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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차별화된 인생 (눅 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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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된 인생 (눅 7:1~10)


선명한 색은 멀리서도 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선명한 색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차별이라는 말은 좋지 않은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차별화는 성공을 위한 최선의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의 저자 잭 트라우트는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 한 가지는 "차별화, 이게 정수고 이게 전부"라고 말합니다. 차별화에 실패한 상품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차별화되지 않은 인재는 기업에서 외면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반 슈퍼마켓에는 40,000종의 브랜드 품목이 진열되어있고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는 150개 품목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39,850개의 품목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도태된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차별화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기존의 거성을 무너뜨리고 컴퓨터 시장에 강자로 우뚝 선 Dell 컴퓨터, 세계적인 온라인 쇼핑몰 Auction, Google 등은 차별화에 성공한 기업들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치열한 경쟁 사회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과 노메달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 대접을 받습니까? 연애인들도 톱 탈렌트와 무명의 배우는 얼마나 대접이 다릅니까?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스타를 꿈꾸는 가수·배우·탤런트가 2만 7천명이라고 합니다. 모델은 9천 567명에 달했고 직업운동가는 1만 2천 440명이라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무대의 조명을 받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차별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들을 합니다. 

[자신을 대중들과 차별화하라]의 저자 Suzanne Berger는 "오늘날, 성공하기 위해서는 즉각적· 인상적으로 자신을 대중들로부터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차별화 공식을 목적의식, 독창성, 간단 명료, 지속성으로 공식화하였습니다. 목적의식이 명확해야 하고 다른 사람 아무도 제시할 수 없는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밀하면서도 간단명료해야 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계속적으로 붙들어 두는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신앙인도 세상과 차별화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영향력을 끼쳐, 세상을 변혁시키고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차별화된 신앙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놀랄 정도로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믿음이 크다고 칭찬해 준 분이 두 분 나오는데 남자로서는 이 사람이 유일합니다. 여자로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는 말을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딸이 귀신들렸던 가나안 여자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인정해 주시고 있습니까? 9절에 보세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눅7:9)” 얼마나 차별화된 인생을 산 사람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게된 사람들입니다. 어차피 신앙인으로 살면서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인정을 받는 삶을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인생 마지막 결산을 볼 때 천국에 갔을 때 우리 주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떤 면에 차별화되어야 하겠습니까?

1. 첫째는 우리는 신앙인으로 사랑의 윤리로 인격을 차별화해야 합니다. /인간 앞에서 인격의 차별화

예수님을 놀라게한 백부장의 인격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종을 사랑하였습니다. 당시 종은 물건 취급되었습니다.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을 사랑했습니다. 단순한 종이 아닙니다. 병든 종입니다. 병들어서 부담이 되는 종입니다. 부모도 병들어 부담이 되면 버리는 세상입니다. 병도 죽을 병에 걸린 사람입니다(마8:6). 중풍에 걸렸습니다. 바로 죽지도 않습니다. 오래도록 짐이 될 것입니다. 당시는 기적이 아니면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당시 하인이 병들어 쓸모없이 되면 고물차를 폐차시키듯이 내다 버렸습니다.(삼상30:13) 놓아 두면 둘수록 부담만 되는 사람입니다. 식민지 종입니다. 평생 부려먹고 쓸모없으면 버리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던 때였습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 부담을 주는 종인데고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누가는 “둘로스”라는 말을 사용하여 종으로 표현하였고 마태는 하인(파이스)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파이스’는 아들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아들처럼 사랑했다는 말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사랑하다는 말의 원문은 "엔티모스"로 "가치있는, 더욱 존경할만한, 친애하는, 귀한, 덕망있는"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백부장은 병든 종이지만 가치있는 존재로, 존경할 만한 존재로 귀한 존재로 아들처럼 사랑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을 사랑하였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인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의 시민의식은 대단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긍휼과 자비는 영혼의 질병이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특히 12동판법을 기초로 로마의 가부장제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훈련받은 로마 군병들은 잔인할수록 더욱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적 사조에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지배하는 백성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지금 말하면 중대장급 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자신들을 창칼로 짓밟고 있는 로마의 장교입니다. 민족적 감정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유대 골수분자인 장로들이 그를 칭찬합니다. 그가 얼마나 유대인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사랑이 풍성한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사랑에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인격의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백성들에게도 그 사랑의 차별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우리는 인격적이 면에서 사랑에 차별성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서 차별된 사랑을 보여 주셨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선교사 아버지 찌른 원수에 아들은 사랑으로 세례 주다… 스티브 세인트 13일 내한 간증”이라는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영화 [창끝]의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입니다. 1956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답니다. 명문 휘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남미 에콰도르의 와오다니(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간 뒤 실종된 사건입니다. 엘리엇과 친구들은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아우카족 선교를 계획하고 실행했답니다. 그러나 청년들은 실종되었고 가족들은 이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으나 엘리엇과 친구들은 모두 아우카족의 창에 찔려 살해되었답니다. 이 끔찍한 비극을 미국 언론은 '이 무슨 낭비인가(What a waist!)'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답니다.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너무나 허망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허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0대에 홀로된 아내들은 풀뿌리 캐먹는 법이나 도마뱀을 잡아먹는 법 등 정글생존훈련을 받았고, 짐 엘리어트의 부인인 엘리자벳 엘리어트는 2년 동안 간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아우카 부족은 남자는 다 죽여도 여자는 죽이지 않았답니다.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 아우카족 마을로 들어가 정성껏 부족들을 섬겼답니다. 아기 날 때 아기 받아주고, 감염된 상처를 치료해주며 기생충약을 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농사법도 가르쳐주었답니다. 

추장을 비롯한 모든 아우카족들이 이들의 헌신에 감동되었고 부인들이 본국으로 떠날 때에 아우카족 추장이 물었답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이 고생을 하십니까?"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벳이 "남편들은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이 그들을 죽여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우리는 남편들이 그렇게도 당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고요?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엘리자벳은 '이 무슨 낭비인가'라고 쓴 기자에게 남편이 휘튼대학에서 썼던 일기장을 보여주었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지 마라.' '이 쓸모없는 나뭇개비에 불을 붙여 주옵소서. 제 삶을 주의 영광을 위해 태워 주옵소서. 저는 오래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선교사들을 창으로 찔렀던 아우카족 전체가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가운데 4명은 목사가 되었으며, 한 명은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으로 차별화된 인생의 모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1절 이하에서는 사랑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우리는 우리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 이 사랑의 차별성을 이루어내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문둥병자가 된 다미엔과 같이, 아들을 주인 자를 양아들로 맞이한 손양원 목사처럼 그런 사랑을 못한다해도 서로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차별화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열린교회가 차별화된 사랑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한 가족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9)"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첫째, 사랑은 관심을 가진다. 둘째, 사랑은 존경한다. 셋째, 사랑은 이해한다. 넷째, 사랑은 책임을 진다. 다섯째, 사랑은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나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갖은 정서적인 반응이나 호감 정도가 아닙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존경해야 합니다. 이해야 해야 합니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는 것처럼 상대를 위해 나의 귀한 것을 주어야 합니다. 


2. 둘째는 우리는 신앙인으로 나눔으로 사역을 차별화해야 합니다. / 사명 앞에서 사역의 차별화

그는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지금 말하면 중대장쯤의 계급이기 때문에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업을 통해 아들 딸 잘 기르고 사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좀더 쌓아서 자녀들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 놓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책을 통해 자신만 먹고 살고 자신의 가족만 부유함을 누리는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 주었습니다. 얼마나 사역에 있어서 차별된 인생을 산 사람입니까? 그는 로마 장교이고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 속국 백성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회당을 지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통해 일하는 것을 보면 네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마귀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하는 일마다 악을 행하며 사탄이 좋아하는 일을 골라합니다. 둘째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평생동안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다가 죽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자, 장애인, 병든 자 등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한 것은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어떤 종류의 일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주를 위해 산다고 굶어 죽거나 명예를 못 얻거나 권력을 못얻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 가정을,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영국의 양심이라고 불리우는 “윌리엄 윌버포스”를 보십시오.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주인공입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극심한 후유증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빈부 양극화 현상은 '굴뚝소년'을 낳았고, 성적 타락과 매춘, 도박과 알코올 중독 등이 만연했습니다. 미혼여성의 4분의 1이 매춘과 관련을 맺었고, 런던 사망자의 8분의 1이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노예가 필요했고 노예무역은 국가 재정수입의 3분의 1을 충당할 정도로 확대되었습니다. 

윌버포스는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술과 방탕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전도로 1985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는 기독교적인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이전의 습관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의회에서 기도하던 중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 가지 큰 목표를 주셨다. 하나는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투법을 폐지하고 노예무역과 노예제도 자체를 폐지하였습니다.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는 나눔으로 약자와 병든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에게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차별화된 사역을 일평생 감담해야 합니다.


3. 셋째, 우리는 신앙인으로 말씀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을 차별화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차별화

예수님을 놀라게 한 차별화된 백부장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3).
중풍에 걸린 하인으로 인하여 예수님께 눈을 뜬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께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책을 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딸을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낮아지고 내려놓은 것입니다. 탈이 전 캘리포니아주 검사를 거쳐,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 청소년 범죄 전문 변호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손자가 자폐증에 걸렸고 딸이 암에 걸리고 시력이 상실되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비하게도 기도하면서 15년 동안 앓아 왔던 암에서 치유되고 손자의 자폐증이 낫는 기적과 시력이 회복되는 능력을 체험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실제 옆에서 경험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기도가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다. 암에 걸렸던 너의 아픔과 어둠이 나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70평생 살아온 내 삶이 잿불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라고 그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편지합니다. “아빠 정말 그렇죠. '사랑'은 '설명'이 아니지요? 외쳐야만 되돌아오는 산울림소리가 아니지요? 잘났든 못났든 아빠가 절 사랑해 주시는 것은 복잡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제 가 딸이니까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것처럼 우리에게 생명과 영혼을 주신 하나님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다만 제가 아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그 사랑과 은혜를 제대로 느낄 줄 몰랐던 것뿐이지요.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편안한 삶이 돌아오게 된 것이죠.” 우리 예수님을 좋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서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그런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채 주님 곁을 떠나가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사랑이였고 진리였고 소망이였소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주를 사랑한다던 베드로 고백처럼 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6절을 보십시오. 당시 로마 군인들과는 차별화된 겸손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점령군들이 얼마나 피지배 백성을 무시합니까? 로마군 중대장이면 교만할 법도 합니다. 그러나 겸손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의 권위를 믿고 그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7).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도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군인의 장교인 자신도 말의 권위가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없겠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말씀의 위기 시대입니다. 말씀이 외면되고 말씀이 영향력을 상실하는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권위 있으신 분이십니다. 말씀의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따르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게 되고 생명이 변화를 받아 천국 백성이 되어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절망하는 자가 희망을 얻고 슬퍼하는 자들이 기뻐하게 됩니다.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됩니다. 두려움과 걱정 근심이 살아지고 평안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예수님은 죄사함의 권세(마 9:6) 생명을 살리는 권세, 심판하는 권세(요 5:27),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요 17:2) 뿐만 아니라 영계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말씀 한 마디로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로날드 히긴스는 세계를 위협하는 여섯 가지 엄청난 대적자를 "인구 폭발, 기근의 만연, 자원 고갈, 급진적인 환경파괴, 끔찍스러운 핵무기공포, 그리고 통제를 벗어난 테크놀러지"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정말 위협적인 것은 성경 말씀의 권세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점점 말씀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질병에서도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열병, 말라리아, 문둥병, 선천성 소경, 피킨스씨 병, 신장염, 관절염, 간질병, 귀머거리, 신체 장애, 정신병, 불면증, 불안증, 우울증 등 각종 질병을 고침받았습니다. 

희망의 전도사 닉 부이치치가 한국에 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선천성 장애우입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청년입니다. 현재 28살인데, 지금도 히프 밑으로 보이는 작은 발 하나로 책장을 넘기고 글을 쓰며 타이핑을 한다고 합니다. 마치 정상적인 사람의 두 팔을 자르고 허벅지를 커팅한 다음에 작은 발 두개를 그 허벅지의 절단 부위에 붙여 놓은 듯 한,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을 가진 사람입니다. 10살 때 자살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고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고 호주에 있는 그리피스 대학에서 회계학과 재무학을 복수전공했습니다. 한국이 29번째 방문하는 나라라고 합니다. 세계 곳곳에 다니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인도 뭄바이에서 매춘여성들을 대상으로 간증을 했답니다. 집회가 끝난 뒤 한 여성이 찾아와 "닉, 난 10살 때 납치당해서 성매매를 강요받았어요. 빚을 다 갚기까지 3년이 걸렸지요. 지금은 12살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성매매 외에는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이 길을 떠나지 못했어요. 이번 주에 난 AIDS(HIV) 감염 사실과 성매매 벌금이 부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내 상황은 암담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은 최악의 순간에 있는 그녀에게도 희망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습니까? 그는 예수님만이 자신의 진정한 치료자, 친구이자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 장님이었던 한 사람을 고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읽을 때 그는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를 깨달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이 변화을 절대적으로 믿으면 인생도, 가정도, 세상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약5:14-16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왔습니까?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차별화된 신앙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권세를 믿는 차별화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피래미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그물을 던질 때 차고 넘치는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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