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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일 무서운 적(敵)은 스트레스이다 (왕상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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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무서운 적(敵)은 스트레스이다 (왕상 19:1~8)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중략)…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중략)…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열왕기상 19장 1∼8절

오늘날 인간이 당하는 치명적인 병 즉 각종 암, 뇌졸중, 심근경색 등 이런 병들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스트레스’란 말은 한 물체에 가해지는 압력이나 물리적 힘을 가리키는 의미로 원래 물리학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에 의하면 내과계 입원환자의 약 71%가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하거나 악화되는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는 신경내분비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자율신경계의 이상, 면역력 저하 등을 일으켜 대부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면 사람들은 우선 피로감이나 불면증이나 수면과다, 식욕저하, 두통, 가슴 답답함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납니다. 또한 불안, 우울, 짜증, 집중력 저하, 의욕 저하와 같은 정신적인 증상들이 나타나 이러한 현상이 심해지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적지 않은 지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인간이 당하는 치명적인 병들은 거의 대부분이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스트레스로 병에 걸려 죽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11장에 있는 셈의 족보만 보아도 암이나 관절염, 폐병에 의해 죽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인물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안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왜 스트레스에 걸리는가?

우리가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과 환난과 고통을 당합니다. 거기에 과도히 두려워하고 낙심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됩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욥기 3장 25절에 보면 욥이 환경에 시련을 겪어서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식들이 다 죽고 부인이 집을 떠나고 자기는 전신에 몸에 병들었습니다. 그가 탄식하기를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연히 그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런 병이 올까 굉장히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오면 그 심각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기도 감당을 못합니다. 도저히 그 어려운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감당하지 못하니 그로 말미암아 쓰러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구약시대 최고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이 불수레 때문에 태워서 죽지 않고 하늘에 데려갈 정도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야도 문제의 심각성에 압도당할 때 좌절하고 낙심하고 스트레스에 죽기를 원했습니다. 엘리야가 보통사람 같았으면 자살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과 경쟁을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알을 신봉하게 했고 야훼를 배반하고 반역하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3년 6개월 동안 비가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완전히 가뭄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바알이 왕성할 때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그 바알선지자들을 모두 한곳에 모여서 정말 야훼가 참 하나님인지 바알이 참신인지 서로 경쟁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시어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바알선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절에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실이 이사벨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이사벨은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위대한 사역을 한 엘리야가 그 협박에 못이겨 광야로 도망을 가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원합니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속에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같이 위대한 사람도 심한 스트레스를 당하니까 죽기를 원했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3절로 4절에 보면 엘리야가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학계, 의료계, 산업계 등 사회 지도층에 있는 인사들이 잇달아 자살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물리학의 한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진 서울의 유명 사립대 물리학과 교수가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지난 1월 26일에는 국내 대기업 임원이 과중한 업무 부담감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습니다. 억대의 연봉을 받는 그분이 한국에서 다 성공한 분으로 박수를 치는 그분이 왜 유서 한 장 써놓고 자살한 것입니까? 

그 지위에 다가오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은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의 유범희 교수는 “불규칙한 생활, 과로가 반복되는 생활은 육체적으로 무리를 주지만, 정신적으로 무리를 줄 때가 더 많다”고 말했습니다. 육체적인 무리는 견뎌낼 수 있어도 정신적인 무리는 견뎌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심각성에 압도당하고 좌절합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걸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조차 끊어버리려는 큰 위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왜 스트레스에 들지 않으셨는가?
 
예수님께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교법사들이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압력을 가하고 로마의 정권이 끊임없는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괴로움을 겪어도 예수님은 스트레스를 안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욕심이 없으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지위, 명예, 권세, 돈, 무엇이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면 어떻게 하느냐. 나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나를 밀쳐내면 어떻게 할 것이냐’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얻기 위하여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에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9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했듯이 욕심에 떨어지면 파멸과 멸망에 빠집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5욕(五慾)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식욕(食慾), 색욕(色慾), 재욕(財慾), 명예욕, 수면 욕구 등이 그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식욕이나 성욕, 물욕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5욕(五慾)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지나치면 탐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탐심이 들어오면 탐욕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동양의 성인으로 존경 받는 공자는 욕심 없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논어의 술이편에서 “나물과 밥에 찬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그 속에 낙이 있으니, 내게 있어 불의한 부귀영화는 한 조각의 뜬구름같도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 기쁨과 평안 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미국의 미시건대학교의 스테파니 브라운 박사는 인간의 욕심과 수명에 관해 연구를 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욕심이 많은 사람들의 사망률이 욕심이 적은 사람의 사망률보다 거의 3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록펠러는 53세가 되었을 때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에 걸려 시한부인생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록펠러는 마음의 욕심을 버리기로 작정하고 온전한 십일조와 감사의 생활로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4928개나 건축했고, 시카고 대학 등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을 각각 12개씩 지으며 사회에 기부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1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언을 받았지만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98세까지 건강하게 살수 있었습니다.

탈무드에는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고 말이 있습니다. 꿈과 욕심은 다릅니다.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베풀 때 건강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한 은혜와 축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에 참여해서 우리가 가진 조그마한 사랑과 행복을 나누면 그만큼 수명도 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고 죽는 권한은 하나님 손안에 있습니다. 또 그뿐 아니라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에 안 받으려면 모든 것을 맡겨야 됩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고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는데 여기에 비결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고집대로 끝까지 하려면 스트레스에 걸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평강이 올 때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갖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스트레스에 걸리는 것 하나님이 참으로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평안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평안을 가지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짐을 맡기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가슴속에 담아놓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 함께 하면 우리는 스트레스에서 이겨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대문호였던 괴테는 80세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단 몇 주 동안이라도 참으로 행복한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 내가 평안함을 느끼고자 할 때는 내 자아에서 벗어날 때 뿐이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시면서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추호도 욕심이 없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에만 복종하고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3. 엘리야의 회복

엘리야는 잠시동안 방심했습니다. 이제 바알선지자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다 450명이나 잡아서 죽이고 비가 오지 않는 이스라엘에 기도해서 비를 오게 했으니 이제는 안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께로 이끌어 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방심이었습니다. 방심하고 있을 때 스트레스가 기습을 하고 들어와서 그는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선지자가 아무도 만나지 아니하고 광야로 도망을 쳐서 로뎀 나무 밑에 드러누워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주님, 이만하면 됐으니 제 생명 거두어 주시옵소서”

엘리야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잠만 자고 깨어 먹고 마시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천사가 와서 어루만져 주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가까운 사람이나 먼 사람이나 와서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 참 중요합니다. 마음에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 그것이 치료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지금 스트레스 당해서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보고 꾸짖고 욕해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도 주님이 와서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위로자를 다 보내어서 보혜사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굉장히 괴로울 때는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위로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성령을 통해서 많이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운동 중에도 걷는 운동이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브엘세바에서 호렙산까지 걷게 하셨습니다. 걷기를 통해 뇌가 활성화 되고 온 몸에 혈액순환이 잘되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피로가 없어지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8절에 보면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고 말씀합니다. 엘리야가 사십 주 사십 야를 한 달 열흘을 걷고 나니까 스트레스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도 늘 조깅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역대 미국 대통령을 보면 걷기나 달리기를 해서 신체 건강을 유지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건강을 위해서는 삼보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식보, 약보, 행보인데 식보란 밥을 잘 먹는 것이고, 약보는 보약을 적당히 먹는 것이고, 행보는 많이 걷는 것을 말합니다. 밥도 잘 먹고, 보약도 가끔 먹고, 많이 걸으면 우리가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것은 심신의 피로를 풀고 마음을 상쾌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가서 굴속에 들어간 엘리야는 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신앙이 떨어지고 성령충만을 잃어버린 그가 호렙산 바위굴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되고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사명을 새롭게 받아서 그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최후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충분히 먹고, 충분히 자고 그 다음에는 많이 걷고, 그 다음에는 오산리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해서 성령충만 받고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들으면 스트레스는 깨끗하게 떠나가는 것입니다. 완전히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들려올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스트레스가 거기에 붙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소명을 마지막 받아서 그 소명을 실천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을 통해서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천국갈 수 있다는 것은 마음에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언제 죽더라도 우리에게는 갈 곳이 있습니다. 삶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방황하고 허망해지는 것입니다. 허무와 무의미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갈수록 우리의 목적지가 분명하므로 허무와 무의미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언제 죽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이기고 궁극적으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세계는 스트레스 공장입니다. 끝없는 경쟁과 긴장, 불안, 공포, 낙심 등… 스트레스를 피해서 살아갈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의지하면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인생이 피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다 이 스트레스 받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손을 잡고 탐욕을 버리고 주님께 의지해서 스트레스를 이기고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스트레스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주님의 은혜에 의해서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살수 있고 주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살 수 있고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이 가운데 스트레스 받은 사람이 있으면 모두다 예수님께 짐을 맡기게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스트레스를 이기고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영적인 성령충만을 회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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