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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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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1~22) 


서론 

오늘은 민족의 가장 큰 명절 구정입니다. ‘구정 명절 때 어떤 말씀을 나누면 좋을까?’,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실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 마음에 떠올랐던 것은 ‘네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명절을 보내면서 ‘내 영혼이 여호와를 송축하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이 성도님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편 103편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절~5절까지는 다윗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개인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택을 하나씩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6절~18절까지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지난 역사를 통해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19절~22절까지는 우주적인 찬양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가장 웅장한 찬양 중에 하나가 저는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존재를 향해서 여호와를 찬양해라라고 명령하는 내용입니다. 

1. 내 영혼의 찬양(103:1-5) 

1. 찬양은 의지적인 행동입니다.(1,2절) 

1절에 보면 다윗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해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영혼’이라는 표현은 우리 존재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것’은 정신적인 것, 육체적인 것들을 다 포함합니다. 내 속에 있는 오장육부까지도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고, 정신적인 것으로는 감정, 의지, 열정 모든 것들이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고 고백합니다. 

2절에 한 번 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지금 1~2절 말씀을 보니 찬양과 관계되어서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제 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자주 고백합니다. 우리들 속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흘러넘칠 때 우리는 찬양을 합니다. 

1~2절을 보면 찬양은 의지적인 행동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이 내킬 때나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나 의지를 사용해서 드리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해라’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아 그 분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해라’라고 자신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기쁘신 분도 계시겠지만 마음이 무거운 분도 계신다 하더라도 똑같이 의지를 사용해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고백하며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로 주님을 송축하실 수 있는 성도님이 되실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찬양의 내용: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5절)

이제 3절부터는 다윗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택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모든 죄악을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병은 육체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까지 포함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의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이 파멸이라는 말은 원어적인 표현에서 구덩이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저의 생명을 파멸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자와 긍휼은 구약에서 많이 표현되지만 특히 본문에서는 여러 번 반복이 됩니다. ‘인자’는 사랑인데 의지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의지적인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 인자로써 우리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긍휼’도 같은 사랑인데 감정에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정과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의지적인 사랑, 인자와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사랑, 긍휼로 내 인생을 관 씌우셨다. 왕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는 좋은 것으로 저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셨습니다. 여기에 소원이라 하는 것은 원어적인 표현으로는 ‘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우리들의 입을 만족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놀라운 5가지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저의 삶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십니다. 독수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늘로 비상하는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은 저에게 날마다 지치지 않는 새로운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어주시는 분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은택을 하나, 하나 기억을 했습니다. 이 은택은 다윗만 받은 것이 아니라 저희들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이 명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용서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으로 죄 사함의 은총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단절시켰고 인간을 깊은 수렁에 몰고 갔던 그 죄가 용서함을 받는 은혜는 인간인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은혜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모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다윗도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진리의 은총이 지금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파멸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까? 파멸의 구덩이에 빠져 우리들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그 파멸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변함이 없는 그 의지적인 사랑, 인자와 가슴 터질 것 같은 감정적인 사랑, 긍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들의 삶을 붙잡아 주셨고 인도해주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하나, 하나를 헤아리는 가운데 성도님들의 삶이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이 지칠 줄 모르는 새로운 힘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Ⅱ.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찬양과 증언(103:6-18) 

 1. 모세에게 계시된 참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 (6-9절) 

다윗은 개인적인 은혜를 고백한 다음에 6절부터는 이스라엘이 누렸던 공동체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 땅의 수많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의를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정의로운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 사건이 그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7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행위를 모세에게, 하나님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8~9절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8~9절은 출애굽기 34장 6~7절을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장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호렙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는 40일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바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모세를 내려 보내시고 모세가 그 금송아지를 깨뜨리고 이제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은 끝났다면서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깨뜨려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모세가 이제 중보자로 다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십시오’라면 하나님 앞에 메어 달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저에게 보여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보여주면 네가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뒷모습만 보여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 앞에서 뒷모습으로 지나가게 됩니다. 그 때 ‘여호와로다, 여호와로다.’라는 소리가 들리면서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지 출애굽기 34장 6~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말씀을 가지고 와서 본문 8절과 9절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고백입니다. 먼저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시기 때문에 그 분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십니다. 또 여호와는 자주 경책하시지 않는 분이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 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 분도 분노하시는 분이시지만 그 노를 잠깐만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참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 (10-18절) 

이제 다윗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난 역사를 회상하며 고백합니다. 모세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계시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서 그 모습을 명확히 드러내셨습니다. 10절부터 다윗은 ‘내 영혼’ 대신 ‘우리’로 주체를 바꾸며 하나님의 모습을 두 가지로 고백합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 은혜가 풍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구체적인 잘못)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 않는 분이시고, 우리의 죄악(비뚤어진 내적 본성)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크고 높기 때문입니다. 12절 동이 서에서 먼 것과 같이 죄과(하나님의 의지에 고의로 반역한 것)을 우리에게 멀리 옮기신 분이십니다. 

미가서 마지막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의 죄를 꽉꽉 발로 밟아 모으신 다음에 이 죄악 덩어리를 깊은 바다에게 던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용서해주시고 기억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 그 죄를 갚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더 나아가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가슴이 터지는 사랑으로 그들을 품어주시고 아껴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새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셨지만 그들의 죄에 합당할 만큼 징계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진노 가운데도 언제나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들이 회개할 때 그들을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셨고 동이 서에서 먼 것과 같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치워버리셨습니다. 그 긍휼로 우리를 품어주셔서 마침내 자기 백성을 회복시켜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은 성도님 한 분, 한 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님들의 연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연약해서 넘어질 때에도 우리를 징계하시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긍휼을 호소하게 되면 주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게 됩니다. 15~16절에서 다윗은 하나님 백성들이 경험한 인간에 대한 진리 하나를 고백합니다. 

15절을 보면 우리 인생의 연약함을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습니다. 인생은 그 만큼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은 들의 꽃과 같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시를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광야입니다. 광야에서 들의 꽃이 피었다고 하더라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이 그 꽃에 불어버리면 그 꽃이 한꺼번에 다 떨어져버립니다. 그 강한 열풍 앞에 그 꽃이 있던 자리조차도 알 수 없을 만큼 다 사라져 버립니다. 

성도님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유한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가진 영광은 이렇게 찰나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다윗이 우리에게 두 종류의 어리석은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영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 그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가진 영광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악이 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또한 일시적인 이 영광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찰나에 불과한 영광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살아가는 삶도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인생은 꽃과 같습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들에 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찰나에 불과한 인생의 영화에 목숨 걸지 않겠습니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7절을 보면 대조적으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의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때 우리를 보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면 그 효과는 우리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손의 자손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열왕기하를 읽어보시면 다윗을 이어서 왕이 되었던 수많은 왕들을 보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 때마다 열왕기 기자는 그들이 멸망되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의 등불을 기억하셨기 때문에, 다윗의 의가 자손에게, 또 다음 자손에게 미쳤기 때문에 비록 그 자손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윗을 기억하셔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또 한번 참으시고 또 한번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인간도 아니고 인간의 영화도 아닙니다. 영원한 것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얻을 수 있는 사람, 영원히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연약하여 넘어졌을 때에도 여호와께 부르짖는 사람(11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15-17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이 세상의 방법과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18절)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를 살피면서 하나님을 향해 두 가지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늘과 같이 높고 큰 인자를 베풀어주신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도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당신의 인자하심을 베풀어주시고 그 의로움을 자손에서 그 다음 자손에게까지 베풀어주신 분이십니다.’ 

Ⅲ. 우주적 찬양에로의 초대 (103:19-22)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의 삶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백한 다음 이제 다윗은 모든 영적인 존재와 모든 피조물들을 향해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요청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19절) 그 분 가장 가까운 곳에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바로 하나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라고(20절)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보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하늘 군대(천군)이 있습니다.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하늘에게 있는 천군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해라.(21절) 다윗은 그들을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도전을 합니다. 

그리고 땅을 보며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모든 피조물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22a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22b절)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 거대한 우주의 찬양 속에서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모든 영적인 존재와 모든 피조물들이 그 분을 찬양하는 것이 보이십니까? 그 장엄한 찬양의 무리 속에 내가 있음을 인해 마음에 전율이 느껴지십니까? 여호와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의 인자하심은 크고 위대하십니다. 그의 신실하심은 영원합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찬양하며 그 분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십시오. 

결론 

오늘 우리가 다윗의 찬송시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민족 큰 명절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성도님 한 분 , 한 분 지난 삶을 돌아보시면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헤아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저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저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고 좋은 것으로 저의 소원을 만족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성도님들, 가족과 함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하늘만큼이나 높고 큽니다. 주님은 저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저를 가슴 터지는 사랑으로 저를 지금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게 있습니다. 인생의 영광도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도님들 오늘 이 말씀 기억하면서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누리게 되는, 우리의 자손의 자손까지 누리게 되는 복된 사람,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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