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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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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30)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 알려진 본문의 말씀을 지난 시간에 이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한 사람이 홀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 것 다 뺏기고 매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 된 채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본문에 보면 거의 죽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눅 10:30절을 보면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라고 표현되었습니다. 

강도들이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재빨리 구조되어 응급조치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태입니다. 요새 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과다 출혈이 발생하여 생명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 사람은 빨리 구조되어야 살 수 있는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사장 한 사람이 그 길로 지나가다가 피투성이 된 채 길가에 버려져 있는 이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은 “마침”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마침이라는 단어는 ‘카타 슁퀴리안’ 이라는 헬라어인데 강도당한 사람이 오랫동안 쓰러져 있었으며 이제 구조될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강도당한 이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갔습니다.

본문 31절에서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 라고 했습니다. 그를 구조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피하여 갔다는 말은 못 본 척하고 지나친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이 피하여 간 이유에 대하여는 자기도 강도떼를 만나게 될까봐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아마도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제사장이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율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의 생사여부를 확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제사장이 못 본 척 지나치고 나서 얼마 후에 레위 사람이 그길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레위 사람은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봉사하기위해 성별된 사람입니다. 제사장보다 지위가 낮긴 하지만 유대의 종교적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레위인은 제사장과는 달리 강도 만난 이 사람에게 다가가 보긴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역시 제사장처럼 그냥 지나쳐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구조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무책임함 속에 길가에 버려져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또 한 사람이 그길로 지나갑니다. 
본문에 보면 그는 여행하는 중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그길로 지나가게 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 중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쁘게 여행하는 중에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만난 사람을 가던 길을 멈추고 구조합니다. 우선 자기에게 있는 구급약을 꺼내서 상처에 바르고 싸매어줍니다. 
본문에서는 기름과 포도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기름은 상처의 통증을 가볍게 하고 포도주는 살균작용하기 때문에 소독약과 같은 것입니다. 

응급처치를 한 다음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튼 날 길을 떠나면서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의 돈을 주면서 치료를 부탁하는데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한사람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돈인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0 만원 정도의 돈입니다. 
이 돈은 자신이 돌아올 때 까지의 숙박비와 치료비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만일 비용이 더 들면 돌아와 갚으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무엇일까요?

지난 시간에 강도 만난 사람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강도는 사탄 마귀이며 강도 만난 사람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듯이 우리의 신앙이 내려가는 신앙일 때 마귀에게 유혹되고 당하게 되어지고 홀로 가는 신앙일 때 마귀의 공격 목표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라가는 신앙이 되고 신앙의 동지들과 함께하는 거룩한 영적 삼겹줄을 이루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물으신 질문 “누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겠느냐?” 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춰서 영적 교훈과 도덕적 교훈 차원에서 말씀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1. 영적 교훈

1. 우리 인간은 시급하게 구조가 필요한 강도만난 사람들입니다. 
2. 율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구조하는데 제사장이나 레위사람이 쓰임 받지 않았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율법의 상징입니다. 인류가 마귀에 강도질 당하여 완전히 멸망의 자리에 있게 되었고 인간의 행위와 노력으로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결코 사람의 노력이나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등장합니다. 
3.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2. 도덕적 교훈

도덕적 교훈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적극 적으로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지나간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이 어쩌면 일부러 강도 만난 사람들 구조하지 않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름대로 핑계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제사장을 제사를 집전하러 가는 길에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레위 사람도 역시 나름대로 핑계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들 바쁘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길가에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자기들의 안위와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한다는 것은 성경적 윤리관으로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의 힘을 조금만 보태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상당히 감소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찮다거나 어떤 불이익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방관하는 것은 기독교적 윤리가 아닙니다.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나 몰라라 방관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죄입니다. 
적어도 어떤 시도를 해야 합니다. 
관심을 갖고 기도를 하고 할 수 있으면 도와야 합니다. 
아이티 구제헌금을 실시한다고 했습니다. 지진으로 처참한 상황을 방송매체를 통해 보셨을 것입니다. 이일에 우리 모두가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접가서 그들을 도울 수는 없다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작은 것이지만 구제헌금에 동참할 수는 있습니다. 

탤런트 김혜자씨가 최근 펴낸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사람들은 온통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립니다. 굶어 죽어가는 아이에게 음식을 먹여 살리는 것, 전쟁을 중단하는 것,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들이 나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외면한 채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셔서 친히 세상에 오셨습니다. 율법으로 치료할 수 없었던 인류의 질병을 당신의 몸을 십자가 매달아 피흘림으로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즉 원치 않게 강도만난 사람들.... 
그들을 찾아가라고 말입니다. 적어도 오늘 내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교회에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조금 배우지 못하고 나보다 못났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하대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그러신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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