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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삶의 순례(10) : 팔복산 (마 5:1~12)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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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삶의 순례(10) : 팔복산 (마 5:1~12)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행복을 찾아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얻었지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중병에 걸려 눕게 된 사업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자녀들이 아버지의 병을 치유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진도가 없이 악화되고만 있었습니다. 

어느 날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자 “그러면 참된 행복을 느끼고 사는 사람-난 정말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발견하여 그의 외투를 빌려다가 아버지께 덮어 드리라”고 말합니다. 그의 자녀들이 온갖 곳을 다니며 온갖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산중의 수도원을 방문했다가 굴속에서 한 수사가 “하나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안식에 들겠습니다.”고 기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굴속으로 들어갔더니 그에게는 걸치고 있는 외투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아버지가 병을 고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녀들이 배운 레슨은 분명했을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구정입니다. 전통적으로 가족과 이웃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날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행복을 피차에 빌어 주지만 정말 행복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의 행복관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예수께서 인류를 향해 진정한 행복의 교훈을 가르치신 갈릴리 팔복산으로 떠나 가보시겠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약 10km 떨어진 곳, 갈릴리 북서쪽에 팔복산, 팔복 교회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팔복 기념교회가 세워진 이곳은 전승에 따라 본래 5세기 경 비잔틴 교회당이 세워졌던 곳인데 1937년 이탈리아의 무소리니가 후원하여 유명한 건축가 조반니 무치오(수태고지 교회도 설계)에 의해 다시 건축된 아름다운 교회당입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둥근 천정에 8방향을 향한 8각형 구조의 창문에 라틴어로 8복의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문 틈새로는 그림 같은 갈릴리 바다가 펼쳐져 있는 곳, 교회 전승에 의하면 바로 이 곳이 예수님께서 8복의 레슨을 가르치신 곳입니다. 

본래 이 8복은 원문에 의하면 “복이 있도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참된 행복의 본질을 예수님의 제자들과 인류를 향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1절은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심으로 말씀을 시작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나아온 후에 비로소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이 행복의 교훈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행복의 본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8복을 통해 주의 제자된 우리가 추구할 참된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시겠습니다. 참된 행복의 본질-무엇일까요?

1. 참된 행복은 마음의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8복의 제1의 복은 어떤 말씀으로 시작됩니까? 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런데 첫 번째 복만 심령의 상태 곧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째 애통함도 마음의 상태이고, 셋째 온유함도 마음의 상태이고,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름도 마음의 상태이고, 다섯째 긍휼히 여김도 마음의 상태가 아닙니까? 여섯 번째 복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복은 외적 상태, 곧 환경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마음 다스림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더 돈을 벌면 조금만 더 큰 집을 갖게 되면 조금만 더 출세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바램속에 날마다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행복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외적인 환경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크리스쳔 작가 이철환의 <곰보빵>이란 책에 보면 “행복한 하루”라는 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하루가 어떤 날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는 보통 행복한 하루를 떠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행한 하루, 사고 난 하루는 쉽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교통사고 난 날, 내가 시험에 떨어진 날, 내 사업이 부도난 날, 실직한 날, 실연한 날들은 쉽게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 날은 잊어버리고 싶은 날인데도 자꾸 기억속에 떠올라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리고 보면 행복한 날은 어떤 날이겠습니까? 사실은 그런 불행이 없었던 하루 하루가 행복한 날들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제 이철환 작가의 글을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5학년 딸아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재연아, 어제는 정말 마음 아픈 일이 있었어. 네 살짜리 내 동생이 다쳤거든오른쪽 눈위를 많이 다쳐서 엄마하고 병원으로 달려 갔어. 동생이 내 발에 걸려 넘어진거야. 마음이 아파서 어제는 하루 종일 울었어. 동생이 다쳤을 때 깨달았어.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하루라는 걸” 얼마나 아름다운 진리의 발견입니까? “가장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하루다.” 

문제는 이런 진리를 우리 마음이 깨우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가난하면 그리고 마음이 청결하면 이 진리가 우리를 깨울 것입니다. 인생이 선물이고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쩌면 인생의 불행한 재난이나 사고들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를 깨우는 하나님의 자명종들인 것입니다.

2.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8복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희랍어의 "makarios/makarioi"입니다. 이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면 "blessed"입니다. "happy"가 아닙니다. 본래 영어의 "happy/happiness"라는 말은 고대어에서 ‘우연한 기회’(happen)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우연한 횡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blessing"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영어의 blessing의 어원은 피의 제사를 뜻하는 "bleed/bleeding"이라는 말에서 유래합니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제물의 피를 흘리며 제사 드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자신의 몸을 드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려 함인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8복은 이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르치는 마음의 덕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한마디도 그는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는 살수 없는 영적 가난을 깨닫고 사는 사람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의 죄를 아파하며 참회하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의 가치와 표준만을 기뻐하며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이 대목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로 읽어 보겠습니다. “벼랑 끝에 서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 분의 다스림은 커진다.(1복)/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2복)/하나님께 입맛이 당기는 자는 복이 있다. 그분은 너희 평생에 맛볼 최고의 음식이요 음료로다(4복)” 그러므로 참된 행복은 죄인 된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의지하고 거기서 참 만족을 누림인 것입니다.

3. 참된 행복은 이웃과의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8복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하나님과의 바른 마음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8복중에서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잊지 않도록 교훈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성경의 가장 큰 계명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과 뜻과 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행복은 결국 하나님의 기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예수님은 5복에서 우리에게 이웃을<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7복은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 대목을 다시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로 읽어 보겠습니다. “(5복)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렇게 정성들여 돌보는 순간에 너희도 돌봄을 받는다. (7복)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그렇습니다. 참된 행복은 자신의 이기적 목적만의 추구가 아닌 이웃과의 더불어 삶,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 섬김에 있음을 예수님은 보여 주신 것입니다. 유대인 철학자 말틴 부버는 이런 삶을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인격적 교감으로 이웃을 배려하는 삶속에 참된 행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한 주가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 한 달을 행복하려면 새 집으로 이사를 하라. 한 해가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그러나 일생이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섬기고자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분이지만 그것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실 수 있었던 진정 행복한 인생을 사신 분이 아니십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복한 일생을 누구보다 탁월하게 표현한 사람이 시인 윤동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십자가’ 시에서 그는 예수님을 “괴로왔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섬김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고통 저 건너편에는 세상이 알수 없는 행복이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복을 붙잡고 산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를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참으로 마음이 가난하셨고 인류의 죄를 인하여 애통해 하신 분이셨으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고백한 분이 아니셨습니까? 그렇다면 참된 행복은 결국 예수님을 주님으로 붙잡고 사는 삶이란 결론입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를 탈무드의 외투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이 메시지의 결론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 러시아의 유명한 문학 단편 고골리의 <외투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페쩨르부르그의 말단 관리 아카키에비치는 요령도 처세술도 별로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인생의 소원은 고급 외투를 한 벌 사는 일이었습니다. 외투가 그의 삶의 목적이었고 삶의 꿈이었습니다. 그는 극도의 내핍 생활을 통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외투를 장만하게 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그는 관청 부과장의 저녁 식사 대접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의 외투를 불량배들에게 강탈당합니다. 그는 절망 속에 빠져 자기 외투 찾아 달라고 경찰 서장에게 진정하고 유력한 인사들에게 매달려 보지만 냉대만 당하고 아무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그 충격으로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그후 그가 다니던 거리에는 추운 겨울이면 유령이 나타나 “내 외투, 내 외투”소리치고 다닙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소설속의 에피소드로 간주해 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좋은 날 명절의 추위속에서 지금 이 순간도 이 땅 도처 거리거리 골목마다 혹은 집집마다에서 횡행하는 유령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내 외투” 대신 “내 돈”, “내 아파트”, “내 증권”,“내 주식”, “내 보험” “내 자리”라는 외침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8복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행복은 외투에 있지 않다고, 돈에 있지 않다고, 권력에도 자리에도 있지 않다고-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올까요? 우리가 <내 외투> 대신 <주 예수>를 고백할 수 있다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는 참 행복을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행복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시고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따르십시오. May God Bless U!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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