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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자여, 눈을 들어라 (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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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여, 눈을 들어라 (창 13:14~18)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이 사랑하고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몇 이나 됩니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자신이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가족 관계에서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는 사람이 5~6명, 친구 관계에서 5~6명, 직장이나 이웃에서  5~6명 정도는 있다고 합니다. 도합 15~20명 정도 되는 사람과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함께 있을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라는 공동체로 세상에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사랑을 나누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가족, 친구, 이웃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홀로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정리하고 단독자로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정리시키시고 우리를 혼자 있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I. 정리

14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4a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아브람은 지금 그의 생애에 세 번째 하나님의 언약을 받습니다.
이때는 언제였습니까? 바로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12:1)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차마 조카 롯을 떠내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늘 아브람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산 문제로 드디어 롯이 아브람을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롯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롯이 아브람을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롯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 소돔과 고모라 쪽으로 갔고, 아브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가나안에 남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드디어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와주셨습니다. 
   
이때 아브람의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아들을 잃어버린 심정 바로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자식 없는 아브람이 평생 데리고 다닌 조카 롯이 그의 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돌보던 조카를 떠나보내고 혼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재산 문제로 갈라선 후였습니다. 아브람은 섭섭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혼자가 되었다는 것은 의지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혼자가 되었다는 것은 기댈 것이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혼자가 되었다는 것은 위로받을 사람이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혼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혼자가 되었기에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혼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곁에서 롯을 떠나가게 하셨습니다. 
   
1. 사람을 떠나게도 하십니다.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하나 밖에 없는 의지할 사람을, 목숨 바쳐 사랑한 사람을 우리의 곁에서 떠나게도 하십니다. ‘왜 하필이면 이 사람입니까?’고 탄식하지만 그렇게 사랑한 사람이기에 떠나게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아브람의 아들인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라는 쌍둥이 형제가 있습니다. 동생 야곱은 형 에서를 제치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늙어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형은 자신이 받을 복을 가로챈 동생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향을 떠나 멀리 밧담 아람의 외갓집으로 도망칩니다. 그 도중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잠이 깨어 고백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 하였습니다. 혼자 돌베개를 베고 자던 거기에서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홀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좀 외로워져야 합니다. 아직도 의지할 것이 많으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 바라보는 것이 많으니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혼자 서야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혼자 서야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주변 사람을 떠나게 하심으로 홀로 있게 하실 때, 바로 그 때 다가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지음 받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섬으로 얻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홀로 서게 하심으로 바라보게 하시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II. 비전

14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4b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히브리어의 어순으로 읽으면 “들어 올려라, 제발, 눈을!”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우리 말 성경에 생략된 ‘제발’[an:/나]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롯이 떠난 뒤 상심하여 고개를 숙이고 눈을 아래로 깔고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자! 제발 눈을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들과 같이 소중히 여기며 동행하던 롯을 떠나보낸 아브람입니다. 그래서 착잡한 마음으로 불안에 잠겨 있는 아브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부드럽게 그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롯과의 이별로 인한 인간적 고독과 상심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롯처럼 탐욕의 눈이 아니라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약속의 땅(12:7)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1.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빈자리를 바라보는 눈을 들어야 합니다. 정말로 믿었던 사람이 남긴 상처를 바라보는 눈을 들어야 합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하였지만 아쉬운 실패를 바라보는 눈을 들어야 합니다. 정말로 원통하게 사라진 기회를 바라보는 눈을 들어야 합니다. 어쩌면 머물고 싶은 놀라운 성공을 바라보는 눈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눈을 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실패와 원망거리를 바라보던 눈을 들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려고 하시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브람이 동서남북을 보아야 했던 것처럼, 자신의 가정을 통하여, 자신의 자녀를 통하여, 자신의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우리 지역을 통하여, 우리나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려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보는 사람이 비전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보는 사람이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개똥참외도 먼저 맡는 사람이 ‘임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지 못하고 우리가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누가 주시겠습니까?
   
실망스럽고 낙심되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펼쳐주실 것을 바라보기 위하여 눈을 드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5절 말씀입니다.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보라고 하신 하나님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브람이 보는 것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람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요? 아브람이 눈을 들어 동서남북으로 살펴본 땅은 황무지에 불과하였습니다.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곳은 이미 롯이 선택하고 떠난 뒤였습니다. 더욱이 이 땅을 아브람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시는데 자신에게는 여전히 자식이 없고 자식처럼 키워온 롯은 떠난 뒤였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아브람은 눈을 들어 보기는 보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깊은 한 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땅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손에게 영원히 주시겠다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이 담겨져 있습니다. 영원[/올람]이라는 말에는 ‘숨기다’(민 5:13), ‘깨닫지 못하다’(레 4:13)는 뜻이 있습니다. 영원은 인간의 눈에는 감추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영적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숨겨진 뜻이 보이리라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아브람은 그 땅을 바라봄으로 그 땅이 아니라, 그 땅을 통하여 영원한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2. 영원한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말에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이는 작은 떡잎 속에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있습니다.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됩니다. 망아지가 자라면 말이 됩니다. 송아지가 자라면 소가 됩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면 어른이 됩니다. 
   
그러면 마티즈가 자라면 무엇이 될까요? 에쿠스가 된다고 하데요.
   
호주의 상징 동물인 캥거루의 새끼는 몸길이가 약 2cm, 몸무게가 약 2g 쯤 된다고 합니다. 숟가락 위에 올라갈 정도입니다. 작아도 보통 작은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어미 캥거루는 몸길이가 약 2.5m, 몸무게가 약 100Kg이나 된다니 새끼 캥거루는 약 500배나 성장합니다. 어찌 그 작은 새끼에게서 커다란 어미 캥거루를 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실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이 자라나는 것을 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아브람이 눈을 들어 바라본 것은 유대의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영원한 나라였습니다. 아직 아브람이 깨닫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후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습니다(히11:10).
씨앗에서 열매를 바라보듯이 눈을 들어 영원을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무엇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16절 말씀입니다.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내친 김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마어마한 약속을 하십니다. 그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당시 자식이 없고 있던 조카마저 떠나간 아브람에게 그 자손을 티끌 같이 많게 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약속입니다. 동시에 이는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도전의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자손을 티끌 같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3. 풍성한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실 놀라운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믿지 말아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약속은 구체적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나님도 우리를 몰라라 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만큼 돌보아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만큼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믿음만큼 보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우리의 믿음만큼 받습니다.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큰일을 봅니다. 큰일을 보는 사람은 큰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놀라운 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III. 행동

하나님께서는 눈을 들어 바라보게 하시고 구체적인 꿈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서 이 땅을 두루 돌아보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에 행동을 요청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주실 그 땅을 걸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1. 일어나 다녀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걸음으로 다녀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바라보게 하시고 다녀보게 하십니다. 약속을 받은 이들의 삶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믿음에 근거한 희망의 몸짓을 합니다. 정말로 갖고 싶은 것이면 그것을 마음으로 그려봅니다. 정말로 사고 싶은 것이면 그 앞에서 기웃거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바라면 먼저 땅 밝기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발로 밟고 들어가 그들의 것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눈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두 발로 걸어가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요단강이 갈라질 것을 믿느냐 그렇다면 발로 디뎌라!’ 이것이 하나님의 복을 우리가 받는 과정입니다. 요단강이 갈라질 것을 믿고 발로 디뎠을 때 요단강은 갈라졌습니다.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을 마음에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걷고 싶다면 다시 넘어지더라도 걸음마를 하여야 합니다. 날고 싶다면 날개 짓을 하여야 합니다. 슬픔을 딛고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일어나 다녀보아야 합니다. 우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예배의 자리에 나와야 합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분은 잘하셨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우리는 도와야 합니다.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분들을 옆에서 도와주어 일어나 다니게 하여야 합니다. 공동의 비전을 위하여 함께 걸어야 합니다.
순종의 몸짓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삶에서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18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8a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역시 아브람에게는 믿음의 사람이 될 싹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의 여러 곳에 장막을 치며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헤브론은 아브람의 활동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헤브론은 그의 아내 사라를 장례지낸 곳이자 그 자신이 묻힌 곳입니다. 그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2. 약속의 땅에 머물러야 합니다.
   
일어나 다녀보다가 결론을 내리고 머물러야 합니다. 계속하여 떠돌아다니면 유리방황하는 인생이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걸만한 일을 발견하였다면 한 우물을 파야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머물러 예배하는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몸 된 오직 하나인 우주적 교회에 속하였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형편에 따라서 각각 지역교회에 속하여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 교회가 여러분이 머물며 하나님의 비전을 이 땅에서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기에 머물러 함께 하나님의 위대한 비전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람이 헤브론에 머물러 한 일은 무엇입니까?
18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18b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람은 헤브론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받쳤습니다. 다시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이제 그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바라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였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실 일을 기억하였습니다.
   
3. 하나님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예배는 언약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또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비전을 기억합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 풍성함으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담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의 99%가 문제의 밑바닥에 고독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고독은 인간을 병들게 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내게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 앞에 서는 신앙의 고독은 눈을 들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혼자만 남았다고 느껴질 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보십시오. 그리고 한 발자국씩 옮겨가십시오. 믿음으로 밟는 그곳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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