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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힘으로 용납함 (벧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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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힘으로 용납함 (벧전 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I. 본문해설 

본문은 우리가 버려야 할 육체에 속한 일-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언급한 지난주에 이어서,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비방하는 말과 관련하여 우리는 형제의 허물과 잘못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악의로서 비방하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교회의 몸을 더럽히는 일인지 이미 배웠습니다. 

II. 네 형제를 비방할 때 

사실 우리가 형제를 비방할 때, 그것은 형제의 허물과 잘못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물과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잡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올바로 세우는 것이 신자의 도리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비방’은 바르게 하고 마치 의사가 환자의 몸을 다루듯, 무언가 강건케 할 의도를 가지고 형제의 잘못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몸인 교회에 대한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방’은 형제의 과오나 잘못에 대하여 미움과 분을 내는 악의를 가지고 말하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 자체가 악의를 가지고 상대방을 비난하고, 그 이야기를 널리 퍼지게 함으로써 형제를 따돌리고 공동체로부터 잘못된 평가를 받게 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해치는 것이고, 명백히 함께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물질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사랑을 나누어야 할 교회를 끊이지 않는 비난과 부정적인 인상으로 뒤덮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은 설령 형제의 잘못과 과오가 분명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품고 용납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의 사랑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비방을 당하는 형제에 관하여 중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비방을 듣고 부정적이 될 것이고, 이미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대못을 밖아 그 부정적인 인상을 굳힐 것입니다. 

더구나 호의적인 인상을 가졌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비방은 부정의 그림자를 드리워 형제에 관해 그릇된 선입견을 갖게 할 것이므로 비방은 끊임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체들의 관계를 파괴하고, 교회 전체를 병들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비방하는 사람에게 옳은 판단을 내렸을지라도 그것이 비방으로 이어지는 한, 교회 몸 전체는 손상을 입고, 비방 당한 사람보다 비방한 자의 죄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사실들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누구의 어떠한 잘못과 허물을 보든지 그것을 그리스도의 몸 전체 안에서 볼 수 있어야 하며, 사랑으로 그 모든 문제들을 올바르게 다루고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은 형제의 과오를 목격할 때 우리가 어떻게 은혜의 힘으로 그것을 용납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밝히 보여 줍니다. 그것이 바로 ‘허물을 품는 사랑의 힘’입니다. 


III. 허물을 품는 사랑의 힘 

사도는 이런 허물을 품는 사랑의 힘이 어떻게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그 비결은 바로 앞 절에 열거된 우리가 버려야 할 것 다섯 가지와 짝하여, 취해야 할 오직 한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신령한 젖”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A.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는 은혜의 힘이야말로 지체들을 용납하고 허물을 품으며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진실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사도가 말한 “신령한 젖”이 그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질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사랑의 감화를 불러일으키고, 항상 우리의 육체에 속한 욕심을 버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형제의 명백한 오류와 잘못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런 허물을 품는 힘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곧 이것은 은혜의 힘이 사랑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성경은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령”하다는 것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육체가 육체에 어울리는 양식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영혼도 정신적이고 영적인 자원을 섭취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 신령한 자원이 바로 말씀이며, 몸인 교회 전체에 말씀으로 인한 사랑의 감화가 충만할 때 그것은 마치 강한 면역력을 지닌 육체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그렇게 건강을 유지할 때 육체의 일을 버릴 뿐만 아니라 형제의 허물을 은혜의 힘으로 용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하나님의 말씀이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가 “순전한”이라고 표현을 덧붙인 것은 ‘순수한 사랑의 힘’과 ‘순수한 은혜’또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사실 진리뿐만 아니라 심지어 오류와 악도 우리에게 감흥이나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감동, 감흥, 능력과는 현저히 다릅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도록 만들고 그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도록 우리를 바꾸어 줍니다. 그래서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를 받은 영혼은 순수한 진리를 사랑하고 기뻐하며, 다른 사람에게 이 진리를 나누어 주고 싶어 하고, 진리의 힘으로 오류를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몸 전체가 이러한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룰 때에 교회는 공동체적으로 끊임없이 육에 속한 것을 버리면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사모하게 되고, 지체들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는 일은 교회가 일치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데 매우 중요힌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신자 각 사람을 갖난아이처럼 가슴에 품고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이며, 그 은혜의 힘으로 성도들이 지체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일치를 이루며 나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B. 갓난아이들 같이 

그런데 이 말씀을 성경은 갓난아이들과 같이 사모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태어난 지 불과 몇 분이 흐르지 않았는데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아이는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는데 힘차게 어머니의 젖을 빱니다. 이것은 마치 교회의 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풍부하게 섭취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쑥쑥 자라는 것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물고 있는 아이에게는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갓난아이의 모습을 육체의 일을 버리고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해 절실히 사모하는 성도의 모습에 비유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갓난아이와 같이 말씀을 사모할 때, 형제의 허물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을 받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형제를 용서할 때, 우리 자신의 위대함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C. 영적 성숙의 길 

뿐만 아니라 본문은 죄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가 이렇게 끊임없이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사모함으로써 영적인 성숙의 길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이것은 우리가 지복의 상태에 계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그런 의미에서의 또 다른 성화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닮은 것만큼 교회 전체가 공동체적으로 예수를 닮은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인데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불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어떤 형제의 허물과 잘못은 교회에 해로운 것이고 교회에는 그것이 악한 것이겠지만,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악한 것도 선한 것으로 바꾸어서 결국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종종 교회에 형제들의 허물과 잘못을 통해서 오히려 주님의 교회를 더 올바르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도 하나님이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 것을 주시지 아니하고, 나빠 보이는 것을 통해서도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어떤 형제의 허물과 과오는 나쁜 것이지만 그것을 지체들이 사랑의 힘으로 품고 은혜의 힘으로 용납할 수 있을 때에 오히려 그것은 영적인 성숙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혹은 개인에게 어떤 오류와 잘못이 있을 때에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다루고 나면 오히려 이런 오류와 잘못이 없었던 때보다도 더 순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사모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버리고 멀리 방탕하였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면, 마음은 더러워졌는데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소중함을 알고 그리고 진리의 가치를 새롭게 깨달아 알게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VI.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의 잘못과 허물을 볼 때에 마음에 있는 악의로서 그것을 비방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형제들의 관계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의 감화를 받고 사랑의 힘으로 은혜의 능력으로 이런 허물을 품어줌으로써, 자신의 아픔을 통해 자신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고, 교회 전체도 온전한 교회의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바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와 같이 부족한 사람들을 각각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거룩한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험한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양무리가 되어서 한 울타리 안에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또 그 안에서 서로를 기대며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의존하는 가운데 은혜의 힘으로 서로를 용납하면서 자기를 죽이는 훈련들을 끊임없이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 지, 우리의 죄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 능력인지를 경험하면서 형제의 허물을 품는 사랑의 힘으로 이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한편으로는 육체의 일을 끊임없이 버리고 한편으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간절히 사모하여 자신에게는 없는 하늘의 능력으로, 은혜의 힘으로 형제의 허물을 품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는 주님 앞에 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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