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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본향을 찾는 사람들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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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찾는 사람들 (히 11:13~16)


서론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것은 우리 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애창해 온'고향의 봄'이란 노래의 한 소절입니다.

고향은 누구나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본능’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고향 회귀본능’입니다.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 다는 뜻으로써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연어들의 귀향도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연어는 바닷물고기 입니다. 그 넓디넓은 바다에서 수년을 보낸 성숙한 연어는 수년의 아득한 망각 속에서도, 자기가 태어난 곳, 고향인 강물의 상류를 향해 역류해 고향에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향에 되돌아 와서 산란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는 지난 7일 방송인 조찬모임에 초대받아 갔다가 오랜만에 초청가수의 복음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 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곳에 가고자 한 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 곳, 내 일은 저 곳, 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길 다 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1.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습니다.

1) 우리는 외국인과 나그네입니다.

13절에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 로라 증거 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외국인』이란 국적이 따로 있지만 어떤 이유로 타국에 임시로 머무는 자를 지칭하는 말이며,『나그네』란 제한된 기한 동안 일시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천국, 그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면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외국인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그네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벧전 2:1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에게 나아간 야곱도 그의 인생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 47:9절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사람들은 평안할 때는 고향에 대한 생각을 잊고 살다가 자기의 육신에 병들고, 사업에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고향 생각을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 중에서도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들은 가진 돈이 있을 때, 허랑 방탕 할 때는 고향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 떨어지고 죽자 살자 하던 친구들 다 떨어지고 흉년 들어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에 병들자 그제야 아버지 생각하고 고향 생각하였습니다.

‘존 밀턴’이라는 영국의 시인은 「실락원」이라고 하는 그의 책 속에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된 이후로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에덴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3가지, 3대 고향이 있습니다.

첫째, 육신의 고향입니다.

이 고향은 내 몸이 태어난 곳이고,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신 곳이며, 어릴 적 같이 자라난 친구들이 있는 곳이며, 나의 육신과 마음과 꿈이 함께 자란 곳입니다.

둘째, 마음의 고향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마음의 고향은 바로 교회입니다. 특히 구약의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천국의 모형이었으며, 그러기에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셋째, 영혼의 고향입니다.

이 영혼의 고향은 바로 우리의 근본적 본향인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이 땅의 교회는 이 하늘나라에 대한 모형이며,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하늘나라는 이 땅 우리 인생들의 고향 그 실체입니다.

고향을 갈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을 실향민이라 합니다.

TV를 보면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 멀리 고향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장면을 대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실향민의 아픔은 잠시지만 영원한 고향을 가지 못하는 영원한 실향민이 될 사람이 아직도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조상이요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삶을 마치 고향 가는 길로 묘사하여 믿음생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고,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으며,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그 곳을 향하여 인생길을 걸어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참고 인내하며 가야합니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피곤하고 지루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고통과 위험도 따릅니다. 그때마다 자기의 힘과 능력을 잘 안배하여 체력을 관리하고 인내해야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습니다. 나그네 인생길에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고통과 난관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인내하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3)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을 보아도 어느 누구 하나 고난이 없이 산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소원대로 다 척척 이루어 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실패와 시련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모세는 애굽의 왕자가 누릴 부귀영화를 다 포기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25,26) 왜, 어떻게 그렇습니까? 영원한 본향에 가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인생의 목표는 이 세상의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부르셔서 우리의 영원한 고향에 돌아가는 날 그 날에는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상상도 하지 못할 성대한 축제가 있을 것입니다.


2.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본래 바울은 유대 시민권과 로마 시민권을 함께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은 유한한 것이니 임시적인 것일 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대학에 들어가고 박사가 되는 것이 결코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교수가 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사회인이 되는 것이 우리가 갈 본향이 아닙니다. 장사해서 이득을 많이 남기고, 집 잘 짓고, 자녀들 성공시키고 노년에 마음껏 즐기는 것이 우리의 가야 할 본향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한 때 입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벗어버리는 옷과 같은 것들입니다. 물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목표는 아닙니다.


2) 그 곳은 하나님께서 준비한 곳입니다.

본문 16절에『…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주님은『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5장 1절을 보면『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라고 했고,『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3) 그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행복자입니다.

낮에 재미있게 놀다가 어두움이 깔리면 돌아갈 집이 없는 고아 같은 인생이 많습니다. 낮에 소꿉놀이 할 때 왕 노릇하면 뭐합니까? 밤에 갈 데가 없는데요. 비록 낮에 소꿉장난하고 놀 때는 거지 노릇을 했어도 저녁이 되고 불이 켜질 때 나를 부르는 곳이 있고 “아빠! 엄마!” 부르며 돌아갈 집이 있는 아이! 이 아이가 진정 행복한 아이입니다.

성경을 보니 다윗과 같이 왕의 지위에 오르는 자도 있지만, 엘리야처럼 가난하게 사는 자도 있고, 평생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는 자들도 있습니다.(37) 우리 중에는 평안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남보다 더 많이 고생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고, 또 일찍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이 진정한 행복자입니다.


3. 하늘나라는 더 나은 본향입니다

본문 16절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의 고향 길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항상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천국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해 주신 곳입니다. 그곳에는 우리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서간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천국 가는 길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수녀 후보생을 면접할 때 세 가지 기준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잘 웃는 사람, 둘째, 잘 먹는 사람, 셋째, 잘 자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잘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웃어야 남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만이 웃을 수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잘 먹을 수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잘 잘 수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지극히 단순한 것 같고 좀은 엉뚱한 것 같은 선발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인생의 자기 관리와 인간관계, 사회생활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고향은 아무리 큰 기대를 가지고 찾아가도 100%의 만족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 세상은 어디나 근심과 걱정과 한숨과 아픔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고향 천국에는 눈물도 근심도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계 21:3-4절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되는 우리 믿음의 조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은 누구나 금의환향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왔는데, 내가 이만큼 성공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을지 모릅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노년에 평화롭게 살다가는 것이 누구나 갖는 소박한 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습니다. 그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을 거기에 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 나라를 사모하였기에 그들은 세상에 집착하면서 믿음과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3) 여러 가지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인생 나그네 길에는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명예의 유혹, 물질의 유혹, 향락의 유혹 등이 많습니다. 세상의 달콤한 것에 현혹되면 그만 나그네 길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들어가면 다시는 헤어나지 못합니다.

멧돼지 우화가 있습니다.

숲 속의 멧돼지가 늦은 가을 감나무 아래를 지나가다가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를 발견하고 이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달콤한 홍시 맛을 본 멧돼지는 홍시를 찾기 위해 땅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지쳤습니다. 벌렁 드러누웠는데 홍시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높이 감나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멧돼지는 그만 화가 나서 결국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우화입니다.

개미귀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래 위에 함정을 파 놓고 지나가는 개미가 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맨 밑바닥에 숨어 있다가 함정에 빠진 개미의 다리를 물어 통째로 잡아먹습니다. 이 세상에는 믿음을 버리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도록 만드는 세력이 있습니다. 조심하고 유혹에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구주 예수라' 545 3절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아버지를 부르는 그것만으로도 환영받는 곳 바로 그런 본향입니다. 오늘도 그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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