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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비젼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수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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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젼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수 14:6~15)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5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수14;6~15)

오늘은 여호수아 14장 6-15절 의 말씀을 통해서 ‘나의 비젼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이제 겨울은 가고  봄이 오는 것이 느껴지는 한 주간 이었습니다. 계절이 변하듯이 우리들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청년회에서는 ‘은경’자매가 1년 과정의 어학연수로 미국 조지아주로 목요일에 떠났습니다. 또 ‘대연’ 형제도 군 전역 후 1년을 진로문제로 고민하더니 엊그제 금요일에 공무원시험 준비한다는 큰 목표를 세우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이 두 사람의 앞길에 정말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좋은 결과가 있어서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물론 여기에 같이 앉아 있는 여러분들도 다 커다란 꿈, 진지한 목표를 가지고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저는 압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인생의 꿈, 비젼을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꿈과 비젼을 이야기 한다면... 먼저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가장 거창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하나 해봅니다.  ‘인간은 무엇일까요?  인간은 무엇으로 살까요?’ 이런 질문이 먼저 있어야 인생의 꿈과 비젼을 그 다음으로 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거나 꿈이 되고 아무거나 비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근본에 대해서 모르면서 꿈을 말하고 비젼을 말하는 것은 좀 우스운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보면 인간이 된 천사 미하일을 통해서 톨스토이는 3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합니다. 

1. 사람에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
2.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내일자기에게 필요한 것.(=미래)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주위의 사랑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은 사랑이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도록 되어있다.   라고 했습니다. 
  
사실 역사이래로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 백과사전(辭典)에는 ‘인간은 조직사회를 이루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면서 생활을 하는 존재다’ 라고 적었습니다..  

* 철학자인 칸트는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행해야 하며, 무엇을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주체적 답을 구하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학문적인 표현을 보면...

*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 인간의 본질을 지성으로 보는 인간관입니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 함은 다른 동물에 비해 뇌의   기능이 탁월하다는 데 있다.

*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직립인’. 직립 보행한다는 것은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여 동물과 달리 문화와 문명을 창조, 발전시켜 왔다.

* 호모 로쿠엔스 (Homo Loquens) ‘언어적 인간’. 인간의 본질이 ‘이성(Logos)'이다. 소크라테스,  ‘인간은 말하는 동물이다’. 

* 호모 파베르(Homo Faber) '공작인'. 인간의 공작성, 기술성을 강조. 

*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정치적 동물’. 국가와 인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Polis(도시국가)에서 나서 polis에서 죽는다.’ 

* 호모 텔레포니쿠스(Homo telephonicus)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을 느낄 정도로 항상 휴대전화를 지니고 다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전화에 빗대어 표현한 용어. 
  
여러분은 인간을 어떤 존재로 생각을 하십니까?  위에 말씀드린 모든 것에는 성경적인 인간관은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인간을 무어라고 말할까요?  '호모 비져너'(Homo Visioner)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은 ‘갈렙’입니다. 저는 갈렙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인간에 대해서, 또 꿈과 비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오늘 본문에서 갈렙은 하나님 앞에서 성실했다고 합니다.
2. 갈렙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3.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믿음으로 자기의 것으로 소유합니다. 
 
 우리는 먼저 갈렙이라는 사람의 배경을 살펴보아야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갈렙은 영웅입니다.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오직 그와 지도자인 여호수아 두 사람 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 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20세 이상으로는 다 광야에서 죽었어도 그들 둘은 살아서 약속의 땅에 들어 왔습니다.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도 그토록 이나 들어오고 싶어 했지만 결국 들어오지 못한 가나안 땅을 갈렙은 들어 왔습니다. 
 
또한 갈렙은 특별한 영웅입니다.  그는 혈통적으로 이방인인 그니스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믿음으로 합류한 사람이요,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군대’ 하면 무엇이 먼저 생각납니까? 계급입니다. 그러면 유대인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까?  예, 혈통(血統)입니다.  유대인은 철저히 혈통에 매인 민족입니다. 분명히 신앙공동체이지만, 실제로는 혈통공동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방인을 ‘개’요 ‘지옥의 땔감’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갈렙은 그런 이방인 출신 이었습니다.     

우리 사는 이 세상은 차별이 있습니다. 돈의 많고 적음, 지식이나 학벌, 키와 얼굴 같은 외모, 심지어는 피부의 색으로도 사람을 구별합니다.  미국에서 흑인은 ‘노예’였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차별이 엄연히 존재 합니다. 그리고 현재, 흑인 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 받는 것이 황인종입니다. 

여러분 미국 좋아할 것 없어요. 미국가면 여러분은 2류 아래, 3류 인종입니다.  백인은 자기의 피부색을 무슨 색 이라고 할까요?  그들은 White 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One of Colors 로 보지 않습니다. 그냥 ‘사람의 피부, 사람의 색’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피부가 흰색이 아닌 것을 사람이 아닌 것처럼 취급을 합니다.이렇게 사람은 작은 것이라도 차별하여 남을 낮추고 자기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약점을 가진 사람이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이 너무 거대하면  욕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영웅으로, 신으로 섬겨버립니다. 갈렙이 꼭 그런 신과 같이 존경 받는 이스라엘의 영웅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조금만 더 생각해 봅시다.   갈렙은 지금 85세인 노인이요, 이스라엘 수백 만 명 중 최고령의 2명중의 한명입니다. 그 말은 동년배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만은 이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모두 다 자기보다 최소한 20세 연하의 사람들뿐인 중에 단 한명의 친구도 없는 그런 천하의 외로운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친구가 아닙니다. 그는 지도자입니다.   그는 정말 문자 그대로 홀로 늙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인에게 가장 힘들고 비참한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가까운 사람 없이 ‘홀로 있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교회 오라고 오라고 전도해도 안 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모릅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한 번 교회 나오면,    그 이후로는 교회 버스 도착하기 전에 미리 집에서 나와서 기다립니다. 어쩌다 자기를 안 기다리고 그냥 가면  매우 섭섭해 하고 바로 삐칩니다.  오지 말라고 할까봐 오히려 겁냅니다. 노인들은 정말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리운 분들입니다.   

갈렙이 그런 노인입니다. 애굽에서 같이 나온 조강지처 아내도 당연히 죽었습니다.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14) 아들이 있고 딸이 있었다면,(20세 이상이었다면) 그 아들도 딸도 광야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자녀 말고는 모두 다 광야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딸이 하나있는 것 같습니다. “기럇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수15;16) 고 적혀 있기에...

그런데 오늘 그런 갈렙이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를 찾아옵니다.  갈렙을 따라 유다 지파도 함께 여호수아를 찾아옵니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갈렙은 말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는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합니다. 지금 12지파가 다 땅을 분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자기가 원하는 땅 ‘헤브론’을 꼭 찍어서 ‘주세요’ 합니다. 그는 왜 이런 요구를 할까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1. 오늘 본문에서 갈렙은 하나님 앞에서 성실했다고 합니다.  갈렙은 하나님 앞에서 성실했습니다. 그는 다른 정탐꾼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말 합니다.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 하였고”(14;7절)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쫓았으므로”(14;8절)  

그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온전하였다고 먼저 말합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모든 지파가 땅을 제비뽑아 분배를 받습니다. 그런데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은 방법은 조금 다릅니다.  갈렙은 제비뽑기와는 상관없이 직접 달라고 합니다. 왜 하필 ‘헤브론’일까요?  살기 좋은 평야가 아닙니다. 기름진 강변도 아닙니다. 山地입니다.  그 산지는 아무도 안사는 곳입니까? 갈렙이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며” 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헤브론은 옛 이름이 기럇아르바요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고 성경에 기록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골리앗이 키가 293cm이었습니다. 헤브론은 그런 거인들이 가득 살고 있는 곳이고 또 산지입니다. 또한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 합니다.  그런 거인들이   얼마나 전쟁을 좋아하고 또 자기의 고향을 죽기 살기로 방어하겠습니까?  그런 곳을 공격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여러분 왜 이 85살이나 된  노인이 이런 어려움을 자초 할까요? 노망이 들었나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땅을 분배 받는데 말입니다.    비밀은 그 땅의 이름에 있습니다. “헤브론” 이 그 비밀입니다.  “헤브론” 에 막벨라 굴이 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누워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도 장사되어 있습니다. 야곱도 거기 누워 있습니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고향이요, 조상이 있는 선산입니다.  축복의 발원지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이 말을 하는데 왜 유다 지파가 갈렙과 같이 왔는지 그 이유를 알겠지요.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지만, 정신적인 중심지는 헤브론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이 일의 상징적인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출신의 갈렙의 이런 당당한 요구 앞에, 이방인 출신의 갈렙의 우선권 앞에, 여호수아는 물론이고 전 이스라엘이 아무  불평을 못하고 그 땅을, 그 중요한 땅을,  자손 대대의 영영한 기업으로   합법적으로 이방인 출신의 갈렙에게 넘겨줍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앞에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갈렙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것이 인생이다’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2. 갈렙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성실한 사람, 충성된 사람 갈렙에게 모세는 상을 줍니다. 그 상은 ‘약속’입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이 약속은 45년 전에 그가 모세로부터 받은 약속입니다. 갈렙은 45년 동안 이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모세가 죽었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5년이 지났습니다. 가나안 땅의 분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에 그는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자기를 나타냅니다. 45년 전의 모세의 약속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고 여호수아에게 ‘요구’합니다.  그는 한 번도 모세가 준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약속이 자기의 영원한 기업이 될 것이라고 굳게 붙잡고 있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사실을 여러분에게 설교 합니까?  X2
  
여러분에게 꿈에 대해서, 비젼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85세된 노인의 꿈과 비젼과 삶과 인생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으시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성경에는 수많은 명령이 있고 수많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 말씀들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닫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갈렙은 모세의 약속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약속은 ‘아멘’하면 나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갈렙에게 ‘꿈이나 비젼’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는 ‘교회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에게 준 것이 꿈이요 비젼이다’ 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듣거나 읽으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강하게 감동을 주십니다. 그것을 붙잡으십시오. 그것이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고 잡으면 됩니다. 그것이 내 인생의 꿈이요 비젼 입니다.    성도여러분,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예언을 멸시하지 말고”(살전5;19,20) 라고 하십니다. 감동을 무시하는 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며, 예언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갈렙은 45년을 그 감동을 놓지 않았습니다.

  3.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자기의 것으로 소유합니다. 

문제는 나에게 주어진 약속은 아직은 그냥 ‘약속’입니다. 현실이 아닙니다. 내 손안에 아직 없지요. 어떻게 하면 그 약속을 내 것으로, 현실로 ‘소유’  할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소유합니다. 믿음으로 누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믿음으로 자기의 것으로 소유합니다.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2절)  그는 3m에 달하는 거인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을 어떻게 점령하려고합니까?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85세나 먹은 당신이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하겠느냐, 그만두어라. 그들은 거인들이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지 않느냐. 더구나 당신은 아들도 한명 없지 않느냐’  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11지파의 입을 그는 어떻게 막습니까?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14;12)  

‘혹시’라는   말은 불신앙이 아닙니다. 그의 지극한 겸손입니다.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이것이 85세 노인의 진정한, 변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40세 때에도, 또 45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그의 믿음은 여전합니다.  성도여러분, 자기의 힘과 건강, 재능과 열심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여호와, 그들을 에굽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를 성실히 믿는 그런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곧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구약의 수 많은 사람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진 것처럼 믿고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바라는 것들, 소망 중에 있는 것들을... 마치 이루진 것처럼... 그렇게 붙들었고, 하나님은 그렇게 믿는 자들에게 믿음대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멘! 
 
성도여러분, 아들도 없고, 85세나 먹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천지간에   친구하나 없는 외로운 노인 일지라도, 그는 자기를 보지 않습니다. 거인족 들이 아무리 강하고 그들의 성읍이 크고 견고해도, 그들은 여호와보다 약합니다. 약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멘? 아멘!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남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은 ‘신앙’이 있습니까??? 세상의 모든 문제를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푸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  내가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과 이세상과의 문제라고 생각 하느냐 이 말입니다.  갈렙은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의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헤브론”을 점령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작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작게 여기지는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믿음으로 세우십시오. 그것이 바른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구하라 주실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가 얻을 것이요 찾는이가 칮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말라 ....”(약1;6-7)   아멘 !!!  문제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런 생각으로 자기의 인생을 이해하고 있나요? 또 얼마나 성경의 약속을 강하게 붙잡고 있나요?  믿음이 있나요? 없나요? 

갈렙이 여러분에게 도전이 되나요???  
갈렙이 여러분을 자극하나요?
갈렙처럼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온전합시다.  
갈렙처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담대히, 믿음으로 기도하시는 사람이 한 명이 있으면 됩니다.  한 알의 씨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한명이 내가 되겠다’ 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인생의 꿈과 비젼은 절대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니 무관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비극입니다.  우리 각 사람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각 사람의 꿈이요, 비젼입니다.  다 그런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십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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