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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처녀들 (마 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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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처녀들 (마 25:1~13)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가 참으로 필요하다.  천국은 믿음 있는 사람이 가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천국을 누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누린다.  그래서 주님은 마 10:16에서 둘 다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는 영적 순결함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사단과 싸워 이기는 지혜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  

지혜의 보고 하나님 말씀

누구나 신앙생활을 잘하기 원한다.  예수님 잘 믿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잘 하고, 잘 믿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지혜로운 것은 공부를 많이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지혜의 보고를 열어 놓으셨다.  세상 지식, 세상 공부를 많이 못했어도  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 지혜의 보고는 누구나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빈민의 90%가 성경을 읽지 않는데서 온다고 했다.  성경 안에는 세상을 잘 사는 하나님 지혜의 말씀이 들어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지혜가  우리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빅토르 위고도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영국이 만든 책이고, 하나는 영국을 만든 책이다.  영국이 만든 책은 셰익스피어의 걸작들이고,  영국을 이렇게 위대한 국가로 만들어 준 책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준비하시는 하나님

성경을 읽으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완벽하게 또한 조화롭게 지혜로 준비하셨다.  그러니 지혜로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되니 자연스럽게 지혜로울 수밖에 없고  잘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오늘 본문에도 세상 마지막 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말씀이다.  성경은 창세기 처음부터 요한 계시록 마지막까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로 잘 살게 한다.  어떤 물건을 사면 그 안에는 [사용설명서]도 같이 들어 있다.  성경은 사용설명서와 같다.  읽어 보면 인생을 지혜롭게 잘 살 수 있게 한다.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  남자와 여자가 다 흙에서 왔지만,  재질이 다르다. 여자는 도자기(최고로 좋은 도자기는 뼈를 넣어서 만든 본차이나이다)처럼, 더 불에 구워서 나왔나 보다.  그래서 더 오래 산다.  그냥 흙보다 더 잘 깨지듯이 남자보다 더 잘 토진다.  뜨거운 것도 잘 견뎌 불가마에는 여자가 더 많고, 기도 자리에도 여자가 더 많다.  하나님 창조 섭리를 잘 묵상하면 연애도 성공하고 가정도 평안해진다.  하나님 말씀은 인생 최고의 사용 설명서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려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다.  주님의 말씀에 잘 섬기고 귀 기울이면 우리가 갈 천국에서도 잘 살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담대함이 생겼고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도 받았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미 마음에 아들을 드리려고 작정하였다.  모리아 산을 오르면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번제할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이 때 아브라함은  창세기 22:8에서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을 한다.  좋으신 하나님,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묶어 제단에 올려놓고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이 칼을 든 아브라함의 손을 잡으시고 막으셨다. 그리고 눈을 들어보니 수양의 뿔이 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라고 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그러실 줄 알았다]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약속된, 준비된 하나님의 복- 천하 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을 받는다.  하나님 말씀따라 가면 척척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고,  기쁨이 있고  결국에 승리가 있다. 

깨어 있으라

열 처녀들은 다 졸며 잤다.  우리들은 결혼식을 낮에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구태여 저녁에 한다.  이스라엘은 결혼이 잔치이기에 우리처럼 짧은 시간을 정해 놓고 혼례를 치르지 않고,  며칠 동안 잔치를 벌이면서 하이라이트인  신랑과 신부가 만나는 것은 저녁에 한다.  우리는 하루의 시작은 아침으로 계산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루의 시작을 저녁으로 여긴다.  그래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 째날이니라’고 했다.  그 저녁시간이 신랑이 늦어짐으로 밤중이 된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졸며 자고 있다.  

그런데 깨어 있으라는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  주님이 슬기 있다고 칭찬하는 다섯 처녀도 같이 자고 있었지 않은가!   깨어 있으라는 소리는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가지고 같다.  등이 어떤지,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기름은 충분한지,  혹시 기름이 모자라지는 않는지 등을 잘 살펴보는 것이다. 

수련회 갈 때,  교회 장비들을 챙기면서 반드시 미리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다 시험을 해 보아야 한다.  막상 안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기타 줄도 치다가 보면 끊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 때 구하려고 하면, 벌써 예배 다 끝난 다음인 경우도 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면  겨우 있는 것만 챙긴다.  창의적이 될 수 없다. 

옛날에 임금의 아내를 얻기 위해  공개 모집을 했다.  나라의 참한 규수, 명문대가, 절세미인 등 내로라하는 이들이 다 모였다.   중전을 뽑기 위해 대비가 나서서 문제를 하나 내었다.  “쌀 한 되씩을 줄터이니, 이것으로 한 달 동안 살아 보아라.” 어떤 이는 쌀 한 되를 30개로 나누었다.  하루에 한 개씩 먹으려고 한 것이다.  어떤 이는 죽을 써서 먹었다.  또 어떤 이는 하루 먹고는 일주일을 굶었다.  한 달이 지나 다시 모이는데,  어떤 이는 자기 힘으로 걸어오지 못해 업혀 오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부축을 받아 오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해골만 남다 시피해서 오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얼굴이 달덩이 같고  윤기도 뽀시시 흐르고  머리에 큰 다라를 이고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오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자초지종을 물으니 처녀가 대답하기를.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달 동안 쌀 한 되로 도저히 살 수 없어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지혜가 떠올랐는데, 한 되의 쌀을 가지고 송편을 만들어 팔기로 했습니다.  팔아보니 이득이 많이 났고, 그것으로 더 많은 쌀을 사게 되었고,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떡을 해서 팔고 덕분에 집 안 사람도 다 한 달 동안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송편도 남아서 이렇게 수고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 중전마마가 되었겠는가?

기쁨으로 일하라 

똑같은 것을 가지고도 더 잘 사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더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있다.  숲 속의 옹달샘 물을 동물들이 똑같이 와서 먹는데 뱀은 독을 만들고  젖소는 우유를 만든다. 
 어린아이들은 떠들 것 다 떠들면서 들을 것 다 듣더라.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들어간다고 했는데,  어린아이들이 떠들 것 다 떠들면서도 들을 것 다 듣고 있으니 천국을 소유하게 되나 보다.  ‘다 졸며 잘새’  잘 것 자면서도  다섯 처녀는 천국 잔치에 들어간다. 

예배를 즐기는 사람도 때로는 예배 시간에 존다. 그러나 생명의 양식은 놓치지 않는다.  자기 것으로 만든다.  바쁘지만,  지혜 있는 자는 은혜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기도 자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 말씀 먹는 예배시간,  하나님과 대화하여 하늘의 권능을 얻는 기도 시간은 반드시 갖는다.  이것이 똑같은 시대, 똑같은 상황에 살면서도  복 있게 사는 사람이다.  

예배 자리, 기도 자리에 와서도 억지로 끌려 온 듯한 사람.  무엇인가 하나님과 담판을 지으려는 듯, 인상이 굳어 있는 사람은  하늘의 지혜를 놓치기 쉽다.  공부를 하더라도 ‘재미있다, 재미있다,  신난다, 신난다’ 재미없더라도 그렇게 말하고 하는 사람들이 공부를 점점 더 잘한다.  

삼하 3:1을 보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다윗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인데,  왜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겠는가?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했다.  죽음의 위기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힘들지만 찬양을 했다.  지금 우리가 읽은 다윗의 시편들이 주옥같지만,  당시에는 절절한 자신의 처지 고백이었고 또한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찬양이었다. 
반면에 사울은 사무엘상 18장을 보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우시은 만만이로다” 노래 소리를 듣고 불쾌하게 여기며 시기가 낫고 결국 사위 삼은 다윗을 죽이려는 증오가 마음에 생겼다.  불평과 증오가 가득한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가 깃들일 여유가 없다.  그래서 다윗은 점점 흥해가고 사울은 점점 망해가게 되었다.

불평의 언어 대신 꿈의 언어로

저녁에 와야 할 신랑이 밤 중이 되도록 오지 않으니 얼마나 불평 거리가 많았겠는가? 아마도 신랑 집안까지 들먹이면서, 내가 알아봤다는 둥 별소리 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도 다섯 처녀는 아무 불평소리 없이 편히 자면서 고단함을 풀었을 것이다.  즐거운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으니 다음에 일어날 일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으리라. 자도 속 편히 잤을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입방아를 찢으면서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미국 캔사스에 200명 정도 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교회에서 [불평 제로 프로젝트]운동을 벌였다.  들불처럼 퍼져 나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공식집계로 세계 80여 개국 6백 12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이 운동은 담임목사 자신이 목사이면서도 너무나 많은 불평을 하고 사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단순한 착상으로 보라색 고무 밴드를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불평의 언어가 나올 때마다 다른 손목으로 옮기는 일을 해 보았다.  자신이 얼마나 불평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며 21일간 불평 안하고 사는 도전의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21일은 어떤 것을 자신의 습관으로 하기 위한 필요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평이 없는 입술에  비전언어 생명언어가 더해 져야 한다. 말틴 루터 킹 목사는 당시의 흑인들이 받고 있었던 차별을 항의하며 백인 지배자들에게 불평하고 항의를 선동할 숟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평의 언어 대신에 꿈의 언어, 비전의 언어를 더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옛 노예의 아들들이 주인의아들들과 함께 손ㅇ르 잡고 형제처럼 사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가 피부의 색깔이 아닌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 받는 세상이 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바로 불평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현실이 점점 어두워져 갈 때,  더욱 환하게 비칠 하나님의 지혜와 비전으로 더욱 무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다섯 처녀의 삶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서연교회 이명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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