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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뜻을 정하여 (단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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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하여 (단 1:8~21)


신앙과 삶은 양립할 수 있고 병행할 수 있는가?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믿음을 지키면서도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또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청년들의 고민일 것이다. 

이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니엘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면서 바벨론 제국과 페르샤 제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더구나 그 나라의 제 2인자격인 총리대신으로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뀔 때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실력과 인품과 덕망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런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을 철저하고 순수하게 지켰다. 물론 중간에 그의 신앙 때문에 위험에 처하기도 했지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서 결국은 그 신앙을 인정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징계를 받아 그 당시 최강대국인 바벨론제국에 의해 나라가 멸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이때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귀족자녀들 중에서 똑똑하고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선발해서 왕궁에서 교육을 받게 했다.

다니엘은 이때에 뽑혀간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여러 청소년들이 뽑혀 갔는데 오늘 본문에 다니엘과 함께 간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라는 세 친구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을 맡은 환관장이 이들의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다 바꾸어 주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을 패망시킨 느브갓네살왕이 죽고 그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바벨론제국이 무너지고 나라가 메대와 파사로 나뉜 후에도 여전히 파사 국의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늘의 계시를 받아 역사의 미래와 강대국들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받았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꿈을 해석하는 놀라운 능력도 가진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에 바벨론에 잡혀 와서 나이가 들어 늙을 때까지 변함없이 존경과 인정을 받았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오늘 본문에서 그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다니엘의 신앙과 인격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뜻을 정하여”라는 것이다.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에서 데리고 온 청년들을 왕궁에서 바벨론의 교육을 받게 했다. 포로로 잡혀왔지만 뛰어난 인재들을 등용해서 일을 맡기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왕이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주어 먹게 했다.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그러나 다니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신전에 드려졌던 제물을 먹음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이것이 다니엘을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와 살면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방 나라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그는 신앙의 순수함을 지켰다.
그가 왕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신앙을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나라는 모든 고기는 일단 신전에 제물로 바친 후에 가져다가 먹었다. 그러므로 왕이 주는 모든 음식 특히 고기는 다 이방신에게 바쳤던 제물이었다.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똑같은 의미였다. 

그래서 다니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왕의 음식을 먹지 않아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무리 포로로 잡혀와 있어도 믿음만은 버릴 수 없고 끝까지 순수하게 지키고 세상에 끌려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청소년들은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부모는 대부분 이스라엘 나라의 왕족이나 귀족들이었기 때문에 바벨론 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들은 바벨론나라로 잡혀왔다. 그리고 그 때 잡혀간 대부분의 유대 청소년들은 거세를 당해서 남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을 잃어버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참으로 비참하고 처절한 상황이며 어떤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없고 그들을 생각해 주거나 지켜주거나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포로의 신분이기에 왕의 명령을 어기면 즉시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때의 다니엘의 나이가 불과 13세 전후였다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이런 결심은 열세 살의 어린 소년이 한 일이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대단하고 엄청난 일이었다. 이런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

세상을 살면서 믿음을 지키기 힘든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하는 일이 성공하기 위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올라가기 위해서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많지 않은가?

그런 때에 다니엘을 기억하라. 다니엘의 믿음을 생각하고 뜻을 정하라.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이 약해지거나 오염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하라. 어떤 경우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라. 

둘째, 그는 삶의 순결을 지켰다.
6장에 보면 다윗의 정적들이 왕의 신임을 받는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그를 고발할 근거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의 삶에서나 직무에서나 아무런 허물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6: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는 신앙의 순수함을 지킬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도 철저하게 잘 감당한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활에서도 부정이나 불의가 없었고 실수나 허물이 없었다. 그는 신앙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순결함을 지켰다.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에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 생활은 그렇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믿음에 열심히 있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맡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고 게으르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도 한다. 또는 개인생활이 온전하거나 올바르지 못하고 비윤리적인 경우도 많이 본다. 신앙은 좋은데 인격은 그렇지 못해서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의외로 죄와 불의의 유혹과 공격에 쉽게 넘어가서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

믿음이 좋으면 인격도 좋아야 한다. 믿음이 좋으면 삶도 좋아야 한다. 생활에서도 선하지 못한 것, 유익하지 못한 것은 피하고 버려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과 생각과 인격과 삶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이 세상을 본받거나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악하고 더러운 것은 흉내도 내지 말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요셉은 열일곱 살 때에 위대한 꿈을 꾼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 그에게 중대한 위기가 찾아왔었다. 그가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일할 때에 주인의 아내가 젊은 그를 유혹한 것이었다. 이때 요셉의 나이가 스물일곱 살 쯤 되어서 혈기방장하여 정욕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은 때였다. 그 유혹을 받아들이면 당장은 편안하게 즐기며 살 수 있었지만 요셉은 그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만약에 이때 요셉이 그 유혹에 넘어갔더라면 그는 한 명의 히브리 노예로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결단하여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을 거룩하게 깨끗하게 지켰다. 창세기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세상에 살 때에 믿음의 사람들이 삶의 순결함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유혹과 공격이 무척 많고 또 강력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세상 속에 살면서,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처럼 단호하게 죄와 불의와 더러움을 거부하고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손해가 오더라도 더러운 유혹에서 일어나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 거룩함과 순수함에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능력이 나온다.

셋째, 그는 세상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졌다. 
그는 신앙을 지킨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바벨론 제국의 모든 것을 마음을 열고 다 받아들이고 배우고 익혔다. 그래서 바벨론 제국과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았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세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믿음으로 살고 깨끗하게 살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신앙의 순수함과 삶의 순결함을 지키려고 할 때에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에게서 소외를 당하거나 세상에서 고립되기가 쉽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모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세상을 이길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다니엘처럼 세상 속에 살고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믿음과 삶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좁은 생각과 닫힌 마음을 버리고 열린 마음과 넓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실력을 갖추고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세상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잘 어울려서 그들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래서 삶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복음과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 속에서 믿음의 순수함을 지키고 삶의 순결함을 지키라는 것은 세상에서 빠져나와서,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혼자서 살라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처럼 적극적인 자세와 열린 자세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 속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그 가운데서 믿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라.

이렇게 다니엘이 불신앙의 나라, 불신앙의 사회에 살면서도 믿음과 삶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키고 또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첫째, 그는 뛰어난 영성의 사람이었다.  그는 포로생활 중에도 매일 하루 세 번씩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의 정적들이 그를 넘어뜨리려고 그에게서 허물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하자 그의 신앙을 이용해서 넘어뜨리려고 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도록 왕의 허락을 받아 조서가 공포되었다. 그가 매일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잡아넣어 죽이려고 꾸민 술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왕명이 내려진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날도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고국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목숨이 위태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 때문에 기도를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믿음이 그를 지켰다. 경건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구하는 것이다. 그 쉬지 않는 경건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혜와 믿음의 능력을 주신다.

둘째, 그는 뛰어난 지혜의 사람이었다. 그는 포로로 살면서 왕이 주는 것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이방신전에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믿음도 확고했다. 이 두 가지가 부딪히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현실을 지혜롭게 잘 해결했다. 그는 무조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자기들을 관할하는 환관장에게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볼 것을 건의했다. 즉 자기들은 열흘 동안 야채만 먹게 하고 고기를 먹는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이 나빠지는지 아닌지 지켜보아 달라고 했다.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야채만 먹으면서도 다른 소년들보다 훨씬 더 얼굴이 윤택하고 건강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 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내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하셨다. 사나운 이리와 늑대가 우글거리는 곳으로 순진한 양을 보내는 것처럼, 사탄의 세력이 득세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넘어뜨리려고 노리고 있는 곳으로 제자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다. 뱀이 얼마나 간사하고 간교한가? 하와를 유혹해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할 정도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셨다. 뱀은 그 지혜를 사람을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일에 썼지만 제자들은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사탄의 유혹과 공격을 이길 수 있는 선한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다. 뱀같이 지혜로워야 비둘기같이 순수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아니면 간교한 사탄의 유혹과 죄의 유혹과 세상의 유혹에 끌려가서 범죄하고 만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말씀을 듣고 배울 때는 아멘으로 받아들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부딪히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면서도 현실과 타협하고 세상에 끌려가게 된다. 아니면 포기하거나 패배하고 주저앉게 된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는 것이 무조건 고집을 부리고 밀어붙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혜가 있어야만 믿음을 잘 지키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죄와 불의와 타협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처럼 뱀같이 지혜로우면서도 얼마든지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가 부족하다고, 지혜가 없다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고민만 하고 있지 말고, 더럽고 죄악 많은 세상에서도 깨끗한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셋째, 그는 분명한 확신의 사람이었다. 그가 환관장에게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열흘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야채만 먹어도 믿음으로 살면 그들보다 더 건강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에게는 분명한 믿음의 확신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받으시고 은혜 주실 것을 믿은 것이다.

신앙은 확신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과 믿음대로 이루어주시는 것과 기도한 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 확신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아들을 고치려고 데리고 온 사람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자신 있게 고백했다.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선한 지혜가 생긴다. 확신이 없으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할 수 없다.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방법으로 살 때 승리하게 된다.

미국에서 한 고등학생이 South Western 대학의 미식축구 선수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 대학의 선수가 되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하옵소서.” 드디어 그는 어렵게 그 대학의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다. 실력이 좋아서 곧 주전선수로 뛰게 되었다.

그런데 그 대학과 가장 라이벌이 되는 대학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연세대학교의 고려대학교의 경우와 비슷한 관계였다. 매년 한 번씩 한 번은 자기 학교에서 한 번은 상대 학교에 가서 경기를 가졌다. 항상 서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명승부를 펼치곤 했다. 그해는 South Western 대학에서 경기가 있었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경기였고 전 졸업생들까지 다 모여서 마지막 경기를 관람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고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졌고 두 팀의 점수가 거의 비슷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팀의 마지막 공격이었다. 여기서 점수를 내면 이기고 못 내면 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작전을 짰다. 스크럼을 짜고 공을 받은 사람이 뒤에 있는 이 선수에게 패스하면 바로 그 자리에 touch down을 하기로 했다. 공격이 시작되고 작전대로 볼을 빼내어서 이 선수에게 패스를 했고 그는 공을 받아서 touch down을 했다. 극적으로 그의 팀이 이긴 것이었다. 온 졸업생들과 학생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서 환호를 하고 환성을 질렀다. 상대 팀은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하고 어깨를 떨구었다. 그는 한 순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패스를 받을 때 땅에 닿기 전에 받아서 touch down을 해야 하는데 그만 패스가 약간 짧아서 땅에 닿았다. 그리고 땅에 닿자마자 그가 받아서 touch down을 했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고 심판도 눈치 채지 못했다. 오직 자신만 알고 있었다. 사실은 반칙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만약에 가만히 있으면 그는 영웅이 된다. 그러나 만약에 이것을 밝히면 승패가 뒤집히게 되고 온 학교는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그가 “심판!”하고 소리를 친다. 그리고 말했다. “touch down이 아닙니다. 볼이 땅에 닿았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상대 팀 선수들이 “와”하고 소리를 지르고 상대학교학생들이 일어나서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학교 학생들과 졸업생들과 교수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내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돌아서서 경기장을 나와서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동료 선수들이 고지식하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대로 된 것이다. 그가 기도한 대로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하옵소서.”

그는 확신의 사람이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이 무어라고 하는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자기가 가진 믿음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뜻을 정하고 말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오늘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사회 곳곳에 들어가서 뛰어난 실력과 분명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양심을 지키고 바른 질서를 만들어내고 진리와 진실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바로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순수하게 지키고 삶을 깨끗하게 지키며 살기로 뜻을 정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와 확신과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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