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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꺼리를 기쁨꺼리로 (마 1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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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꺼리를 기쁨꺼리로 (마 19:3~12)


인생은 망망대해

누군가 인생을 ‘바다’라고 표현했다. 망망대해처럼 무궁무진한 선택과 모험이 있고, 또한 어떤 풍랑과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주 잘 표현했다. 인생에 시험과 걱정, 그리고 근심이 없다면 인생이 아니다.  인생이 아닌 것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살기로 작정했다면 시험이나 걱정꺼리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루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낫겠다. 

시험당하신 예수님

주님의 생애를 보면 정말 재미없을 것 같다.  그 출발부터가 그렇다.  하필이면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밥통)에 누웠다.  외국의 성씨 유래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다.  Wagner는 wagon(마차)   Hunter는  hunt(사냥)  Baker는 빵꿉는 사람 등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양식(밥, 떡)”이라고 불러 달라고 하셨나 보다(요6장).  그렇게 시작하신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사단에게 시험을 받았고,  그리고 가는 곳마다 적대자들이 따라다니면서 넘어뜨리려 시험을 하고 있다.  
‘시험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시험 없는 곳으로 보내 주세요’를 외친다면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외치고 도망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시험을 이용하신다.  더 정확히 말하면 즐기신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을 보십시다. 

(히 12:2, 새번역)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 12:2, 공동)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내시고 지금은 하느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자,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시험꺼리를 기쁨꺼리로 만들어 보자

하나님의 기준과 원리대로 살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을 가지고 왔지만, 의외로 항상 너무 간단하게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대답하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만 대답했기 때문이다.   처음 사단의 시험도, ‘기록하였으되’라고 하셨더니  오늘 본문의 말씀도 ‘말씀하시기를(5절)’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신지를 보여준다.   모든 시험꺼리를 기쁨꺼리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원리.  이것을 붙잡고 이 원리대로 살면 시험도 시험이 아니다. 에덴동산의 누림을 경험하게 된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하나됨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시험받는 이유

바리새인들이 시험지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가지고 온 것이 하나님 말씀의 원리를 언제나 생각하시는 주님께는 시험꺼리가 되지 않았다.  주님께는 시험꺼리가 되지 않는데,  사람들에게는 시험꺼리가 된다.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 1:13-15, 개정)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아내를 버리는 이유는 싫증났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와 바꿔보면 더 낳을 것 같아서이다.  정욕과 욕심은 남의 떡이 커 보이게 만든다.  심지어는 이런 말까지 만들었다.  “몰래 먹는 떡이 더 맞있다!”  아직 채하지 않아서,  그런 소리 하는 것이지 더 고생이다. 
사실, 성경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이 더 쉬운 삶이다.  알고 보면 더 축복이 크다.  목회든, 사업이든, 진로든,  인생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말씀 원리대로 그냥 다른 것 보지 않고 가면  시험도 되지도 않고  걱정도 하지 않고  말씀으로 예비하신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니면 말고”

이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면서도, 참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말이다.  소위 여의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저격수’가 있다고 한다.  상대방을 맞쳐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사람들,  온갖 정보원을 두고 적절한 시기를 맞춰 발사한다. 그렇게 벌집을 쑤셔 놓듯이 떠들어 놓고 하는 말 ‘아니면 말고’ 참 무서운 말이다.
그러나 참 편한 말도 된다. 무엇인가 딴에는 열심히 했다.  그런데 결과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자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때, “아니면 말고” 하고 깨끗이 뒤돌아 서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쿨한 것’이다.  
부지런히 열심히 한 눈 팔지 않고 달려 오기는 했는데, 와 보니 아니다. 딴에는 이것이 좋을 것이라고 여기고 최선을 다했는데, 나중에 보니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었다.  그러면  기쁨을 누리는 비결은 빨리 “아니면 말고”를 외치면서 지금까지 연단하고 나를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려고 훈련시키셨나 보다,  “훈련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다시 주님을 향하여 달려 가면 된다. 

이를 잘 한 이가 다윗이다.  그래서 성군이 되었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다.  선지자 나단을 만났을 때,  다윗은 ‘아니면 말고’를 그 인생에 선포했다.  낳은 아들을 위해 살려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니,  ‘아니면 말고’하고 일어나 밥 먹고 국정을 돌보았다.  자기가 낳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예루살렘을 처 들어올 때,  ‘아니면 말고’를 생각하며 수도요, 법궤가 있는 곳을 떠나 주님이 낮추시는 곳까지 두말하지 않고 갔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 말씀의 원리,  하나님이 기준이 아닌 것에는 시험만 있고 진정한 기쁨이 없다.  손을 놓아도,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는 진정한 기쁨이 있고,  나중에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 그릇이 된다. 

‘엣지 있게 후회 없이 즐겨!’

여자 빙속 500미터 금메달을 딴 이상화의 미니 홈피에 써 놓은 글이다. 밴쿠버로 떠나기 전에 자신에게 쓴 글이란다.  
사실, 우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알몰 졸업식, 체격은 좋아졌는데 체력은 약해지고,  끈기는 없고,  자기만 아는 이기심이 많고...  그러나 이들의 또 다른 면은 삶을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빨리 빨리’만 생각했다.  급하게 양적 성장에 치중했고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고생을 모르고 자라고 그 열매만 먹는 그래서 나약한 신세대인 줄만 알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의 아들 딸들은 달랐다. 

2002년 월드컵 축구 때는 거리 응원- 시청 광장, 조금 넓은 곳만 있으면 모여 즐기면서 힘을 모으고 힘을 보태 4강 신화를 이루었다.   베이징 올림픽의 박태환은 귀를 덮는 헤드폰을 쓰고 다니면서 음악을 즐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는데 자연스런 유행을 만드는 박태환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연습에는 충실했다.  

전에는 싸우는 경기만 잘했다.  권투, 레스링, 유도, 태권도.  참 전투적이었다.  그런 필살기로 살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대단했다.  생각해 보면 그런 근성이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뭐든지 세계 최고였다.  교회도 각 교파의 세계 최대 교회는 한국에 다 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우리의 아들 딸들은 즐길 줄 아는 여유와 부드러움도 가졌다.  곽윤기 선수는 시상식에서 ‘시건방춤’을 선보였고,  연아는 그냥 즐기니까 걱정하나 되지 않고 다 잊어 버렸다고 했다. 

하나님 말씀을 즐기자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결혼하면 떠나 보내는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들이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러면서 깨닫고 다시 일어서고, 그러면서 알콩달콩 살도록 맡겨 보내라.  며느리한테 통장도 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뒤에서 기도만 해 주라.  그리고 자기 여생을 즐기라. 

제자들이 “아예 장가들지 않는 게 속편하겠다”고 하니 주님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한다.  이 말은 무엇인가?  한쪽 혹은 하나만 생각해서  거기에 매여 괜히 시험 들지 말라는 소리다.  하나님의 말씀은 각자 받을 만한 사람이 따로 다 있으니,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그 말씀을 누리라고 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 결혼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대로 될 줄로 믿고  주님 주신 오늘의 복을 누리시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있기를 기도하고 그 뜻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 시대의 영적 가정 유진 피터슨 

지금 우리의 상황에 맞게 번역한 성경 [메시지]를 펴냈고,  매일성경에서도 그의번역 본문이 나오고 있다.  그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어보라.
 그의 가족이 옐로우 스톤 공원을 거닐다 꽃을 꺽는 소년을 보았다. 유진은 그 소년을 향해 소리치자 소년은 꽃을 떨어트리고 엉엉 울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자녀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더 나빠요. 소년은 몇 송이의 꽃을 꺽었지만, 아빠는 아이를 망친거에요” 
유진은 이 교훈을 잊지 않고 산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겁먹게 해서 인간을 신성함에 참여 시킬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정육점 가게를 한 보통 사람인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그 아버지를 보면서 목수로 살아가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길을 피하시지 않으셨지만 동시에 변화산상의 영광을 즐길 여유가 계셨던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와 우리 교회, 그리고 한국과 여러분은 옥한흠 목사님이나 조용기 목사님의 구도의 열정을 존중하지만 유진 피터슨의 영성도 꼭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대치동의 학원가의 목적 못지않게 작은 여유를 기뻐하며 삶의 한 순간을 즐기는 과정도 중요하다.  

레드우드 숲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지나 북쪽으로 더 가면 오레곤 주의 레드우드 숲 - 하늘을 찌르는 나무 레드우드 숲, 거대한 빌딩 숲 같다.  가장 큰 것은 90미터 높이에 둘레가 2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의 지질은 겉흙이 매우 얇은 화강암반 지역이다. 우리 삶의 현실과 매우 비슷하다. 이 암반 때문에 레드우드는 깊이 뿌리를 박을 수 없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멋진 숲의 하나를 이룰 수 있었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뿌리가 뿌리로 서로를 붙들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를 돌아보는 여유를 통해 함께 하면 우리는 척박한 현실을 이겨 내고, 그 속에서도 꽃을 피울 힘을 얻게 된다.
(서연교회 이명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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