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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 문제의 원인(2) (창 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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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문제의 원인(2) (창 3:9~1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9-13)

가정의 행복과 불행에는 내적, 외적 원인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탄이 외적 원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유혹과 공격이 항상 있습니다. 선악과(善惡果)도 우리를 괴롭히는 외적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후에 하와를 만드셨는데, 사탄은 하와를 유혹해서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써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지 않으셨어?” 했으나 하와는 “나를 봐. 괜찮지 않아?” 했습니다. 결국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고, 남편과 아내가 함께 불행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남편, 아내, 자녀, 형제 등, 가족은 물론 친구들도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9-11절을 보면 친구를 잘 사귀라고 합니다. 친구들 가운데 음행하는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 술 취하는 사람, 사기꾼들이 있으면 너와 네 가족이 불행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과는 함께 앉아 음식도 먹지 말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3절에도 악한 친구는 좋은 습관을 다 망쳐놓는다고 했습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친구들이 나쁘면 우리도 감염되어 우리의 좋은 습관들이 망가지기 쉽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타락이나 불행의 외적 요인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자신을 살피고 주위를 조심해야 합니다. 

가정의 행복과 불행에는 이런 외적인 원인 외에도 ‘나’라는 내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내가 내 가족의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나 때문에 내 주위가 잿더미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의 원인도, 불행의 원인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위 환경이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선악과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를 선으로, 혹은 악으로 이끌 수 있는 원인들입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결정권자는 나 자신입니다. 선악과가 있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를 가도 있습니다. 선이나 악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이 언제나 우리 앞에 있습니다. 선택권은 누구에게 있나? 나에게 있습니다. 선악과는 창세기 에덴동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서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을 택하면 행복해집니다. 작은 선을 택하면 작은 행복이, 작은 악을 택하면 작은 불행이 있습니다.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악을 택하면 반복적, 습관적으로 우리 인생이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꾸준히 선과 행복을 선택하면 꾸준히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선악과는 어디에나 언제나 있습니다. 피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 가정을 어지럽히기 위해서 아름다운 또 다른 여자나 또 다른 남자가 보일 수 있습니다. 내 아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요 내 남편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좋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렇게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들은 늘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디나 언제나 있습니다.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나무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불행이나 행복이 달려있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했을 때 하와가 “아니야, 나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내가 갈 길이야”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과 계속 대화를 했기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선과 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바로 선을 택해야 합니다. 악과 계속 대화하면 누구나 타락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선과 악은 우리 주변에 언제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과,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길은 언제나 있습니다. 

결혼은 무엇입니까? 많은 훌륭한 남자들, 여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한 남자, 한 여자를 인도해주셔서 그 분을 선택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었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잘 한 것입니다. “나는 이 아내, 이 남편과 함께 세상 끝 날까지 대대손손 축복의 근원이 되리라.” 이렇게 다짐하고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권력, 명예, 지위, 인기 등, 선과 악의 선택을 요구하는 수많은 선악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자체는 우리의 결정이 아니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요건들입니다. 그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선과 악 중에 어느 것을 택하느냐입니다. 외적인 원인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은 바로 ‘나’라는 내적인 원인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내적인 원인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선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악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선택하면 반드시 악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을 선택하면 선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법칙, 세상의 법칙, 자연의 법칙은 분명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콩을 심어서 팥이 나오나요? 콩을 심어야 콩이 나오고 팥을 심어야 팥이 나옵니다. 많이 심지 않았는데 많이 거둘 수 있나요? 좋은 것을 심은 사람이 좋은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언제 어디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행복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불행이 불행으로 보이지 않고 행복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유혹이요 우리의 죄성입니다. 내 속의 죄성이 나를 어둡게 만들어서 분명히 악이요 불행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행복처럼 보이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여 내가 이 길을 선택하면 행복이 올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마귀가 나를 시험하고 내 안에 있는 죄성이 나를 유혹합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완벽한 에덴동산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결국 악과 불행을 선택해서 온 인류가 멸망에 빠지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어쩔 수 없는 죄성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인인 척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한 명도 없고, 악을 행하는 우리의 경향성으로는 선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영원한 영적인 새 생명을 거저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고 새로운 영적 생명을 주신다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죄성 밖에 없었던 내 속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생명과 성품과 성령이 계십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성품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고 말씀에 준해서 선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선악과가 있고, 우리에게 매일 선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선택하는가?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자기만족적인 선택들입니다. 성경은 경고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여러분과 저는 세상을 사랑하거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시길 원합니다. 거기에만 참된 행복, 참된 의미, 사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살고 내 가족이 살고 우리 때문에 우리 주위가 살고 우리가 행복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그 길이 바로 하나님 안에만 있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순수한 선입니다. 

종종 우리는 악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악에게 뎁니다. 뜨거운 것을 잡다가 손과 마음과 영혼이 데고 상처를 입습니다. 상처 받은 내가 주위의 가족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너 왜 숨었느냐?” “제가 벌거벗어 겁이 나서 숨었습니다.” “왜 겁이 나느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내 아내가 선악과를 가져와 먹으라고 해서 먹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왜 저에게 주셨습니까? 제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저 여자를 주셨지 않습니까? 저는 책임이 없습니다.” 바로 책임 전가입니다. 변명이요 핑계입니다. 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핑계, 변명, 책임전가는 해결책이 못 됩니다. 

아담은 자신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라고 말했던 ‘그 여자’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12절).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줌으로…” 그 다음 말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먹었습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내’가 먹은 것입니다. 내 아내도 아니고, 내 남편도 아니고, 내가 먹었습니다. 결국에는 ‘나’입니다. 나와 같이 살라고 준 여자, 그 여자가 설령 선악과를 가져 왔다하더라도 “여보, 그거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잖아. 먹으면 안 돼! 우리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하자. 그리고 다시는 먹지 말자!” 이랬으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하지만 결국은 외적인 요소 때문에 ‘내’가 먹었다는 것이지요. 

모든 가정의 문제들은 나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선택을 잘하면, 내가 말을 잘하면, 내가 취급을 잘하면, 내가 좋은 태도를 가지면 가정에 불행이 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물론 외적인 원인이 있었습니다. 사탄의 유혹도 있었고, 선악과도 있었고, 나의 아내도 있었지만 결국은 ‘내’가 먹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는 결혼한 지 45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제 아내를 특히 첫 10년간 많이 괴롭혔습니다. 첫 10년이었기에 다행이지 20년, 30년, 40년이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 첫 10년 동안 실수를 하면서도 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언제나 제 아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착하고 순박한 아내인데 한번도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누구의 비판을 받아보지 않고 자라온 여자인데 왜 그렇게 아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되는지... 나의 잘못은 안 보이고 아내의 잘못만 보였습니다. 제 아내가 저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나와 다른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제 아내를 고쳐 주옵소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주문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하나도 이루어지질 않아요. 이상했습니다. ‘기도를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 기도는 안 들어주시나?’ 10년 동안 기도했지만 기도 응답이 안 되니까 더 짜증이 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여자를 나에게 주셨나?’

그런데 10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내를 바꿔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아내는 내가 10년을 노력했지만 변하지 않고 똑같았습니다. 그 여자는 초등학교 때도 그 여자, 중학교 때도 그 여자, 대학교 때도 그 여자, 결혼 한 후에도 그 여자요 변함이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그 모습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내 마음에 맞도록 주물러서, 만져서 인간개조를 하려니 되나요? 안 됩니다. 

제가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제 아내를 안 바꿔주시려
거든 저라도 바꿔 주세요.’ 그런데 그 기도는 시작하자마자 응답을 주셨습니다. 제일 먼저 온 응답이 “네 아내를 내가 창조한 대로 가만 놔 둬! 있는 대로 그냥 용납해!”하시는 것입니다. 아, 10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를 가만히 놔뒀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행복해하더라고요. 자기 모습 그대로 일 때가 제일 편안하지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라는 표현은 "Love bears all things" 즉 사랑은 모든 것을 수용한다, 품는다는 뜻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성격이 어떻든지 그저 그 대로 품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 아닙니까? 여러분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부족함, 내 죄, 내 연약함, 내 실수, 내 나쁜 습관 전부를 그대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있는 대로 영원히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그냥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도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비록 사탄의 역할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사탄도 아니고, 하와도 아니고, 선악과도 아니고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고치고 변화시키고 성숙시켜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합니다. 

불행의 원인으로 외적인 원인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가서는 ‘나’ 자신입니다. 감사하게도 이제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인생의 지침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전에는 죄성을 가진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인생의 지침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손에 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숙할 수 있습니다.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도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십시오. 제가 부족해서 제 가족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밤을 새워서 눈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교회나 성도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은 없습니다. 교회 문제 때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 자신 때문에 엄청나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저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제가 제 가족의 축복의 원인이 될지언정 불행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저를 날마다 순간마다 도와주셔서 선악 간에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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