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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끄럽지 않은 부부 (창 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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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부부 (창 2:24~25)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24-25

금년에는 작년보다 여러분의 가정이 더 행복해지고 교회도 더 건강해지길 원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건강한 가정들이 많이 모인 곳입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둘을 전혀 다르게 만드셔서 조화를 이루게 하시니 감사할 일입니다. 본문을 보면 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데, 아담과 그 아내가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 앞에서, 아내가 남편 앞에서 완전히 자신의 몸을 노출했는데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에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부부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막힌 것이 없습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도 막힌 것이 없습니다. 벌거벗은 것처럼 몸도 마음도 영혼도 완전히 노출되어 숨기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부부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편안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가정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남녀의 성(性)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마치 인간이 성을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말합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로부터 출발하여 마치 성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있고, 반대로 그것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거나 죄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있는데 둘 다 적합하지 않습니다. 최근 어느 교수의 저서로 인해 한국교회에 말썽이 생겼습니다. 그 교수는 부부를 돕기 위해 “하나 되는 기쁨”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솔로몬과 그 아내의 사랑을 묘사한 아가서를 너무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책을 너무 선정적인 해석이라고 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실명을 밝히지 않고 대신 ‘최희열’이라는 필명을 썼습니다. 아마 이름을 밝히기가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자신이 주저하는 일을 왜 하느냐는 겁니다. 그 책이 문제가 되자 출판사에서 더 이상 발행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만큼만 알면 됩니다. 하나님이 모호하게 써 놓으셨으면 모호하게 알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써 놓으셨으면 확실하게 알면 됩니다. 하나님이 써 놓으신 것보다 더 확실하고 자세히 알려고 하거나, 신비스럽게 숨겨놓은 것을 다 파헤쳐놓으려 하면 자칫 문제를 일으키거나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성경에 조금 언급한 것을 많이 한 것처럼 하다가 이단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라고 하신 것은 알고, 모르게 두신 것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제가 26세에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을 때, 그 신학교 총장 맥크레이 박사님은 70세셨는데 20세부터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친 분입니다. 수업 시간에 어느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총장님, 이 부분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총장님은 “난 모르겠네!” 하십니다. 저는 속으로 ‘아니, 평생 신학을 공부한 분이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저 분이 모르면 누가 아나?’하며 의아해 하였습니다. 

총장님은 “성경이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모르네”라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만약 저라면 “성경에는 없지만 나의 학설은 이렇다”라는 말이라도 했을 텐데... 저는 비로소 ‘저분이 진짜 아는 분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그 분에게 배워서 저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합니다.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가르쳐주신 것은 정확히 알되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은 모른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본문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결혼하고 부부가 된 후에는 완전히 몸을 노출하고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결혼의 관계를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장 좋은 작품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너무 아름답다, 너무 훌륭하다, 너무 좋다”고 평을 하셨습니다. 바로 여러분을 보고 “참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몸이 아름답고 좋은 것임을 분명히 믿고 사십시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계획하신 작품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 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고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디자인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자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부부간에는 완전히 노출된 몸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작품인데 스스로 좋지 않다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나서 하나님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하고 찾아오시자 아담은 “제가 두려워서 숨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왜 두려우냐?” “제가 옷을 벗고 아무것도 안 입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몸을 부끄러워할 것이 있습니까? 문제는 몸이 아닙니다. 그 마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마음이 고장 나니 몸을 탓합니다. 여러분, 짐승들이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을 보셨습니까? 소, 돼지, 양, 말, 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떳떳하게 다닙니다. 인간만이 벗은 몸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각자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하나님이 디자인한 최고의 작품인 줄 알고 다윗처럼 기뻐하고 감사하며(시편 139:14)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결혼을 한 분, 나이가 들어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떠난 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혼자되신 어르신들은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 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각하면서 건강하고 건전하고 행복한 부부로 살도록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결혼할 분들은 ‘남편과 아내는 벌거벗은 것을 수치스럽고 잘못된 것으로 느끼거나 죄악시해서는 안 되는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가족을 이루게 하셨으니 부부간에는 벗은 몸이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5장 15-18절을 보면 부부가 성적 만족감과 즐거움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목적이라 했습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15절). 자기 아내나 남편을 우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16-18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한 남자와 여자를 인도하셔서 남편과 아내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디자인과 목적 속에서 내 집의 우물을 마시면서 복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의 아내에 대한 사랑의 시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아내의 몸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기쁨과 황홀함을 묘사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내 술람미 여인을 만나서 자기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보고도 놀랐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내의 눈빛을 보고 놀라십니까? 너무 안 놀라서 걱정 아닙니까? 신비함이 다 사라졌습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아내의 눈빛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새로운 은혜, 새로운 사랑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솔로몬은 자기 아내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해서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사용한 표현을 지금 여자들은 그다지 좋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놀랍게 하는 눈, 염소떼 같은 머리 털” 그 시대에는 최고의 표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머리카락을 보고 감탄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솔로몬은 아내의 치아를 보고도 감탄했습니다. “암양떼 같은 이”라고 했습니다.

왜 솔로몬의 아내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아십니까? 솔로몬의 눈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봅니다. 아름다운 귀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좋게 듣습니다. 아름다운 입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운 말을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느낍니다. 세상이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않은가, 내 남편이 멋이 있는가 없는가는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아름답게 보면 아름다운 것이고 멋있게 보면 멋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 저에게 “목사님, 오늘 참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제 대답은 “은혜 받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설교를 듣고도 “뭐 저런 설교를 하나?”라는 분도 있습니다. 설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설교를 듣는 귀와 마음과 눈에 따라 은혜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시험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아내와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할 때는 남편과 아내가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눈과 귀와 입을 축복하셔서 여러분 자신이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슴 속에 사랑이 있으면 상대방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가 있고 어지럽고 복잡하고 고통스러워서 아내와 남편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내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세요. 내 아내, 남편, 자식, 형제를 볼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솔로몬처럼 모든 것에 감격하며 사는 새로운 인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아6:3절). 서로에게 소속감을 느끼고,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더 나은 반쪽(better half)이라는 가치관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가서 7장 1절에서 10절을 보면 솔로몬이 자기 아내를 바라보는 눈이 얼마나 자상하고 세밀한지 모릅니다. 발, 다리, 허벅지, 배꼽, 가슴, 목, 코, 머리, 머리카락, 키, 심지어 숨결, 입술도 관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아내요,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더 아름답고 더 신기하고 더 놀랍습니다. 남자로서 자기 아내를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벧전3:7). 지식을 따른다는 것은 아내를 철저히 연구하라는 뜻입니다. 아내의 몸, 마음, 습관, 언어, 태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자세히 연구해서 자기 아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보통 2년 정도 연애를 하면 상대방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결혼 후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전에는 좋은 것만 보였는데 이제는 나쁜 것도 보입니다. 남편과 아내에 대해 자세하게 다 알아서 그 지식에 따라 좋아하는 것은 좋게 해 주고, 안 좋아하는 것은 하지 않고, 적절하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비교의식 때문에 자신을 과소평가합니다. “두 사람이 몸을 완전히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몸은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나로 만들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나를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과 비교할 때 열등감이나 우월의식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은 63억 인구 중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사람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감격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부간에 서로가 서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배꼽이 왜 그렇게 생겼어?” “눈은 그 모양이야?”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왜 부끄럽게 만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나로 만들어 가는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걸작품에 대해 불평하지 마세요. 좋은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요, 부부의 성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부부의 성 생활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제가 지금 차고 있는 시계는 만든 지 40년 정도 된 시계입니다. 저는 이 시계를 참 좋아합니다. 시계 역할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비싸지 않은 시계지만 스톱 워치, 초침, 알람, 날자, 요일, 이중시간도 있고 시간도 잘 맞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계가 있어도 안 찹니다. 왜? 이 시계가 제 역할을 아주 잘 하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셔서 부부로 만들어 가족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에 부부간의 성적인 관계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불을 꺼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기뻐하십니다. 부부가 하나님이 디자인한 대로 서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기쁨을 나누고 만족하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고 기뻐해?’ 이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시계가 제 역할을 할 때 시계를 만든 사람이나 소유한 사람이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부부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기뻐하시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부부의 관계는 사랑이 근본입니다. “사랑은 친절하고 사랑은 부드럽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다.” 사랑은 상대방을 화나게 하거나 부끄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생활의 책임입니다. 자기의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쁨을 찾는 것이 사랑의 근본입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전7:3). 배우자를 기쁘게 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부부의 성생활은 사랑이요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성경 가운데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신24:5). 이것은 3500년 전 이야기입니다. 젊은이가 막 결혼을 했는데 전쟁이 났다면 그 남편을 전쟁에 데려가지 말고 1년 정도는 집에서 한가하게 아내를 기쁘게 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지혜로우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첫 해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막 결혼한 남녀가 결혼 첫 해에 생활의 패턴을 제대로 잡아야 나머지 생애를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기쁘게 하는 훈련을 철저히 하라는 것입니다. 신혼이 얼마나 중요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겠습니까? 요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오래전에 모세를 통해 신혼부부를 철저히 보호함으로써 그들이 상대를 기쁘게 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왜 남편이 소중합니까? 남편이 아내를 기쁘게 해 주니까요. 왜 아내가 소중합니까? 아내가 남편을 즐겁게 해 주니까요.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가정생활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아내는 남편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지금이라도 그 가르침을 따라 우리 가정이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경에서는 성(性)의 목적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정상적인 부부는 아이를 갖습니다. 요즘은 결혼 후 늦게까지 아이가 안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자들의 정자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으니까요. 특히 맞벌이 부부는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하지요. 생활습관 때문에 임신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부는 임신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을 창조하신 목적이거든요. 

우리 교회도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계속 아이들을 낳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얼마 전에도 멀리 이사 간 젊은 부부가 100일 된 아기를 데리고 오랜만에 왔는데 그 아이가 저를 보는 순간 싹 웃는 겁니다. ‘어떻게 아기가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 저렇게 웃나?’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웃고 또 웃는 거예요.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지요. 아기 발바닥에 십자가가 있다기에 양말을 벗기고 보니까 정말 십자가 모양이 있어요. 
하나님의 축복은 아이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요새 젊음이들 중 30%가 아이가 필요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부를 만드시고 성생활을 하게 하신 것은 아이를 출산해서 그 생명의 기쁨과 신비를 체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나 형제, 친구, 부부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사랑, 사랑 가운데 가장 진한 사랑을 체험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앞으로 젊은 부부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돈 없어서 못 낳아요?” 걱정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 시대에는 돈 없이 아이들 10명까지 낳아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다 했습니다. 지금은 교육부에서 장학금을 줍니다. 정부에서 돈을 빌려줍니다. 기업에서도 장학금을 만듭니다. 심지어 할렐루야 교회에도 ‘김상복장학금’이 있습니다. 공부하기 싫어서 못하지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를 낳으십시오. 예수 잘 믿는 사람일수록 가족이 많아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부부의 성을 만들어 준 것은 낙(樂)을 누리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육체적, 심리적인 욕구를 채워주고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사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쯤 당신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요”라고 하자 사라는 천막 뒤에서 그 말을 듣고 깔깔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90살이 된 할머니를 웃기셨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12절). 남편과의 사랑을 낙으로 표현했습니다. 부부 사이의 성은 생명을 낳고 부부 간의 낙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편은 아내를 즐겁게 하고, 아내는 남편을 즐겁게 하여 남편과 아내가 서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보복하는 등의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의 성의 문제는 ‘성의 문제’가 아니라 평소 두 사람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서로 보통 때 짜증나게 하거나 속상하게 만들고 무시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수치감을 느끼게 하면 그것이 바로 부부생활에 연결이 됩니다. 부부의 성의 문제를 원만하게 하려면 보통 때 둘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평소에 남편은 아내를 기쁘게 하고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평소에 사이가 좋은 부부들은 잠자리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서로를 기쁘게 하는 훈련을 하셔서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 세계 400명의 최고 지도자들이 모여서 쓴 신앙고백인데 “6개월 이상 부부의 성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결혼을 파괴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자체는 아니지만 목사님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쓴 것이므로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부부생활은 결혼의 조건이요 의무입니다. 또한 내가 남자임을 확인하고 여자임을 확인하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13:4).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한 관계를 무시하고 침소를 더럽히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길 때 하나님께서 직접 몽둥이를 들고 그 사람을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잘못된 태도나 부정적인 태도를 갖지 않고 부부가 평소에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는 좋은 관계,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서 서로를 기쁘게 하는 의무를 다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을 비현실적으로 극대화해서 남용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 이기심을 버림으로써 아름다운 부부 관계를 통해 여러분의 가정이 아름답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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