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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이사랴 부흥회 (행 1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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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 부흥회 (행 10:24~29)


우리교회는 일년에 한차례씩 부흥사경회를 개최합니다.1년이나 2년전부터 강사를 교섭하고 날짜를 확정한 후 준비를 합니다.부흥회 준비에서 가장 힘드는 것은 강사 문제입니다.부흥회의 목적과 강사가 맞아야 되기 때문에 강사 결정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물론 자신을 부흥사라고 자처하거나 능력의 종이라고 자칭하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런 이들은 교회에 유익을 주기 보다는 자신의 공명심 충족이나 목적성취를 위해 부흥회를 도구화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강사로 모시면 영력이나 박력이 약해서 손해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저희 교회는 때에 맞는 능력있고 건전한 강사들을 모셨고 그때마다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이번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단의 장교입니다.그가 어느날 베드로를 자기 집에 청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말씀 듣다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요즘으로 말하면 가아사랴에서 그토록 크고 귀한 은혜를 받게 된 부흥회를 연 것입니다.비결을 본문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항상 기도했습니다.
 
2절 끝을 보면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더니”라고 했습니다.고넬료의 기도 생활은 두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와 생활이 일치했다는 점입니다.2절을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라고 했습니다.이것은 그가 기도 생활도 잘했지만 일반적인 생활도 바르게 했음을 보여줍니다.가장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기도와 삶이 일치하는 것이며,신앙과 생활의 괴리가 없는 것입니다.하루에 세시간씩 기도하고 철야로 기도하고 새벽마다 기도한다고 해도,생활이 경건치 못하다든지 이웃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그의 기도 생활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신앙은 전인적 사건입니다.다시 말하면 어느 한가지만 잘한다고 해서 그 신앙이 훌륭하다든지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주일학교 교사는 열심으로 하는데 전도는 안하고 십일조를 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좋은 교사도 아니고 크리스챤도 아닙니다.
 
1년 52주일을 빠지지 않고 성가대를 하는 사람이지만 저녁예배,새벽기도회,철야기도회는 안나옵니다.그렇다면 그 역시 전인적 신앙인이 아니기 때문에 칭찬 받기엔 미흡한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했고,집안이 다 하나님을 믿었고,유다 백성을 구제했습니다.그러기에 그는 칭찬도 받았고 인정도 받았습니다.그의 기도 생활은 실제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기도가 유창하면 모범적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항상 기도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는 쉬지 않고 기도했다는 것이고 공간적으로는 어느 곳에서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고넬료는 공인입니다.그는 유대 나라를 통치하는 로마 군단 소속 장교였습니다.그 당시 군단본부는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그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됐는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만,짐작컨대 그의 집을 드나들었거나 평소 교분이 있었던 사람들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10년 20년 믿어도 기도 생활을 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고넬료는 신앙 생활 년륜이 짧은데도 항상 기도 생활을 힘썼습니다.
 
여러분! 새벽기도도 안하고 철야기도도 안하고 정한 기도 시간도 없고 그러면서 교회봉사를 하노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기름치지 않고 기계 돌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솔직한 제 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언제나 보면 가장 맨먼저 나와서 소리지르고 기도해야 할 사람들의 자리가 항상 비어 있습니다.그때마다 저는 “또 자리가 비었구나”라는 섭섭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하나님은 더 섭섭하실 것입니다.항상 기도했다는 것은 사업도 가정도 제쳐놓고 기도만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신앙과 삶의 우선 순위를 기도에 먼저 두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고 나서 출근하고,기도 후에 가게 문 열고,기도하고 살림 시작하고,기도하고 그 후에 사람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린 내일 새벽부터 연속 부흥회를 시작합니다.시인의 고백대로 새벽을 깨우고 주의 제단에 나와 기도로 인생살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고넬료처럼 기도하고 은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순종했습니다.
 
7-8절을 보면 베드로를 청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즉시 사람을 욥바로 보냈습니다.은혜받는 비결은 간단합니다.고넬료처럼 “베드로를 청하라”말씀하시면 즉시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기 어려운 몇가지 장애조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신분상의 문제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사람인데 반해 베드로는 유대인입니다.당시 로마는 유대나라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월감이 있었고 유대인은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직업상의 문제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단의 고급 장교인데 반해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입니다.
 셋째는 교육수준의 문제입니다.
 고넬료는 장교가 되기위해 정규 군사 훈련 과정을 거친 사람이고 베드로는 세상 교육이 전무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에 아랑곳 없이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미루지도 않고 즉시 사람들을 욥바로 보냈습니다.
 불순종은 창세기에서 시작된 사단의 역사입니다.불순종은 은혜를 가로 막습니다.불순종은 기도를 앗아 갑니다.불순종은 마음속에서 평안을 빼앗아 가버립니다.그러나 순종하면 은혜받고 축복받고 응답받고 만사가 형통합니다.
 
사무엘상 15:20-26을 보면 사울왕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결정적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그것은 곧 불순종이었습니다.그는 제멋대로 처신하고 행동하고 거역하다가 버림 받았습니다.
 열왕기하 18:11-12을 보면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붙잡혀간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씀을 준행치 않고 약속을 배반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은 2장을 보면 가나 지방의 어느 결혼식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사실을 예수님께 알려 준 다음 그집 하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너희에게 무엇이라고 지시하든지 그대로 하라”고.“그대로 하라”가 중요합니다.그대로 해야 문제가 해결되고 축복이 임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때 유도를 필수과목으로 배운일이 있었습니다.맨 처음 배우는 것이 잡는 법이고,그 다음이 떨어지는 법 즉 낙법입니다.저는 처음 생각하기를 유도를 배우면 상대방을 단숨에 3미터나 5미터 전방으로 집어 던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해였습니다.시키는대로 안하면 내가 5미터 전방으로 나가 떨어지기 마련인 것이 유도입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습니다.시키는대로,하라는대로,가르쳐 주는대로 하면 됩니다.
신앙생활도 성경이 가르쳐 주고 교회가 가르쳐 주고 하라는대로 하면 손해볼 일도 없고 나가 떨어질 일도 없는 것입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더 위대한 행위입니다.고넬료는 즉시 순종하고 그날 큰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3.모여 기다렸습니다.
 
24절을 보면 “이튼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라고 했습니다.베드로를 기다리는 것은 고넬료의 개인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그의 전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모여 기다렸습니다.우린 여기서 그의 은혜를 사모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손님을 기다리는 태도나 준비는 그 가정의 가풍과 품위를 말해 줍니다.고넬료는 베드로의 내방을 통해 온가족과 친구들도 은혜를 받도록 하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준비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에서 다섯처녀만 신랑을 맞게 된 결정적 이유는 준비와 기다리는 자세였습니다.열사람 모두 처녀였고 신랑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다섯 처녀만 기름을 준비했기 때문에 신랑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이번 성회 역시 준비하고 기다리되 가족과 친구까지 인도하여 오는 사라들이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4.겸손하게 맞아 들였습니다.
 
25절을 보면 “마침 베드로가 들어 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앞에 엎드리어 절하니”라고 했습니다.
로마 군 장교가 발앞에 엎드려 절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경우뿐입니다.황제에게,상사에게,그들의 신에게 입니다.베드로는 누굽니까? 황제도 상사도 신도 아닙니다.그들이 통치하고 있는 유대나라의 종교지도자에 불과합니다.그리고 그의 전력은 갈릴리에서 고기잡던 어부에 불과합니다.그뿐입니까? 베드로는 조직적인 교육을 받아본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피지배인,천민출신,무식쟁이입니다.그런데 고넬료는 엎드려 절했습니다.우린 이 대목에서 고넬료 인격의 진면목을 보게 됩니다.그동안 제가 만났거나 접촉했던 수많은 사람가운데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정말로 공부를 많이 한사람,정말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모두가 겸손했습니다.
 
제가 접촉했거나 만났던 사람 가운데 저를 실망시키거나 기분을 상하게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어중간한 사람들이었습니다.돈도 별로 없는 사람,지위도 별로 높지 않은 사람,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생긴 것도 별로인 사람들일수록 교만했습니다.
 
신앙과 축복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은 교만입니다.교만은 천사를 마귀로 만들었습니다.교만은 천사를 하늘에서 땅으로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뜨렸습니다.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갈릴리 어부 베드로,가난한 전도자 앞에 넙죽 엎드려 절하는 장면을 저 혼자 그려 보면서 웃다가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나를 낮출때 주님이 나를 높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을 찾겠습니다.촌사람 전도자 베드로를 청해다가 열었던 가이사랴 부흥회 결과는 무엇입니까?
44절이 한마디로 설명해 줍니다.“베드로가 이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그날 그 곳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저녁식사 시간에 대통령의 방문을 받었다고 합시다.그러나 성령강림은 그런 사건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이유는 하나님이 그날 그 집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하나님이 여러분 회사에 어느날 오신다면 직장에 오신다면 그 가게에 오신다면 그 학원에 그 병원에 그리고 그 집에 오신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이런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이번 부흥회가 그런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이번 연속 새벽부흥회가 가이사랴 부흥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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