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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고백 (막 8: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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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백 (막 8:27~38)


어떤 산부인과 의사가 암으로 임종을 맞게 되었다. 그는 장로의 아들이었으며, 개업의로서 전도가 유망한 의사였다. 그의 아내는 신앙이 돈독한 교회의 집사였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죽기 전에 세례를 받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남편은 의식이 분명하게 있었다. 여러차례 복음을 제시하고 고백할 것을 요청했으나 묵묵무답이었다.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아내가 남편을 다그쳤다. ‘왜 고백하지 않는거예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세요. 대답하세요.’ 그러자 그의 남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죄가 너무 많아서 나는 구원받을 수 없소. 나는 무수한 생명을 죽인 살인자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오.’라면서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부인은 끝까지 남편을 설득했다. 아무리 큰 죄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지옥가지 않는다고... 그러자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노라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 의사는 세례받은 후 얼마되지 않아 죽었다. 그 부인은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사를 했는데 지금은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 그 고백이 쉬울 것 같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형식적인 고백, 입술로만의 고백이 아닌 진실한 고백은 죄악의 사슬을 풀어내며 광명한 천국에 이르는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제지들을 데리고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가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27절,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답하길, 
28절, ‘세례 요한이라 하고,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의 대답을 들으신 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29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마가복음에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 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즉시 베드로를 축복하셨다.
마 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을 ‘위대한 고백’이라 했다. 어떤 연유로 위대한 고백이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베드로 자신의 지식이나 판단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기에 위대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고백으로 인해 그는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비교종교학에서 종교를 분류할 때 크게 둘로 구분한다. 하나는 계시종교, 또 하나는 행위종교다. 계시종교의 대표적인 예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다. 그리고 행위종교는 계시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여기에 해당된다. 대표적으로 불교, 유교, 흰두교 조로아스터교등,., 

계시종교는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냄으로 생겨난 종교이고, 행위종교는 인간의 행위로 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공적사상이 필수적이다. 고행과 선행이 따라야 한다. 

계시종교 중에서 유대교는 독선적 율법주의에 빠져 있고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이슬람교는 구약의 모세오경에 근거하고 있으나 성경에서 거리가 멀고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지만 그리스도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단히 호전적이고 폭력적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함으로 구원받는 종교이다. 그런데 그 고백이 먼저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인간 자신의 노력이나 어떤 선행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래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의 감동하심 없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보통 사람들의 고백처럼 . ‘그는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입니다. 그는 세례 요한과 같은 분입니다. 그는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영적 눈이 열리기 전에는 올바른 고백이 나올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역사하셨다. 기에 예수께서 ‘복이 있다’하셨고,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은 온전한 고백이었으나 초보 수준에 불과하다. 제자들이 고백을 한 후에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고난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였다(32절).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를 강하게 책망하셨다.
막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아직은 그의 믿음의 수준이 약한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훗날 주께서 잡히셨을 때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치기까지 했다. 고백은 했으나 믿음이 약하면 시험에 들게 된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을 때 담대히 증거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이때의 증거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고백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하시므로 제자들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하셨고 담대히 증거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란 이름 안에 들어 있는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란 이름에 함축된 비밀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만약 그것을 잘 알지 못하면 베드로처럼 순식간에 세상적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이 속에는 3가지의 놀라운 비밀이 담겨 있다. 구약시대에 기름부음을 받는 직분이 3가지 있었다. 

1)선지자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선지자적 직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선지자란 뜻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달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제사장
제사장의 역할은 백성들이 지은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중간 역할을 감당하는 직분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엡 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3)왕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를 왕이라 한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이라 불렀다. 왕의 자손이란 뜻이다 그것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참된 왕이 오실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사실은 예수님께서 오시므로 성취되었다.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완전한 선지자, 완전한 제사장, 완전한 왕이시다. ‘그리스도’란 말은 바로 이상의 삼직의 완벽한 성취로 오신 분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바르게 알고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이해하면 부분적으로 밖에 누릴 수가 없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므로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들었으나 그 은혜와 복은 누리지 못했다. 뒷날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 때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담대하게 선포했다. 성전 미전에서 구걸하고 있는 걸인을 향하여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번 성지순례 중에 그간 몰랐던 사실을 알고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다. 
바로 가이샤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을 헬몬산으로 가는 등성이까지 데리고 가셔서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는가? 그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이방의 신전들과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신당을 만들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바로 그 장소에서 우상과 잡신이 많은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것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의 고백이 위대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아직까지 영광을 얻지 못하신 상태에서 온전한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 만이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 

올바른 신앙고백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고백한 사람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된다.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은 후에도 세상에 잡히고 끌려다니고 시험에 드는 이유는 그 고백이 진실하지 못하거나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기름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기독교의 창시자로, 훌륭한 인격자 정도로 아는 것이다. 그곳에는 변화의 역사가 없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고백이 이뤄지면 그 심령 속에 역사가 나타난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성경을 펴고...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오늘 바로 나에게, 우리 각 자에게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베드로처럼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제부터 거룩하고 위대한 인생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내 입술로 고백한 그분, 내가 사랑하는 그분이 나의 왕이시며, 나의 구원자가 되시며, 내 인생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착하고 선하게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주님을 향한 나의 고백이 온전한가를 확인해야 한다. 내가 분명히 베드로처럼 고백할 수 있다면 나는 복된 인생인 것이다. 주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셨던 것처럼 나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실 것이다. 
‘그래 너의 고백이 복되다. 이제는 믿음 안에서 살아라.’

이제 애매한 고백을 청산하고, 분명한 고백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어가시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기도: 온전한 고백, 확실한 고백을 통해 주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죄악을 끊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개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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