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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트인 사람들 (행 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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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트인 사람들 (행 17:10~14) 

 
영문학을 전공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영문학자로서 서강대학교에서 가르치던 장영희라는 분이 있습니다. 번역도 많이 하고, 신문지상에 영시를 소개하기도 하고, 좋은 글을 많이 쓰기도 하는 분으로서 아마 아시는 분은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원래부터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암에 걸려서 활발하던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6년 전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암이 재발했다는 판정을 받고 독자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피력하며 쓴 글을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이제껏 연재했던 ‘문학의 숲’을 책으로 묶어 내는 일, 여름에 쓰던 논문을 마무리하는 일, 번역 한 권을 새로 시작하는 일, 그리고 올해만은 꼭 어머니와 함께 가을 여행을 떠나는 일 등…. 이 계획들이 다 성사된다면 난 참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영희의 삶은 그런대로 잘나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5년 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안식년이라 나는 하버드대 방문교수 자격으로 보스턴에 있었다. 그냥 무심히 보험료 밑천 뺀다고 건강 검진하다가 대번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그곳에서 수술 두 번 받고 귀국, 방사선 치료받고 깨끗이 완치되었다. 학교에도,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말끔히 마무리한 셈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흠, 역시 장영희군. 남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암을 이렇게 초전박살내다니…'
 
그러다가 된통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지난 여름부터 느꼈던 허리와 목의 그 지독한 통증이 결국은 유방암이 목 뒤 경추 3번으로 전이된 때문이고, 척추암이라고 했다. '빨리 입원하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상하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꿈에도 예기치 않았던 일인데도 마치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그냥 풀썩 주저앉았을 뿐이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입원한 지 3주 째, 병실에서 보는 가을 햇살은 더욱 맑고 화사하다.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 성공, 사랑―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는 이 단어들도 모두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입원하고 나흘만에 통증이 조금 완화되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다리 보조기를 신고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문득 내 발바닥이 땅을 딛고 서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강한 희열이 느껴졌다. 직립인간으로서 직립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워서 보는 하늘이 아니라 서서 보는 하늘은 얼마나 더 화려한지…. 새삼 생각해 보니, 목을 나긋나긋하게 돌리며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일, 온몸의 뼈가 울리는 지독한 통증 없이 재채기 한 번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모르고 살아왔다.'

저는 그동안 신문에서 읽었던 그녀가 썼던 많은 글 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더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재발한 암 때문에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도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조금도 불안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장영희교수가 가진 힘의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는 천주교 계통인 서강대학교 교수이니까... 그리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같이 재발한 암과 싸우면서 마치 초연한 듯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마음이 트인 사람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답답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미래를 향하여 가슴을 열고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 비록 나의 오늘의 모습이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마음을 열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사람들... 아침에 신문을 펼쳐들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하고... 주고받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의 두 번째 전도의 여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난 후의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무대로 세 번에 걸친 전도 여행을 하였고, 그것이 끝나자 예루살렘을 거쳐서 로마까지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표가 당시의 세계에서 땅끝이라고 알려진 지금의 스페인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피력한 적이 있는데, 과연 이 꿈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의 두 번째 전도 여행은 처음에는 아시아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그에게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할 기회는 열리지를 않았습니다. 아시아의 맨 끝인 드로아까지 가서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환상 가운데서 그는 바다 저편에 사는 마게도냐 사람의 간청을 듣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는 이 경험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신 명령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유럽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빌립보였습니다. 
 
빌립보를 거쳐서 두 번째로 머문 곳이 바로 데살로니가였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를 지나서 그가 세 번째로 방문한 도시가 바로 베뢰아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생각해보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참 재밌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베뢰아 사람들의 점잖고 신중한 자세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구태어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라는 것을 일부러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다른 곳에서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만약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나중에라도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요? 그런데도 누가는 베뢰아 사람들의 성향을 이야기하면서 데살로니가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소개하였습니다. 아마 이것은 베뢰아 사람들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대조를 보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어느 낯선 도시를 가든지 바울이 먼저 방문하는 곳은 유대인들의 모임입니다. 데살로니가는 유대인들이 비교적 많이 사는 큰 도시여서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안식일마다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전혀 귀담아 듣지도 않고 그를 쫓아내려고 했던 유대인들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의 일행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지를 못하고 밤중에 길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물론 데살로니가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유대인들 중에서 극단적으로 바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고 누가는 바로 이런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지요. 
 
베뢰아에서도 여전히 바울은 유대인들이 모인 회당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전혀 다른 유대인들의 그룹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을 했던 것이지요.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베뢰아 사람이 더 신사적이라는 것...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일행은 그 곳에서 사람들과 진지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서 삶 속에 일어나는 변화를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서 그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마음 속에 심겨진 말씀은 그들의 삶 속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베뢰아 회당에서 일어났던 이런 진지한 변화도 오래 가지를 못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의 극성스런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바울을 방해하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아테네까지 단신으로 도피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정신이 없이 바울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바울의 사역은 끝났지만, 누가는 두 도시에 사는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보여 주었던 태도를 통해서 마음을 열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곧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상식을 깨뜨릴 때가 참 많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요나라는 예언자가 나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은 참 독특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니느웨로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요나는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니느웨는 자기들에게는 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괴롭히는 니느웨 백성을 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그곳에 보내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도망치지요. 니느웨가 아닌 그와는 정 반대에 있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기필코 그를 니느웨에 보내시고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결국 니느웨 성 사람들은 요나의 경고를 듣고는 임금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회개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됩니다. 
 
요나는 자신의 사명이 성공적으로 이행되었지만, 그것 자체가 불만이었습니다. 니느웨성 사람들이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잔뜩 삐쳐있는 요나에게 이 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아끼는 소중한 사람인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말씀들은 그동안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한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오로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우리들만 사랑하시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도 관심이 있었고, 그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그들은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를 않고 열린 마음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가운데서 전혀 새로운 일을 계획하시고 시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읽을 수가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속에서 이런 일을 행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삶의 주변에서 우리가 전혀 희망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생각해보면 이것도 당시의 데살로니가나 베뢰아 사람들에게는 처음 전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마음이 닫혀 있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지만, 베뢰아 사람들은 마음이 트인 사람들이어서 그 구원의 소식을 받아들였고... 바로 그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인가 낯설고 당황스런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에... 물론 우리는 참 두렵고 빨리 그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해 보십시오. 혹시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시는 길은 아닐까? 혹시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려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조건 움츠리려고만 하지말고 하나님이 내게 하실 일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결국에는 열린 마음이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비결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의 그의 소설 '야곱과 그의 형제들'에서 야곱을 마음이 트인 사람으로 소개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기를 미워하던 형들 때문에 미디안의 상인들에게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때 야곱이 마음만 먹으면 상인들을 따돌리고 도망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야곱은 일부러 그런 기회를 포기하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쩌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서 전혀 생소한 세계를 향하여 가는 일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한 기대감이 그의 마음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트인 사람들...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 내가 처한 삶의 정황이 내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런 조건을 통해서 이루실 놀라운 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이라는 삶의 정황을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실 놀라운 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져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산다는 것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서 마음을 연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을 종합해보면 사도 바울의 외모는 아쉽게도 사람들의 호감을 살만한 모습은 아니었나 봅니다. 키는 아주 작았을 거라고 합니다. 코는 아주 뭉뚝했고, 머리는 대머리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교적인 성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요. 이렇게 바울의 외모를 그려보면... 하나님도 좀 너무하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인물 좋고 첫 인상이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 다 제쳐놓고 바울과 같은 사람을 보냈으니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고 배척할만도 한 것이지요. 
 
베뢰아에 사는 사람들이 놀라운 것은 그들이 자기를 찾아 온 낯선 한 사람에게 자기들의 마음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그 어느 누구를 통해서도 들을 수 없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고... 그것이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결과는 낳게 하였습니다. 
 
비단 바울뿐이겠습니까? 기왕에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시려면 모든 이들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특별한 분장을 하고 나타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사렛 예수는 그 외모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성장해온 과정도 다른 유대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도 다른 유대인들처럼 어머니가 있었고,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종사하던 직업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헷갈렸던 것입니다. 

예수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그는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임에 틀림없는데... 그의 주변을 살펴보면 그도 우리와 똑같은 과정을 거친 평범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를 향해서 마음을 여는 사람들마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대하여 마음을 열고 소중하게 대해주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 프란시스에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문둥병에 걸린 나그네가 그를 찾아 왔습니다. 하루 밤을 좀 신세를 졌으면 하는 것이지요. 그는 기꺼이 나그네를 맞아들였습니다. 저녁을 먹이고.. 이제는 잘 시간이 되어서 그에게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은 부득불 프랜시스의 침대에서 함께 자고 싶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나그네와 잔다는 것은 꺼림직한 일인데... 문둥병자가 한 침대에서 자자고 하니까 그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거절을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를 부둥켜안고는 한 침대에서 잤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해서 잠을 깨어보니까 그 문둥병자가 바로 주님이셨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주님은 홀연히 그의 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다가 하나님을 대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자기의 집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향하여 마음을 열었더니 알고 보니 그 분이 바로 그를 축복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이셨던 것이지요. 
 
이렇듯,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향하여 마음을 여는 것... 그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려 할 때에... 우리는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 할 수가 있게 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마음이 트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그들의 행복한 삶의 비결이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곧 열린 마음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면서 그가 만나게 하신 소중한 사람들에 대하여 마음을 여십시오! 그만큼 우리는 행복하고 희망과 감동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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