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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넉 달 빠르게 (요 4: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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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빠르게 (요 4:27~35)


한 전당포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전당포 맞지요?> <예, 그런데요.> <미안합니다만 지금 몇 시쯤 됐나요?> <여보시오. 왜 여기다 시간을 묻는 거요? 여긴 전당포란 말이오.> <아, 미안합니다. 근데 제 시계를 거기 맡겼거든요> 

성도 여러분, 지금 시계를 가지고 계십니까? 지금 몇 시나 되었습니까? 제가 이렇게 여쭈어본다면 모두가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라면 묻지 않아도 됩니다. 예배당 저 뒤편에도 시계가 붙어 있으니까요.

우리에게는 시계가 가르쳐주는 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시간 개념이 필요합니다. 제가 여쭈어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시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로 그 또 하나의 시간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본문에는 두 가지 시간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35절 앞 부분을 보십시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간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대개 언제쯤일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기후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와 기후가 매우 다릅니다. 우리는 6,7월에 장마비가 오고, 대개 여름에 비가 집중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10-11월부터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이 비는 12월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비를 <이른 비>라고 합니다. 

이른 비가 오고 나서 2,3주간이 지나면 땅이 촉촉하게 젖고 언덕과 들판이 신록의 초장으로 변합니다. 사람들은 그 때 밭갈이를 하고 씨를 뿌립니다. 11월이나 12월에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른 비가 적절할 때 내리면 풍년이 들고, 이 비가 너무 늦게 오면 흉년이 들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비가 오고 나서 여러 달이 지나 봄이 되면 추수할 때가 옵니다. 봄에 오는 비를 <늦은 비>, 혹은 <봄비>라고 합니다. 늦은 비는 곡식이 잘 익도록 도와줍니다. 늦은 비가 오고 곡식이 무르익으면 추수를 합니다. 대략 유월절 절기가 지난 4월쯤 되겠지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온다>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 본문의 말씀을 하실 때는 12월 중순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시간개념입니다. 이런 시간개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아직 넉 달이나 남았다>고 말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연적 시간 외에 또 하나의 시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35절 끝 부분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이미 추수할 때가 다 되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계는 사람들의 시계보다 넉 달 빠르게 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계절이 흐름을 알지 못했겠습니까? 예수님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왜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첫째로, 천국의 추수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추수는 세상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천국에도 추수가 있고, 그 천국의 추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또 우리는 곡식을 추수하는 농부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추수하실 대상인 곡식입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추수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농부는 곡식을 알곡과 쭉정이로 가립니다. 알곡은 모아 천국이라는 창고에 쌓습니다. 그러나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웁니다. 여기서 불은 멸망할 지옥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는 창고교회라는 영적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고교회의 비전을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교회 교우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알곡 신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라는 의미인 줄 믿습니다. 저는 교우들 중 단 한 사람도 쭉정이가 되는 일이 없길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알곡이란 속이 꽉 찬 것을 말합니다. 속이 빈 것은 쭉정이입니다. 알곡이 되려면 자신을 꽉 채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를 채우면 좋겠습니까? 그 대답은 한 가지뿐입니다. 예수님으로 채우십시오. 예수님으로 채워 속이 꽉 찬 알곡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그 사람은 속이 빈 쭉정이처럼 됩니다.

겉으로 볼 때는 속이 꽉 찬 것 같지만, 사실은 속이 텅 빈 현상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는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께서 쓰신 <<내면 생활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란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플로리다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창 밖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의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도로의 지반이 내려앉아, 플로리다 사람들이 함몰 웅덩이 증상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계속 꺼져 들어가는 웅덩이 속으로 자동차와 도로, 잔디밭이 함몰되어 갔다. 이제 아파트가 무너질 차례였다. 이러한 함몰 웅덩이는 가뭄으로 지하수가 고갈되어 지표를 지탱할 힘을 잃을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갑자기 모든 것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면서 딛고 있는 땅 조차 안전한지 의심스러워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몰 웅덩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땅속이 텅 비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땅속이 비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위에 더 크고, 더 화려한 건물들을 지어 올립니다. 그 결과 땅이 꺼져버리고 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자랑거리들로 더 화려한 인생의 건물을 세우려고 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의 고층건물을 짓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인생의 땅속이 텅 빈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무너지고 맙니다. 세상의 것들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성공한 사람들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보도를 보셨습니까? 국내 굴지의 병원의 교수인 39세 된 젊은 의사,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서 기술을 인정받아 부사장까지 된 사람, 한국과학상을 수상하고 노벨상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던 유명대학의 교수, 이런 분들이 자살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분들이 얻은 것은 그들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입니다. 예수님 안에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새로움이 있습니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 속에는 텅 빈 가슴을 예수님으로 채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유대 사회 최고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고, 존경받는 랍비였으며, 재산가였던 <니고데모>도 예수님으로 채워지기 전에는 공허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 여리고 성의 세리장 <삭개오>도 예수님으로 채워지기 전에는 그 인생이 텅 빈 사람이었습니다. 칼타고를 거쳐 로마까지 가서 수사학 교사로 명성을 떨쳤고, 밀라노의 수사학교수로 초빙 받고 명성이 드높았던 <어거스틴>도 고백하기를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참 평안을 몰랐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인 중 한 분으로 평가되는 <이어령>선생께서도 칠십이 넘도록 살아온 자신의 삶의 공허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한 복판에 영접하였습니다.그 분이 쓰신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중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주님이 없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나, 주님을 모신 후에는 보이기 시작했고, 들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으로 채우시길 기원합니다.

채워진 사람은 알곡으로 천국의 백성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쭉정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채워진 알곡인지, 쭉정이인지를 구분하는 시기가 앞으로도 넉 달이나 넉넉히 남은 게 아니라, 지금 코 앞에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교역자 수련회를 갔을 때 어떤 분이 <김현준>이란 농구선수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기억하십니까? 김현준 선수는 이충희 선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골을 잘 넣는 선수였습니다. 국가 대표팀의 기둥이었습니다. 펄펄 날던 선수였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던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코치로 지내던 그는 불과 나이 39세이던 지난 1999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연적 시간으로 계산하면 그는 30-40년은 더 살면서 농구 발전을 위해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또 하나의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 시간은 1999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그 본인도 몰랐고, 주변 사람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미 추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넉 달 후라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왔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자신들의 인생을 채우실 것이라고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는 앞으로 넉 달을 기다리면 오실 분이 아니라, 이미 오셔서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그 분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넉 달을 더 기다리겠다는 그들의 생각은 잘못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바라보던 시계는 그만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으로 채우는 일을 뒤로 미루면 안 됩니다. 어서 서둘러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채우길 원합니다. 부디 새로운 시간을 마음에 담고 사십시오. 올해 93세의 최고령 현역 시인으로 활동하는 <황금찬>님의 <마음>이란 시가 있습니다. 

시간은 시계 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마음 안에 있다 
내가 꽃신으로 
다니던 시절 
시간은 겨우 나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내가 구름이 되어
달리고 있을 때 
시간도 그만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시간은 마음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넉 달 빠른 시간을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의 자연시간은 <그리니치 평균시 (Greenwich Mean Time)>에 맞추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영적 시간은 예수님의 시계에 맞춰져야 합니다. 우리 영혼의 시계 바늘을 넉 달 앞으로 돌이시길 바랍니다. 넉 달 앞으로 당기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언제 부르시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조금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알곡이 되어 천국에서 만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벌써 추수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일을 서두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급하셨습니다. 추수할 때가 벌써 되었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신께서 먼저 서두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을 만나셨을 때는 정오쯤 되었는데,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마을로 간 사이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당황했습니다.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시대에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마음대로 말을 걸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시간은 바로 지금이었습니다. 잠시 후면 여인은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녀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될 기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볼 때 추수할 때가 다 된 무르익은 곡식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영혼을 추수하여 하나님께로 드리기로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여인에게 말을 건네셨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셨고, 당신께서 메시아임을 밝히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여인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고자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잘 하실 때 예수님은 기쁨이 차올라 배고픈 것도 모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양식이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할렐루야!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것,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건지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사셨던 긴박성을 우리도 가지고 살 것을 촉구합니다. 할 일을 뒤로 미루지 말라고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으로는 언제나 <지금> 밖엔 없습니다. 영적으로는 언제나 <오늘>만이 있을 뿐입니다. 내일이나 <넉 달 후>를 기약하면서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서 빨리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사명을 오늘이라는 시간에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전도하는 일을 서두르시길 바랍니다. 올해 반드시 복음을 전하십시오. 부모님이 언제까지 기다려주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도 언제까지 기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전해야 할 우리도 언제 부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올해는 한 분이 한 분 이상 반드시 전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새벽부터 복음의 씨를 뿌리길 기원합니다.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은 단순한 삶의 지혜가 아니라, 영적인 차원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밭>이란 헬라어 단어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세계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눈을 들어야 합니다. 이 눈은 육체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입니다. 

여러분, 영혼의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고, 때를 분별하려면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우들이 모두 성령의 지혜를 따라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길 원합니다. 먼저 예수님으로 채워 알곡 신자가 되시고, 다른 이들을 예수님으로 채워 알곡 신자로 만들어 가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로 2월이 끝납니다. 내일부터 새로운 계절, 만물이 싹트는 축복의 계절 봄을 알리는 3월이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시계부터 맞추고 새 봄을 맞이하길 기원합니다. 이 봄에 멋진 일들을 시작하시고, 무엇보다 복음 증거의 열매를 맺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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