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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욜 2: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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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욜 2:28~32)
   

우리는 신년부흥회를 개최하는데, 집회의 이름을 잘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에부터 내려오는 대로 ‘심령대부흥회’라고 해도 될 것이지만, “성령충만 영성집회”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이번 부흥회는 성령충만 받기를 원하는 영적인 집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교회가 개최하는 모든 집회가 세상적인 집회가 아니며, 학술세미나도 아니라 영적인 집회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가지는 부흥회는 특별한 영성집회입니다.  

성령충만을 위한 영성집회이기에, 우리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찬송하고, 기도하고, 열심 참석해야겠습니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서 일하시고, 조금만 열심을 내어 오시면 됩니다.  늦게라고 빠지지 말고 나오시면, 은혜의 잔치에서 은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집회이기 때문에 참석만 하셔도 성령의 감동과 역사를 체험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간절히 기도할 때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행2:4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4)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집회에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소원하는데,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언어’라고 하였지만, 예전의 개역성경이나 새번역에서는 ‘방언’이라고 했습니다.  ‘언어’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글롯사’라고 하여 혀, 방언, 언어, 말이라는 뜻입니다.  방언이란 뜻은 한 지방의 언어를 말합니다.  때로는 한 나라에서 사용되는 표준어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되는 사투리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다른’이라는 말은 ‘헤테로스’라고 하여 같지 않고 다른 other라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아닌 다른 혀, 다른 말, 다른 언어로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다른 언어, 방언이라는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 구약의 요엘2:28-32에서 말씀해주신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28:11의 말씀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어야 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살고, 성경이 삶의 표준이고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말씀의 자리에 서야합니다.  

요한계시록1:3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선입관이나, 나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래부터 주신 말씀, 성경대로, 기록된 말씀이 선포된 말씀으로, 그리고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이 되어야겠습니다.  

저는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핵심, 성경의 가르침, 온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붙잡고 믿어야 합니다.  그 외에 비본질적인 것들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고, 부수적인 것이라고 하면 다음에 해도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죄악 세상에서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왜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습니까?   그리고 왜 성령을 보내어주셨고, 성령님은 왜 우리 중에 임재하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들 중에 예수 잘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생명으로 알지 않고, 직분을 내세우고, 권위와 위신을 찾는 일에 우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선입니다.  교회의 생활과 교회를 유지하고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은 다만 예수 잘 믿기 위한 것입니다.  내용과 형식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내용이 빠져버린 형식만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더욱 알차게 담기 위하여 형식이라는 그릇을 갖추는 것뿐입니다. 

초대교회가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면서 오순절을 맞이하였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었습니다.   성령이 온 성도들 위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옛날 요엘 선지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주셨습니다. 물 붓듯이 부어주셨습니다.  차고 흘러 넘치도록 가득하게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의 오심을 실감나게 표현하셨으며,  우리 사람으로서는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역사로 임하시고 부어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초대교회 120명의 성도들은 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은혜 받으려고 하면 은혜의 자리에 나와야 합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이라고 하면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 사람들로 자기들도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본래부터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유대인이라고 하면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프리카 유럽, 중동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함께 유대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을 찾아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가의 집에서 큰 소리가 나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들이 각국에서 사용하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 교인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들었는데, 자기들의 나라말로 들었습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야?”(행2:8)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또 메소보아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야와 밤빌리아, 애굽과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 로마로부터 온 사람, 또는 그레데인 아라비아인들도 있었습니다.   이 여러 지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 자기 지방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기독교회에서 말하는 방언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있고, 또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기도는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행2:7-8)고 합니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을 저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였습니다.   행2:13절에 보면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 사도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 삼시라는 말은 오전 9시 경으로, 어떤 사람들이 아침부터 술에 취하여 그런 횡설수설한다는 말이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말하는 것을 무슨 말이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바로 그 예언이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이런 강력한 현상은 이미 구약에서 요엘 선지자로 말씀하신 것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성부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요엘2:30-32)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른다고 하셨는데, 역사 마지막 시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지막 시대가 되면 하나님은 그 때에 능력 있는 신앙, 역사하는 믿음, 악한 시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후 다시 오실 때까지가 마지막 날들입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남종과 여종들,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노인들은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이상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예수님을 잘 믿고 싶어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어지고, 그 능력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생생하게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신앙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것은 결코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일생 예수 믿었다고 하여도 수박 겉핥기와 같이 믿고,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행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참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과 심판의 말씀이 동시적으로 들려집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믿으면 구원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으면 본래부터 임한 심판에 그대로 머물게 될 뿐입니다.  옛날 노아 시대에 방주를 지어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순종하여 그의 식구는 구원받았습니다. 노아는 미친 소리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자기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문에서 떨어지라는 것은 자기를 스스로 파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은 곧 죽음이었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명령은 불가능해보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핵심이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그것이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떠나가시면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한번 기다려보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수 없는 믿습니다.   이제부터는 성령 충만에 거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어주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게 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을 모신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리” 성령님으로 차고 넘치는 역사, 충만한 역사, 성령님이 온전히 역사하는 신앙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 312번지는 미국의 성령운동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흑인 목사님으로 시무어(William Seymour 1872-1922) 가 파헴의 성경학교를 나와서 아주사로 왔습니다.  작은 장로교회에서 집회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령세례와 방언에 대하여 설교하였는데, 당시 성도들은 그 말씀들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시무어 목사님의 메시지는 당시 기성 교회 성도들에게 부담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소화시키기에 버거운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설교하려고 와보니 예배당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성도 한 분이 이럴 수는 없다고 하여 자기 집에서 말씀을 전하시라고 초대하였습니다.   성도의 한 집에서 말씀을 증거하는데, 4일 째 되는 날에 말씀을 듣던 많은 성도들에게 성령 충만이 임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방언하는 이들이 있었고, 큰 소리로 찬양하고 명랑하게 웃기도 하였습니다.  초대 교회에 새술에 취하였다고 하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발을 구르면서 찬양하므로 그 낡은 집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다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몇 군데 집회 장소를 물색하다가 아주사 거리 312번지의 2층 건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한 아주사 거리의 부흥은 3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미국의 전역에서 아주사 거리의 부흥을 체험하기 위하여 모여들었습니다.  세계 많은 사람들이 아주사거리 선교회에서 일어난 영적 부흥을 체험하기 위하여 모여드는데, 예배는 아래층에 드리고, 2층은 하루 종일 개방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2층에 올라가서 쉬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열한 살의 캐들린이라는 소녀가 다락방에 있었고,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을 쳐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2층에 올라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열한 살 소녀 캐들린이 일어나더니 그 올라오는 남자를 향하여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크게 십여분 동안 말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런 소리 때문에 종을 치지 못하고 지체 되었으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예배당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낯선 남자가 어린 소녀 캐들린의 손을 잡고 강단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려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유대인입니다.  저는 방언에 대해 조사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이 도시에서 제 성이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제 직업이나 제가 여기 온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이곳 설교자들의 설교를 낱낱이 분석하고 해부하여 기독교 신앙에 반대하는 강의에 사용하려고 이곳에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건물에 들어오는 순간, 이 소녀가 히브리어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녀는 제 성과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제가 이곳에 온 목적과 제 직업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녀는 제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이 소녀가 여기 사람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제 사생활까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유대인은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마치 심장이 터질 듯한 음성으로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는 오늘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기뻐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이 소녀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그 어린 입술을 사용하셔서 한 사람에게 깨닫게 하는데, 성령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가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1922년에 아프리카 한 가운데서 희한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인 갈룩이라는 목사님이 부부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공화국 내에 있는 판즈 부족의 선교사로 가기로 자원하였습니다.  판즈 부족으로는 갈룩 목사님이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그런데 판즈 부족은 식인종이었습니다.  직접 판즈 부족에게로 들어가지 못하고 옆에 있는 부족에게로 들어가서 캠프를 치고 판즈부족에게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사모님이 말라리아 병에 걸려서 자기를 돕는 원주님 한 사람에 약을 구하기 위하여 도시에 나가야 하는데, 돌아가면 사모님이 돌아가실 것 같아 판즈부족이 사는 지역으로 거쳐 약을 구해오다가 청년 몇 사람이 출발하였는데, 한 청년이 식인종에게 잡혔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원주민 몇 사람과 함께 판즈 부족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위를 산만하게 하면 보초들이 딴 눈을 팔 때에 들어가 구출하기 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지키는 한 집이 있어 그 청년이 감금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보초들을 지나서 그 집으로 들어가서 묶여 있는 청년을 구출해 나오는데,  보초들이 사람들을 불러 그 집 안에 온 식인종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뒤에 자기들을 구출해줄 것으로 말한 함께 온 청년들이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추장이 모든 식인종들을 불러 모으고 무당 같은 자가 목사님 앞을 왔다갔다 하면서 소리를 칩니다. 마치 재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무당은 갈대지팡이를 잡고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갈룩 목사님에게 말해보라는 듯이 갈대 지팡이를 던졌습니다.  그 때에 갈룩은 스스로를 변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시간을 벌기 위하여 갈대 지팡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자 식인종들이 조용해졌습니다.  갈룩목사님이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할 지 가르쳐주옵소서.    주님의 영을 제게 보내주십시오.”  그 때에 갈룩목사님의 몸이 흔들리며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13:11)는 말씀이었습니다. 갈룩목사님은 심호흡을 하고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술에서 그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말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신도 전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데, 식인종들이 그 말을 다 알아듣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판즈부족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20분 동안 말을 하고 그런 언어가 뚝 그쳤습니다.  목사님은 다시 주저 앉았습니다.  그러더니 무당이 수탉을 잡아가지고 와서 목사님과 원주민 청년의 얼굴을 그 피를 뿌리더니 가라고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추장은 두 사람이 선교본부로 돌아오는데 식인종 두 사람을 호위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이 선교사는 마음놓고 그 부족에게 들어가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인종의 습관을 버리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다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오늘 성령충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사모하는 중에 청령님의 은사를 사모하여 큰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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