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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밤하늘도 파랗다! (시 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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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도 파랗다! (시 27:1~14)

    
우리 모두는 인생 길에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만납니다.  때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장애물들도 있지만,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들 앞에 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강력한 장애물들, 그 중에 가장 큰 장애물들이 무엇일까?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 속에 나타난 분노의 장애물, 미움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상처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의심의 장애물과 자신을 번민 가운데에 빠뜨리는 무서운 번민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든,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이든, 우리의 환경이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모든 삶의 속박으로부터 자유 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귀하고 좋은 날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환경이 어떻든, 무슨 태산 같은 문제가 내리고 이제 나가면 하늘이 꺼져 내리고 땅이 무너져 내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자유 함을 얻으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에 자유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자유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진정한 해방자이십니다.  눌린 자를, 갇힌 자를, 묶인 자를, 병든 자를 해방케 하시는 해방자이십니다.  해방하시는 분이 염려하고 걱정하시겠습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한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이 말씀의 원어의 뜻은 모든 날이 모든 문제를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문제가 있다면 내 일도 문제가 있습니다.  모레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문제라고 하는 것은 저주나 그 무엇의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 삶을 더 깨끗하게 하게 하고, 내 영혼을 더 순화시키고, 내 삶의 영역을 넓혀주는 또 다른 인생 길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일 뿐입니다.

문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없으면 능력도 없습니다.  문제가 없으면 기도도 없습니다.  문제가 없다면 성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하나님의 능력으로 움츠린 가슴을 활짝 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문제 속에서 이만큼 컸다!  사실 돌이켜 보면 오늘의 이것은 어제까지의 문제였습니다.

염려에 붙들려 인생의 모험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은 오늘 자유 하십시오.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붙들려서 인생의 모험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은 오늘 하나님을 붙들고 자유 하십시오.  염려는 생각의 일종일 뿐입니다.  염려를 자주 하면 마음이 둔해진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아들이 염려를 많이 하면 마음이 둔해집니다.  남편이 염려를 많이 하면 마음이 둔해집니다.  염려를 많이 하고, 걱정을 많이 하고, 근심을 많이 하면 그때부터 다른 일을 못하기 시작합니다.  아내도 살림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염려를 자주 하면 마음이 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의력도, 지혜도, 결단력도, 꿈도 없어집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 보면,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염려를 하지 마십시오.  '염려'라는 말은 생각의 일종인 데 마음이 갈라진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흩어진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찢어진다는 말입니다.  주인을 잃어버린 마음은 찢어집니다.  목표를 잃어버린 마음은 흩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밥을 먹어도 꿈을 꾸어도, 사업을 해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먼저 큰 것에 붙잡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 붙잡히지 마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큰 것에 붙잡히십시오.  사명에 붙잡히십시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이 혼돈 앞에서도, 이 혼란 앞에서도 하나님의 신은 운행하고 계십니다.  혼란과 혼돈 속에서 하나님의 신은 또 다른 질서와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고 혼돈 앞에서 삶에 대해서 좀 더 태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얼마나 큰 혼란 앞에 섰겠습니까?  그 어마어마한 혼란 앞에 섰습니다.  다윗이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의 정상 앞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 앞에서 다윗은 기도와 찬양을 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찬양과 기도로 흩어지는 마음을 주께로 모았을 것입니다.  갈라지는 마음을 모았을 것입니다.  목표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모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생각의 흐름을 통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내가 구체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하는 말은 내가 불현듯 시간마다 일어나는 내 생각의 통제를 은혜 안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혼돈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이 운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캄캄하다고만 생각하는 밤하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캄캄하지 않고 사실은 파랗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출간한 김동호 목사님의 저서인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책에 보면 '밤하늘도 파랗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여 드릴 수는 없지만 설명만 드려도 쉽게 상상하실 수 있으실 것이기에 그 책에 있는 글을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밤하늘은 으레 까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 밤하늘은 항상 새까맣게 칠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밤하늘도 파랗다.  사진을 보라.  밤하늘도 파랗지 않은가?  사진의 하늘은 분명 밤하늘이다.  아래 보이는 가옥에 불이 들어온 것과 하늘에 보이는 별빛을 보면 사진의 하늘이 밤하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하늘이 까맣지 않고 파랗다.

사진을 찍은 작가에게 물었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느냐고.  그는 "카메라 셔터를 20초 동안 누르고 있으면 이런 사진이 나온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셔터의 속도가 몇 십 분의 일초 또는 몇 백 분의 일초인 것을 생각하며 셔터를 20초 동안이나 누르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긴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에 비하면 20초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캄캄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절망할 수도 있고 그 절망으로 인하여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다.  하늘이 까맣고 앞이 캄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어 보라.  평상시에는 60분의 1초, 250분의 1초로 생각을 했지만, 인생의 밤하늘을 바라볼 때는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20초의 속도로 생각을 해 보라.

20초만 생각하면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고, 하나님만 생각할 수 있다면 밤하늘의 색깔이 바뀔 것이다.  60분의 1초, 250분의 1초로 밤하늘을 본다면 까만 하늘이지만, 20초의 속도로 밤하늘을 보면  밤하늘도 파랗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밤하늘도 파랗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조금만 생각의 속도를 늦추어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누구나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그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어두움에 헤매이지 않고 자신의 밤하늘이 캄캄하지만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낙심하지 아니하고 소망 중에 승리하는 삶을 살아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다윗입니다.

그는 사는 동안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절망하지도 아니하였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승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근사한  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믿음이었습니다.  환경과 여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모든 캄캄함에서 건져 주시는 빛의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고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 3절까지를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시편은 다윗이 평안할 때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이 시편을 캄캄하고 답답한 삶의 자리에서 기록하였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긴박한 상황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나의 빛이시다.  그러므로 삶의 자리가 비록 어둡고 캄캄하여도 나는 무섭지 않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그러므로 꼭 죽을 것만 같은 이 죽음의 상황이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조그만 시련과 어려움이 와도 쉽게 좌절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엄청난, 결코 작지 않는 엄청난 삶의 시련 앞에서도 노래하는 다윗의 이 고백, "삶의 자리가 비록 어둡고 캄캄하여도 나는 무섭지 않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그러므로 꼭 죽을 것만 같은 이 죽음의 상황이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이 고백이 어떻게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상황과 여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윗은 믿음 때문에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빛 되신 하나님, 나의 생명이요 구원자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비록 지금의 내 처지는 죽음의 긴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그것이 나를 절망의 구덩이 속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숙되지 못한 삶의 여건이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빛이요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이 믿음, 이 소망이 오늘 여러분에게도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절에서 12절을 찾아서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은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때 참으로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고린도후서 4장 1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격은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복음이 전해지지 아니하고 가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복음이 전해질 때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가리워질 때의 그 답답함과 고통스러움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바울에게 그러한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가리워짐으로 망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3절에서 복음은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워져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저들에게 복음이 가리워지게 된 이유를 4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 신이 영광의 복음의 빛을 가리워 저들에게 비취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의 복음의 광채"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6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표현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의 광채로 표현하고 고백한 바울은 즉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자신은 비록 질그릇과 같은 사람이지만 그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기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당하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어두운 세상이라고 낙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저는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자리에 앉은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이 가졌던 이 놀라운 믿음을 다 소유할 수 있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다윗이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 "여호와가 빛이요 구원이시기 때문에 세상의 어떠한 일을 만나도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라고 고백한 것과 똑같은 고백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의존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흔들리는 세상을 따라 흔들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그 세상을 따라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심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세상이 밤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을 만난다고 하여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믿음대로 승리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이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그 일을 위하여 수고하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도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이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는 일이 지극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우리의 인생이 걸려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이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 없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의 사람들은 이 어려움과 고난이 극복이 되어야 숨을 쉬고 살 수 있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과 관계없이 언제나 승리와 구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여정에서 극심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빛 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는 언제나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43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43편 1절에서 5절까지 찾아서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 말씀을 한 번 깊이 묵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으로 여러분의 신앙고백을 삼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힘과 능력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앞이 캄캄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신실하신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밤하늘이 파랗게 변하는 것을 여러분들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삶이 힘들고 곤고할 때에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근사한 기회입니다.  믿음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진가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고 안정되었을 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도 골리앗이 나타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불행하게도 그는 하나님을 믿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을 믿어 드렸습니다.  믿음의 진가는 골리앗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보다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밝은 낮에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누가 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누구나 캄캄한 밤에 소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입니다.  앞이 캄캄할 때 하나님을 믿어 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앞이 캄캄할 때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진가는 밝은 대낮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밤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참된 믿음의 진가를 발휘할 때입니다.  캄캄한 밤에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밤하늘도 파랗다라고 외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그 소망으로 어두운 밤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밤하늘도 파랗습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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