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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과거와 현재(2) (엡 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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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과거와 현재(2) (엡 2:11~22)   


시인 롱펠로우가 보잘 것 없는 종이 한 장을 들어 그 위에 시 한편을 쓰면 그 종이는 적어도 6,000불의 가치를 갖게 된다. 유명한 화가가 불과 몇 천 원 짜리의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면, 그 캔버스는 수 백 만원, 수 천 만원의 가치를 갖는다.
그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귀중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1.우리의 과거.

본문 11절과 12절에 “그 때에” 라는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을 가리킨다. 

① 이방인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다른 모든 “이방인”을 마치 “짐승”처럼 생각하였다.(마15:26-27)
유대인은 이방인을 철저히 차별하였다. 이 둘 사이에는 서로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방인의 뜰”이 따로 있었다. 이방인들은 여기까지만 들어올 수 있었다. 그 이상의 장소에 들어가면, 누구든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경고 받았다.

본문에서 이방인의 특징을 “할례를 받지 않은 자”라고 했다. 유대의 남자들은 태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으며(창17:12, 레12:3) 외국인이든지, 나그네이든지 할례를 통해서만 유대 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출12:48) 유대인 남자라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그들의 공동체에서 제외되었다.(창17:14)

이 할례에는 두 가지 큰 뜻이 있었다. ①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 ②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하겠다는 약속의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할례를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자랑스러운 표식으로 생각하였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멸시하는 말을 할 때 “할례 받지 않은 자” 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삿14:3, 15:18, 삼상14:6, 사52:1)
유대인과 이방인 이 둘은 도저히 하나 될 수 없는 사이였다. 

② 그리스도와 이스라엘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다.(12)

“밖에”라는 말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말이다. 메시야 즉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대하는 소망이 없이 살았던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떠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말을 본문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라고 하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라고 하였다. “외인”이란 “낯선 사람”이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에 대하여 전혀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③ 소망이 없는 자였다.(12)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다.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소망이 없는 자들이다. 더더욱 구원의 소망은 전혀 없는 자였다. 그러므로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④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12)

본래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무신론”으로 살아온 것이다. 하나님 대신 거짓된 많은 신들을 섬기며 살았다. 완전히 우리는 죄와 죽음으로 사단의 종이 되어 그 올무에 매여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마귀에게 이용만 당하고 살았다. 


2. 우리의 현재.

13, 19절에 “이제”와 “이제부터”라고 했다. 이 말씀은 11-12의 “그때에”라는 말씀과 대조적인 말씀이다.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① 하나님과 가까워졌다.(13)

“멀리”와 “가까워졌다”는 말씀은 대조적이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그 장벽이 무너졌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불편하게 했던 모든 문제들이 근원적으로 해결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전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했다.

예수님은 죄의 장벽을 허물어버리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였다. 십자가는 더하는 표다. 

이제 더 이상 우리와 하나님과는 원수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평하게 하시는 화목의 제물이 되셨다.
하나님과 멀어진 이유는 죄 때문인데, 그 원인이 제거되었으니, 하나님과 가까워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있을 수 없다. 인간적인 모든 절차가 필요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다른 복잡한 절차가 모두 제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가지면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차별이 철폐되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② 평안을 얻게 되었다.

“죄”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죄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참된 평안을 얻게 되고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게 되었다.

③ 신분의 변화(19)

이제부터 우리가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다. 우리의 신분이 놀랍게 변화되었다. 
외인과 나그네, 그리고 시민과 권속은 대조적인 말이다. 바울은 빌3:20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권속 즉, 가족, 식구”이다.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이다.(롬8:15-17)
믿는 우리는 서로 “형제자매”라고 한다.

④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20-22)

성전은 신구약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다. 사도는 신약, 선지자는 구약을 의미한다. 그 모퉁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건물은 모퉁이로부터 시작된다. 성전은 그리스도로부터 쌓아 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성전을 지어가는 돌과 같다. 한 개의 돌이라도 빠지면 완전한 집이 될 수 없다. 벽돌이 한 개 한 개 굴러다니면 아무 쓸모가 없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떨어져 있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하나 될 때 훌륭한 영적성전을 지어갈 수 있는 것이다. 


결론

우리의 과거는 참으로 비참하였다. 과거에 우리는 이방인이었다. 할례 받지 못한 자였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밖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외국인이고, 소망이 없는 자였으며 하나님도 없는 하나님과 먼 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졌으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고, 하나님의 식구가 되었다. 영적인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어제와 오늘이 너무나 달라졌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간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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