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헌신과 봉사 (잠 14:4)

  • 잡초 잡초
  • 501
  • 0

첨부 1


드 오리아(D' Auria)의 소설로 영화로 만들어져서 유명해진 ‘High Noon'이란 영화가 있다. 게리 쿠퍼라는 유명한 배우가 주연을 했고 우리말로는 ‘백주의 결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주인공인 보안관은 마을의 법질서를 사수하려 한다. 악당들과의 대결을 앞두고 보안관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총 잘 쏘는 사람을 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은 ‘이 일이 내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나서지 않아서 결국 보안관 혼자서 결투를 벌이게 된다. 결국 보안관이 이기고 쓸쓸히 마을을 떠난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사람은 재능이 뛰어나서 지식이 많고 능력이 있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이 일이 내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헌신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뜻을 이루신다.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소를 기르려면 외양간이 있어야 하고 여물을 주어야 하고 배설물도 치워주어야 한다. 소를 기르지 않으면 외양간이 지저분하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물을 주고 배설물을 치워주고 청소를 하는 수고를 안 해도 된다. 그러나 소를 길러서 소에게서 얻는 것은 소를 기르는 수고와는 비교할 수 없다. 농사를 짓기도 하고 짐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소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지으려면 반드시 소를 길러야 한다. 외양간도 지어야 하고 여물도 주어야 하고 배설물도 치워주어야 한다. 그런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기를 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소를 이용하려면 소를 기르기 위해 수고하는 것과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것이 싫으면 소를 통해서 일을 하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힘들고 귀찮다고 해서 일을 안 하면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수고하기를 포기하면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사람들 중에 소는 기르기를 싫어하면서 소를 이용해서 이익은 보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를 이용해서 농사는 짓고 싶은데 소를 기르는 수고는 하기 싫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우리의 신앙에 무슨 의미를 주는가?
첫째, 사람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구유가 깨끗하기를 원한다면 소를 기르지 말아야 하고 소를 통해서 유익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소를 통해서 유익을 얻기를 원한다면 소구유와 외양간이 깨끗하기를 포기해야 한다. 옷을 깨끗하게 입고 더럽히지 않고 구겨지지 않게 하려면 보통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앉을 자리를 잘 골라 앉아야 하고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길을 걸을 때나 어떤 행동을 할 때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음식을 흘리거나 묻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앉을 때에도 옷이 구겨지지 않도록 자세를 항상 바르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거지의 불편함을 벗어버리고 편안하게 행동하려면 옷이 더러워지고 구겨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옷이 구겨지든 말든, 더러워지든 말든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모른다. 깨끗하게 살려면 편안하게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편안하게 살려면 깨끗하게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처럼 사람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가질 수는 없다. 

둘째, 편안하고 쉽게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를 기르지 않으면 외양간도 깨끗하고 또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소를 기르지 않으면 힘들지 않게 편안하게 살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농사를 짓는데 무척 힘이 들고 불편하다. 남들은 소를 기르고 소를 부리며 쉽게 농사를 짓는데 나는 소를 안 기르고 편안하게 살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힘들게 산다.

인생은 편안하게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편안하게 사는 것이 참된 행복이 아니다. 우리는 편안한 삶이 아니라 평안한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평안하게 사는 것이 참된 인생의 행복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편안하고 쉬운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신다.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책에서 저자 데이빗 씨맨즈는 자기 아들의 다리를 고친 이야기를 한다. 그가 인도 선교사로 있을 때 아들이 태어났는데 발이 기형이었다. 그 발을 고치기 위해서는 한 달 안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큰 병원은 무려 800km나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치료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힘든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아야 했다. 마지막 수술을 마친 후에 의사는 엄마 아빠가 힘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음료수 병처럼 생긴 통에 솜을 감은 기구를 주면 매일 아이의 발을 올려놓고 발이 구부러졌던 반대쪽으로 구부려 주라고 했다.

아이는 그때마다 아프다고 하면서 ‘아빠, 하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꾸준히 그렇게 했더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 아이는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과 야구를 할 수도 있게 되었고 대학 때는 사촌형과 함께 테니스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씨맨즈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려고 오셨다.” 편안하게 살려고 하면 성장하지 못하고 인생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희생과 투자가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일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아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고 아무리 간절히 구해도 주시지 않는다.

데살로니가후서 3:10에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놀고먹으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만이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시편 126: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라고 기도하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고 간절히 기도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울더라도 나가서 씨를 뿌리는 수고가 있어야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것이다.

즉 “심는 대로 거둔다”는 뜻이다. 수고하면 정당한 대가를 얻는다. 그러나 수고하지 않으면 얻을 것이 없다.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즉 아무 것도 심지 않고 거두려 한다든지, 이것을 심고 저것을 거두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망령된 생각이다. 하나님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는 자에게 갚아주시고 응답하시고 상급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고 일해야 한다. 

넷째, 하나님의 일도 우리의 헌신과 봉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땅과 역사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때에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사람들을 찾으신다. 이사야 6:8 “우리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가겠는가?” 이 때 이사야처럼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헌신하는 사람을 사용하시고 일하신다. 

교회생활에서도 일은 하지 않고 복과 은혜는 많이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는 하지 않고 응답받으려는 사람, 말씀을 읽거나 배우지 않으면서 신앙은 자라기를 원하는 사람, 예배에 열심을 내지 않으면서 은혜를 받으려는 사람, 봉사는 하지 않으면서 상은 받기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받을 복도 없고 받을 은혜도 없고 받을 상급도 없다. 내가 스스로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하고 전도하고 봉사해야 상급을 받는 것이다.

교회생활은 적당히 해야지 너무 깊이 들어가면 복잡하고 힘이 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배우기를 힘쓰고 열심히 봉사하면 그로 인해 얻는 것이 훨씬 많다. 그런 자세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 않고 복을 못 받는다.

또 봉사를 하되 어렵고 힘든 일은 하지 않고 쉬운 일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수고를 해도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할 일은 잘 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밖으로 드러나고 눈에 띄고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에만 열심을 낸다. 그러나 그런 자세는 참된 섬김의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보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헌신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수고를 갚아주신다. 이 땅과 하늘나라에서 복과 은혜와 상급을 주신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받는 복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일반적인 복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나 안 믿으나 누구나 차별 없이 똑같이 받는 것이다. 마태복음 5:45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둘째, 성도가 받는 복이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받는 복이다. 환난에서 보호해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복 등이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 요한복음 16:24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셋째, 일군이 받는 복이 있다. 디모데후서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일하는 사람은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항상 먼저 복을 받는다. 또한 일군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께 더 많은 복과 은혜를 받는다.

성도가 받는 복 중에 기도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군의 복은 일하는 사람만이 받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기도로 얻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시간과 물질과 힘을 드려 봉사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로 인해 얻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사랑의 열매가 맺어지고 많은 일을 하게 된다. 전도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큰가? 하나님께 영광, 교회의 부흥, 영혼 구원, 하늘나라의 상급 등이다.

구역장을 하는 것도, 남선교회나 여전도회의 임원을 하는 것도 모두 힘든 일이다. 교회학교 교사를 하는 것도 남달리 수고와 헌신과 기도를 많이 해야만 한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에, 상급과 축복이 있는 일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힘을 다해 수고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둔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요 이동 수단으로 역마차를 이용했다. 역마차 크기는 작아도 좌석이 세 칸으로 나뉘어 있어서 1, 2, 3등석 세 종류의 승차권을 판매하여 운행했다. 그 때만해도 지금처럼 반듯한 도로가 아니라 포장되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에 한참 달리다보면 고장이 나서 몇 번씩 정차하여 수리를 해야 했다. 그때는 어느 좌석에 앉았느냐는 역마차를 탄 사람들에게 무척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 때야말로 1 ,2 , 3등석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1등석에 앉은 사람은 고장이 나도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다. 2등석에 앉은 사람은 고장이 나면 마차에서 내려 수리될 때까지 서서 구경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3등석에 앉은 사람은 고장이 나면 즉시 내려서 마부와 함께 마차를 수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부들은 출발하기 전에 누가 3등석에 앉았는지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3등석 승차권을 가진 사람들이 일꾼의 역할을 제대로 해줄 때 역마차가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3등석에 탄 사람들이 1등석에 탄 사람들보다 더 중요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3등석에 탄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거나 팔짱을 끼고 서서 구경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받을 상이 아무 것도 없다. 오직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는다.
힘들게 땀 흘려 일하고 먹는 밥이 맛있고, 놀고 딩굴다 먹는 밥은 맛이 없다. 일하는 신앙일 때 은혜도 잘 받고 신앙도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잘 자란다. 그러나 일하지 않으면 신앙도 자라지 않고 감사도 사라지고 신앙생활에 재미가 없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소가 없어서 구유가 깨끗한 것을 택하고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을 포기하겠는가? 아니면 소가 있어서 구유가 깨끗할 것을 포기하고 소의 힘으로 많은 것을 얻는 것을 택하겠는가? 어떤 것이 지혜로운 생각인가?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다. 선한 일이기 때문에 낙심할 일도 생기고 그만큼 힘이 들지만, 반드시 열매를 거둔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충성하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