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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믿는 기쁨 (시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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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기쁨 (시 4:1~8)


지난 주 설교에도 잠간 밝혔습니다만 올해 60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올해 60이 되었다는 것이 참 감사하고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쑥스럽지만 참 대견스럽습니다. 지난 60년의 삶을 돌이켜 보니 참 재미있게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육이오 사변 통에 태어나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살았지만, 때때로 힘들고 고통스럽고 몇 번은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재미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노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는 저에게 공부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거의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 원 없이 마음껏 잘 놀았던 것 같습니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팽이 돌리기, 썰매타기, 대나무 스키타기, 딱지치기, 구슬치기등등 정말 원 없이 건강하게 잘 놀았습니다. 

청년 때에는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탁구와 테니스를 많이 쳤었습니다. 신대원을 다닐 때까지도 거의 탁구장에서 살았고 테니스도 탈진할 정도로 열심히 쳤었습니다. 테니스화가 한달로 못가서 구멍이 날 정도였습니다. 야구도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던 것은 교회였습니다. 교회생활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주일학교 때는 제가 노래와 성경암송을 잘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늘 교회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재미있었고, 중고학교와 청년부 때에는 교회에서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형제 없이 혼자여서 늘 외로웠던 저는 교회에서 정말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너무 재미있어서 참 교회에 열심이었습니다. 

교회가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신학을 하게 되었고 전도사와 목사가 되었는데 다행히도 목회가 늘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목회가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들 때도 있고, 부담이 되는 때도 있고, 상처가 되는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목회는 즐거웠습니다. 교회에서 맡은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대부분 다 잘되었습니다. 설교도 즐거웠습니다. 저는 설교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설교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설교하는 것이 즐거워 설교를 구상하고 준비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목회가 직업인데 그 직업인 목회가 다행히 재미있고 즐거웠기 때문에 참 행복했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목회하고 싶습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미고 사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해도 될까요? 결혼 한지 30년이 넘었는데 저는 아직도 제 아내가 예쁩니다. 저는 제 아내가 만족스럽습니다. 아내가 싫어지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지지 않으니 가정생활이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제 집에도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늘 예뻐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이 가정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정생활이 재미있었다고, 그리고 지금도 재미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들 셋을 낳아 키우면서 아이들 때문에 늘 행복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크게 걱정하고 속을 썩은 일이 없었습니다. 벌써 둘이나 결혼을 해서 출가하였지만 아들들과 사이가 좋습니다.

아들만 있어도 재미있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손녀를 보았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 제 아들은 군인이어서 계룡대에 살았습니다. 손녀가 태어난 한 달 동안 제가 아들 집을 여덟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차가 막히지 않아도 세 시간을 잡아야 갈 수 있는 곳인데 한 달 동안 여덟 번이나 다녀왔다는 것은 도저히 계산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손녀 때문에 세상사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큰 아들 가정이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 일 년 반 정도를 제 집에서 살다 갔습니다. 45평 아파트에 4대가 함께 살았습니다. 퇴근길이 늘 행복했습니다. 집에 강아지 한 마리만 있어도 행복하고 발걸음이 가벼워지는데 집에 손녀딸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늘 달리는 차에서 뛰는 심정으로 퇴근을 하곤 하였습니다.

큰 아들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손녀딸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안식년을 갈 때가 되어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났습니다. 아들네 집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하고 일 년 가까이를 손녀와 함께 보내다 왔습니다.

미국 가서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큰 아들의 권유로 시작하였습니다. 오랜 당뇨병을 앓는 제 아비 건강이 걱정이 되었는지 미국에 있는 동안 골프를 하라고 강권하였습니다. 못이기는 척 시작하였고, 본래 운동을 좋아하고 조금은 잘하는 편이라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맛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골프가 재미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재미 있는 일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시작한 운동인데 그것에 재미들리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은 골프 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았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이 부담이 되어 미국에 있을 때처럼 할 수는 없지만 한 달에 두 세 번은 최소한 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어쩌다 약속이 잡혀 골프장에 나가는 날에는 전날 잠을 설칩니다. 그렇게 설렙니다. 저는 그게 재미있습니다. 저도 이제 60인데 아이처럼 설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가능하면 죽을 때까지 가슴 설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있는 일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아내와 보드게임을 합니다. 루미큐브라고 하는 게임인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제 아내가 특히 좋아하고 잘해서 제가 ‘루미큐브 한 판 할까?’하면 아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전에 큰 아들이 있을 때는 아들이 포커 게임을 가르쳐 주어서 식구들과 하곤 했었는데 그것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빨리 목회를 정리하고 은퇴하면 아내와 그런 게임들을 더 많이 배워서 해도 지루하지 않게 세월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과 인생을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재미도 세상에는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잘못된 재미에 빠져서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도박이나, 불륜이나, 술취함과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건강하고 허락된 재미라고 하여도 중독이 되어 도를 넘어서는 것을 옳지도 않고 좋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재미란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조미료와 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저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인생을 제법 재미있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그 많은 재미중에 가장 재미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손녀딸 재롱 보기입니다. 손녀 딸 만나기입니다. 손녀딸과 통화하기입니다. 며느리가 자기 홈페이지에 올려주는 손녀딸들 사진 보기입니다. 앞으로 한 달 쯤 있으면 미국에 있는 손녀딸을 만나게 될 겁니다. 시카고에 집회가 있은데 시카고에 간 김에 뉴욕엘 들러서 잠간이라도 손녀딸들을 보고 오려고 합니다. 마치 어렸을 때 소풍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손녀딸과 관계된 재미가 제가 맛보는 재미 중 가장 재미중에 하나입니다. 손녀딸 보는 재미와 비슷한 재미들이 있느냐 물으면 혹 몇 개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녀딸 보는 재미보다 더 큰 재미가 이제껏 설명 드린 재미중에 있느냐 물으신다면 그건 당연히 no입니다. 

그러나 설명 드린 재미중에는 당연히 없으나 설명 드리지 않은 재미중에는 손녀딸 보기 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꼭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예수 믿는 재미입니다. 이것은 목사로서 설교시간에 그냥 설교하기 위하여 하는 상투적인 말이 아닙니다. 저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은 손녀딸 보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예수 믿기입니다. 저는 세상에 예수 믿는 것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인 다윗의 시편 4편이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7절이 좋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세상에 제일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입이 많아져서 이것, 저것을 풍성하게 그리고 풍족하게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인데도 그런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또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앞에서 제가 언급한 재미중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한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아마 다윗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미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를 믿는 기쁨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너무나 부족하지만, 그래서 다윗과 비교한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지만 저도 다윗의 고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히 저도 그렇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저도 세상에서 예수 믿는 것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그 재미는 손녀딸 보는 재미도 따라 올 수 없는 재미입니다.

예수 믿는 재미에는 은혜 받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설교를 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노래를 제법 불러서 가끔 예배 중에 특송을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특송을 하게 되면 꼭 순서를 설교 후에 넣어 달라고 부탁하였었습니다. 설교 중에 하는 찬송과 설교 후에 하는 찬송이 제게는 달랐습니다. 설교 후에 하는 찬송이 언제나 더 잘 되었습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으면 소리도 좋아진다는 것을 어렸을 때 이미 알았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받는 맛을 참 기가 막힙니다. 설교를 들을 때 은혜를 받는 기분도 참 좋습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은혜를 받아 가사를 이어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진정해야 하는 재미도 끝내 줍니다. 은혜 받는 재미를 알게 되면 예수 믿는 부담과 상처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은혜 받는 재미를 알지 못하게 되면 재미 대신 상처와 부담만 늘어가 예수 믿는 것이 점점 재미없어 집니다.

예수 믿는 재미에는 축복받는 재미가 있습니다. 찬송가 중에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는 가사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 것이 심히 기쁜 일인가 하면 받은 증거 즉 받은 축복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은 다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라고 할 때 약(約)이 바로 약속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라기 3장 10절 이하에는 십일조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도 철저히 약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내 창고에 들이면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여기고 땅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 부어 주시겠다는 식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거신 조건들이 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 이하에서는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그 내거신 조건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부담스럽습니다. 무겁습니다. 좁습니다.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머뭇거립니다. 의심합니다. 그러다가 포기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조건이 힘들고 어렵고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그 일들을 합니다. 그러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십니다. 약속된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이하에는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하시고 두드리면 열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약속을 하나님은 언제나 지키셨습니다. 오늘 시편도 기도로 시작합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다윗에게 기쁨이 되었은데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세상 사람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조금씩 맛보고, 연습하고 있는 예수 믿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닮아가는 재미입니다. 예수님 흉내 내기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일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내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망가진 아이들이 교육전문가의 진단과 처방으로 현격하게 아이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를 믿으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아주 조금씩이지만 저는 매일, 매일 달라지려고 노력합니다. 왜 노력을 하냐하면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예수님을 닮지 못했지만, 지금은 겨우 흉내를 내보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예수님 흉내 내기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특히 예수님처럼 생각해 보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해 보기에는 세상을 거꾸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언급하지 않은 재미중에 또 하나 큰 재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혹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연애하는 재미입니다. 어제 둘째 아이와 함께 집에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저와 함께 영화를 봐 주는 둘째가 고마우면서도 속상했습니다. 한참 좋은 나이에 애인 하나 없어서 토요일 날 애비하고 영화를 보는 둘째가 불쌍했습니다. 불쌍하기 보다는 속상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가는 젊은 연인들을 볼 때마다 저는 제 둘째를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연애하는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그냥 문학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상투적인 설교의 표현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연애하는 재미입니다. 예수 믿는 재미를 느끼다보니 예수님이 점점 더 좋아집니다.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다보니 사는게 재미있습니다. 세상에 천국 같아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 눈에도 제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연애하는 것이 보여지는가 봅니다. 얼마 전 둘째가 자기 홈페이지에 저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저로서는 죽어도 좋을만큼 감동적인 표현을 해 주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여 예수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늘 예수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해 주었습니다. 아들 눈에 제가 그렇게 비쳐졌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큰 축복입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이 공부하는 재미를 모르는 아이들이 날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불쌍한 것이 예수 믿는 재미를 모르면서도 주일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는 재미에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7절에 한번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는 재미, 축복 받는 재미, 예수님 닮아가는 재미에 한번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연애하는 재미에 한번 푹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라는 찬송의 가사가 무슨 뜻인지 몸으로, 삶으로 이해되게 되실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재미 때문에 세상에서도 천국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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