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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 파송 교훈 (마 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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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파송 교훈 (마 10:1~15)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민족의 대명절 설입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고, 고향의 교회를 찾아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추석이건 설이건 우리나라 명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제 고향을 찾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만 되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민족 대이동의 차량 행렬 속에서 고향을 찾는 일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제 아들도 8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새벽녘에야 겨우 도착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약과이지요. 제가 20여 년 전 서울에서 고향에 왔다가 귀경할 때에는 장장 17시간이나 소요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고향을 오고 갈 수 있는 현대인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고향이 아무리 사무치게 그리워도 오도 가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 해런가/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꿈에 본 내 고향이 차마 못 잊어” “타향살이 몇 해런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교통도 불편하고 전화도 없었던 옛날에는 고향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고향을 그리워한 노래들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작 이 땅이 우리의 고향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은 모두 나그네라고 말씀합니다. 인간 영혼의 고향은 하나님의 품이며, 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하늘나라인 것을 말씀합니다. 바라기는 고향을 찾는 민족 대이동의 물결처럼, 하늘나라 본향으로 향하는 성도들의 발걸음으로 주일이면 교회당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치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인생들이 하나님 품안으로 돌아오고, 더 나아가 성도들이 하늘 본향을 사모하다가 한 사람도 낙오자 없이 그 나라에 다 안착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파송하시면서 주신 제자도인데, 이 시간 주님의 제자 파송 교훈을 상고해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1절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라고 했고, 2절에 보면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구약의 대표되는 지파가 열두 지파이기 때문에 신약의 대표도 열둘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3은 하늘의 숫자이고, 4는 땅의 숫자인데, 이것을 곱하면 열둘이 됩니다. 따라서 열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의미하는 선택수이기 때문에 열두 제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신 기준을 보면, 사람의 선택 기준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택하신 열두 제자의 명단을 살펴보면, 특별히 주목받을 만큼 뛰어난 경력과 지식의 소유자가 발견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주님의 열두 사도들은 대부분 보잘것없는 출신 성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과연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는데, 그들의 겉으로 드러난 면모만 본다면, 분명 주님께서 사도들을 잘못 선택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일꾼들을 선택할 때는 우선 출신 배경이나 학벌 등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세상적 기준을 완전히 탈피하고 전혀 새로운 기준으로 천국 일꾼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바로 마음이 순전하고 순종을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님의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는 순간부터 얼마나 순종을 잘했는지를 알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의심 없이 잘 받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천국 일꾼으로서 주님께서 부탁하신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직분에 맞게 부르시고, 또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고 직분을 맡은 성도들은 자신의 연약함이나 무능한 것만을 보고 낙심하거나 핑계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실 줄로 믿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찬송가 작시 자처럼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고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거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셨습니다. 

5절에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보내시며”라고 했는데, 이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신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은 그들을 사도로 세워 세상에 파송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란 ‘내가 보낸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보냄 받은 자’가 사도입니다. 즉 주님께 부름 받은 자는 동시에, 세상에 보냄 받은 주님의 사신들이 되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신 목적도, 그를 애굽으로 보내시기 위한 목적으로 부르셨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주님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은혜와 사랑으로 충전시킨 후에 ‘가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일을 세상에서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께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얻으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세상을 기피하고 은둔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다시 세상에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과 ‘들어가는’ 것은 다릅니다. 죄의 종이 되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사신으로 세상으로 들어가야 마땅합니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드는 성도들은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구원받은 존재’라고 교훈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가십시오. 그러다 지치고 피곤하면 주님께 다시 오십시오. 그러면 풍성한 은혜와 은사로 재충전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을 몇 가지로 명령하셨습니다.

1)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5-6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보고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도 역시 유대인의 전통적인 폐쇄성과 배타적인 의식을 지니셨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은 큰 오해입니다. 주님께서 전도의 대상으로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제한하신 것은, 하나님의 인류 구속의 경륜은 천국 복음이 먼저 이스라엘에 전파된 후 이방인에게 본격적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적용하면, 먼저 가까운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서 늘 느끼는 것입니다만, 내 가족이 제일 어렵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힘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척, 내 백성부터 전도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주걱으로 밥을 퍼서 담을 때마다 십자가를 그으며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떤 성도는 남편 구두를 새벽마다 싸가지고 나와 이 신발 임자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하며, 어떤 성도는 매일 아침 금식을 하면서 남편 구원을 기도했다고 하고, 어떤 주부는 건성 피부증 때문에 가려워는 남편의 등을 긁어 주면서 십자가를 긋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전도해서 구원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전도의 순서요 전략입니다. 

2)가면서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7절에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신 3대 사역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신 궁극적 목적을 살펴보면, 복음을 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전도하지 않는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은 의미가 없습니다. 

도시마다 기독교 이름을 내건 병원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본래 선교사들이 그 병원을 세울 때의 정신은 가난하고 불쌍한 병자들을 고쳐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병원들이 복음전도는 없애버리고 의료 행위만 계속한다면 병원 문을 닫든지,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부단히 열 두 제자를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전도현장으로 파송하셨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점이 여러 가지입니다 만 그 중에 하나는 기독교는 가면서 전파하는 종교인데 반해, 불교는 한 곳에 머물면서 전파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거리로, 불교는 산 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가면서 전파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를 호흡하고 세상을 걸어가면서 그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보내십니다. 입산수도 하는 도사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면서, 찾아가서, 기회를 만들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면서 전파하라는 말씀의 뜻은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두 번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 가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3)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8절에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 주는 일”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대가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거저 주고받는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미국 교포 목회를 하는 어느 목회자의 고백입니다. 그 분이 목회하는 교회 성도 중 한 사람이 간단한 법률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신 이 목사님은, 아주 절친한 변호사 친구에게 전화로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후 적지 않은 변호사 수임료 청구서가 날아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입니다. 오래 전 서울의 모 교회 목사가 모 교회 장로가 암에 걸린 것을 알고 5천만 원을 받기로 하고 안수기도를 하였으나 죽었습니다. 초상을 치르고 난 후 약속한 5천만 원을 내어 놓으라고 해서 시비가 붙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것,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것은 거저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또한 하나님께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4)의식주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9-10절에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복음 사역자들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주님의 언약입니다. 주님은 전대, 즉 돈주머니에 돈을 넣어 다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의복도 여벌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험한 일, 대적 자들을 만났을 때 필요한 지팡이도 지닐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들은 우리들을 빈털터리로 만드시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보장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병’ 즉 좋은 대우를 받는 특공대로 천국 군대에 입대한 군병들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음의 선한 싸움을 벌이는 우리들에게 모든 필요한 것들을 지급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말씀 훈련 받고 열심히 선한 싸움에만 전념하면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먼저 알고 계시는 주님께 간구만 하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전도 잘하는 성도들의 가정이 안정되고 풍성한 여러 가지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일찍이 중국에 ‘송전도’라는 별명을 지닌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전도하는 일에 너무 열심이어서 사람들이 놀리려고 그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자녀들이 성장하자 하나님은 그의 가정에 놀라운 상급을 내리셨습니다. 맏딸 송애령은 중국의 부호 공상희와 결혼을 하였고, 둘째 송경령은 중국의 국부인 손문과 결혼했으며, 셋째 송미령은 장개석 총통의 부인이 되었고, 아들 송자문은 중국의 대재벌이 되는 명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전도하는 일에 진력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또 상급으로 상상치 못한 축복도 내려 주실 것입니다.

5)어느 집에 가서든지 평안을 빌라고 했습니다. 

12절을 보면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고, 13절을 보면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전도여행 도중 어느 집에 들어갔을 때 평안을 먼저 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에 근거하여 어느 집에 가든지, 또한 식당에 가서라도 그 집을 위하여 평안을 빌어야 합니다. 주님은 전도자가 어느 집에 가서든지 평안을 빌었을 때, 기도를 받은 사람이 복을 받기에 합당치 않으면, 전도자 자신이 그 복을 받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집에 가서든지 우리는 그 집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6)사역자들을 환대하는 가정은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3절에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사역자들을 환대하는 가정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사역자들을 영접하고 환대하는 이들은 곧 주님 자신을 영접하고 환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사역자를 환대하고 또 도와주는 가정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역사와 우리 주변의 성도들 가정이 증명해 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주의 사자들을 환대한 결과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얻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엘리야를 도운 사르밧 과부는 큰 기근 중에도 떨어지지 않는 식량의 복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를 도운 수넴 여인도 아들을 얻는 축복과 또 그 아들을 다시 살림 받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주의 복음을 사역하는 주의 종들을 환대하고 협조하는 일은 곧 복음 전파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일을 주님은 향기로운 제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도움 받는 주의 사역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과 영혼을 위해 각별하게 기도해 줄 것이요, 그 결과 여러분이 베푼 환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주께서 상급으로 주실 것입니다. 

7)복음을 거부하면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14절에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도자와 그 말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사역자의 자세를 가르치신 내용인데, 한 마디로 단호하게 그들과 교제하지 말며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5절은 제자들의 전도를 거부한 사람들의 운명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즉 심판의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보다 더 큰 화를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런 무서운 결과를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목적은 최선을 다해 전도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전도할 동네 중에는 그들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려면 최선을 다해 구령 사역을 해야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는 복음 전하는 선지자나 사도들이 간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심판하는 천사들만 갔었습니다. 

따라서 주의 사도들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데도 계속 불신앙과 죄 가운데에 머무는 자들이 더욱 큰 진노를 받게 됨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도들이 전도하고 주의 사랑을 전한 수고의 흔적이 불 신앙인들에게는 심판의 증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전도하다 수욕을 당해도 미워하지 맙시다. 불쌍하게 봅시다. 최선을 다하여 사랑한 이웃이 선을 악으로 갚는 일을 당해도 증오하지 맙시다. 우리가 행한 전도와 사랑의 흔적이 그들의 심판의 증거물로 이미 하늘 법정에 채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은 부르시고 파송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부르신 다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금번 설 명절 중에 여러분의 불신 가족들에게 힘써 전도하여,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가정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복을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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