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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벧엘로 올라가자 (창 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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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로 올라가자 (창 35:1~8)
  

레이건이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시절, 당시 이스라엘의 수상이었던 베긴이 백악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레이건 대통령의 집무실에 들어가 보니 붉은 색과 은색 그리고 금색 전화기가 있었습니다.
베긴 수상이 물었습니다.
“이 세 대의 전화기를 각각 어떤 용도를 쓰십니까?”
“예, 여기 붉은 색 전화기는 소련과 전화할 때 쓰는 것이고, 은색 전화기는 일반적인 통화를 할 때 사용합니다. 특별히 이 금색 전화기는 하나님과 통화할 때 쓰는 전화기입니다.”

농담으로 한 얘기이지요.
베긴 수상이 다시 물었습니다.“하나님과 통화하시려면 전화비가 많이 나오겠네요?”
그러자 레이건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그렇지요. 한 통화에 1만 달러 정도는 될 것입니다.”
얼마 후 베긴 수상이 레이건 대통령을 이스라엘로 초청했습니다.
베긴 수상의 집무실에도 색깔이 다른 세 대의 전화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저기 금색의 전화기는 하나님과 통화할 때 사용하시겠군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과 통화하려면 요금은 얼마나 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베긴 수상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1 센트밖에 들지 않습니다. 미국의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시기 때문에 한 통화에 1만 달러가 나오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시기 때문에 요금이 싼 것이지요.”
두 지도자들은 진담 섞인 농담을 서로 주고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있나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하나님의 숨소리가 느껴지나요?
아니면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잊고 사나요?
그러다가 주일이면 화들짝 놀라 성경 찾아들고 부랴부랴 나오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여러분은 벧엘로부터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있나요?
벧엘에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벧엘은 여러분에게 낯선 곳입니까?

삶을 살다보면, 열심히 살아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지만 일이 이상하게 꼬일 때가 있습니다.
문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기나긴 날들이 있습니다.
마치 수렁에 빠진 사람처럼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으면 사업에 문제가 생기고, 사업이 어느 정도 굴러간다고 싶으면 종업원들이 문제를 일으켜 힘들게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무수한 인물 중에 야곱만큼 악착같이 산 사람이 없습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야곱은 ‘악발이’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요.
평안한 날이 없어요.
오늘 우리가 취급하려고 하는 사건은 그 중의 하나입니다.
본문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모든 문제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신호이고, 벧엘은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것입니다.(함께 따라하자)

1. 야곱이 당한 어려움은?

야곱이 세겜성에 이르러 그곳에서 장막을 치고 정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곳에서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만난 위기는 이렇습니다.
창 34장에 나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바깥출입을 했다가 그 땅 추장의 눈에 들었습니다. 
디나가 얼마나 예뻤는지 그 추장은 디나에 대한 연모가 지나쳐 그만 강제로 욕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디나의 오라비들이 들에서 이 얘기를 듣고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희들이 우리 누이 디나를 욕보였어! 어디 두고 보자!’ 
그래서 형제들이 꾀를 냈습니다.
“너희가 우리의 누이 디나를 가지려면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할례 지 않은 족속과 혼사를 맺을 수 없다.”

세겜의 아들들이 할례를 받고 삼 일째 되는 날, 고통이 가장 심하여 움직일 수조차 없는 그날에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뛰어들어 그 모든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디나의 강간사건을 순리대로 신앙으로 풀어야 하는데 ‘욱’ 치미는 감정으로 복수를 해놨으니까 이게 될 일입니까? 
복수는 복수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입니다.
그 본토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하고 “이 웬 뜨내기들이 남의 땅에 와서 행패를 부려! 싹 쓸어버리자!” 이렇게 나온 거예요. 
기껏해야 야곱의 숫자는 한 가족에 불과합니다. 

우선 숫자적으로 열세입니다. 
야곱가족이 몰살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만난을 겪었습니다. 
형 에서로부터 쫓겨보기도 했고,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해보기도 했고, 이런 저런 시련을 다 겪어 보았지만 전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는 당해보지 않았습니다. 

정말 처음입니다! 
야곱은 아찔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근심이 태산 같습니다.
창 34:30을 보세요! 야곱의 심경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 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곱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었을 수 있겠지요.
하나는, 밤에 도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 가족을 이끌고, 많은 짐승을 몰고 정처도 없이 도망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얘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제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 공격과 방어는 1:3 비율이니까 적이 세 배정도라면 해볼 만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몇 안 되는 야곱의 가족이 가나안 부족들과 싸운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말이 되지 않습니다.
꾀 많고 약삭빠른 야곱일지라도 그에게 마땅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방법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동서남북이 꽉 막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이런 삶의 위기를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2. 야곱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벧엘로 올라가자!”
객관적으로 볼 때 전혀 해결책이 되지 않을 듯한 결심을 했습니다.
창 35:3절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갑니다.
사실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면 문제가 터질 때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몇 군데 살펴보겠습니다.
창31:13절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35: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벧엘’이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집’을 말합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더 쉬운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전인 교회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나름대로 한번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던 사람입니다. 
형 에서의 장자권을 가장 배고팠을 때를 노려 팥죽 한 그릇으로 낚아챈 사람, 
자기 몸에 털을 붙여 형처럼 꾸민 다음 늙어 안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속여 축복기도를 받은 사람,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교묘한 방법으로 얼룩진 양과 염소를 낳게 하여 자기 재산을 불려간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산 인생의 결론이 무엇이냐 이겁니다. 
일가족이 몰살당할 위기에 봉착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을 그 순간에, 야곱은 인생살이의 기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기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벧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는 우리 모두가 마음 속 깊이 새겨야할 말씀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지 말고, 머리 싸매고 누워있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야곱은 두 마디로 그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3절) 
야곱은 염치없는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은 한결 같이 이런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①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겠어요? 
그때 하나님은 모른 체하시는 분이 아니라, 들어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내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곽선희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심호흡을 하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라고 세 번만 불러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②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 말씀보다 더 좋은 말씀이 어디 있겠어요? 
Wesley 목사형제의 기념비에는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말과 함께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새벽기도회 때 한 적이 있는 얘기입니다.
사우디의 왕이 유명한 프로골퍼를 초청하여 골프 라운딩을 했습니다.
왕은 골프 선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시간이 돈인 프로선수가 시간을 내서 왕에게 서비스를 했으니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습니까?”
“골프채 한 세트를 부탁드립니다.”
“ 아, 그래요.”

기다리고 기다려도 골프채가 오지 않던 어느 날 편지 봉투가 날아왔습니다.
골프 선수는 실망했습니다.
“왕이 꽤 쩨쩨하구먼. 기껏 감사장이야?”
뜯어보았더니 골프선수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선물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은 골프장 한 곳을 통째로 선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골프선수의 스케일과 왕의 스케일은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스케일과 하나님의 스케일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믿습니까?
그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데 어찌 좋지 않겠어요?
하나님께 돌아가십시오.

3. 그 결과로 받은 축복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간 결과로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왔을 때 이런 축복을 기대합니다.

1) 평안히 길을 갔습니다.
5절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누가 사람들을 두렵게 하여 야곱의 아들들이 평안히 길을 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봐주시는 데 누가 감히 시비를 걸겠습니까?

2)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7절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하나님은 기어이 야곱을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야곱 스토리의 중심 주제입니다.
지금까지 야곱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은 사실 부차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라는 한 인간이 그 무엇보다도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요4: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예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도 아니고, 인격 높은 사람도 아니고, 권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인물 잘난 사람도 아니고.......

참되게 예배하는 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우리를 참 예배자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미국 캘빈 신학교의 로저 그린웨이(Roger S. Greenway)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예배가 궁극적인 목표이다. 선교는 예배가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회심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그들의 얼굴을 숙이게 되면 선교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됩니다.
선교는 단기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예배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땅의 기름진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참 예배자가 되십시오.
이런 은혜는 언제나 예배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배를 양보하지 마십시오.
예배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3) 이름을 바꿔 불러주셨습니다.

10절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이름을 바꿔 불러주셨습니다.
‘붙잡는다.’라는 뜻의 야곱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꿔 불러주셨습니다.
우리의 이름도 바꿔졌습니다.

우리의 옛 이름은 죄인, 사탄의 종,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대로 죄를 범하고, 사탄의 종노릇하다가 멸망 받는 것이 우리의 정해진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우리의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우리의 새 이름은 의인,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신부,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이 이름 속에는 우리를 향한 현재의 축복과 미래의 축복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러주시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그렇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모든 문제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신호이고, 벧엘은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야곱은 문제를 만나 벧엘로 올라갔고, 벧엘에서 문제를 풀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문제는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문제를 만나거든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꼭 그렇게 하십시오.
그 때 문제는 엄청난 축복으로 변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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