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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과 영광 (롬 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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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영광 (롬 8:18~25)


요즘 우리의 관심은 캐나다 뱅쿠버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시선이 쏠려 있습니다. 설명절이후에 쏟아지는 금매달 때문에 모두가 흥분하고 기뻐하고 또 즐거워하고 새로운 활기를 얻게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쇼트트랙에서 이정수선수가 금메달을 땃고 남자스피드500미터에서 모태범선수가 금메달을 땃고 1000미터에서 음메달을 추가했습니다. 여자 스피드 500미터에서 이상화선수가 금메달을 땄고 이승훈 선수가 1500미터에서 은메달을 땃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의 순위가 세계에서 5위입니다. 5위면 대단한것입니다. 우리보도 스포츠 강국인 프랑스나 중국이 금메달이 2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러시아나 영국이 전통적으로 동계스포츠에 강한데 금메달이 1개입니다. 일본은 한 개도 못땃습니다. 오늘은 골든 선테이라고 해서 금메달이 몇 개는 나오지 않느냐하고 있지만은 여러분 생각날때마다 우리선수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상화선수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 선수는 11살 때 아버지가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서 선수들이 타는 스케이팅120만원 짜리를 10년전에 사줬다고 합니다. 그 어려운 사림에서 그것을 사주고 나니까 얼마나 이 소녀가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나사 자기 아빠에게 동계훈련중에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가 말씀하신대로 포기하지 말자 힘들어도 꾹 참고하자 열심히하자 등등 이런말 머릿속에 입력해 둘께요 그리고 시간이 많이 남았을때 공부도 잘할께요 그리고 아빠 호강시켜드릴께요 대신 오빠에게 잔소리치지 마세요 아빠 엄마 제가 훌륭한 선수되면 집도 이사가고 세탁기도 사고 가스레인지도 사고 냉장고 가정용품은 다 사드릴께요 일부분이지만 은석초등학교 5학년 11살 때 동계훈련중 아빠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가정에서는 자기 오빠가 먼저 스케이팅을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보니까 오빠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서 오빠를 중단시키고 여동생을 시켰는데 이 여동생이 재능이 훨씬 뛰어나더란 것입니다. 어찌보면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서 오빠를 희생하고 여동생을 스케이트 선수로 키운셈입니다. 그 이상화선수는 10년동안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고 연습했는데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입니다. 

그녀가 이번 뱅쿠버 동계올림픽에 참여하기 전에 장안동 집 달력에다가 2월16일 설 다음날 자기가 경기하는 날에 동그라미쳐놨습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인생역전이라고 써놨습니다. 자기가 경기하는 그날 자기 인생이 역전될 것이다했는데 자기 예언대로 금메달리스트가 돼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뭐 금메달 하나 딴 게 대단하냐 하지만 60억 인구 중에서 제일 스케이트 잘 타는 사람이 금메달리스트 입니다. 한 가문에 몇 백년에 1명 나올 정도로 대단한 일입니다. 은메달, 동메달, 메달권에 들지 못한 이들도 다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 대회에 이미 나갔다는 자체가 국가대표 선수이고 대단한 선수들입니다. 그러나 금메달 선수들은 그 영광이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흘려온 땀과 고난이 그 금메달이란 영광 때문에 다 상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고난으로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정말 선수들에게 이 고난과 영광이 희노애락이 있는 것입니다. 

금메달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때로 신앙의 삶에서 고난이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현재당하는 고난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장차 여러분에게 임할 영광에 비교하면 그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몸이 아파서 좀 불편하다 그거 우리가 차지할 영광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좀 가난해서 불편하다 우리가 장차들어갈 영광에 나라에 비교하면 그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노래합니다.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비록 우리의 삶에 고난과 아픔이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우리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로마서를 강해해오고 있습니다. 로마서8장은 로마서에서 가장중요한 주옥같은 말씀입니다. 어떤이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책을 다 분실할지라도 로마서까지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8장만 있으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왜? 놀라운 구원의 진리가 8장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결코 정죄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자유케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서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모신이들은 어떤 특권이 있느냐?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가나안으로 나아갈 수있었습니다. 우린 인생의 방향을 알지 못할때도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면 그 길은 반드시 생명의 길이요 축복의 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무릇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을 모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5절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는 것 대단한 겁니다. 아빠라는 칭호는 아주 친절한 애칭입니다. 가까운 사이에 친밀한 사이에 부를 수 있는 애칭입니다. 아빠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의 친근감 친밀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가 말했드시 우리는 이제 종의 믿음이 아니라 아들의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종이 아버지에게 요구하는것과 아들이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아들은 자기 아버지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닐때 6학년 담임 선생님이 아주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군대 장교출신이라 그러는데 얼마나 엄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그 선생님만 보면 꼼짝 못합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을 유독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가 학교에 딱 1명있었습니다. 1학년인데 누구냐하면 그 선생님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 무서운 선생님한테 달려가서 아빠하고 안기고 용돈달라고하고 마음대로 치근치근합니다. 그래도 그 아이는 혼나지 않습니다. 아들은 아빠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두려운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빠아버지로 친밀감을 가지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께 나아가 기도하고 간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린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자녀라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어느 미국의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있었는데 무명시절에 자기 집에 쉬고 있었는데 자기 아이가 학교갔다와서 이웃집 아이하고 놀고 있는데 마침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답니다. 그러니까 이웃집아이가 자기 아빠를 자랑하면서 우리 아빠는 우리 시의 시장님하고 잘 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시장님하고 막역한 사이라니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우리는 서울시장하고 잘 안다 자랑거리가 될 겁니다. 그런데 오페라 가수가 보니 우리아이는 자랑할게 별로 없습니다. 아빠는 이름도 없는 오페라 가수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전혀 기죽지 않습니다. 야 웃기지마 너희 아빠는 시장하고 잘 아시냐? 우리 아빠는 하나님하고 잘 알아. 하나님하고 잘 안다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나더라는 말입니다. 그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얼마 만큼 대견스럽게 여기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하늘 아버지를 얼마나 자랑하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특권은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자부심과 긍지가운데 당당하게 주 앞에 나아가 요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들은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고 했습니다. 상속자의 고난도 받게 되어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가족은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함께 받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고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형제인 그리스도의 고난도 당연히 우리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의 고통인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할때 첫시간에는 마음을 열기위해 Life Story를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쭉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을 그런 고백을 합니다. 자기가 초등학교때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부자였답니다. 그 동네에서 제일 부자 부족한 게 없었답니다. 좋은옷 입고 좋은음식 먹고 떵떵거리며 살았답니다. 자기 기억에 중학교 들어갈 때 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답니다. 빚쟁이들이 와서 괴롭히고 이러는데 자기가 지금생각해도 너무 고통스러웠답니다. 학교 등록금도 못내서 학교갈 처지도 안됐고 아르바이트하고 신문돌리며 학교에 다녔다는겁니다. 

뭘 의미합니까. 아버지가 부유하면 자식도 그 영광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가난하면 아들도 그 가난과 고난을 함께 나누는것입니다. 그게 가족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울때 성도들도 교회와 함께 고난을 함께 받는 겁니다. 교회가 영광을 받을 때 성도들도 함께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셨다면 우리 모두도 이 고난을 달갑게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고난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을수도 있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성경에 보니까 우리가 그와함께 영광을 받기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없었다면 어찌 부활의 영광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고난을 당연하게 여겨야합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고난없는 그리스도인은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때로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역을 감당하기위해 전도하다가 고난받는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 왜 고난당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0절에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것이니라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을 공중권세잡은자들이 세상을 지금도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난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사단의 자녀를 핍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사단으로부터 때로는 핍박과 미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 있다면 기쁘게 감당해야 될 것입니다. 때론 그것이 우리의 질병일지라도 가난일지라도 사업의 어려움일지라도 인간관계의 갈등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앞에 주어진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 고난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극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이 있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서양 격언에 그런말이 있습니다. 냇물에 그 돌들을 치워버리면 시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 시냇물이 졸졸졸 내려가는데 돌들이 시냇물에 저항하므로 소리가 나는 겁니다. 돌들을 다 치워버리면 시냇물은 아무소리없이 흘러갈겁니다. 거기엔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난 때문에 때로는 병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깨닫는 깊은 은혜와 진리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고난앞에서 우리는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고난은 우리인생의 폭을 넓게 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그런 간증을 합니다. 자기가 아프리카에 갔는데 어느 마을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이웃마을려 가려니까 그 마을 사이에 개울이 있습니다. 마침 어제밤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이 늘어서 물살이 세서 건널수가 없습니다. 고민하고 있는데 그 말을 추장이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 저를 따라오세요 그리고 강을 건너는데 큰 돌을 들려주더랍니다. 큰돌을 들고 날 따라 오랍니다. 자기도 큰 돌을 들고 개울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 물살이 센 개울을 무사히 건널수가 있었습니다. 물었습니다. 이 무거운 돌을 왜 들고 건너느냐고 혼자 건너는 것도 힘든데.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홀로 건너면 100이면 100 그 물살에 다 떠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거운 돌을 들고 건너니까 물살이 세도 걱정없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 무게가 지켜주니까말입니다. 

힘들지만 무사히 건널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히려 우리를 안전하게 하고 우리를 보호하는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범죄했을텐데 고난 때문에 범죄를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유혹에 넘어졌을텐데 우리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만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 나온 집사님 아버님을 보니까 병원에서 입원해 계시다가 그 고난가운데 옆에 있는 분이 전도받아가지고 교회나오게 된것입니다. 자식이 그렇게 전도해도 마음이 안열렸는데 옆에 같이 고통당하는 분이 전도하니까 마음이 흔들린겁니다. 마음이 흔들려 세례받고 지금은 하나님 나라 가셨습니다만은 여러분 그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무거운 짐이 육중하게 느껴집니다. 주일이면 교회나와야하고 안나오면 찜찜하고 어쩌면 좋으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짐 때문에 여러분의 영혼이 보존될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의 직분을 감당하는데 목사님 직분이 너무 무거워요 봉사시간이 너무 많아요 불평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여러분의 영혼이 보존되고 여러분이 이땅에서 견고한 믿음에 서 있는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고난은 때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에겐 고난이 따르지만 동시에 고난보다 영광이 더크다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옛날 성경은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고 써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말로하면 세발의 피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한약방에 가면 인삼이나 황기나 저울에 달아서 팝니다. 그러면 천칭이라는 것 한쪽에는 인삼을 올려놓고 한쪽에는 추를 올려놓습니다. 그래서 인삼이 모두 몇그람이면 값이 얼마입니다이렇게 합니다. 2개의 접시가 있습니다. 천칭이라고 합니다. 한쪽에는 고난이라는것이 올려져있습니다.  

또 한쪽에는 영광이 있습니다. 천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난은 가벼워 올라가고 영광은 무거워 내려갑니다. 우리가 받을 영광에 비하면 고난은 잠시 잠깐의 일이요 너무나 가벼운 것입니다. 비교가 되지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비교해보셔야합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너무나 큰 것같고 나만 당하는것 같지만 장차 당할 영광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어떤분은 그런말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고난당하지만 사실 이 고난이 영광에 비교한다면 마치 태평양바다에 잉크한방울 떨어뜨리는것과 또같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어릴때 만년필을 선물받아 쓰는경우가 있습니다. 옛날 만년필을 잘못 꽂으면 잉크가 흘러서 옷을 검게 다 버립니다. 그래서 흰 유니폼이 시커멓게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우느라 이상한 약 바르고 태우기도 하고 구멍도 나고 그런 경험들이 있습니다. 

태평양 바다는 넓습니다. 서울에서 미국까지 가려면 태평양을 건너가야 하는데 12시간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잉크방울 하나 떨어진다고 해서 혼탁해지겠습니까. 간에 기별이나 가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큰 것 같지만 태평양에 잉크방울 같은 것입니다. 잉크방울이 고난이라면 우리 영광은 태평양 바다크기와 같은 것입니다.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고 사도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것 그것도 대단히 큰 것입니다. 채찍을 당하시고 창에 찔리시고 마지막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스러운 고난도 그가 장차 사흘만에 부활의 영광에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영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난보다 영광이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큰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영광이 얼마나 클까. 

계시록 21장 4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며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땅에서는 때로 눈물흘리며 슬퍼하며 살아가지만 아버지의 나라 영광된 나라에 갔을 때 그 모든 눈물을 다 씻겨주신다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 주님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위로가운데에서 고난도 다 잊어버릴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금메달리스트들이 금메달을 따는 그 순간에 지금까지 고생했던 것 기억도 안날겁니다. 문제되지 않습니다. 왜? 이 영광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고난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 인생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음받아 가는 겁니다. 마치 쇠가 용광로속에서 정제되고 녹아지고 불순물이 제거되듯이 정금이 되어가듯이 우리 인생이 그러한 겁니다. 

유명한 용서의 여인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출신의 코리텐 붐이란 여사가 있습니다. 이분이 나치에게 끌려가서 아우슈비츠에서 가족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자기부모들 자기 자매들 다 잃어버렸습니다. 죽임당했습니다. 자기만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 여사가 나중에 자기를 괴롭혔던 간수를 만났는데 정말 용서하기 어려웠는데 그 간수를 용서했습니다. 놀라운 간증이 됩니다. 이 여인이 어느날 어느 교회에서 간증을 하는데 식탁보와 같은 큰 천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천에 왕관을 수를 놓아서 들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 아름다운 왕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오리지날 디자인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천을 뒤로 돌렸습니다. 천 뒤를 보니까 실들이 서로 엉켜있고 무질서하게 헝크러져 있습니다. 보여주며 아름다운 왕관이 지어져가는 순간에도 우리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고난은 그와 같은 겁니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이있나. 왜 내게 이런 질병이 찾아오나. 왜 내게 이런 가난과 아픔이 찾아오나. 우린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아름다운 왕관을 지어가고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영광스러운 왕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고난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겁니다. 때로는 고통의 무릎을 꿇어야 되는 겁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가 왜 이유없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는지, 감옥에 끌려가야하는지, 왜 남의집에 끌려가야 하는지, 억울한 모함을 받아야 하는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아름다운 면류관을 지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고난은 그와같은 겁니다. 내가당한 고난이 가장 큰 것 같지만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 영광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천사들과 함께 나팔을 불며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이제 우리는 신령한 몸을 입게 될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영광 그 불멸의 몸을 입게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그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1절에서 23절까지 읽습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 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곹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본문이 어렵게 보이지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피조물의 신음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할 때 이땅과 우주만물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아 엉겅퀴를 냅니다. 인간이 죄 때문에 탄식하고 신음할 때 온 우주가 같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니까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피조물도 탄식하고있고 종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허무한데 굴복당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바라는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광중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무슨말이냐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은 몸을 입고 예수그리스도와함께 재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이땅에 올때 이 모든 피조물도 구원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일본에 우찌무라간조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쓴 글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강의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우주만물을 바라보면 다 아름답고 새들이 지져기고 바닷물은 흘러가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들어가보면 평화로운 바닷속에도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관계가 있습니다. 또 아름다운 숲속에서도 곤충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에게 먹힘당할까 봐 도망가야 하고 또 경계를 서야 하고 남을 잡아먹어야 살고 이런 것이 계속되고 있는 고통입니다. 피조물의 탄식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완전히 영광된 몸으로 구속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완전히 구원받을 때 그 때 온 우주와 피조물들도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얻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니까 우리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는 죄로인해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고 모든 피조물들도 자유와 해방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바로에게 고난당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홍해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가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까지 그들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신앙도 그러한 겁니다. 지금 우리는 죄의 종이었다가 마귀의 종이었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히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몸이 구속받은건 아닙니다. 몸은 아직도 병듭니다. 몸은 아직도 피곤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왜? 몸과 영혼이 완전히 구원받기까지는 우리는 이땅에서 고난이 계속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서 우리가 이제는 예수믿고 구원받았지만 그러나 아직 광야 40년의 삶을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난의 시간에 우리에게 임할 영광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믿음으로 인내하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마지막에 권면합니다. 24절 25절 읽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을 바라보며 소망과 믿음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보이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영원한 소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 거기에 소망이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 영원이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영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그 영광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순절에 우리가 마음깊이 새겨야할 것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의 영광을 차지하셨듯이 우리도 주님으로 인해 얻을 영광을 바라보면서 이 사순절에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우리가 그길을 따라가는 것이 사순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역전이 있습니다. 제가 앞쪽에 이상화 선수가 인생역전이라는 글을 2월 16일에 써놓고 그날 금메달을 따서 인생을 역전시켰는데 우리에게도 인생 연전이 올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역전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그 분은 워라고 말합니까? 내가 가난하게 됨은 너희로 부요케하기 위함이라. 내가 십자가에 고난당한 것은 너희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기 위함이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 그는 인생의 역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땅에서도 복을 받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힘찬발걸음을 내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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