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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마음 (눅 15: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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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눅 15:17~24)


미국의 저명한 작가 월터 반게린(Walter Wangerin)은 아들과의 경험을 책에 썼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매튜라는 아들은 만화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매튜는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훔쳐왔습니다. 그 사실을 발견한 월터는 아들을 엄하게 꾸중했습니다.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책을 반납했습니다. 매튜는 도서관 직원에게도 단단히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책방에서 만화책을 또 훔쳐왔습니다. 월터는 아들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손을 잡고 서재로 끌고 갔습니다. "매튜야, 이제까지 아빠는 너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도둑질이 얼마나 나쁜 일인가 가르쳐야겠다" 윌터는 피가 맺히도록 매튜의 종아리를 호되게 때렸습니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방바닥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너는 여기에서 반성하며 혼자 있거라. 

아버지는 나갔다가 잠시 후에 돌아오겠다" 아들을 방에 두고 나온 월터는 참을 수 없어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매튜는 더 이상 책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어머니가 매튜에게 물었습니다. "매튜야, 그때 아빠의 매가 무척 아팠나 보구나!" "아니예요, 아빠가 때린 매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그래, 엄마는 나쁜 버릇이 매 때문에 고쳐진 줄 알았는데" "아니예요. 그때 저는 아버지가 우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매튜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본문은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입니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재산 가운데서 자신의 몫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몫을 떼어주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은 재산을 탕진하였습니다. 거할 곳이 없어 고생하던 아들은 아버지 집에 돌아가 종노릇을 하리라 결심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 돌아오기만 기다렸습니다. 멀리서 오는 모습을 보니 아들이 분명합니다. 아버지는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합니다. 아들이라 불리울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만 종들에게 명령합니다. "좋은 옷을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겨라.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 잔치를 베풀라. 죽었던 나의 아들이 살아났고 잃어버렸던 나의 아들을 찾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잘못함에도 불구하고 받아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이 바로 되려면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아버지의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마음은 과연 어떠한 마음입니까? 
 
첫째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선교하던 몰간 목사의 일화입니다. 그가 처음 그곳에 부임한 이후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도무지 원주민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에 올라가 2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 부인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열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급해진 그는 쉴 사이도 없이 다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밤중에 이르러 "몰간아, 너는 죽어가는 네 딸 하나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도 아프냐? 병들고 못 먹고 죄로 죽어 가는 전 세계의 인류를 바라보는 아버지로서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즉시 부인을 불러 이 사실을 말하고 큰 민족으로부터 작은 민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새 날이 밝았고 기도를 마친 몰간은 딸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딸의 이마를 짚어 보았습니다. 불덩이 같았던 몸에서 열이 내리고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딸이 깨끗이 회복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사탄의 결박으로 죽어가고 있는 영혼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영혼 구원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영혼을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본문 20절입니다.“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아버지는 아들이라는 확신이 들자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여기 '측은히 여긴다' 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라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안타깝게 여기는 긍휼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모든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로 절망의 그늘에서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 주심으로 강하여 질 수 있고 험악한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향한 마음을 당신의 백성에게 부어 주십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입니다.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우리의 모습은 노력이나 수고의 댓가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로 이루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재산을 날리고 돌아온 아들의 모습이었지만 아버지는 긍휼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주었습니다. 측은히 여기는 아버지 마음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회복되어야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둘째로 용서하는 마음

강해 설교자 캠벨(G. Campbell Morgan)이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전투를 하던 중에 17세 정도 보이는 소년병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비록 적이긴 하지만 죽은 소년병의 얼굴이 계속 머리에 떠오르며 양심에 가책이 들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고민을 하던 캠벨은 군목을 찾아가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군목이 셋이 있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군목은 "군인이 뭘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느냐? 전쟁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용기를 내라" 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캠벨은 그런 답변에 만족할 수가 없어 세 번째 군목을 찾아갔습니다. 그 군목은 켐벨의 고민을 듣더니 눈물을 흘리며 그를 껴안고 기도를 간절히 해주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켐벨은 더 이상 대답을 들을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군목실을 나오려고 문을 여는 순간 군목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그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옴을 느꼈습니다. 용서의 복음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여기의 '입 맞추니' 는 '카테필레센' 으로 많은 입맞춤 즉 여러 번 거듭한 입맞춤을 의미합니다. 단 한번의 의례적 인사와는 달리 돌아온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즉 아들에 대한 끝없는 용서가 담겨져 있는 마음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이 용서를 빌기 전에 아버지가 이미 용서했다는 사실입니다.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는 이미 아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이처럼 용서하는 마음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용서야말로 큰 위로가 되며 다시 소생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아비가 자녀를 불쌍히 여김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 용서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품으로 가야 합니다. 탕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아버지께 돌아간 것처럼 용서가 있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사야 55장 6절과 7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어떠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해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며 용서해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영혼을 구원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사랑을 베푸는 마음

부호의 아들이 탄 비행기가 사막을 지나가다 강한 모래바람을 만나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사고로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수색대를 조직하여 사막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불행히도 아들의 생존 여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끈질긴 수색 끝에 비행기 추락지점을 발견한 것은 며칠 뒤였습니다. 아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실망하지 않고 아들을 계속 찾아 나섰습니다. 아들이 살아있다고 믿은 아버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발 아들을 지켜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뒤 아버지는 수백만 장의 전단지를 사막에 뿌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뭐라고 써야할지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고심하던 아버지가 결국 전단지에 적은 글은 단 한마디였습니다. "나의 아들아, 사랑한다!" 아버지의 외마디 절규는 사막 곳곳에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수색대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쓰러져 있는 아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손에는 아버지가 뿌린 전단지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사막의 열기와 굶주림, 그리고 절망감으로 죽어가던 아들을 살린 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재산보다 아들이 더 중요했습니다. 자신보다도 아들이 더 귀했습니다. 그러기에 아들 노릇을 하지 못했어도 다시 아들로 삼는 사랑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끝없이 베풀고 끊임없이 주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다 주고 싶은 마음,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이는 구원을 위해서라면 독생자도 십자가에 죽이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소중한 일은 영혼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영혼 구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명입니다. 그러기에 영혼 구원을 외면하는 성도는 건강한 성도가 아닙니다. 영혼 세우는 일에 힘쓰지 않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영혼 구원에 힘쓰지 않는다면 이미 잘못된 신앙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옴을 기뻐하는 아버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탕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 때문에 우리에게도 구원이 임한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주여, 나에게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주옵소서!" "주여, 한 영혼이 돌아올 때 느끼는 아버지의 감격과 기쁨을 주시옵소서" 부디 영혼 구원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긍휼히 여기는 마음, 더 용서하는 마음, 더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짐으로 영혼 구원에 힘을 다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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