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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2) (마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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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2) (마 14:13~2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이나 치고 있던 모세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해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부담이 되는 말씀의 한계를 넘는 수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모세의 심정을 생각해 봅니다. 그때 모세의 심정은 ‘부담을 느낌’이 아니라 ‘어처구니 없음’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말씀이었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그렇게 여러 차례, 하나님이 노를 발하실만큼이나 사양하고 거절을 하였겠습니까?

벳세다 광야에 여자와 어린아이를 뻰 오 천 명의 사람들의 모였습니다. 제자들은 저들이 걱정되었습니다. 모두 먹지 못하고 허기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제 저들을 그만 돌려보내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치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보낼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 말씀 역시 어처구니가 없는 말도 안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처구니 없는 말씀은 똑 같은데 모세와 제자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노를 발하실만큼 여러차례 거절하고 사양하였는데 제자들은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정말 그렇게 하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최선이 초라한 오병이어에 불과했지만 저들은 그것을 들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모세가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모세의 착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있는 아주 보편적인 착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시니까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다 해내어야만 하는 줄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자기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답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물론 자신들이 하여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일은 최선을 다하여 해야만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 천 명도 먹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 일을 행하실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오 천 명은 고사하고 50명도 먹일 힘이 없었던 저들이지만 어처구니 없어 하지 않았습니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의 오병이어 밖에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12 정탐꾼들이 여리고를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 한 나머지 열 정탐꾼들의 보고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다 거인들이었습니다. 저들이 보기에 가나안 족속과 자신들을 비교해 보면 자신들은 마치 메뚜기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니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한 일 즉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착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저들이 그 일을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정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자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에게 그와 같은 힘과 능력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에게는 불가능한 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이 가나안에 들어가라 말씀하셨다면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 전 열매나눔재단을 세우고 재단이 새터민들을 위한 공장을 세우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었습니다. 그리고 공장설립을 반대하고 실제로 재단의 사무총장을 찾아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반대를 한 것은 당시 우리가 새터민들을 위하여 공장을 세우고 그것을 운영하여 저들의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선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모세와 오병이어와 가나안 정복 사건과 똑같은 유형과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 일을 강행한 것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힘으로 그 일을 하면 우리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그런 일도 능히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일은 그 일은 우리의 믿음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와 같은 승리와 성공을 맛보게 되었을 때 그와 같은 일이 마치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된 것과 같이 착각하게 하려고 하지만 저는 거기에 속지 않으려고 힘써 노력합니다. 그리고 늘 기도합니다. ‘교만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어리석어 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는 것과 같은 어리석고 교만한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여리고성에 성공하고 아이성에서 무너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늘 기도합니다.

우리의 힘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 불가능하고, 우리의 힘을 의지하면 실제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을 생각하면 Nothing is impossible입니다. 애굽으로 가라 할 때 모세는 알았어야 합니다.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냥 가면 된다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믿었어야 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면 얼른 눈치를 채야만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힘 좀 쓰시겠구나 하는 눈치를 채야만 합니다. 제자들은 아마 그 눈치를 챘던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병이어를 들고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눈치가 믿음이었고, 그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정탐 결과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과 같고 자기들은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아 보였어도 하나님이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눈치를 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외쳤어야 합니다. ‘올라가자. 저들은 오늘 우리의 밥이다.’

이성만 있고 논리만 있었던 그러나 믿음은 없었던 저들은 저들의 확신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결국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어야만 했습니다. 모세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애굽에 가지 않았었다면 모세는 그냥 미디안에서 양만 치다가 초라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여러분 교회의 담임 목사인 문희곤 목사로부터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분들로부터 북한이 올해 아주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은 북한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화폐개혁의 실패로 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래서 불과 몇 달 만에 쌀 값이 10배에서 20배나 올랐답니다. 누가 쌀 몇 백 톤만 사주면 그것을 시장에 풀어서 시장을 정상화시키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 분들이 하였답니다. 문 목사님이 그와 같은 이야기를 저와 의논하였습니다.

저는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요즘 저는 열매나눔재단의 후원금 모집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가 재단을 세울 때 20억 원은 현찰로 내 놓았고 50억 원은 일 년에 10억 원 씩 5년 동안 내기로 작정하고 서울시로부터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2-3년 후면 우리 교회가 매년 재단에 내는 10억 원의 돈이 끝나게 됩니다. 저는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그 일이 끝나기 전에 최소한 일 년에 10억 원 정도의 후원금을 모아야만 합니다. 10억 원을 한 번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해마다 10억 원을 후원금으로 모아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제 거친 표현대로 하자면 마치 앵벌이를 하듯 사방을 돌아다닙니다.

작년 말 높은 뜻 하늘 교회의 이상윤 목사와 함께 아프리카 케냐를 다녀왔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수련회가 있었는데 그 수련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갔었습니다. 케냐를 갔다가 우리 선교사들 자녀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선교사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학교였습니다. 그 학교에서 우리나라 선교사 자녀들이 돌봄을 받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도 큰 교회가 되었는데 아직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도움만 받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학교에 헌금을 작정하고 돌아와 5만 불을 만들어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문 목사님으로부터 북한 이야기를 또 들은 것이었습니다. 한 3억 원 정도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번개처럼 떠 오른 생각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아이구 하나님 또요?’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문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또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부터 헌금을 작정하고 오늘 본문과 제목으로 지난 주 평광교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 중에 모금을 위한 은행계좌 번호까지 불러드렸습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 사랑방에 ‘내 팔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면서 또 북한 이야기를 하였고 북한돕기 은행계좌도 올렸습니다.

어제까지 총 366명이 110,924,859원이 모금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놓고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선 366명이 일 억 원이 넘는 돈을 헌금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헌금을 한 분들이 일인당 30만 원 가량을 평균적으로 헌금을 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5천 원을 보내신 분들도 있습니다. 만 원을 보내신 분들도 있습니다. 과부의 엽전 두 푼과 같이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 정말 귀한 헌금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데 평균이 30만 원이었다는 뜻은 보내신 분들이 작든 크든 자신의 최선을 다하시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정말 고맙고 놀라웠습니다.

제 주일 설교를 주일 교회에서 직접 들으시거나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하여 듣고 보시는 분들이 한 5만 명 이상은 되지 않나 파악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으로 생각해도 3만 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설교도 그 정도의 숫자가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듣고 5천 원 만 원이라도 은행계좌를 확인하고 입금하신 분의 숫자는 366명이었습니다. 줄잡아 1%의 교인만이 설교를 듣고 반응을 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이런 분석을 하면서 느닷없이 예수님이 하신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열 문둥이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저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순종하여 가다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중에 한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때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매주 제 설교를 들으시는 교인들 중에는 스스로를 김동호 목사 설교 매니아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 스스로를 제 팬이라고 소개하시는 분들도 꽤나 많습니다. 저는 이번 한 주간 북한돕기 헌금으로 입금되는 헌금을 보면서 감사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 ‘그 팬과 매니아들은 다 어디 있는가?’라는 엉뚱한, 참으로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디오 광고 중에 학원 광고가 하나 기억 납니다. 여자 중학생 하나가 택시를 타고 대치동으로 가자고 합니다. 대치동에는 유명한 학원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한국 중학생 3%가 다니는 학원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기사가 3%가 다니는 학원엘 가려면 대치동으로 가지 말고 어느 학원으로 가야한다고 대답합니다. 광고의 끝은 ‘나도 오늘부터 3% 중학생’입니다.

아마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3% 안에 든다면 그 아이의 앞날은 상당히 밝을 겁니다. 1% 안에 든다면 그 아이의 앞날은 훨씬 더 밝을 겁니다. 평균적으로 말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 1% 안에 든다면 여러분은 기쁘실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랑스러우실 겁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또는 은근히 자랑하실 겁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높은 뜻 교회 사랑방 게시판에 ‘내 팔자’라는 제목으로 며칠 전에 글을 올렸습니다. 제법 많은 분들이 들어오셔서 보셨고 꽤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 중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으로 달린 댓글이 참 맘에 들었습니다. <으이구!!! 진짜루 미치겠네...돌겠네...진짜.....백수된지 7계월짼데..... 김목사님 땜시.........................................................이체합니다. (2010.02.18 19:18) >

그 홍길동이라는 분은 세상에서는 백수인지 모르겠으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1%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7개월째 백수이면서도 때문에 은행이체가 그 누구보다도 힘들고 부담스러웠을 터인데도 그렇게 손 빨리 반응하는 것을 보면 1%가 아니라 0점 몇 퍼센트의 교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공부에도 욕심을 가지고, 자리에도 욕심을 가지시듯 하나님께도, 믿음에도 욕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1% 교인에 한번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힘들것 같고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뜻밖에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 이해가 됩니다.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도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로 오면 쉬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쉼을 주시겠다시면서 또 멍에를 메라는 말씀이 웬 말씀입니까? 언어적인 표현을 생각하면 짐보다 멍에가 더 무겁습니다. 짐을 지고 무거워하는 사람에게 멍에를 메라는 것은 참으로 억지입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맞습니다. 쉼을 얻으려면, 무거운 짐을 벗으려면 멍에를 메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멍에 같습니다.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가나안에 들어가라.’‘북한의 내 백성을 섬기라.’등등 참 다 멍에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멍에는 참 이상합니다. 세상의 멍에는 벗으면 가볍고 메면 무거운데 예수님의 멍에는 벗으면 무겁고 메면 가볍습니다.

오병이어의 뜻은 그냥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의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오 천 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은 기적의 오병이어입니다. 

99%의 크리스천들에게 오병이어는 그냥 오병이어일 겁니다. 죽을 때까지. 그러나 1%의 크리스천에게 오병이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적의, 능력의 오병이어일 것입니다. 멍에를 메지 않고 편히 예수를 믿으려고하면 할수록 삶은 피곤하고 무겁고 힘들 것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신 홍길동님과 같이 진짜루 미칠 것 같아도, 돌아 버릴 것 같아도, 그러면서도 하나님 때문에 그분의 표현대로 하자면 하나님 땜시 순종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충만한 삶이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같이 오 천 명을 먹이고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는 큰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다. 오늘 설교 말씀에는 또 몇 퍼센트의 교인이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부담이 되든 안 되든 생각하지 말고 순종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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