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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예하시는 하나님 (눅 13:1~9) - 지진, 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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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하시는 하나님 (눅 13:1~9)

   
설교하는 목사로서 어떤 설교는 무겁고 심각한 말씀을 전할 때가 있고, 때로는 알아듣기 쉽기도 하고, 은혜 받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말씀을 정하고 보니, 평소보다 조금 무거우며, 심각한 말씀을 전하게 되어 전하는 저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신앙이라는 것은 때로는 좀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담아내어야 깊이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셔야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촌의 지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2일에 일어난 아이티 대지진에 이어서 2. 27일에는 칠레에서도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번 칠레 지진은 1900년대 이후 다섯 번째의 강진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진도 9.0 이상의 지진이 세 번 있었다고 합니다. 

1위는 1960년 칠레에서 발생은 ‘발디비아 지진’으로 규모 9.5였고, 1655명이 숨지고 2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지진 후에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하와이와 일본과 필리핀에서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2위는 1964년에 발생한 미국 알래스카 지진으로 9.2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라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으니, 피해도 많지 않았습니다.  2004년 동남아 주민 2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양 쓰나미가 진도 9.1 규모로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진은 직접 인명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무서운 재난입니다.  1556년 중국 산시성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83만명이 사망하였으나 지진의 규모를 측정하던 시대가 아니어서 규모를 알 수 없습니다.  1976년 중국 탕샨에서 발생한 진도 7.5의 강진으로 27만명이 죽었습니다.  2008년 5월에 일어난 쓰촨성 지진으로 87000명이 죽었습니다. 

이번 2. 27일 칠레에서 발생한 규모 8.8의 강진은 1. 12일에 아이티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지진보다 약800-1000배는 강한 지진이었는데, 그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칠레는 지진 위험국가이기 때문에 평소에 철저한 준비가 있었습니다.  건물도 지진을 대비하여 내진설계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는 지금까지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내진 설계로 지은 건물이 거의 없었기에 대부분의 사상자들이 건물이 무너지면서 큰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아이티는 인구가 밀접한 수도를 강타하면서 약30만 명이 죽었지만, 칠레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인구 밀접지역을 피해갔기에 인명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아이티에는 아이티에 살고 있던 미국인 2000명이 행방불명으로, 죽은 사람이 누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도 없이 내어다 묻었습니다. 

지난 1월 12일에 일어난 아이티 지진현장에 살아나온 한 사람의 생생한 증언을 보았는데, 소름끼치는 강진을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지축이 흔들리면서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일어나고, 순간 생지옥이 펼쳐지는데, 거리의 모든 주택들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죽은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어디서부터 손을 쓰고, 복구할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지진이 유럽에서 큰 지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755년 11월 1일 세 차례에 걸쳐 포르투갈, 스페인,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를 강타한 지진으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날이 만성절이라는 절기로 모든 시민들이 교회에 모여 있다가 지진을 당하였는데, 수도의 인구 235,000명 중에 약 7만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첫 번째 지진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졌고, 시민들이 지진을 피하여 항구의 새 부두에 모여 있었는데, 항구 전체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강진이 세 차례 있은 후 여진이 6개월 동안 250회나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지진에 안전한 지대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지진에 있어서는 비교적 안전지대라고 말합니다.   그런 말만 들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지진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지진이 아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진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고,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티의 지진과 칠레의 지진을 비교해보면 아이티는 전혀 준비 없이 지진이 일어나므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칠레를 보면 아이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강진이었지만, 그 피해는 아이티보다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지진에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진을 당한 나라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티와 칠레를 보면 슈퍼마켓이 털리고, 생필품이 있는 곳이면 약탈의 대상이 되었고, 선량하던 사람들이 무자비한 폭도로 돌변하는 것을 보면서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 선량하던 사람들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옛날에는 연탄도 사놓고, 쌀도 가마니로 쌓아 놓고 먹었는데, 지금은 그런 집이 없습니다.    쌀도 조금씩 사다먹고, 도시가스를 틀기만 하면 되는데, 몇 개월 먹고 살려고 미리 준비하는 가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재해를 입게 되면 우리도 무자비한 폭도로 돌변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우리나라는 지진보다는 화산폭발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번 아이티와 칠레 지진을 보면서 연구보고서를 살펴보았는데, 우리나라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있고, ‘지질기반정보연구부’라는 부서에서 주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연구원에서는 백두산의 화산 폭발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백두산의 화산 활동이 지난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되면서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국내외 지질학자들과 화산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백두산을 활화산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화산이 터질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백두산이 화산 활동을 멈추고 이미 죽어버린 사화산이 됐을 것이라는 그동안의 평가와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백두산의 화산성 지진은 해마다 급증하는데, 1985년에 3회, 1986년에 12회, 2005년에는 250회 가까운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년 전에는 천지 아래 5-10km 지점에서 관측되었던 마그마 챔버가 현재는 2-3km 지점까지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그마 챔버는 용암이 거대한 덩어리 형태로 뭉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의 높이가 2750m입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2-3km 아래 지점에 마그마 챔버가 올라와 있다는 것은 해수면 기준으로 같은 0m 지점까지 올라와 있는 셈입니다.

일본의 홋카이도와 도후쿠지방에 쌓여 있는 약5cm의 화산재가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몰랐는데, 그것을 검사해보니 백두산에서 날아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약1000년 전에 일어난 백두산의 화산재는 남한 전역을 평균 1.2m 두께로 덮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일본은 중국과 함께 백두산 화산활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연구는 지지부진하고, 북한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중국 지역을 통하여 우회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진도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것을 주의해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진도 6.0의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지진 관측 횟수가 늘어난 점을 들어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2009년도 지난 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은 모두 60회로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매년 평균 40여회가 발생하는데, 평균치보다 20여회가 더 많은 셈입니다.  이 가운데 진도 2.5이상으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지진도 10회 달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에 대비하여 내진 설계를 의무화해야 하고, 지진에 대비하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 미국 개신교 목사님이 아이티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습니다.  패트 라벗슨(Pat Robertson)이라는 목사가 아이티 사람들은 “받을 저주를 제대로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 아이티 사람들은 프랑스의 노예들이었는데, 그들이 믿던 ‘부드’라는 신에게 “우리를 프랑스에서 해방시켜 주면 당신을 섬기리이다”라고 서약을 했는데, 부드는 “오케이 딜(Deal)이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라벗슨의 어이없는 단죄에 대하여 미국 백악관은 “철저히 어리석은 발언”이라고 논박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하여 심판이니 저주니 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겪고 있는 아픔을 그대로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재해,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자연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해보면 불가피성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연재해는 누구의 의지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과응보의 결과도 아닙니다.  우리의 소원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가 적당히 왔으면 좋겠는데, 홍수가 지고 장마가 계속되면서 모든 것을 휩쓸어갑니다.  눈이 너무 와서 교통이 마비되고, 해일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일어나고, 또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합니다.     이런 현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이다, 선을 증명하기 위하여 악을 허용하시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고, 다만 불가피성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자연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유예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을 정해보았습니다.  유예(猶豫)라는 말은 ‘망설여 일을 결행하지 않음, 시일을 미루거나 늦춤’, 법률용어로 사용할 때는 유예란 ‘집행유예’를 줄인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와서 로마제국에서 유대총독으로 나와 있는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빌라도가 군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왔는데, 그 때마침 갈릴리에서 온 몇 사람들이 제사 드리다가 빌라도의 군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군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무슨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죽이고 피를 내어 제단의 제물 위에 그 피를 뿌렸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비인간적인 일이요,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으로 만행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피를 내어 제단에 뿌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유대인들은 단순 논리로 판단합니다.  “나는 죽지 않았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아마도 그렇게 죽은 자들은 죄가 많아서 죽었을 것이야”라고 말하고 넘어갑니다. 

이 지구촌 곳곳에는 자연재해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크고 작은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화재가 일어납니다.  건물이 붕괴됩니다.  폭탄 테러로 무고한 시민이 죽어갑니다. 대륙을 횡단하는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태도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도 수없이 참사, 참사가 해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사고를 당한 우리의 이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까?   그 안에 믿음의 형제들, 기독교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다고 해도 갑작스런 재난에서 면제되거나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돌아가려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내려온 정성, 최선을 다하여 제물을 드리고 있는데, 로마 군인들이 들이닥치더니 무자비하게 죽이고 피를 내어 제단의 제물 위에 뿌리고 불 지르고 말았습니다. 가장 경건한 시간, 경건한 자리,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그것을 그냥 보고 계시는 것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졸고 계셨다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6백만 명을 죽일 때에 하나님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좁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목사라고 하여도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을 다 아는 것 같이 말하지만 하나님의 깊으신 속사정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2-3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과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어떤 재난에는 심판성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에게 대한 관심보다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에 있는 망대가 있었습니다.  망대라고 했지만 큰 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탑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 탑에 치어 죽은 사람이 열여덟 사람이 있었습니다.    옛날의 사건치고는 아주 큰 사건이었습니다.  4-5절입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에 대하여 살아남은 사람들보다 죄가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저주를 받았느니, 심판으로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살아 있는 우리는 그 사건을 보면서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죽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 돌아가시는 이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그에게 가장 좋게 하시려는 뜻이 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라고 해도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고난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재난을 허용하시지만, 우리가 당하는 재난을 모두 죄와 연결시키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창조자로서는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가득 찼을 때에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게 하여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자기가 가로채는 헤롯을 벌레 먹어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경건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재난이 죄 때문에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죄와 연관을 지으려고 하면 인간의 자율성은 상당히 침해를 받게 됩니다.    길을 가시다가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왜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죄와 연관을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난을 보면서 무엇인가 깨달아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재난을 보면서 우리는 나를 점검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저런 사람들처럼 이 시간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한다면 과연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려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사건을 접하면 그 사건을 가지고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갑작스런 재난으로 죽은 갈릴리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실로암 망대에 있었던 이들을 보시면서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죄인도 있고, 조금 의롭게 사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너무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하여 회개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회개하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3절입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십니다.   5절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습니다.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이때에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말씀드립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했습니다.  

새번역으로 읽어봅니다.  포도원지기가 말합니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버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개역성경에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라고 했는데 ‘금년에도 내년에도’ 계속 봐달라는 말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새번역성경에는 “올해만 그대로 두소서.”라고 합니다.   공동번역에서도 “주인님, 이 나무를 금년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금년에도 역시”라고 할 수 있어도, “금년까지만”이라고 하여 절박한 심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끔찍한 재난 앞에 무방비 상태에 놓일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안전하게 살고, 평안을 누린다고 하여도 영원한 나라는 아닙니다.    오늘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내일 죽어도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소원하시고, 한 사람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봐주시는 하나님, 유예하시고 연기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일생을 다 살고 아버지 앞에 설 때에,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오늘도 말씀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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