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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의 말을 들으라! (눅 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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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들으라! (눅 9:28~36)

 
사람들은 누구나 영광을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던 뱅쿠버 동계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출전 선수들 가운데 메달을 다른 선수에게 양보하기 위해서 출전하는 선수가 있을까요?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국립 대학 총장을 지낸 친구가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청문회 때부터 지금까지 참기 어려운 수모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총리라는 자리가 꽤나 영광스러운 자리인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을 비난할 것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똑같이 추잡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해마다 각 교단 총회장을 뽑는 선거에 있어서 공공연하게 돈 봉투를 돌리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종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광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비참하게 실패하셨습니까? 초라하고 또 비참하게 죽으셨지만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영광 중에 이제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그 나라를 상속받을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그 찬란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란 그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경주와도 같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전혀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말로만 떠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익명성 때문에 대형 교회를 찾는다고 합니다. 최소한의 의무만 감당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 출석이나 헌금을 드리는 일에 있어서... 그러면서도 복은 몽땅 다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세는 결코 올바른 믿음의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찬송가 487장은 올바른 믿음에 대해서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연약함 후에 강건하며 애통한 후에 위로받고
눈물 난 후에 웃음 있고 씨 뿌린 후에 추수하네
괴로움 후에 평안 있고 슬퍼한 후에 기쁨 있고
멀어진 후에 가까우며 고독함 후에 친구 있네
고생한 후에 기쁨 있고 십자가 후에 영광 있고
죽음 온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가 진리로다."
모든 것이 이렇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영광만을 누리려고 합니다. 영광을 받아 누리기 전에 먼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또한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변화 산에 오르셔서 놀랍게 변모하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또한 그 주님을 보고 놀란 나머지 그 산에 초막 셋을 짓고 그냥 거기서 살자고 제안하는 베드로를 보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경솔한 태도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제가 거기 있었더라면 저도 베드로와 똑같이 제안했을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는 다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고 기록되었지만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 9장 3절 말씀을 보면 제가 하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그보다 더 찬란한 모습은 이 세상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며칠 전 주님은 제자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시고 십자가 죽음을 예고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베드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변화 산 사건의 참된 의미는 다가올 고난을 다 당한 후 누리게 될 영광이지 십자가를 외면하고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먼저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가슴에 품고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주님의 그 영광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오늘 우리가 주님의 그 영광에 동참하려면 먼저 우리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30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모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전해 준 인물입니다. 또 엘리야는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구약을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이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비록 영광 중에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내용은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중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의 죽음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면 결론적으로 성경이 지금 가리키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결국 변화 산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먼저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도 그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아울러 성경은 변화산 사건은 더 나아가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을 예고하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참으로 신비하고 또 장엄한 광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즉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화와 위대한 인물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결국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히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주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건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까지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주님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또 구름이 그들을 덮었는데 그 구름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결국 변화 산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지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은 결국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미래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도 장차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확신이 가지고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주님의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산 위에서 영광만을 누리기 위해서 초막 셋을 짓자고 했던 베드로의 실수를 우리가 되풀이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게 안일함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믿음의 자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더 이상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갈보리 없는 변화 산의 경험만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때때로 신기하고 놀라운 변화 산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기에 머물라고 주시는 은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천국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변화 산에서 내려가 갈보리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 고난이 없을 것 같으면 변화 산의 영광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 말씀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사도 베드로도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듯이 우리에게 간곡히 권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 말씀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주님을 끝까지 따름으로 말미암아 그 영광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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