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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나의 찬송 (삼하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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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찬송 (삼하 2:1~10) 
 
 
한나 이야기는 눈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마칩니다. 신약에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로 불리는 마리아의 찬송이 있다면, 구약에는 한나의 찬송이 있지요. 이 찬송은 개인적 은혜 체험을 언급하며 시작하지만 신국적 차원으로 마감합니다. 단순한 개인적 감사를 넘어서 하나님 백성의 미래를 예언하는 예언적이고 구속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요. 사무엘서 기자는 다윗의 찬송(삼하 22장)과 함께 한나의 찬송을 인클루지오(inclusio) 구조로 배치하여 사무엘서의 주제들을 담아둠으로써 사무엘서 해석에 결정적인 가이드가 되게 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경영하셔서 구원하시는지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1). “내 마음” “내 뿔” “내 입”의 반복은 히브리 문학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3중 대구법적 표현입니다. 한나가 전 존재가 벅찬 감격에 빠진 까닭은 “주의 구원”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무엘을 얻는 과정에서 주님의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아들보다 아들을 주신 주님과 주님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주님이 누구신지’(2-3), ‘주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시는지’(4-8a), ‘주님께서 어떻게 통치하시는지’(8b-10)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슬픔 가득했던 마음을 기쁨으로 넘치게 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2).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도’ 믿었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소득과 쾌락에 관계된 바알과 아세라를 더 의지했습니다. 막다른 처지에 이르러야 하나님을 찾았지요. 한나는 세 번의 ‘없다’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고백합니다. “거룩”은 도덕적인 깨끗함보다는 절대적으로 구별되신 분이라는 의미이며, “반석”은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유일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3).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은 일차적으로 브닌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겠지요. 하나님께서는 구속역사의 한 부분에 한나의 불임을 사용하시려는 뜻을 두고 계셨는데, 브닌나는 마치 한나가 하나님의 저주라도 받은 듯이 격동케 하는 행동을 취했지요. 브닌나처럼 자기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함부로 운운하며 다른 이들의 처지를 함부로 판단하는 말들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행동의 이면까지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반석이신 하나님, 지식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십니까? 첫째 전쟁 상황에서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는도다”(4). 세상은 강한 자는 더욱 강해지고 넘어진 자는 짓밟힙니다. 약점이 노출되면 사정없이 물어뜯기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 상황을 역전시키십니다. 둘째로 일상생활에서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5). 세상은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없는 자는 더 빼앗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도 역전시키십니다.

인생 역전은 복권이나 주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용사는 강한 활을 신뢰하고 교만한 말을 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용사의 활을 산산조각 나게 하십니다. 오히려 넘어진 자를 강건하게 회복시키시지요. 유족한 자는 자기 소유를, 많은 자녀를 둔 사람은 자녀를 자랑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오만한 말로 자랑삼는 모든 것들은 역전 될 것입니다. 사무엘서에서도 교만해진 엘리 가계와 사울 왕이 꺾이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한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입니다(잠 4:23).

브닌나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을 없던 한나를 멸시하고 괴롭혔습니다. 상대적인 비교 속에서 조금 더 가졌다는 이유로 우쭐해 하면서,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로 한나에게 상처를 주었겠지요. 결국 브닌나는 꺾이고 쇠약해졌습니다. 사회 속에서 사람은 언제나 나보다 더 가진 자와 나보다 덜 가진 자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조금이나마 더 가졌을 때 조금 덜 가진 자를 향해 마음이 높아지기 쉽지요. 비단 재물만이 아니라 지식과 같은 무형의 요소를 더 많이 가졌을 때도, 그렇지 못한 사람을 향해 높은 마음을 품기 쉽습니다. 조금 더 안다고 우쭐해지고 조금 더 있다고 자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을 쏟아내기 쉬워집니다.

겸손한 마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생깁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생각한다면, 감사할 뿐 자랑할 것이 없지요.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신 8:17)는 교만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고 가르치셨습니다. 속으로는 유익한 종이라 생각할지라도 말로는 겸양을 나타내라는 얄팍한 처세술이 아닙니다. 모든 수고를 다 한 후에도 무익한 종이라는 생각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려면 참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가능하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좀 더 안다면, 먼저 깨닫게 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수고하며 봉사했다면 그러한 열정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많이 베풀며 살았다면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을 주신 분 또한 하나님이시지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문제점들을 꿰뚫어보고 비판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입니다. 바울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임을 알 때, 역전당할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사(生死)에 있어서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6)며, 화복(禍福)에 있어서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며,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7-8a) 하십니다. 유행하는 광고처럼 내 인생이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지요. 세상은 항상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며, 항상 능력 있는 자가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죽고 사는 것, 부자가 되거나 가난케 되는 것,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내려가는 것이 인간의 생사화복이 모두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고 고백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지요. 사주팔자나 자기의 노력과 지혜가 생사화복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이느냐에 따라 혹은 목회자의 축복기도 여부에 따라 생사화복이 결정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런 생각이라면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을지라도 실제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교만하고 오만한 세상의 처세술을 더 신뢰하며 따르게 되지요. 하나님‘만’ 신뢰하고 살아가지 못하고 하나님‘도’ 믿고 사는 모습이 되고 맙니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8b). 하나님은 세상만물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또한 지금도 만드신 만물들을 붙들어 보존하시며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히 1:3). 하나님의 기본적인 통치방식은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시고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는 방식입니다(9). 근시안적인 눈으로 보면 역사는 사악하고 강포한 악인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거룩한 자들이 흑암 중에 지내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통치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입니다(10a).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10b) 한나의 찬송은 개인의 대적자로 시작했지만 그분의 대적자까지 확대됩니다. 높아진 “내 뿔”로 시작했지만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 곧 메시야의 높아지심을 생각하며 마감합니다. 이 예언적 노래는 가깝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다윗 왕국을 내다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정에만 매여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한 여인이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하심과 통치하심, 그리고 그분의 대적과 그분께서 세우실 왕과 메시야를 아우르며 노래합니다.

한나는 불임 때문에 오랜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기도의 응답으로 인해 큰 위로를 받았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을 다시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한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무엘’에 마음을 빼앗겨 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찬송을 보면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을 많이 생각하며 지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한나의 찬송은 구약과 신약 전체에 걸쳐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과 통치하심에 관한 신학에 큰 영향을 남기게 됩니다. 한나가 오늘날 위대한 신앙인으로 칭송을 받는 것은 단지 그녀가 위대한 사무엘을 낳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가 사무엘을 얻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분명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히 위대한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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