻을 정하시면 길이 열립니다. 다니엘도 뜻을 정하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길이 열립니다. 사자 굴속에서도 생명의 건짐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뜻을 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희생하시기 바랍니다. 희생이 없이는 진정한 구원이 없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를 출산할 때도 큰 진통이 있습니다. 그 진통 끝에 그 생명을 이 땅에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한 영혼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데 어찌 거기에 영혼의 진통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희생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그대로 둘때 저 지옥에가 고통받을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아파하십시오.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고통을 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믿고 구원받아서 할렐루야 감사하고 기쁘지만 동시에 마음에 근심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믿고 구원받았지만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저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속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안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뜻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처럼 내 동족과 내 가족을 바라보면서 주님앞에 나아가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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