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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을 주시는 하나님 (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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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주시는 하나님 (창 13:14~18)


옛날 유럽의 어느 도시에 시계를 만드는 匠人(장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평생 시계 만드는 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도 많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정리하려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줄 세계 유일한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계가 이상합니다. 秒(초)침은 金(금)으로 만들고 分(분)침은 銀(은)으로, 時(시)침은 銅(동)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들이 시계를 받아들고 유심히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아버지, 제 생각에는 초침이 동이어야 할 것 같은데 초침이 왜 금으로 되었나요?” 
아버지가 말합니다.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려고 만든 시계는 지금까지 만든 시계 중 최고의 시계다. 초침을 금으로 만든 것은 1초가 가장 귀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싶었단다.” 
그 시계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식에게 최고의 선물로 무엇을 주고 싶습니까? 재산입니까? 학력입니까? 아니면 부귀영화입니까? 
겉으로는 “아닙니다.” 라고 하시고 싶으시나 현실은 그렇게 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 권세는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졌어도 權不十年(권불십년)이라 했습니다. 명예도 부귀도 세월이 흐르면서 다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요? 
그것을 알려면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 즉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세,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같은 위대한 인물들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세상 부귀영화보다 하늘의 속한 것을 주셨습니다. 
물론 현세적인 것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주신 선물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와 영생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하늘을 기업으로 약속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누리는 하나님의 선물은 이 세상 것이 아닌 하늘의 장막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은 가나안 땅이었으나 실상 그는 그 땅을 다 소유해 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 가나안 땅은 하늘나라를 豫表(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이하를 보세요.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이 성이 뭐냐? 히브리서 11장 15절 이하도 보세요.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본 것은 뭡니까? 더 나은 본향이 뭡니까? 하늘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늘나라입니다. 세상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도 엄청난 것을 누리며 살았던 복의 사람이었지만 늘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바라며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런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도록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브라함을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누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셨나요? 
오늘 본문에 3가지를 통해 만들어 가심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꿈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떠나라’ 하십니다. 고향 친척 아비집을 따나라 하십니다. 
창12:1절을 보세요.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원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데라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도록 마음을 인도했는데 중간지점인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거기서 데라가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그곳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십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창대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받고 떠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합니다. 그러다가 기근이 닥치자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던 중 조카 롯과 헤어집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착찹하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새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본문 14~15절을 보세요.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십니다. 비전을 갖도록 거룩한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창15장 5절도 보세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따라서 합시다. /사람은 /생각대로 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뭘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물 안에 개구리는 우물 안이 전부인줄 알기에 생각이 좁습니다. 그러나 벗어나면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알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성도의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이 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평범한 사람을 택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분입니다. 
세상 기업이나 단체는 대단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실력있는 사람을 뽑아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범하고 오히려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불러내어 만들어 가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 뿐만 아닙니다. 베드로도 그렇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한결같이 잘난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실력있는 사람, 잘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것 보세요. 아무도 없잖아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연약한 자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불러주시고 이제까지 만들어 오신 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만드시는 과정을 보세요.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훈련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자식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란에서 나올 때도 데려왔습니다. 아비가 일찍 죽었기에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는데 롯이 애굽에서 나온 후 어느 날 부자가 되자 자기 잇속 챙기고 떠납니다. 
정말 가슴 아픈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선택권을 조카에게 주었습니다. 네가 左(좌)하면 내가 右(우)하겠다. 그렇다고 그렇게 떠날 줄 몰랐을 것입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고 사랑과 섬김의 대상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사랑하던 사람, 의지하던 사람, 믿었던 사람이 나를 버리고 매정하게 떠납니다. 정말 가슴이 아프지요? 정말 기가 막일태가 있습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얌체같이 잇속만 챙기고 떠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사람은 믿거나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고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믿거나 의지할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이 아픔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는 東西南北(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이것은 사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의 땅 바라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알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아멘? 
  
비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은 생각도 다르고 꿈도 다릅니다. 
Vision이란 뭡니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통찰력입니다. 
그러기에 비전이 있는 사람은 오늘을 뛰어 넘어 내일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비전이 있다는 말은 장래성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것을 잡아당겨 보는 것 같은 시력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갖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세만 바라보길 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위를 보고 앞을 보길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비전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나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약속을 계산하지 말고 무조건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그 생각은 내 형편과 환경을 통한 생각이 아닌 약속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통한 생각이어야 합니다. 
제가 시편을 읽다가 깜짝 놀란 것은 시편 52편 8절에 다윗은 자기 자신을 푸른 감람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생각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메뚜기 같다 생각하면 메뚜기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기에 우리의 대적이 우리의 밥이라 생각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탄이 노리는 표적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생각과 말을 제멋대로 주무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에 따라 행동과 태도가 좌우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에 더 넘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주시는 거룩한 꿈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입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이 뭡니까? 
히브리서11장1~2절에“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했습니다. 

여기 선진들이 누굽니까?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배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믿음의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원래 믿음이 없는 촌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땅까지 왔습니다. 그때도 초보 믿음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 가나안땅에 도착하여 얼마 후 기근이 닥치자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갑니다. 그것에 갔다고 부인을 빼앗길 뻔 했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애굽의 바로 왕보다 쎈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당대에 바로왕은 神(신)같은 존재입니다. 애굽사람이 태양신의 아들로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그보다 센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 나중에 조카 롯이 소돔성에 살 때 전쟁에 휘말려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때 318명의 식솔을 데리고 연합군대와 전쟁을 벌일 정도로 담대해집니다. 
그가 믿는 것은 뭡니까? 오직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창세기 12장2~3절입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시겠답니다. 복을 주시겠답니다. 그러니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세요. 
“보이는 땅을 내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현재 보이는 그 땅은 남의 땅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른 사람의 소유이지만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머리로 이해가 되면 믿고 안 되면 못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땅이 내 땅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들을 때 믿어졌습니다. 그러기에 결국 그 후손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17절을 보세요.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아브라함이 종과 횡으로 다녀 보았을까요? 다녔습니다. 그러기에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이 오늘 저를 통해 동과 서로 다녀보라 하시면 여러분은 다닐까요? “에이~ 목사님 농담하지 마세요, 이 땅값이 얼마나 되는데……”. 하고 안다닐지도 모릅니다. 
  
문제가 뭘까요? 믿음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적기에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믿음이 유일한 資本(자본)입니다. 
그러기에 그 믿음을 잘 세워가야 합니다.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좇아갔고 결국 믿음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대에 많은 사람이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래는 우리의 실력이나 능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에게는 믿음이 최고의 자본입니다. 그가 믿는 것이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3.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배자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믿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영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아무리 잘났고 똑똑하고 위대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서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뭡니까?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것이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절대로 그렇게 우선순위에서 밀려 날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하나님이 나타나 약속을 줍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합니다. 그리고 종과 횡으로 다녀 보라 합니다. 다 주시겠답니다. 그런데 그가 한 행한 것은 뭡니까? 

18절을 보세요.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이에 장막을 옮겼습니다. 약속의 땅인 헤브론에 거주하면서 거기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드린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여호와를 위한 예배입니다.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너무도 가슴 아픈 것은 현대인은 예배를 나를 위해 드린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만족하는 예배, 성도가 즐거워하는 예배가 성공인줄 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예배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 중 최고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행위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바쁘면 예배를 제쳐둡니다. 그리고 예배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아닙니다. 

바쁠수록 예배드리기를 잘 드려야 하고 급할수록 예배를 정식으로 드려야 합니다. 
“바쁘니까 예배를 간단히 드립시다.”하면 하나님이 우리 삶속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힘들어도 예배를 밀쳐내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누렸던 복, 그 아들, 이삭이 누렸던 복, 그리고 그 손자, 야곱이 누렸던 복의 비법은 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왜 예배가 그토록 중요한가요? 
하나님이 내게 왕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임을 들어내는 것이 예배입니다. 
구약의 예배는 헌신입니다. 소나 양을 잡아 생명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최고의 선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받으신 최고의 예배가 뭡니까? 모리아 제단입니다. 
그 아들, 100세에 낳은 아들, 독자 이삭을 바친 예배입니다. 그 예배를 모리아 제단에서 요구하신 하나님은 더 이상 아브라함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왜요? 독생자를 골고다 언덕에 내주었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독자 이삭을 모리아 제단에 내드렸던 아브라함의 마음이 통한 것입니다. 요즘 말로 코드가 맞은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감동을 먹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성공은 예배의 성공입니다. 그 성공이 모든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해서 꿈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믿음을 세워 가십니다. 
그러기에 2010년도 한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이 이루어지는 한해 되길 바랍니다. 또 2010년도 한해 믿음이 일취월장 성장하는 한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어려분이 예배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못 드리는 것은 단순히 놓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단 마귀에게 빼앗기는 것입니다. 
꿈도 주시고 믿음도 세워가시는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자로 섬기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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