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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이 인정하신 큰 믿음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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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인정하신 큰 믿음 (마 15:21~28)


(마 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 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지난 주간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컴퓨터게임 중독이 되어 4개월된 자식이 굶어 죽도록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기의 쾌락과 욕심을 위해서 자기 자식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살리려고 어떤 고생도 감수하고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참아내며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어머니가 나옵니다.  참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가나안 여인을  칭찬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십니다.  헬라 원문대로는 메가스피스티스입니다.  메가톤 급, 메가톤 급의 큰  믿음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십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귀신들려 불행한 삶을 살던 이 여인의 딸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어머니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이건 교리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지식적인 믿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큰 공을 세웠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원초적인 믿음을 소유했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기도 응답이 풍성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살고 싶습니까?  예수님께 큰 믿음을 가졌다고 인정받으며 살고 싶습니까?  오늘 말씀에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을 모델로 삼아 큰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1. 예수께 믿음을 인정받으려면 침묵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23)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인은 가나안 여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7:26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로'는 시리아에서 나온 말이고 보니게는 페니키아라는 뜻입니다. 두로와 시돈이라는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살던 지금의 레바논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귀신들인 어린 딸을 데리고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자의 요청에 무관심하신 듯 보였습니다. 23절에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여인은 수줍게 조용히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22절에 소리 질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못들으실 수가 없는데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종종 집에서 아내가 무슨 말인가 건넬때 다른 생각에 깊이 빠져 못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평상시 순한 아내가 화를 냅니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왜 무시하냐?"고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었는데 반응이 없으면 얼마나 무안합니까? 무시당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대화를 포기합니다. 다시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간절히 소리 높여 부르짖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응답해 주시면 좋겠는데 침묵만 하십니다. 반응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말슴을 안하시려면 행동으로라도 보여주시면 좋겟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힘이 빠집니다. 괜히 혼자만 힘을 빼는것 같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무안하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듭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실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다가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주님의 침묵에 포기하지 말아야 믿음을 인정받습니다. 침묵에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믿음을 인정받고 응답을 받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다가 무반응에도 포기하지 말고 더 가까이 나아가야 믿음을 인정받아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유명한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모니카입니다. 모니카의 아들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마니교를 신봉하고, 쾌락에 빠져 죄악된 삶을 사는 것을 볼 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이 그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도록 얼마나 애쓰며 눈물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10년이 넘게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어거스틴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모니카는 낙심했습니다.  너무 속이 상하고 안타까워서 암브로스 감독을 찾아가서  호소하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감독님, 제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께서 영원히 버리신 것 같아요,  오랜 세월동안 제 아들의 심령을 위해 기도 드렸지만 하나님은 제 기도에 아무런 응답이 없으십니다. 제 아들이 돌아오기를 10년이 넘게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내 아들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면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이 때 눈물을 흘리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암브로스 감독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자매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낙심하지 마세요. 눈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세요."
  
암브로스 감독의 격려의 말에 힘을 얻은 모니카는 계속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 결과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고 우리 기독교 역사상 아주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타게 간절히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물론 내 욕심을 위해 잘못 구하는 것이 있다면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히 침묵을 지키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처럼 우리는 계속 간구해야 합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합니다.

  2. 예수께 믿음을 인정받으려면 거절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24) 
  
예수님이 계속 침묵하시니까 제자들이 예수께 말씀드립니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참 이상합니다. 가나안 여자가 소리를 크게 질러 시끄러우면 제자들이 가서 조용히 하라고 하든지 돌아가라고 해야지 왜 스승이신 예수님께 보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너무 시끄러우니까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빨리 고쳐주어 보내면 어떻겠느냐?'며 예수님의 의중을 알아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24)" 무슨 말씀입니까? 이방인이기 때문에 싫다는 것입니다. 명확한 거절입니다. 저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고 가나안 여인이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직접 여인을 보며 한 말이 아니지만 가나안 여인이 이미 가까이 다가와 예수님의 거절의 말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처럼 무안하고 맘상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돌아섭니다.  교인들중에도 거절의 상처가 커서 괴로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조금만 싫어하거나 거절하는 빛을 보이면 못 견뎌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이 나를 외면하고 고개를 돌렸다.'고 하며 교회 나오기 싫다라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이 없는데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중에 아무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요청하면 피곤해도 심방을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기도해드립니다. 상처를 줄까봐 거절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거절당해 상처를 받았다고 할까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교인들이 로비에 많이 모여 있으면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반가움을 표시해야 하는데 성격상 소극적이어서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적극적인 성격을 개발해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맘에 있는 사랑을 푸짐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저로 인해 거절의 상처를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예수님은 소극적인 거절이 아닌 적극적인 거절을 하셨습니다. 단지 그녀가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라는 이유때문에 거절하셨습니다. 여인이 에수님께 거절의 의사를 들었을 때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수께 와서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라고 합니다. 거절에 상처받지 않고 더 가까이 나아가 절을 하며 매달립니다. 
  
여러분이 거절의 상처를 느껴 괴로울때는 가나안 여인을 떠 올리고 위로받으시고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잇기를 바랍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거절당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다가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를 귀하게 써주세요.'했는데 예수님이 거절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저를 이 질병에서 낫게 해주세요!"했는데 예수님이 거절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포기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나안 여인은  거절당해도 매달렸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거절하시면 갈데가 없습니다. 제발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고 간청했습니다.
  
여러분 거절당하는 것도 시험입니다. 믿음을 보이는 기회로 삼으세요. 기도응답이 안되도 기도를 접지 마세요. 주님이 여러분의 직분을 거두셔도 봉사를 접지 마세요. 교회안에서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외면당해도 주님과의 관계를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를 접지 마세요. 돌아서지 마세요.  "제발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를 도와 주세요." 하고 엎드려 간청을 하세요. 그러면 믿음을 인정받습니다. 주님께 칭찬 받습니다. 

  3. 예수께 믿음을 인정받으려면 상처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26)
  
인생을 살면서 자존감의 상처를 받는 일은 비참한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상처를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두 가지 유형을 볼수 있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반응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을 합리화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훨씬 바람직한 건강한 반응은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살펴 자신의 유익과 성숙을 도모하는 일입니다. 가나안 여자가 보여준 반응이 바로 그런 반응이 아니었습니까? 

26절의 예수님의 의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충분히 상처받을 말이 아닙니까?  이 때 이 여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이 무엇입니까? "내가 개라고요.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잘났소."하고 대들 수 있는 상황입니다. "관두세요. 이대로 살다 죽으면 되지요. 내참 더러워서.."

그런데 이 여자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27절을 읽어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맞습니다. 나는 개입니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떳떳이 좋은 은혜를 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 먹듯이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습니다. 나누어 주십시오. 주님께로부터 떨어지는 은혜는 부스러기만 받아도 귀신이 도망갈 줄 믿습니다. 병이 다 낳을줄 믿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개들에게 쫓겨 나무위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개들이 에워싸고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고양이가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무위에서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이거 순 개판이로구만!" 
  
여러분 개와 비교되었다고 기분 상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가나안 여자의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는 제가 죄인인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옵소서"  우리는 자존심의 상처를 넘어서 은혜를 경험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많은 모욕을 친히 감수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억울하고 애매한 말씀을 많이 들으셨습니다.  뺨도 맞으시고 침뱉음을 당하시고 옷을 발가벗기운채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온갖 조롱을 당하셧습니다. 심지어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에게까지 모욕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모욕을 다 감수하셨습니다. 상처를 다 참아내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려고 다 견디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다 얼마나 모욕감을 인내합니까? 믿음의 여정에서 자존심의 상처를 받으면 참고 견디고 있습니까?  모욕감을 느낄 때는 결단코 돌아설 때가 아닙니다.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인을 보십시오.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습니다. 나는 어떤 취급을 받아도 좋습니다. 내 자녀를 불쌍히 여기고 은혜를 내려주세요."  
  
오늘 우리도 이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 개취급을 받아도 좋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내려 주십시오. 제발 주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영의 양식을 먹게 해 주세요."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모욕받는 것 별거 아닙니다. 자존심에 상처입는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은혜받으면 다 치유됩니다. 오로지 은혜받고 큰 믿음으로 온전해지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테스트였습니다. 침묵도, 거절도, 상처입힘도 테스트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짜 믿음을 가졌는가? 짝퉁믿음을 가졌는가? 보기 위해 예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테스트하십니다. 여러분, 어려운 시험을 잘 통과하여 예수님께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확실한 인정을 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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